영화광고 포스터로 봤을 때는 그저 순정만화에서 조금 일탈한 영화정도일 것이라 여겼다. 그러다 어느 날 유선방송을 켜놓고 잠을 자다가 깼는데 불량공주 모모코가 중간부터 하고 있었다. 발랄한 대사와 유쾌한 상황설정이 일본 만화의 구성과 비슷하다고 여기다 깜빡 잠이 들었다. 그리고 또 어느 날 채널을 돌리다가 내가 못 봤던 이 영화의 다른 부분이 방송되어 봤지만 잠시 후 전에 봤던 장면이 재등장하기에 다른 채널로 돌렸다. 마지막 세 번째 방송될 때에는 스토리가 어느 정도 연결되어 그나마 볼만 했다. 왠지 이 영화는 조금 이런 식으로 불량스럽게 봐줘야 할 것 같았다.
제목부터 모순어법이다. 공주라는 말 앞에는 상냥한이나 친절한이란 말이 붙어야 옳다. 상대방 면상에 총을 들이대는 우리의 금자씨도 친절하다는 수식어가 붙지 않았나? 그런데 모모코는 불량이란 수식어가 붙는 공주다. 불량, 불량하다는 것은 뭔가 결함이 있거나 해롭다는 의미를 지닌다. 모모코의 외모를 봐서는 전혀 불량스러울 것 같지가 않다. 차림새는 조금 고풍스럽지만 외모는 요즘 유행하는 마스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사고방식이 오염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불량이란 말이 붙게 된다. 그녀의 사고방식이 불량스러운 이유는 뭘까?
자연스러운 인과관계이겠지만 그 집안 내력이 조금 불량스럽다. 아버지는 집에서 방귀나 뀌고 있고 어머니는 집을 뛰쳐나가 미인대회에 출전한다. 한쪽 눈이 애꾸인 할머니는 살짝 정신을 놓고 사시지만 어쨌거나 다들 모모코를 사랑한다. 모모코가 그나마 자기애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주위 사람들이 각자 자기 멋 대로이면서도 그녀를 사랑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모모코가 이치고라는 여자폭주족을 만나면서 전개된다. 모모코과 이치고는 어찌 보면 상반된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모모코는 여성스러움을 넘어 아기에 가까운 옷을 입는다. 로리타 콤플렉스를 떠올리게 한다. 반면, 이치고는 바지가 가슴까지 올라오는 옷을 입고 침을 탁탁 뱉는다. 남자처럼 강해지고 싶어하는 페미니스트인 것이다. 비전형적인 여성 캐릭터의 등장, 게다가 그 정도가 과장되어있다. 앞서 말한 만화적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환상의 콤비라 할만하다. 이 영화가 계속해서 에너지를 뿜어내는 이유는 이 둘의 대비로 인한 마찰력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쨌든 이치고가 모모코를 찾아오는 이유는 그녀가 옷에 글자나 문양 같은 수를 멋지게 놓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심지어 모모코의 재능을 활용해 유명 메이커를 모방한 옷을 만들어 대박을 내기까지 한다. 이치고는 모모코에게 폭주족의 옷에 수를 놓는 전설적인 여자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그녀를 찾아가자고 조른다. 그 과정에서 이치고의 폭주족 멤버들과 부딪치기도 하지만 모모코는 자신이 전설적인 여자의 숨겨진 딸이라는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한다.
불량공주 모모코라는 영화는 이처럼 자기 자신만 생각하며 외적인 것에 치중하고 거짓으로 남의 이목을 휘어잡는 세상을 풍자하고 있다. 이는 일본사회에 대한 반성일수도 있지만 한국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이슈가 된 학벌논쟁의 경우만 보더라도 거짓으로 사회적 지위를 얻은 사람들을 들 수 있다. 그들과 폭주족 옷에 멋진 문양을 새기려고 하는 이치고와 무엇이 다를까? 다르다면 이치고는 큰소리를 뻥뻥 치며 당당한 자세를 잃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그녀는 단지 멋지게 오토바이를 달리는 것에 만족할 뿐이었으니까.
원래 여자들 나오는 영화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 영화는 예외였다. 델마와 루이스 이후로 가히 최고의 여성 콤비의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칭찬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틀에 박힌 고정관념이나 식상한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는 점이었다. 폭력적이지도 외설적이지도 않으면서 이토록 시선을 끄는 것은 단지 모모코의 화려한 의상 때문만은 아니다. 혹자는 이야기가 산만하고 엉뚱한 곳으로 빠진다고 볼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어차피 어떤 스토리 자체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전설이라는 것도 허구에 불과했으니까. 우리가 믿고 있는 과거의 이야기, 즉 역사도 현대인에 의해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 우리도 일본영화 보면서 조폭 얘기, 페미니즘 얘기를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으면 한다. 가벼우면서도 철학이 담긴 영화 말이다.
불량공주 모코코
불량공주 모모코
영화광고 포스터로 봤을 때는 그저 순정만화에서 조금 일탈한 영화정도일 것이라 여겼다. 그러다 어느 날 유선방송을 켜놓고 잠을 자다가 깼는데 불량공주 모모코가 중간부터 하고 있었다. 발랄한 대사와 유쾌한 상황설정이 일본 만화의 구성과 비슷하다고 여기다 깜빡 잠이 들었다. 그리고 또 어느 날 채널을 돌리다가 내가 못 봤던 이 영화의 다른 부분이 방송되어 봤지만 잠시 후 전에 봤던 장면이 재등장하기에 다른 채널로 돌렸다. 마지막 세 번째 방송될 때에는 스토리가 어느 정도 연결되어 그나마 볼만 했다. 왠지 이 영화는 조금 이런 식으로 불량스럽게 봐줘야 할 것 같았다.
제목부터 모순어법이다. 공주라는 말 앞에는 상냥한이나 친절한이란 말이 붙어야 옳다. 상대방 면상에 총을 들이대는 우리의 금자씨도 친절하다는 수식어가 붙지 않았나? 그런데 모모코는 불량이란 수식어가 붙는 공주다. 불량, 불량하다는 것은 뭔가 결함이 있거나 해롭다는 의미를 지닌다. 모모코의 외모를 봐서는 전혀 불량스러울 것 같지가 않다. 차림새는 조금 고풍스럽지만 외모는 요즘 유행하는 마스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사고방식이 오염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불량이란 말이 붙게 된다. 그녀의 사고방식이 불량스러운 이유는 뭘까?
자연스러운 인과관계이겠지만 그 집안 내력이 조금 불량스럽다. 아버지는 집에서 방귀나 뀌고 있고 어머니는 집을 뛰쳐나가 미인대회에 출전한다. 한쪽 눈이 애꾸인 할머니는 살짝 정신을 놓고 사시지만 어쨌거나 다들 모모코를 사랑한다. 모모코가 그나마 자기애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주위 사람들이 각자 자기 멋 대로이면서도 그녀를 사랑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모모코가 이치고라는 여자폭주족을 만나면서 전개된다. 모모코과 이치고는 어찌 보면 상반된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모모코는 여성스러움을 넘어 아기에 가까운 옷을 입는다. 로리타 콤플렉스를 떠올리게 한다. 반면, 이치고는 바지가 가슴까지 올라오는 옷을 입고 침을 탁탁 뱉는다. 남자처럼 강해지고 싶어하는 페미니스트인 것이다. 비전형적인 여성 캐릭터의 등장, 게다가 그 정도가 과장되어있다. 앞서 말한 만화적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환상의 콤비라 할만하다. 이 영화가 계속해서 에너지를 뿜어내는 이유는 이 둘의 대비로 인한 마찰력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쨌든 이치고가 모모코를 찾아오는 이유는 그녀가 옷에 글자나 문양 같은 수를 멋지게 놓는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심지어 모모코의 재능을 활용해 유명 메이커를 모방한 옷을 만들어 대박을 내기까지 한다. 이치고는 모모코에게 폭주족의 옷에 수를 놓는 전설적인 여자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그녀를 찾아가자고 조른다. 그 과정에서 이치고의 폭주족 멤버들과 부딪치기도 하지만 모모코는 자신이 전설적인 여자의 숨겨진 딸이라는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한다.
불량공주 모모코라는 영화는 이처럼 자기 자신만 생각하며 외적인 것에 치중하고 거짓으로 남의 이목을 휘어잡는 세상을 풍자하고 있다. 이는 일본사회에 대한 반성일수도 있지만 한국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이슈가 된 학벌논쟁의 경우만 보더라도 거짓으로 사회적 지위를 얻은 사람들을 들 수 있다. 그들과 폭주족 옷에 멋진 문양을 새기려고 하는 이치고와 무엇이 다를까? 다르다면 이치고는 큰소리를 뻥뻥 치며 당당한 자세를 잃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그녀는 단지 멋지게 오토바이를 달리는 것에 만족할 뿐이었으니까.
원래 여자들 나오는 영화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이 영화는 예외였다. 델마와 루이스 이후로 가히 최고의 여성 콤비의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칭찬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틀에 박힌 고정관념이나 식상한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보여주었다는 점이었다. 폭력적이지도 외설적이지도 않으면서 이토록 시선을 끄는 것은 단지 모모코의 화려한 의상 때문만은 아니다. 혹자는 이야기가 산만하고 엉뚱한 곳으로 빠진다고 볼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어차피 어떤 스토리 자체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영화에 등장하는 전설이라는 것도 허구에 불과했으니까. 우리가 믿고 있는 과거의 이야기, 즉 역사도 현대인에 의해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 우리도 일본영화 보면서 조폭 얘기, 페미니즘 얘기를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으면 한다. 가벼우면서도 철학이 담긴 영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