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는 그리스도인의 진로와 비전이 세상의 기준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모든 크리스천은 성공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어떤 면에서는 맞고 어떤 면에서는 틀린 말이기도 하다. 이것은 성공의 정의가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성공’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물질의 복을 더 갈구하는 것 같다.(물론 나 또한 그랬고 지금도 불끈불끈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암에 걸리는 환자의 비율은 세상이나 교회나 그리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도는 이야기 중에 ‘9988’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우리나라 생산직의 99%가 중소기업이며 우리나라 근로자의 88%가 중소기업에서 일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훌륭하고 돈 많이 번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며 꿈을 키우고 모두가 리더이길 원하지만 실제 사회에 나아갔을 때 우리는 막내이며 섬기는 일부터 배워야 한다. 크리스천은 당연히 섬기는 것 아니냐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섬긴다는 것을 공동체성을 내포하므로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세상에서 결코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얼마 전 유진 피터슨의 [한 길 가는 순례자]를 읽으며 바울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얻었다. 바울은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이었다. 그가 쓴 책들은 얼마나 탁월했던지 ‘스테디셀러’나 ‘베스트셀러’ 혹은 ‘올 해의 우수한 책’ 명단에 오른 것이 아니라 아예 성경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복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했고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다. 그런 그의 삶은 어떠했는가? 여기 바울을 직접 모시고 인터뷰 해보자.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았고 세 번 파선하였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않더냐?”(고후11:23~29)
자주 보아왔던 말씀이었는데도 이 책을 읽으며 소개된 바울의 이 고백이 나의 머리를 꽝 치고 마음속에 남았다.(누가 말하느냐는 이렇게 중요하다) 바울은 결코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좇아 나의 비전과 진로를 인도받는 것이 세상이 말하는 ‘잘 나가는 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물론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물질적 부요와 세상의 명예를 얻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고난과 좁은 길은 결코 사역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길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길이 평탄하지 않을지라도 우리가 그 길을 기쁨으로 걸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한 없는 영광을 받으신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래서 기쁨의 삶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의 첫 번째 질문을 생각하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우리의 비전과 진로 역시 우리의 부함이나 야망을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장 합한 길을 걷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기뻐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근본 된 목적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진로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에 대해 세 가지 시각을 가지고 알아보았다. 두 가지는 앞에서 다루었고 이번 글에서는 세 번째로 그리스도인의 진로와 비전이 세상의 기준과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생각보다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점차 생각할 것들을 없애간다. 그러나 그런 과정은 우리의 삶을 본질이 아닌 객관적인 잣대에만 머물게 하는 맹점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길 가운데 세상이 말하는 복을 받는 인생도 있다.(나는 결코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의 길이 세상이 제시하는 복을 받은 인생은 아니다. 그것은 사실 성경 전반에 걸쳐 증명되고 있다. 나는 이 말을 할 때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바울과 다른 사도들도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길로 인도 받을 때 그대의 길은 하나님 앞에 복 된 길이며 복 받은 인생이 된다.
진로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3
셋째는 그리스도인의 진로와 비전이 세상의 기준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모든 크리스천은 성공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어떤 면에서는 맞고 어떤 면에서는 틀린 말이기도 하다. 이것은 성공의 정의가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성공’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물질의 복을 더 갈구하는 것 같다.(물론 나 또한 그랬고 지금도 불끈불끈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암에 걸리는 환자의 비율은 세상이나 교회나 그리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도는 이야기 중에 ‘9988’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우리나라 생산직의 99%가 중소기업이며 우리나라 근로자의 88%가 중소기업에서 일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사회에서 훌륭하고 돈 많이 번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며 꿈을 키우고 모두가 리더이길 원하지만 실제 사회에 나아갔을 때 우리는 막내이며 섬기는 일부터 배워야 한다. 크리스천은 당연히 섬기는 것 아니냐고 쉽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섬긴다는 것을 공동체성을 내포하므로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세상에서 결코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얼마 전 유진 피터슨의 [한 길 가는 순례자]를 읽으며 바울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인사이트를 얻었다. 바울은 그 누구보다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이었다. 그가 쓴 책들은 얼마나 탁월했던지 ‘스테디셀러’나 ‘베스트셀러’ 혹은 ‘올 해의 우수한 책’ 명단에 오른 것이 아니라 아예 성경에 올랐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이 세상 그 누구보다 복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했고 강력한 영향력을 끼쳤다. 그런 그의 삶은 어떠했는가? 여기 바울을 직접 모시고 인터뷰 해보자.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았고 세 번 파선하였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않더냐?”(고후11:23~29)
자주 보아왔던 말씀이었는데도 이 책을 읽으며 소개된 바울의 이 고백이 나의 머리를 꽝 치고 마음속에 남았다.(누가 말하느냐는 이렇게 중요하다) 바울은 결코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좇아 나의 비전과 진로를 인도받는 것이 세상이 말하는 ‘잘 나가는 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물론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물질적 부요와 세상의 명예를 얻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고난과 좁은 길은 결코 사역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길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길이 평탄하지 않을지라도 우리가 그 길을 기쁨으로 걸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한 없는 영광을 받으신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래서 기쁨의 삶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의 첫 번째 질문을 생각하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 우리의 비전과 진로 역시 우리의 부함이나 야망을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장 합한 길을 걷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기뻐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근본 된 목적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진로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에 대해 세 가지 시각을 가지고 알아보았다. 두 가지는 앞에서 다루었고 이번 글에서는 세 번째로 그리스도인의 진로와 비전이 세상의 기준과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생각보다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그래서 점차 생각할 것들을 없애간다. 그러나 그런 과정은 우리의 삶을 본질이 아닌 객관적인 잣대에만 머물게 하는 맹점이 있다. 그리스도인의 길 가운데 세상이 말하는 복을 받는 인생도 있다.(나는 결코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의 길이 세상이 제시하는 복을 받은 인생은 아니다. 그것은 사실 성경 전반에 걸쳐 증명되고 있다. 나는 이 말을 할 때마다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바울과 다른 사도들도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비하신 그 길로 인도 받을 때 그대의 길은 하나님 앞에 복 된 길이며 복 받은 인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