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

굿월드명품관2007.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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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다는…

1910년 창업자인 마리오 프라다가 경영하는 최고급 가죽 여행용 가방가게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당시 밀라노의 중심가에서 왕족과 귀족들을 대상으로 한 최고 품질의 가죽제품 가방과 여행용 액세서리를 만들어 판매하였는데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최고 전성기를 맞이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1958년 마리오가 사망하고, 쇄퇴의 길로 들어서던 프라다는 가업에 관심이 없었던 마리오의 아들의 의해 파산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그러다 1970년대에 마리오의 손녀인 미우치아 프라다가 부모님이 경영하던 파산직전의 프라다를 어쩔 수 없이 이어받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만해도 가방의 소재로는 가죽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틀을 깨고 가죽을 대신할 가방소재를 찾기 위해 고심이었는데, 어느날 군용물품공장에서 낙하산이나 텐트용으로 쓰인 방수천의 일종인 포코노 나일론을 생산하게 되었는데. 미우치아는 이 소재에 아이디어를 얻어 포코노 나일론을 이용한 프라다 백을 선보이게 되었다.

소재는 나일론으로 다소 신선했으나 형태는 고전적이었던 이 가방은 현대적인 멋과 장인 정신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제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튀는 멋도 없는 너무나 심플해서 단조롭기까지 한 디자인 탓에 첨에 고객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러나 미우치아가 뜻을 굽히지 않고 계속 생산한 끝에 시즌이나 스타일에 관계없이 애용할 수 있는 이상적 소재로 1978년부터 패션세계에 각광 받게 되었다. 현재는 프라다의 대표적인 상품으로 인식되지만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시도가 아닐 수 없었다. 1990년대 들어 차츰 차츰 이 나일론 백의 보유자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유행과 더불어 패션도 바뀌었다. 또한 울이나 면, 린넨 등과 같은 천연적인 소재 사용에서 벗어나 각종 합성 소재를 이용한 패션의 등장은 PRADA의 나일론 가방 판매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그녀의 아이디어로 인해 방수용의 평범한 나일론 원단으로 만들어진 프라다 백은 크게 히트를 치게 되어 오늘날까지도 유명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녀는 또한 가죽제품 소매업을 하던 파트리조 베르텔리로 하여금 ‘프라다’라는 이름으로 가죽제품을 독점적으로 유통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는데.이후 두사람이 1987년에 결혼하게 되면서 미우치아의 디자인과 베르텔리의 경영 능력을 겸비하여 프라다는 더욱 더 급성장 할수 있게 된다.

이렇게  파산 직전의 위기에 놓인 가업을 성공적으로 구해낸 미우치아는 이후 1989년에 첫 여성복 콜렉션을 개최하고, 1993년엔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을 겨냥한 미우미우(Miu Miu), 1994년 남성복 브랜드 워모(Uomo), 1997년엔 언더웨어 프라다 인티모(Intimo), 1998년 프라다 스포츠, 2000년에 이르러서는 화장품 분야에까지 사업을 점점 확장 시켜 나가게 된다.

이러던 중, 1994년에 프라다는 오스카 패션상을 수상하게 된다.

프라다가 추구하는 패션은 실용주의에 있다.  또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독특한 소재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품격있고 지적인 스타일의 미니멀리즘 적인 특성과 단지 보기에 아름다운 옷 보다는 입어서 편안함을 느끼는 유행을 타지않는 안티룩(anti look)의 특징을 보여준다.

사실 미우치아 프라다는 정치학을 전공한 정치학도였는데, 그녀가 패션을 공부하지 않은 까닭에 오히려 상식을 넘는 과감한 시도를 할 수 있었고, 이러한 시도들이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어 내고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변화 시키는 등의 시장의 진화를 주도하여 오늘날의 거대한 패션제국으로 변모 시킬 수 있었다. 현재 프라다는 연간 2조원에 이르는 매출을 자랑하는 이탈리아 최대의 패션 그룹으로서 전 세계에 직영 매장을 두고 제품을 판매·관리하고 있으며, 프라다, 미우미우 ,헬무트 랭, 질 샌더 등 다수의 브랜드를 인수하며 더욱 더 거대한 패션 그룹으로 변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