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이번에 제대로 부상해줬다. MBC 미니 시리즈 에서 주인공과 사랑을 놓고 겨뤘던 한정훈 역. 남부럽지 않게 자라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두 번씩이나 다른 남자에게 보내야 했던, 사랑에 서투른 남자.
결국 그녀의 행복을 빌어줄 수밖에 없는 한심하도록 사랑에 약한 남자. 그의 잔상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드라마가 끝나고, 극의 중심을 이루던 주인공들의 로맨스도 점차 잊혀져가는데 사람들의 화두에는 아직도 그 남자가 빙빙 돌고 있었다. 그를 만나기에 최적의 시기였다.
스물아홉, 그는 의외로 늦깎이다. 뭔가 더 있을 듯, 또 아무것도 없을 듯도 한 그 모호한 이미지는 나이보다 지나치게 어려 보이는 외모 때문일까. 도대체 이 남자 저 곱상한 얼굴을 하고서 어디서 뭘 하다 이제 나타난 거야? “언젠가 잘 되겠지 하고 버텼는데…. 여기까지 오는 데 10년 가까이 걸렸어요.”
찬찬히 뜯어보던 시선에 변명하듯 그가 말문을 열었다. 대학 시절 그저 호기심에 시작한 연극 동아리에서 어느 날 문득 진짜 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잘될 거라며 부추기던 친구의 격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몇 개월 고심 끝에 시작하게 된 길이다. 1998년, 연극 으로 무대에서 먼저 데뷔했고, 극단 활동을 하면서 간간이 광고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군대 문제가 걸려 있는 무명의 남자 배우가 전진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결국 제대하고 나서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꼭 하고 싶었는데 못 맡게 되어서 아쉬웠던 기억을 묻자, 오히려 반문한다. 어디 한두 번이었겠느냐고. 매번 ‘내꺼다’ 싶어 달려들었다가 고스란히 내주기를 수십 번, 그는 어느새 흘러간 기회보다 제대로 잡은 기회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나 보다.
“드라마로는 이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가비앤제이의 ‘해피니스’ 뮤직비디오를 찍었는데, 그때부터 조금씩 알아봐 주시더라구요. 가비앤제이의 ‘해피니스’ 모르세요?”
바로 그때부터였다. 얌전한 고양이 같던 그가 흥분하기 시작한 게…. 집중해서 보지 않은 것은 금세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심각한 건망증에, 어느 한자리에 앉아서 뮤직비디오란 걸 감상해본지도 대략 5년은 지난 에디터는 그의 혹시나 하는 물음에 용감하게도 “몰라요”라고 응수한 것. 서운하다기보다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잠시 골몰하던 그는 지체 없이 휴대폰을 꺼내며 단호하게 말했다. “들려드릴게요.”
해피니스’ 뮤직비디오를 휴대폰으로 재생해 보여주면서 그는 연신 중얼거렸다. “이거 그래도 꽤 유명하던데. 노래도 엄청 좋았는데….” 그 안타까운 중얼거림을 애써 외면하며 액정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기억을 더듬었다. 중저음이 인상적인 가비앤제이의 독특한 음색도, 지금보다 조금 더 앳된 얼굴의 박시후도 분명 처음은 아니었다. “아, 알아요. 인상 깊게 보고서도 기억력이 좋질 않아서….” 뒤늦게 기억해낸 것이 못내 미안한 에디터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그는 아직도 액정 화면 속에 빠져 있었다.
“굉장히 욕심났었는데, 다행히 감독님이 절 마음에 들어하셨어요. 도 이 뮤직비디오 덕분에 하게 됐구요. 그 전에는 드라마 굉장히 하고 싶었는데도 잘 안 됐었거든요.”
무척 행복한 표정이었다. 긴 긴 터널 속에서 빠져나와 가까스로 햇빛을 봤던 때를 떠올리듯이 그는 그렇게 불과 8개월 전을 떠올리고 있었다. 만약 그가 아직도 그 터널 속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서른을 목전에 둔 남자들의 속절없는 강박관념을 그는 순순히 비껴 갈 수 있었을까. 묵묵히 한 길만 고집했다는 그의 말이 어쩐지 대책 없이 들렸다. 그 구김 없는 표정 뒤에 숨어 있었던 모호함은 아마도 이 대책 없는 뚝심이었나 보다.
“장면이 많지 않더라도 인상에 남는 강한 역을 하고 싶어요. 의 에드워드 노튼이 순수한 청년에서 한순간 돌변하잖아요. 그런 양면성을 가진 캐릭터를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눈을 빛내며 연기 욕심을 굳히던 바로 그 순간에 나는 이미 박시후의 양면성을 느꼈다. 뻔뻔할 정도로 통통 튀는 재호에서 냉철하면서도 어쩐지 애잔한 한정훈으로 변신했던 그는 섬세하고 내성적인 첫인상을 또다시 뒤집어엎은 채 욕심 많고 뚝심 있는 남자로 돌변해 있던 터였다. 종잡을 수 없는 이 남자에게 물었다. 자연인 박시후는 도대체 어느 쪽이냐고.
“실제로는 굉장히 내성적이고 낯을 많이 가려요. 빨리 친해져야 연기도 자연스러워지고 그럴 텐데 그게 좀 늦는 것 같아요.”
그의 성격 이야기를 빌미로 촬영장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에서 만난 추상미는 베테랑답게 워낙 잘 이끌어줬기에 실제 성격과 정반대인 재호 역을 별 무리 없이 소화해낼 수 있었다고. 에서 만난 려원과 강정화 등의 여자 연기자들은 워낙 붙임성 있고 싹싹한 성격들이서 촬영장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곤 했다고 전한다. 문제는 극중 둘도 없는 선후배이면서 연적으로 등장했던 김래원이었다.
좀처럼 다가가기 힘들었던 김래원과의 연기가 적잖이 어려웠던 그는 몇 번 NG를 내고 나서야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과묵하기 이를 데 없는 김래원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트기 시작했다고. 이제는 격의 없이 친해지고 캐릭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는 그는 ‘할 만해지니 드라마가 끝났다’며 아쉬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다음에 더 많이 보여주세요.” 에디터의 심심한 위로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말을 받았다.
“네, 이제 제대로 보여드리려구요. 영화 준비하고 있어요. 어, 작품에 대해선 아직 비밀인데….” 섣불리 내뱉은 자랑을 금세 후회하는 그가 이번엔 여덟 살 꼬마 같다. “아직 말씀 안 하셨잖아요.” 또다시 금세 안심하는 그, 그리곤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긴다. “엄청난 시나리오예요. 오는 7월에 크랭크인하니까 아마 겨울쯤엔 보실 수 있을걸요.”
아무래도 녹록히 넘어올 것 같지는 않았다. 갑자기 개구진 그의 모습이 새삼 흥미로워진 터에 문득 혈액형을 물었다. 그가 다음 작품 계획에 단단히 연막을 쳤으니, 이제 인간 박시후에게 더 깊숙이 들어가볼 작정이었다.
He is....
주말 연속극 에서 연상의 연인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며 모든 이들의 호기심을 샀던 박시후.
그가 이번에 제대로 부상해줬다. MBC 미니 시리즈 에서 주인공과 사랑을 놓고 겨뤘던 한정훈 역. 남부럽지 않게 자라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사랑하는 여자를 두 번씩이나 다른 남자에게 보내야 했던, 사랑에 서투른 남자.
결국 그녀의 행복을 빌어줄 수밖에 없는 한심하도록 사랑에 약한 남자. 그의 잔상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드라마가 끝나고, 극의 중심을 이루던 주인공들의 로맨스도 점차 잊혀져가는데 사람들의 화두에는 아직도 그 남자가 빙빙 돌고 있었다. 그를 만나기에 최적의 시기였다.
스물아홉, 그는 의외로 늦깎이다. 뭔가 더 있을 듯, 또 아무것도 없을 듯도 한 그 모호한 이미지는 나이보다 지나치게 어려 보이는 외모 때문일까. 도대체 이 남자 저 곱상한 얼굴을 하고서 어디서 뭘 하다 이제 나타난 거야?
“언젠가 잘 되겠지 하고 버텼는데…. 여기까지 오는 데 10년 가까이 걸렸어요.”
찬찬히 뜯어보던 시선에 변명하듯 그가 말문을 열었다. 대학 시절 그저 호기심에 시작한 연극 동아리에서 어느 날 문득 진짜 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잘될 거라며 부추기던 친구의 격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몇 개월 고심 끝에 시작하게 된 길이다. 1998년, 연극 으로 무대에서 먼저 데뷔했고, 극단 활동을 하면서 간간이 광고 모델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군대 문제가 걸려 있는 무명의 남자 배우가 전진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결국 제대하고 나서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꼭 하고 싶었는데 못 맡게 되어서 아쉬웠던 기억을 묻자, 오히려 반문한다. 어디 한두 번이었겠느냐고. 매번 ‘내꺼다’ 싶어 달려들었다가 고스란히 내주기를 수십 번, 그는 어느새 흘러간 기회보다 제대로 잡은 기회에 감사하는 법을 배웠나 보다.
“드라마로는 이 처음이었어요.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 가비앤제이의 ‘해피니스’ 뮤직비디오를 찍었는데, 그때부터 조금씩 알아봐 주시더라구요. 가비앤제이의 ‘해피니스’ 모르세요?”
바로 그때부터였다. 얌전한 고양이 같던 그가 흥분하기 시작한 게…. 집중해서 보지 않은 것은 금세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심각한 건망증에, 어느 한자리에 앉아서 뮤직비디오란 걸 감상해본지도 대략 5년은 지난 에디터는 그의 혹시나 하는 물음에 용감하게도 “몰라요”라고 응수한 것. 서운하다기보다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잠시 골몰하던 그는 지체 없이 휴대폰을 꺼내며 단호하게 말했다. “들려드릴게요.”
해피니스’ 뮤직비디오를 휴대폰으로 재생해 보여주면서 그는 연신 중얼거렸다. “이거 그래도 꽤 유명하던데. 노래도 엄청 좋았는데….” 그 안타까운 중얼거림을 애써 외면하며 액정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기억을 더듬었다. 중저음이 인상적인 가비앤제이의 독특한 음색도, 지금보다 조금 더 앳된 얼굴의 박시후도 분명 처음은 아니었다. “아, 알아요. 인상 깊게 보고서도 기억력이 좋질 않아서….” 뒤늦게 기억해낸 것이 못내 미안한 에디터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그는 아직도 액정 화면 속에 빠져 있었다.
“굉장히 욕심났었는데, 다행히 감독님이 절 마음에 들어하셨어요. 도 이 뮤직비디오 덕분에 하게 됐구요. 그 전에는 드라마 굉장히 하고 싶었는데도 잘 안 됐었거든요.”
무척 행복한 표정이었다. 긴 긴 터널 속에서 빠져나와 가까스로 햇빛을 봤던 때를 떠올리듯이 그는 그렇게 불과 8개월 전을 떠올리고 있었다. 만약 그가 아직도 그 터널 속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서른을 목전에 둔 남자들의 속절없는 강박관념을 그는 순순히 비껴 갈 수 있었을까. 묵묵히 한 길만 고집했다는 그의 말이 어쩐지 대책 없이 들렸다. 그 구김 없는 표정 뒤에 숨어 있었던 모호함은 아마도 이 대책 없는 뚝심이었나 보다.
“장면이 많지 않더라도 인상에 남는 강한 역을 하고 싶어요. 의 에드워드 노튼이 순수한 청년에서 한순간 돌변하잖아요. 그런 양면성을 가진 캐릭터를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눈을 빛내며 연기 욕심을 굳히던 바로 그 순간에 나는 이미 박시후의 양면성을 느꼈다. 뻔뻔할 정도로 통통 튀는 재호에서 냉철하면서도 어쩐지 애잔한 한정훈으로 변신했던 그는 섬세하고 내성적인 첫인상을 또다시 뒤집어엎은 채 욕심 많고 뚝심 있는 남자로 돌변해 있던 터였다. 종잡을 수 없는 이 남자에게 물었다. 자연인 박시후는 도대체 어느 쪽이냐고.
“실제로는 굉장히 내성적이고 낯을 많이 가려요. 빨리 친해져야 연기도 자연스러워지고 그럴 텐데 그게 좀 늦는 것 같아요.”
그의 성격 이야기를 빌미로 촬영장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에서 만난 추상미는 베테랑답게 워낙 잘 이끌어줬기에 실제 성격과 정반대인 재호 역을 별 무리 없이 소화해낼 수 있었다고. 에서 만난 려원과 강정화 등의 여자 연기자들은 워낙 붙임성 있고 싹싹한 성격들이서 촬영장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곤 했다고 전한다. 문제는 극중 둘도 없는 선후배이면서 연적으로 등장했던 김래원이었다.
좀처럼 다가가기 힘들었던 김래원과의 연기가 적잖이 어려웠던 그는 몇 번 NG를 내고 나서야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과묵하기 이를 데 없는 김래원에게 다가가 먼저 말을 트기 시작했다고. 이제는 격의 없이 친해지고 캐릭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는 그는 ‘할 만해지니 드라마가 끝났다’며 아쉬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다음에 더 많이 보여주세요.” 에디터의 심심한 위로가 끝나기가 무섭게 그가 말을 받았다.
“네, 이제 제대로 보여드리려구요. 영화 준비하고 있어요. 어, 작품에 대해선 아직 비밀인데….”
섣불리 내뱉은 자랑을 금세 후회하는 그가 이번엔 여덟 살 꼬마 같다. “아직 말씀 안 하셨잖아요.” 또다시 금세 안심하는 그, 그리곤 의미심장한 미소를 남긴다. “엄청난 시나리오예요. 오는 7월에 크랭크인하니까 아마 겨울쯤엔 보실 수 있을걸요.”
아무래도 녹록히 넘어올 것 같지는 않았다. 갑자기 개구진 그의 모습이 새삼 흥미로워진 터에 문득 혈액형을 물었다. 그가 다음 작품 계획에 단단히 연막을 쳤으니, 이제 인간 박시후에게 더 깊숙이 들어가볼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