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경선이 끝나면서,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을 추종하던 정치적 광신주의자(political fanatics)들의 행패와 깽판이 일부 드러나고 있다.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절차에 따른 이명박의 승리를 거부하는 일부 박근혜 열광지지자(박빠)들의 생때는 정치를 궁극적인 것으로 끌어올린 정치적 광신주의자들의 독재적 행패로 규정될 수 있다. 한국사회의 우경화로 '노빠'로 대표되는 좌파세력의 정치적 광신도들이 약화되더니, 이제는 우파세력에서 정치광신도들의 과잉민주주의(over-democracy)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해방 후 변동하는 한국사회에서 정치를 종교로 섬긴 정치적 광신주의(political fanaticism)를 좌우파세력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인터넷 사이트들에 나타난 박근혜 추종자(박빠)들의 글들과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 보여주는 박빠들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노빠에 준하는 정치적 광신도들이 박빠가 아닌가 하는 느낌마져 받았다.
민주주의를 살릴 정치적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민주주의자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정치적 광신주의자는 열심이라는 점에서 유사한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다르고 심지어 서로 대치 되기도 한다. 전자가 합리적(rational)이라면, 후자는 광신적(enthusiastic)이다. 정치적 광신주의자들은 참여적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에 가장 해로운 형태의 과잉정치참여이다. 정상적인 민주주의제도에서 시민들의 참여(participation)가 민의수렴(in-put)과정에 가장 결정적인 변수이지만, 강압적인 자기주장을 하는 정치적 광신도는 정치적 참여를 망가뜨리는 가장 해로운 방식의 의사표현을 한다. 자신의 신념을 절대화하고, 자신이 추종하는 정치인을 우상화하여,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이나 의견을 이단시하는 정치광신도들의 정치행태는 민주주의에 적이다. 민주주의는 독재에 의해서 망가질 뿐 아니라, 과잉민주주의에 의해서도 망가진다는 사실을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오늘날의 민주주의 정치문화 연구가들이 모두 주장한다.
정치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종교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폴 틸리히는 종교를 '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이라고 규정하여 심리학이 발달된 시대에 호평을 받은 적이 있다. 무엇이든지 자신의 삶을 걸만한 궁극적인 것은 종교적이다. 돈, 권력, 지위, 사랑, 종교 등 목숨을 거는 것은 종교적이다. 정치도 목숨을 걸 정도이면 종교적이다. 상투를 자르지 않기 위해서 목을 자르게 내어준 조선시대의 양반들의 고집도 종교적이다. 합리주의가 발달된 현대사회에서 목숨을 걸만한 신비로운 영역은 모두 사라졌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추구하거나 신봉하는 것들은 심리적으로 보아서 모두 종교적인 것으로 치부할 수 있다. 특정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신봉하거나, 정치를 궁극적인 것으로 삼아 추구하거나, 정치인을 궁극적인 존재로 우상화하는 것도 일종의 유사종교(pseudo-religion)인 정치종교(political religion)라고 할 수 있다.
정치를 궁극적인 것으로 끌어올려서 이 세계의 모든 일들을 오직 정치적 관점으로만 재단하여 생사결단의 광신적 자기희생(fanatic self-surrender)이나 강압적 자기주장(aggressive self-assertion)을 하는 정치적 광신주의(political fanaticism)가 해방 후 한국사회에서도 나타났다. 인류역사에서 정치를 종교로 끌어올려서 전체주의사회로 만든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해방 후 북한사회이다. 북한동포들은 불행하게도 전체주의자 김일성을 신격화시키고 정치를 종교로 승격시킨 가장 악마적인 사이비 종교사회가 되어서, 김일성 종교를 김정일까지 대를 이어 숭배하는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의 전체주의 정치현상은 정치이론으로 풀 수 있는 정치적 영역이나 현상이 아니라, 종교사회학적 이론으로나 겨우 풀릴 수 있는 사이비 종교현상이다. 북한은 정치의 종교화를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정치적 광신주의가 얼마나 국민과 국가를 망치게 만드는가를 알려면 김일성 정치종교에 사로잡힌 북한주민과 북한사회를 보면 된다.
해방 후 남한에서도 정치가 종교로 승급되는 일이 없지 않았다. 우파세력과 좌파세력은 정치이념과 정치체제를 궁극적인 것으로 취급하여 생사결단의 좌우대결을 벌였다. 물론 당시에는 정치권력을 장악하면 모든 것을 장악하니까, 정치를 종교로 끌어올릴만도 했을 것이다. 해방 후 남한에서는 좌파 민주화세력과 우파 산업화세력이 대결하는 와중에 극좌 정치광신도들과 극우 광신도들이 없지 아니했다. 한국사회에서 좌우파는 정치를 궁극적인 광신으로 끌어올려서 사이비 종교(pesudo-religion)로 만들어서 대결하였다. 반공시대에 국가안보를 종교화시켜서 일체의 반대 목소리를 거부한 극우 정치광신도들이 있었던 반면에, 민주화를 종교적 사명으로 신봉하여 국가공권력에 목숨 걸고 투쟁한 극좌 정치광신도들도 있었다. 민주화를 위하여 분신자살을 하고, 민주화에 목숨 걸고 투쟁한 것은 심리적으로 보면 광신적 자기부정(fanatical self-renunciation)을 통한 강압적 자기주장(aggressive self-assertion)에 불과한 것이다. 민주투사가 좌파 생떼정치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남한사회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죽이기까지 탄압한 극우 정치광신도(political fanatics)들과 민주화를 위하여 공권력에 대항한 좌익 정치광신도들은 모두 이념대결시대에 탄생된 정치적 광신도들이었다. 공산주의에 대해 조금이라도 우호적으로 평가하면 간첩으로 몰린 현상도 일종의 정치적 광신주의가 작동된 증거이다. 산업화세력이 한창 한국사회에서 사회의 질서를 잡고 경제를 발전시킬 때에 좌파 정치적 광신도들이 분신자살 특공대까지 만들어서 우파세력의 집권에 도전한 적이 있다. 이 민주투사들은 정치를 삶의 애매한 영역이 아니라 단순명백한 판가름이 가능한 영역으로 규정하여, 민주화만 되면 마치 천당이 이땅에 이뤄질 듯이 선동한 정치적 광신주의를 군중들에게 심어주었다. 남한사회의 극우세력과 좌파세력은 정치를 궁극적인 관심(종교)로 삼아서 세상사를 내편과 너편, 적과 동지, 선과 악으로 단정하여 적대적 너편에 대해서는 극도의 공격성(aggressiveness)과 우호적 내편에는 극도의 예속성(submissiveness)을 보여주었다.
가브리엘 마르셀이 군중에 대해서 규정한 것처럼, 한국의 좌우파 정치적 광신도들은 '적대세력을 완전 말살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분법적 세계관에 찌든 군중'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은 서로 상대방을 반민주적, 반국가적, 반민족적, 반이성적 세력으로 매도하면서, 상대방을 이단시하면서 말살의 대상으로 삼았다. 산업화세력은 독재적이라고 규정되어, 민주화세력으로부터 국가와 안보를 삥땅친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에 대하여 민주화세력은 반국가적이라고 규정되어 민주와 자유를 삥땅친다는 비난을 받았다. 산업화세력은 억압을 통제의 수단으로 삼았고, 민주화세력은 선동을 정권장악의 수단으로 삼았다. 정치의 사이비 종교화는 원래 폭력에 의존하는 우파세력의 특기가 아니라 선동에 의존하는 좌파세력의 특기이다. 좌파세력의 잠재적 폭력은 완전히 사회를 장악하면, 가장 악랄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그 전에는 선전과 선동에 의존한다.
산업화세력은 국가안보나 경제발전을 궁극적인 것으로 삼아서 이에 반대하는 민주투사들의 목소리를 이단적인 것으로 탄압했다. 이에 비하여 민주화세력은 민주주의와 자유신장을 궁극적인 것으로 삼아서 이에 반대하는 국가수호자들을 이단적인 것으로 매도했다. 산업화세력의 악압과 통제는 드러난 악을 보여준 반면에, 민주화세력은 자유와 민주의 좋은 명분에 감추어진 악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군중들은 산업화세력의 억압과 독재는 쉽게 극복할 수 있었지만, 민주화세력의 위선과 선동은 쉽게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화세력의 독재를 몰아내는 것보다 민주화세력의 선동을 극복하는 것이 더 힘들다. 정치를 종교로 끌어올리는 선동능력에 있어서 우파세력은 좌파세력에 비해서 매우 미개하고 순진하다. 정치적 선동과 군중 미혹에 능한 좌파세력은 정치를 궁극적인 종교로 둔갑시키는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급격하게 변동해온 사회인 한국사회에서 드러난 모습은 숨겨진 실체와는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정치적 사기와 선동이 발달된 정치적 유토피안들이 평화, 민주, 개혁, 선진, 창조, 통합 등의 구호로 한국인들을 미혹하는 것은 억압세력보다 더 나쁜 선동세력의 사기극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오늘날 민주화세력이 연출하는 정치적 위선과 선동은 선으로 가정된 악이기 때문에, 독재세력을 몰아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높은 판단력이 있어야 민주화세력의 악덕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리력에 의존하는 군사정권이나 물질적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인 산업화세력은 정치를 궁극적인 종교로 끌어올리는 선동능력이 매우 약하다. 정치를 종교로 환치시켜서 군중들을 미혹하는 재능은 몽상주의 이념에 찌는 좌파세력이 월등하게 강하다. 좌파 정치광신도들은 조갑제와 같은 합리적 우파이론가를 극우분자로 몰아 우파세력의 논조를 허물려고도 한다.
그런 점에서 독재세력은 민주세력에 비해 훨씬 더 정치적으로 순진하고, 드러난 폭력을 가진 박정희는 숨겨진 사기에 의존하는 김대중보다 훨씬 더 순진한 정치인이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나타나는 악마가 악마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악마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총칼을 든 드러난 억압자이고, 김대중과 노무현은 민주와 평화의 깃발 뒤에 숨겨진 선동가이다. 마치 폭력배의 악과 사기꾼의 악 중에 사기꾼의 악이 더 배반적이고 상처가 깊듯이, 정치에서도 폭압자보다는 선동가의 악덕이 더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박정희를 신봉하는 극우 정치광신도는 김대중을 신봉하는 좌파 정치광신도들에 비하면 그 강도가 약하고 폐악도 깊지 못하다. 박정희는 현실주의를 바탕으로 한 실리가였고, 김대중은 이상주의를 앞세운 선동가였다. 호남주와 좌파이념에 기초한 김대중의 정치종교는 한국사회에 매우 해로운 정치적 변수다.
우파세력은 기본적으로 정치를 국민들의 생활향상에 필요한 실리적인 수단으로 삼기에 정치를 종교로 끌어올릴 필요도 없고 또 그렇게 할 선동할 능력도 매우 약하다. 극우세력의 빠돌이/빠순이들의 폭력은 너무 유치하여, 그 폐악이 쉽게 드러난다. 그러나 정치가 곧 직업인 좌파세력은 정치를 종교처럼 만들 필요가 있고, 또 그렇게 할 선동능력도 매우 강하다. 좌파세력의 빠돌이/빠순이들의 사기와 선동은 너무도 교묘하여, 그 폐악이 늦게 드러난다. 원래 이분법적 세계관을 종교처럼 심어서 맹목적으로 자기편에 예속되고, 자기짱을 추종하고, 상대편을 공격하고 매도하는 빠들이/빠순이는 좌파세력에 그 원조가 있다. 김대중의 호남빠와 노무현의 노빠가 한국에서 빠문화의 원조이다. 박정희 추종자는 빠문화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했으며, 박빠나 명빠도 노빠에 비하면 유치하다.
변동사회에서 발생되는 정치적 광신주의가 오늘날 빠문화에도 잔존하여, 빠돌이/빠순이들을 생떼와 횡포는 빨리 극복해야 할 사회-정치적 과제로 등장했다. 김대중 정권이 창출된 것은 민주화라는 명분에 사실상 호남주의라는 강력한 정치종교가 작동되었기 때문이다. 박정희에 강력한 권위주의정치에 맞서 김대중의 선동정치는 정치종교를 동원했다. 호남에서 김대중을 98%나 지지한 것은 정치종교의 한 표출일 뿐이다. 민주화세력의 상징인 김대중은 산업화세력의 상징인 박정희를 상대하기 위하여 '영남 대 호남'이라는 단순구도를 호남인들에게 주입시켜서 지역주의를 종교화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한 빠돌이/빠순이를 탄생시킨 최초의 정치인은 역시 김대중이다. 오늘날 빠돌이/빠순이로 규정되는 정치적 광신도의 시초는 역시 선동정치의 원조인 김대중이 만들었다. 정치적 광신주의가 약한 우파세력에는 교주가 없지만, 좌파 정치종교의 초대 교주는 카리스마가 강력한 김대중이었고, 2대 교주는 비롯 매우 카리스마가 약했지만 노무현이었다.
그리고 노무현은 이러한 정치종교를 노빠를 통하여 더 확산시켰다. 노무현에게 95%의 지지를 호남인들이 보낸 것도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한 정치적 광신주의 현상이다. 노무현 정권이 탄생될 때에는 노빠라는 정치적 광신도들을 드러내어 놓고 조직화하여 노빠 군중들에게 선과 악의 이분법적 등식을 주입시켜서 선동하는 정치종교(political religion)현상을 잘 보여주었다. 정치적 광신주의는 정치가 애매한 것이라는 기본적인 진실을 무시하고 적과 동지로 정치세력을 단순화 시켜서 군중들을 맹목적으로 한편으로 몰고가는 사이비 종교현상과 비슷하다. 빠돌이/빠순이로 표현되는 정치적 광신도들의 특징은 우상화된 '짱'에 대한 맹목성과 이분법적 선악개념이다. 민주화는 선=권위주의는 악이라는 단순진리를 세뇌시켜서 민주화를 위하여 분실자살을 부추긴 좌파선동가들은 가장 무식하고 사악한 인간들이다. 노무현을 위해서 노빠들에게 분신자살을 부추기는 듯한 글을 쓴 이기명은 군중사회에서 정치광신도들을 선동하는 정치종교의 전도사이다.
그런데 극우세력의 정치적 광신주의도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극단적 반공히스테리를 보였던 극우세력의 정치종교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남한은 북한동포를 굶겨죽이는 공산주의세력을 한반도에서 척결해야 한다. 그것은 남한이 수행해야 할 가장 합리적인 정치적 소명이다. 공산주의는 북한에서 한민족의 정신과 기상을 완전히 말살한 가장 악질적인 외래사상이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철저하게 한반도에서 말살되어야 한다. 그러나 공산주의를 척결하는 과정에서 '반공히스테리(anti-communism hysteria)'에 걸릴 필요는 없다. 자신의 주장과 틀리거나 자신의 세력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고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가는 극우 광신주의는 공산주의보다 더 먼저 척결해야 한다. 공산주의의 악덕을 극우세력이 구현해 있으면서, 공산주의를 척결하기는 어렵다. 자기패가 아니면 무조건 배척하고 자기패에는 무조건 종속되는 이중성은 정치광신도들이 보여주는 선명한 폐악이다. 정치적 광신도들은 자신의 주장을 과도하게 강요하는 과잉민주주의(over-democarcy)의 폐단을 보여준다.
오늘날 박근혜를 추종하는 박빠들이 이명박의 승리에 불만을 품고, 경선에 불복하는 선동을 하거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명박을 비난하는 광신적인 깽판을 지기거나, 공원이나 길바닥에 불을 지르기까지 하는 행패를 지기는 것은 정치적 광신주의에 빠진 극우분자들의 폐악이다. 정치를 위해서 남에게 테러를 가하거나 자신에게 자해를 가하는 행동들은 모두 정치적 광신주의에 빠진 극우분자와 좌파분자들의 소행이다. 정치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타락한 정치꾼들이 권력을 독차지 하기 위한 싸움이기도 한 애매한 인간활동이다. 정치판에서 절대적 선과 악, 정통과 이단, 적과 동지는 없다. 기업보다 더 이익에 충실한 영역이 정치판이 아닌가? 어떻게 정치를 궁극적인 종교로 승급시킬 수 있단 말인가? 모든 정치인과 정치세력은 우상화할만큼 고상하지 못하다는 점을 명심하면, 정치인의 우상화와 정치의 종교화는 피할 수 있다.
이제 한국사회가 우경화 되면서 좌파 정치광신도들의 활동은 극도로 위축될 것이다. 북한 김정일을 추종하는 남한의 좌파분자들은 시대의 추세와 국민적 여론에 맞이 않아서 기운이 사라졌다. 반면 시대의 추세와 국민적 여론에 부합한 우파세력은 지금 기운을 받고 있다. 이 와중에 자신들의 뜻과 성향에 맞지 않는 정치인과 정치세력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극우인사나 극우단체들은 정치적 광신주의의 폐단을 노출시키고 있다. 정치적 광신주의는 사이비 종교처럼 비합이적이라서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현대사회에 맞지 않다. 박근혜를 추종하던 박빠들은 이제 정치적 광신주의를 버리고 합리적이고 순리적인 선진사회의 정치게임을 해야 한다. 특정 집단이나 인간을 우상화하는 광신주의는 반드시 자신을 해치고 남을 해치는 악마의 교리이다. 인간의 유한성과 상대성을 망악하고 합리성과 타협성을 상실한 극우 광신주의자는 반드시 우파세력에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게 마련이다.
사실 정치를 종교를 끌어올리는 정치종교에 빠진 빠돌이/빠순이들은 상대방을 포용하지 못하는 적대적이고 피상적인 세계관을 품고 산다. 자신과 남을 포용하지 못하는 빠돌이/빠순이들은 정치적 광신주의를 넘어서 상대를 포용하는 지식과 용기를 쌓아야 한다. 좌파세력을 극복하는 길은 더 이해력과 포용력을 가지는 것이다. 좌파세력에 의해서 망가진 대한민국과 위협받는 한국인들의 생존권, 안전권, 자유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박빠나 명빠들도 이제 특정인을 넘어서서 정권교체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정당은 개인보다 크며, 국가는 정당보다 더 크다. 박근혜에 예속된 박빠들은 우파 해코지 깽판은 도를 넘었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모두 결함이 많은 정치인으로 숭배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보수세력의 대선후보가 된 불완전한 이명박은 조국의 번영과 통일을 위해서 국민들이 사용할 도구에 불과하지만, 우파세력은 전력을 다해서 그를 대통령으로 밀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 절대화할 이념이 없고, 신격화할 사람이 없고, 우상화할 사건이 없다. 어떤 정치이념, 정치인, 정치적 사건에도 유한한 인간의 추악한 탐욕이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주체사상을 절대화하고, 김일성을 신격화하고, 김대중을 우상화하고, 광주사태를 성역화하는 것은 모두 악한 사이비 정치종교에 빠진 어리석은 짓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을 열심히 지지하되, 이들의 포로가 되거나 이들을 우상화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 세상의 유한한 사람이나 사건에 집착하는 것은 우매하고 악한 짓이다. 김대중이나 박근혜와 같은 정치인에 사로잡힌(possesed) 포로상태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것처럼 해로운 것이다. 이제 보수세력은 특정인과 특정파당을 초월하여 이명박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대동단결을 하여 정권교체에 매진하는 것이 대한민국과 민주주의에 가장 공헌하는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펌글]정치적 광신주의자들
이번에 새로 보게된 글입니다. 100점만점에 95점 정도랄까요..
좋은 글인듯 해서 퍼왔습니다.
나름대로 중립적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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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50 조영환 2007/08/22 153 9/4 15
한국을 해칠 정치적 광신주의자들
한나라당 경선이 끝나면서,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을 추종하던 정치적 광신주의자(political fanatics)들의 행패와 깽판이 일부 드러나고 있다.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절차에 따른 이명박의 승리를 거부하는 일부 박근혜 열광지지자(박빠)들의 생때는 정치를 궁극적인 것으로 끌어올린 정치적 광신주의자들의 독재적 행패로 규정될 수 있다. 한국사회의 우경화로 '노빠'로 대표되는 좌파세력의 정치적 광신도들이 약화되더니, 이제는 우파세력에서 정치광신도들의 과잉민주주의(over-democracy)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해방 후 변동하는 한국사회에서 정치를 종교로 섬긴 정치적 광신주의(political fanaticism)를 좌우파세력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인터넷 사이트들에 나타난 박근혜 추종자(박빠)들의 글들과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 보여주는 박빠들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노빠에 준하는 정치적 광신도들이 박빠가 아닌가 하는 느낌마져 받았다.
민주주의를 살릴 정치적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민주주의자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정치적 광신주의자는 열심이라는 점에서 유사한 것 같지만, 사실은 매우 다르고 심지어 서로 대치 되기도 한다. 전자가 합리적(rational)이라면, 후자는 광신적(enthusiastic)이다. 정치적 광신주의자들은 참여적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에 가장 해로운 형태의 과잉정치참여이다. 정상적인 민주주의제도에서 시민들의 참여(participation)가 민의수렴(in-put)과정에 가장 결정적인 변수이지만, 강압적인 자기주장을 하는 정치적 광신도는 정치적 참여를 망가뜨리는 가장 해로운 방식의 의사표현을 한다. 자신의 신념을 절대화하고, 자신이 추종하는 정치인을 우상화하여,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이나 의견을 이단시하는 정치광신도들의 정치행태는 민주주의에 적이다. 민주주의는 독재에 의해서 망가질 뿐 아니라, 과잉민주주의에 의해서도 망가진다는 사실을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오늘날의 민주주의 정치문화 연구가들이 모두 주장한다.
정치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종교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폴 틸리히는 종교를 '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이라고 규정하여 심리학이 발달된 시대에 호평을 받은 적이 있다. 무엇이든지 자신의 삶을 걸만한 궁극적인 것은 종교적이다. 돈, 권력, 지위, 사랑, 종교 등 목숨을 거는 것은 종교적이다. 정치도 목숨을 걸 정도이면 종교적이다. 상투를 자르지 않기 위해서 목을 자르게 내어준 조선시대의 양반들의 고집도 종교적이다. 합리주의가 발달된 현대사회에서 목숨을 걸만한 신비로운 영역은 모두 사라졌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추구하거나 신봉하는 것들은 심리적으로 보아서 모두 종교적인 것으로 치부할 수 있다. 특정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신봉하거나, 정치를 궁극적인 것으로 삼아 추구하거나, 정치인을 궁극적인 존재로 우상화하는 것도 일종의 유사종교(pseudo-religion)인 정치종교(political religion)라고 할 수 있다.
정치를 궁극적인 것으로 끌어올려서 이 세계의 모든 일들을 오직 정치적 관점으로만 재단하여 생사결단의 광신적 자기희생(fanatic self-surrender)이나 강압적 자기주장(aggressive self-assertion)을 하는 정치적 광신주의(political fanaticism)가 해방 후 한국사회에서도 나타났다. 인류역사에서 정치를 종교로 끌어올려서 전체주의사회로 만든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해방 후 북한사회이다. 북한동포들은 불행하게도 전체주의자 김일성을 신격화시키고 정치를 종교로 승격시킨 가장 악마적인 사이비 종교사회가 되어서, 김일성 종교를 김정일까지 대를 이어 숭배하는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북한의 전체주의 정치현상은 정치이론으로 풀 수 있는 정치적 영역이나 현상이 아니라, 종교사회학적 이론으로나 겨우 풀릴 수 있는 사이비 종교현상이다. 북한은 정치의 종교화를 설명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정치적 광신주의가 얼마나 국민과 국가를 망치게 만드는가를 알려면 김일성 정치종교에 사로잡힌 북한주민과 북한사회를 보면 된다.
해방 후 남한에서도 정치가 종교로 승급되는 일이 없지 않았다. 우파세력과 좌파세력은 정치이념과 정치체제를 궁극적인 것으로 취급하여 생사결단의 좌우대결을 벌였다. 물론 당시에는 정치권력을 장악하면 모든 것을 장악하니까, 정치를 종교로 끌어올릴만도 했을 것이다. 해방 후 남한에서는 좌파 민주화세력과 우파 산업화세력이 대결하는 와중에 극좌 정치광신도들과 극우 광신도들이 없지 아니했다. 한국사회에서 좌우파는 정치를 궁극적인 광신으로 끌어올려서 사이비 종교(pesudo-religion)로 만들어서 대결하였다. 반공시대에 국가안보를 종교화시켜서 일체의 반대 목소리를 거부한 극우 정치광신도들이 있었던 반면에, 민주화를 종교적 사명으로 신봉하여 국가공권력에 목숨 걸고 투쟁한 극좌 정치광신도들도 있었다. 민주화를 위하여 분신자살을 하고, 민주화에 목숨 걸고 투쟁한 것은 심리적으로 보면 광신적 자기부정(fanatical self-renunciation)을 통한 강압적 자기주장(aggressive self-assertion)에 불과한 것이다. 민주투사가 좌파 생떼정치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남한사회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을 죽이기까지 탄압한 극우 정치광신도(political fanatics)들과 민주화를 위하여 공권력에 대항한 좌익 정치광신도들은 모두 이념대결시대에 탄생된 정치적 광신도들이었다. 공산주의에 대해 조금이라도 우호적으로 평가하면 간첩으로 몰린 현상도 일종의 정치적 광신주의가 작동된 증거이다. 산업화세력이 한창 한국사회에서 사회의 질서를 잡고 경제를 발전시킬 때에 좌파 정치적 광신도들이 분신자살 특공대까지 만들어서 우파세력의 집권에 도전한 적이 있다. 이 민주투사들은 정치를 삶의 애매한 영역이 아니라 단순명백한 판가름이 가능한 영역으로 규정하여, 민주화만 되면 마치 천당이 이땅에 이뤄질 듯이 선동한 정치적 광신주의를 군중들에게 심어주었다. 남한사회의 극우세력과 좌파세력은 정치를 궁극적인 관심(종교)로 삼아서 세상사를 내편과 너편, 적과 동지, 선과 악으로 단정하여 적대적 너편에 대해서는 극도의 공격성(aggressiveness)과 우호적 내편에는 극도의 예속성(submissiveness)을 보여주었다.
가브리엘 마르셀이 군중에 대해서 규정한 것처럼, 한국의 좌우파 정치적 광신도들은 '적대세력을 완전 말살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분법적 세계관에 찌든 군중'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은 서로 상대방을 반민주적, 반국가적, 반민족적, 반이성적 세력으로 매도하면서, 상대방을 이단시하면서 말살의 대상으로 삼았다. 산업화세력은 독재적이라고 규정되어, 민주화세력으로부터 국가와 안보를 삥땅친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에 대하여 민주화세력은 반국가적이라고 규정되어 민주와 자유를 삥땅친다는 비난을 받았다. 산업화세력은 억압을 통제의 수단으로 삼았고, 민주화세력은 선동을 정권장악의 수단으로 삼았다. 정치의 사이비 종교화는 원래 폭력에 의존하는 우파세력의 특기가 아니라 선동에 의존하는 좌파세력의 특기이다. 좌파세력의 잠재적 폭력은 완전히 사회를 장악하면, 가장 악랄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그 전에는 선전과 선동에 의존한다.
산업화세력은 국가안보나 경제발전을 궁극적인 것으로 삼아서 이에 반대하는 민주투사들의 목소리를 이단적인 것으로 탄압했다. 이에 비하여 민주화세력은 민주주의와 자유신장을 궁극적인 것으로 삼아서 이에 반대하는 국가수호자들을 이단적인 것으로 매도했다. 산업화세력의 악압과 통제는 드러난 악을 보여준 반면에, 민주화세력은 자유와 민주의 좋은 명분에 감추어진 악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군중들은 산업화세력의 억압과 독재는 쉽게 극복할 수 있었지만, 민주화세력의 위선과 선동은 쉽게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산업화세력의 독재를 몰아내는 것보다 민주화세력의 선동을 극복하는 것이 더 힘들다. 정치를 종교로 끌어올리는 선동능력에 있어서 우파세력은 좌파세력에 비해서 매우 미개하고 순진하다. 정치적 선동과 군중 미혹에 능한 좌파세력은 정치를 궁극적인 종교로 둔갑시키는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급격하게 변동해온 사회인 한국사회에서 드러난 모습은 숨겨진 실체와는 거의 일치하지 않는다. 정치적 사기와 선동이 발달된 정치적 유토피안들이 평화, 민주, 개혁, 선진, 창조, 통합 등의 구호로 한국인들을 미혹하는 것은 억압세력보다 더 나쁜 선동세력의 사기극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오늘날 민주화세력이 연출하는 정치적 위선과 선동은 선으로 가정된 악이기 때문에, 독재세력을 몰아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높은 판단력이 있어야 민주화세력의 악덕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리력에 의존하는 군사정권이나 물질적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인 산업화세력은 정치를 궁극적인 종교로 끌어올리는 선동능력이 매우 약하다. 정치를 종교로 환치시켜서 군중들을 미혹하는 재능은 몽상주의 이념에 찌는 좌파세력이 월등하게 강하다. 좌파 정치광신도들은 조갑제와 같은 합리적 우파이론가를 극우분자로 몰아 우파세력의 논조를 허물려고도 한다.
그런 점에서 독재세력은 민주세력에 비해 훨씬 더 정치적으로 순진하고, 드러난 폭력을 가진 박정희는 숨겨진 사기에 의존하는 김대중보다 훨씬 더 순진한 정치인이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나타나는 악마가 악마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악마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은 총칼을 든 드러난 억압자이고, 김대중과 노무현은 민주와 평화의 깃발 뒤에 숨겨진 선동가이다. 마치 폭력배의 악과 사기꾼의 악 중에 사기꾼의 악이 더 배반적이고 상처가 깊듯이, 정치에서도 폭압자보다는 선동가의 악덕이 더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박정희를 신봉하는 극우 정치광신도는 김대중을 신봉하는 좌파 정치광신도들에 비하면 그 강도가 약하고 폐악도 깊지 못하다. 박정희는 현실주의를 바탕으로 한 실리가였고, 김대중은 이상주의를 앞세운 선동가였다. 호남주와 좌파이념에 기초한 김대중의 정치종교는 한국사회에 매우 해로운 정치적 변수다.
우파세력은 기본적으로 정치를 국민들의 생활향상에 필요한 실리적인 수단으로 삼기에 정치를 종교로 끌어올릴 필요도 없고 또 그렇게 할 선동할 능력도 매우 약하다. 극우세력의 빠돌이/빠순이들의 폭력은 너무 유치하여, 그 폐악이 쉽게 드러난다. 그러나 정치가 곧 직업인 좌파세력은 정치를 종교처럼 만들 필요가 있고, 또 그렇게 할 선동능력도 매우 강하다. 좌파세력의 빠돌이/빠순이들의 사기와 선동은 너무도 교묘하여, 그 폐악이 늦게 드러난다. 원래 이분법적 세계관을 종교처럼 심어서 맹목적으로 자기편에 예속되고, 자기짱을 추종하고, 상대편을 공격하고 매도하는 빠들이/빠순이는 좌파세력에 그 원조가 있다. 김대중의 호남빠와 노무현의 노빠가 한국에서 빠문화의 원조이다. 박정희 추종자는 빠문화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했으며, 박빠나 명빠도 노빠에 비하면 유치하다.
변동사회에서 발생되는 정치적 광신주의가 오늘날 빠문화에도 잔존하여, 빠돌이/빠순이들을 생떼와 횡포는 빨리 극복해야 할 사회-정치적 과제로 등장했다. 김대중 정권이 창출된 것은 민주화라는 명분에 사실상 호남주의라는 강력한 정치종교가 작동되었기 때문이다. 박정희에 강력한 권위주의정치에 맞서 김대중의 선동정치는 정치종교를 동원했다. 호남에서 김대중을 98%나 지지한 것은 정치종교의 한 표출일 뿐이다. 민주화세력의 상징인 김대중은 산업화세력의 상징인 박정희를 상대하기 위하여 '영남 대 호남'이라는 단순구도를 호남인들에게 주입시켜서 지역주의를 종교화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한 빠돌이/빠순이를 탄생시킨 최초의 정치인은 역시 김대중이다. 오늘날 빠돌이/빠순이로 규정되는 정치적 광신도의 시초는 역시 선동정치의 원조인 김대중이 만들었다. 정치적 광신주의가 약한 우파세력에는 교주가 없지만, 좌파 정치종교의 초대 교주는 카리스마가 강력한 김대중이었고, 2대 교주는 비롯 매우 카리스마가 약했지만 노무현이었다.
그리고 노무현은 이러한 정치종교를 노빠를 통하여 더 확산시켰다. 노무현에게 95%의 지지를 호남인들이 보낸 것도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한 정치적 광신주의 현상이다. 노무현 정권이 탄생될 때에는 노빠라는 정치적 광신도들을 드러내어 놓고 조직화하여 노빠 군중들에게 선과 악의 이분법적 등식을 주입시켜서 선동하는 정치종교(political religion)현상을 잘 보여주었다. 정치적 광신주의는 정치가 애매한 것이라는 기본적인 진실을 무시하고 적과 동지로 정치세력을 단순화 시켜서 군중들을 맹목적으로 한편으로 몰고가는 사이비 종교현상과 비슷하다. 빠돌이/빠순이로 표현되는 정치적 광신도들의 특징은 우상화된 '짱'에 대한 맹목성과 이분법적 선악개념이다. 민주화는 선=권위주의는 악이라는 단순진리를 세뇌시켜서 민주화를 위하여 분실자살을 부추긴 좌파선동가들은 가장 무식하고 사악한 인간들이다. 노무현을 위해서 노빠들에게 분신자살을 부추기는 듯한 글을 쓴 이기명은 군중사회에서 정치광신도들을 선동하는 정치종교의 전도사이다.
그런데 극우세력의 정치적 광신주의도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극단적 반공히스테리를 보였던 극우세력의 정치종교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다. 남한은 북한동포를 굶겨죽이는 공산주의세력을 한반도에서 척결해야 한다. 그것은 남한이 수행해야 할 가장 합리적인 정치적 소명이다. 공산주의는 북한에서 한민족의 정신과 기상을 완전히 말살한 가장 악질적인 외래사상이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철저하게 한반도에서 말살되어야 한다. 그러나 공산주의를 척결하는 과정에서 '반공히스테리(anti-communism hysteria)'에 걸릴 필요는 없다. 자신의 주장과 틀리거나 자신의 세력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고 무조건 빨갱이로 몰아가는 극우 광신주의는 공산주의보다 더 먼저 척결해야 한다. 공산주의의 악덕을 극우세력이 구현해 있으면서, 공산주의를 척결하기는 어렵다. 자기패가 아니면 무조건 배척하고 자기패에는 무조건 종속되는 이중성은 정치광신도들이 보여주는 선명한 폐악이다. 정치적 광신도들은 자신의 주장을 과도하게 강요하는 과잉민주주의(over-democarcy)의 폐단을 보여준다.
오늘날 박근혜를 추종하는 박빠들이 이명박의 승리에 불만을 품고, 경선에 불복하는 선동을 하거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명박을 비난하는 광신적인 깽판을 지기거나, 공원이나 길바닥에 불을 지르기까지 하는 행패를 지기는 것은 정치적 광신주의에 빠진 극우분자들의 폐악이다. 정치를 위해서 남에게 테러를 가하거나 자신에게 자해를 가하는 행동들은 모두 정치적 광신주의에 빠진 극우분자와 좌파분자들의 소행이다. 정치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봉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타락한 정치꾼들이 권력을 독차지 하기 위한 싸움이기도 한 애매한 인간활동이다. 정치판에서 절대적 선과 악, 정통과 이단, 적과 동지는 없다. 기업보다 더 이익에 충실한 영역이 정치판이 아닌가? 어떻게 정치를 궁극적인 종교로 승급시킬 수 있단 말인가? 모든 정치인과 정치세력은 우상화할만큼 고상하지 못하다는 점을 명심하면, 정치인의 우상화와 정치의 종교화는 피할 수 있다.
이제 한국사회가 우경화 되면서 좌파 정치광신도들의 활동은 극도로 위축될 것이다. 북한 김정일을 추종하는 남한의 좌파분자들은 시대의 추세와 국민적 여론에 맞이 않아서 기운이 사라졌다. 반면 시대의 추세와 국민적 여론에 부합한 우파세력은 지금 기운을 받고 있다. 이 와중에 자신들의 뜻과 성향에 맞지 않는 정치인과 정치세력을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극우인사나 극우단체들은 정치적 광신주의의 폐단을 노출시키고 있다. 정치적 광신주의는 사이비 종교처럼 비합이적이라서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현대사회에 맞지 않다. 박근혜를 추종하던 박빠들은 이제 정치적 광신주의를 버리고 합리적이고 순리적인 선진사회의 정치게임을 해야 한다. 특정 집단이나 인간을 우상화하는 광신주의는 반드시 자신을 해치고 남을 해치는 악마의 교리이다. 인간의 유한성과 상대성을 망악하고 합리성과 타협성을 상실한 극우 광신주의자는 반드시 우파세력에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게 마련이다.
사실 정치를 종교를 끌어올리는 정치종교에 빠진 빠돌이/빠순이들은 상대방을 포용하지 못하는 적대적이고 피상적인 세계관을 품고 산다. 자신과 남을 포용하지 못하는 빠돌이/빠순이들은 정치적 광신주의를 넘어서 상대를 포용하는 지식과 용기를 쌓아야 한다. 좌파세력을 극복하는 길은 더 이해력과 포용력을 가지는 것이다. 좌파세력에 의해서 망가진 대한민국과 위협받는 한국인들의 생존권, 안전권, 자유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박빠나 명빠들도 이제 특정인을 넘어서서 정권교체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정당은 개인보다 크며, 국가는 정당보다 더 크다. 박근혜에 예속된 박빠들은 우파 해코지 깽판은 도를 넘었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모두 결함이 많은 정치인으로 숭배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보수세력의 대선후보가 된 불완전한 이명박은 조국의 번영과 통일을 위해서 국민들이 사용할 도구에 불과하지만, 우파세력은 전력을 다해서 그를 대통령으로 밀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 절대화할 이념이 없고, 신격화할 사람이 없고, 우상화할 사건이 없다. 어떤 정치이념, 정치인, 정치적 사건에도 유한한 인간의 추악한 탐욕이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주체사상을 절대화하고, 김일성을 신격화하고, 김대중을 우상화하고, 광주사태를 성역화하는 것은 모두 악한 사이비 정치종교에 빠진 어리석은 짓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을 열심히 지지하되, 이들의 포로가 되거나 이들을 우상화하지는 말아야 한다. 이 세상의 유한한 사람이나 사건에 집착하는 것은 우매하고 악한 짓이다. 김대중이나 박근혜와 같은 정치인에 사로잡힌(possesed) 포로상태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것처럼 해로운 것이다. 이제 보수세력은 특정인과 특정파당을 초월하여 이명박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대동단결을 하여 정권교체에 매진하는 것이 대한민국과 민주주의에 가장 공헌하는 급선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