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중국 어학연수를 하기 위해 휴학을 했고, 올해 다른 세상을 좀 더 구경하기 위해 휴학을 연장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길이 국제자원봉사입니다. 관광객의 눈보다는 현지 주민과 어울려 그 사람들의 눈으로 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6월 청소년 자원봉사팀의 인솔요원으로 베트남 하노이를 다녀왔고, 올해 8월 국제워크캠프기구를 통해서 모로코 버케인으로 자원봉사를 다녀왔습니다. 전 두번의 자원봉사 모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울며 돌아왔습니다. 35도는 훌쩍 넘는 날씨에서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부족하고, 창문에 모기장도 없어 밤만 되면 모든 벌레들의 침공을 받고, 꺼내놓은 음식은 물론 냉장고 안에도 개미가 꿈틀대는 그곳. 버스나 기차는 서너시간 연착하기 일쑤이고, 전기는 수시로 끊어지고 뜨거운 물은 애시당초 기대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페인트가 범벅이 되어 가져간 옷은 전부 버려야 했고, 익숙지 않은 삽질을 하느라 손은 물집 투성이가 되어 펴지지도 않고. 전 잡풀을 태우다가 녹은 비닐이 튀면서 허벅지에 커다란 상처까지 지고 왔습니다. 화상이니 이 흉터는 평생 가겠지요. 하지만 그 흉터를 볼때마다 그곳에서의 보람된 기억들을 다시 떠올릴 것입니다. 물론 저희가 한 일이 그렇게 큰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동네 아이들은 고맙다고 웃으며 음료수를 가져다 주더군요. 모로코는 이슬람, 베트남은 불교 국가입니다.(참고로 모로코는 수니파임을 밝혀둡니다.) 제가 출발하기 전, 단체 관계자는 저희에게 신신당부를 하더군요. 한국 문화의 일방적인 전파가 아닌 양국 문화의 교류를 만들어 오라구요. 저희도 한국인의 밤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베트남의 경우엔, 참여한 학생들이 몸살이라도 나지 않을까, 가능한 한 한국 음식을 자주 내려고 노력했었구요. 하지만 마찬가지로 베트남의 밤 프로그램, 모로코의 밤 프로그램도 있었고, 모로코에서는 친구들이 기도하는 동안에는 가능한 한 목소리를 죽이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금요일날 같이 사원에 가서 사원 앞에서 놀면서 기다리는 친구들을 기다리기도 했구요. 저는 영어 중국어 외에는 할줄 아는 외국어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운전면허증 이외에는 어떤 자격증도 없구요. 그래서 제가 간 일은 도랑 파기, 삽질, 페인트칠, 아이들과 놀아주기 등 누구나 할수 있는 단순노동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이번에 숙식은 제공해주는 대신 비행기표는 제가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간 아르바이트 했던 비용 싹 쏟아부었지요. 제가 뭔가 기술이 있어서 코이카나 월드비전같은 전문 NGO를 통했더라면 비용은 조금 더 줄일 수 있었겠지만, 그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1년 가까이 모은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이번 피랍사건이 발생한 3일 후 저는 모로코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덕분에 저희 부모님은 전화기 저편 제 목소리가 조금만 이상해도 난리가 났지요. 그리고 그 이유로 귀국 일정을 당겨야 했으니, 저도 피해자라면 피해자일까요. 그리고 모로코 방송에서도 아프간 팀 뉴스는 하루도 빼지 않고 나왔습니다. 그러면 모로코 친구들은 물었죠. 한국은 기독교 국가냐고- 이번 아프가니스탄 팀, 샘물교회 측에서는 의료 선교단이라고 하지요. 풀려난 지금에서는 사지에 사랑을 실천하러 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의사는 한명도 없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 단체에서 중동으로 선교하러 보낸 적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고 하죠. 그들에게 저는 제 친구들이 제게 했던 질문을 그대로 하고 싶습니다. 이슬람은 이슬람이고 가톨릭은 가톨릭인데 억지로 왜 융합하러 하느냐고, 다른 두개의 문화가 만나는데 어떻게 문화 교류가 아닌 문화 전파가 되느냐고- 그리고 자원봉사자였던 제 입장에서 묻고 싶습니다. 만약 납치되지 않고 무사히 돌아왔다면, 저처럼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울 수 있겠냐고. 언제 다시 만날지, 과연 다시 만날 수나 있을지 모르는 친구들 때문에, 아픈 눈을 고쳐주지 못해 기형적인 눈으로 쫓아다니던 그 아이가 안쓰러워서. 한쪽 팔이 잘린 할머니가 준 사탕 하나 때문에, 돌아오는 날 울 수 있겠냐고. 그게 아니라면, 일방적인 문화 선교로 가서, 사랑을 뿌리기만 하고 받고 오지 못했다면, 그런 수박 겉핥기식 태도로 자원봉사를 다녀왔다고 말하지 말라고요. 그것은 그들이 환영하는 태도가 아니므로 봉사가 될 수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물론 수니파와 시아파의 차이가 크고, 각 종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제가 만난 이슬람 교도들은 언제나 예의바르고 친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방을 억지로 옮긴 것에 화가 나서 꿍해 있을때 한 친구가 제게 말하더군요. "우리는 당신을 형제처럼 생각한다"가 아닌, "당신은 우리의 형제다"라구요.(이 말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납니다.) 그들은 그들의 문화가 있는데, 왜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주지 못하고 억지로 우리의 문화를 주입하려는 사대주의 정신으로 그들을 모욕합니까? 가난한 나라에서 살고 못 입고 못 먹는다고, 아픈데 병원갈 돈조차 없다고, 돈 몇푼 약 몇번 사탕 몇개 받는 입장이라고, 그들의 문화는 버려져도 되는 겁니까? 종교를 버리고, 관습과 문화를 버리고, 그들의 문화적 자존심을 짓밟아도 되는 겁니까? 샘물교회 관계자와, 자원봉사라는 이름으로 선교를 떠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구제해야 될 불쌍한 양민도 아니고, 지옥에 떨어지기 전 구원해야 할 존재도 아닙니다. 그들의 신념과 그들의 의지와 그들의 문화를 가진 또 다른 사람입니다. 사실 한국에서 누구 초인종을 누르건, 지하철에서 뭐라고 소리치건, 전 관심 없습니다. 제가 무시하고 눈 감고 안 보고 안 들으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정말 부탁하고 싶습니다. 비록 인터넷도 모르고 영어도 못하고 가진것도 없지만, 마음씨만은 누구보다 훌륭한 사랑하는 제 친구들의 문화를 모욕하지 말아달라고. 제게는 너무도 값진 기억이었고 평생동안 잊지 못할 자원봉사의 기억을, 선교라는 이름으로 왜곡하지 말아달라고 말입니다. 159
저는 실제로 국제자원봉사를 다녀온 사람입니다.
작년에 중국 어학연수를 하기 위해 휴학을 했고,
올해 다른 세상을 좀 더 구경하기 위해 휴학을 연장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길이 국제자원봉사입니다.
관광객의 눈보다는 현지 주민과 어울려 그 사람들의 눈으로
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6월 청소년 자원봉사팀의 인솔요원으로 베트남 하노이를 다녀왔고,
올해 8월 국제워크캠프기구를 통해서 모로코 버케인으로 자원봉사를 다녀왔습니다.
전 두번의 자원봉사 모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울며 돌아왔습니다.
35도는 훌쩍 넘는 날씨에서 에어컨은 커녕 선풍기도 부족하고,
창문에 모기장도 없어 밤만 되면 모든 벌레들의 침공을 받고,
꺼내놓은 음식은 물론 냉장고 안에도 개미가 꿈틀대는 그곳.
버스나 기차는 서너시간 연착하기 일쑤이고,
전기는 수시로 끊어지고 뜨거운 물은 애시당초 기대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페인트가 범벅이 되어 가져간 옷은 전부 버려야 했고,
익숙지 않은 삽질을 하느라 손은 물집 투성이가 되어 펴지지도 않고.
전 잡풀을 태우다가 녹은 비닐이 튀면서 허벅지에 커다란 상처까지 지고 왔습니다.
화상이니 이 흉터는 평생 가겠지요.
하지만 그 흉터를 볼때마다 그곳에서의 보람된 기억들을 다시 떠올릴 것입니다.
물론 저희가 한 일이 그렇게 큰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동네 아이들은 고맙다고 웃으며 음료수를 가져다 주더군요.
모로코는 이슬람, 베트남은 불교 국가입니다.(참고로 모로코는 수니파임을 밝혀둡니다.)
제가 출발하기 전, 단체 관계자는 저희에게 신신당부를 하더군요.
한국 문화의 일방적인 전파가 아닌 양국 문화의 교류를 만들어 오라구요.
저희도 한국인의 밤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베트남의 경우엔, 참여한 학생들이 몸살이라도 나지 않을까,
가능한 한 한국 음식을 자주 내려고 노력했었구요.
하지만 마찬가지로 베트남의 밤 프로그램, 모로코의 밤 프로그램도 있었고,
모로코에서는 친구들이 기도하는 동안에는 가능한 한 목소리를 죽이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금요일날 같이 사원에 가서 사원 앞에서 놀면서 기다리는 친구들을 기다리기도 했구요.
저는 영어 중국어 외에는 할줄 아는 외국어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운전면허증 이외에는 어떤 자격증도 없구요.
그래서 제가 간 일은 도랑 파기, 삽질, 페인트칠, 아이들과 놀아주기 등
누구나 할수 있는 단순노동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이번에 숙식은 제공해주는 대신 비행기표는 제가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간 아르바이트 했던 비용 싹 쏟아부었지요.
제가 뭔가 기술이 있어서 코이카나 월드비전같은 전문 NGO를 통했더라면
비용은 조금 더 줄일 수 있었겠지만, 그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1년 가까이 모은 그 돈이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이번 피랍사건이 발생한 3일 후 저는 모로코행 비행기를 탔습니다.
덕분에 저희 부모님은 전화기 저편 제 목소리가 조금만 이상해도 난리가 났지요.
그리고 그 이유로 귀국 일정을 당겨야 했으니, 저도 피해자라면 피해자일까요.
그리고 모로코 방송에서도 아프간 팀 뉴스는 하루도 빼지 않고 나왔습니다.
그러면 모로코 친구들은 물었죠. 한국은 기독교 국가냐고-
이번 아프가니스탄 팀, 샘물교회 측에서는 의료 선교단이라고 하지요.
풀려난 지금에서는 사지에 사랑을 실천하러 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의사는 한명도 없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 단체에서 중동으로 선교하러 보낸 적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고 하죠.
그들에게 저는 제 친구들이 제게 했던 질문을 그대로 하고 싶습니다.
이슬람은 이슬람이고 가톨릭은 가톨릭인데 억지로 왜 융합하러 하느냐고,
다른 두개의 문화가 만나는데 어떻게 문화 교류가 아닌 문화 전파가 되느냐고-
그리고 자원봉사자였던 제 입장에서 묻고 싶습니다.
만약 납치되지 않고 무사히 돌아왔다면, 저처럼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울 수 있겠냐고.
언제 다시 만날지, 과연 다시 만날 수나 있을지 모르는 친구들 때문에,
아픈 눈을 고쳐주지 못해 기형적인 눈으로 쫓아다니던 그 아이가 안쓰러워서.
한쪽 팔이 잘린 할머니가 준 사탕 하나 때문에, 돌아오는 날 울 수 있겠냐고.
그게 아니라면, 일방적인 문화 선교로 가서, 사랑을 뿌리기만 하고 받고 오지 못했다면,
그런 수박 겉핥기식 태도로 자원봉사를 다녀왔다고 말하지 말라고요.
그것은 그들이 환영하는 태도가 아니므로 봉사가 될 수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물론 수니파와 시아파의 차이가 크고, 각 종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제가 만난 이슬람 교도들은 언제나 예의바르고 친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방을 억지로 옮긴 것에 화가 나서 꿍해 있을때 한 친구가 제게 말하더군요.
"우리는 당신을 형제처럼 생각한다"가 아닌,
"당신은 우리의 형제다"라구요.(이 말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납니다.)
그들은 그들의 문화가 있는데, 왜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주지 못하고
억지로 우리의 문화를 주입하려는 사대주의 정신으로 그들을 모욕합니까?
가난한 나라에서 살고 못 입고 못 먹는다고, 아픈데 병원갈 돈조차 없다고,
돈 몇푼 약 몇번 사탕 몇개 받는 입장이라고, 그들의 문화는 버려져도 되는 겁니까?
종교를 버리고, 관습과 문화를 버리고, 그들의 문화적 자존심을 짓밟아도 되는 겁니까?
샘물교회 관계자와, 자원봉사라는 이름으로 선교를 떠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들은 구제해야 될 불쌍한 양민도 아니고, 지옥에 떨어지기 전 구원해야 할 존재도 아닙니다.
그들의 신념과 그들의 의지와 그들의 문화를 가진 또 다른 사람입니다.
사실 한국에서 누구 초인종을 누르건, 지하철에서 뭐라고 소리치건, 전 관심 없습니다.
제가 무시하고 눈 감고 안 보고 안 들으면 그만이니까요-
하지만, 정말 부탁하고 싶습니다. 비록 인터넷도 모르고 영어도 못하고 가진것도 없지만,
마음씨만은 누구보다 훌륭한 사랑하는 제 친구들의 문화를 모욕하지 말아달라고.
제게는 너무도 값진 기억이었고 평생동안 잊지 못할 자원봉사의 기억을,
선교라는 이름으로 왜곡하지 말아달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