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긴 짝사랑

백현영2007.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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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바람과 시

 

 

 

가을을 가장 먼저 알려준 것은 바람

 

희뿌연 강 건너 풍경이 그 순간부터 또렷하였다

 

 

 

외면적 촉감의 극치인 손가락에 잡히는 바람

오늘은 노력하지 않아도 네가 나의 손가락에 휘감기는 구나  

 

 

 

이제는 너를 버리고 떠나야 할때.

 

너는 안간힘을 쓰며

 

나를 매혹하고

 

나를 유혹하고

 

나를 회유한다

 

 

화산처럼 터지던 나의 분노와

 

하늘처럼 변덕스런 나의 정서와

 

아지랑이처럼 뜨겁던 나의 열망과

 

소나기처럼 차갑던 나의 절망까지

 

 

 

밤에 쓴 편지는

아무에게도 보낼 수 가 없어

 

허나 너에게 쓰는 편지는 항상 밤에 쓰는 편지

 

 

그 모든 것을 보고도

 

너는

 

나를

 

사랑하였다

 

 

 

동경하였던

 

나의 사랑아

 

 

한때 너를 버리려 했으나

그러지 못하였고

 

 

오늘 만난 너는

 

달과 바람과 더불어 나를 고이 감싸 안으니

 

 

이것이 정녕 이별이더냐

 

 

 

가장 가깝던 달은

가장 빛나기 위하여

밤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항상 곁에 있던 너는

지나치면 부족함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너는 나를 절망의 늪으로

 

 

 

고통스러웠던 지난 밤들은

이미 식어버렸고

 

검던 그 고통은

좁은 식도를 타고 올라

차갑게 식은 나의 이빨 사이로

굳게 다문 나의 입술 사이로

 

스물

스물

 

비집고 나와

내 얼굴을 타고

목으로 흘러내렸지

 

 

 

차라리 사지가 찢기는 고통을 주어라

 

허나 내게 주어진 것은

잠식적인 의식의 마비

순환적인 왜곡과 질곡

 

결코 터지지 않는 고통은

조용히 웃으며 나의 숨통을 조여올 뿐,

어디에도 찢어지는 가슴따위는 없는데.

 

 

표면적인 자유와

암묵적인 노예화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곳에 서있고

 

 

 

미덕을 지닌 너는

그렇게 나를 키웠다.

 

 

 

질긴 짝사랑


 

 

 

이제는 이별을 고해야 할 시간

 

긴 머리 늘어뜨린 나는

달과 바람과 너를

버리고 떠나려 한다

 

허나 서러워 하지 마라

 

사랑이 짧으면

그리움은 짙어져

 

너는 나에게

영원한 그리움이 될 터이니.

 

 

안녕

내 사랑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