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터를 키고서 지금 이 사진을 활활 태워버리면, 내 기억마저 온순한 양처럼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까 생각을 해 봤지만, 내가 불을 붙이는 순간 엄습해오는 소멸에 대한 집착 때문에 난 다시 멈추고야 만다. 시간과 기억, 비례하지 않는 잔재들이 마룻바닥을 휩쓸고, 연소로 인한 산소공급의 희박함은 내 숨을 턱하고 막히게 할 뿐이다.
어두운 방에 혼자 앉아서 머리를 짓이겨 봐도 나오는 것은 그 무엇 하나 없다. 근데, 지루하게 앉아서 생각해보니 시간이란 게 너무도 더디 가더라. 시계바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시간은 나를 조롱하듯 제자리에서 빙빙 돈다.
그래서인지 내게 8시간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 나를 놀리는 것인지, 내게 기회를 주는 것인지는 나하기에 따라 달려있다. 시간을 잘 소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행복할 수 있겠다 생각한다.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추억이 있을 것이다. 내가 기억에 대한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추억이라는 명목 하에 포장된 아련함 때문일 것이다. 감상에 잠겨 생각하면 행복해지고, 현재를 놓치는 그 여유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내면 깊은 곳까지 흘러 들어가서 그 곳의 온도에 순화된 기억을 만난다. 그게 무엇이든 머리가 달린 사람이 만들어낸 허구이기에 꽤나 매력적이지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게 제대로 될 경우에 내 뒤통수가 짜릿해오며 머릿속에 영감이 떠오른다. 어떤 순간에는 시간이 더디 가고, 어떤 순간은 1초라도 지속되길 기도하지만, 붙잡을 수가 없다는 것. 시간이 지난다고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방금 전의 일이 생각이 나지 않아 괴롭다. 그런 모순들 속에서 고민을 해본이라면 을 재밌게 볼 수 있다. 시간에 대한 인간의 막연한 고민에 귀여운 해답을 제시하고 있게 때문이다.
감독은 어떤 생각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이별한 한 청년이 시간에 대한 이치를 깨닫고는 무한한 상상으로 하나의 철학을 꿈꾼다.
은 시간이 가지 않는 괴로운 인생을 사는 한 소년을 비춰준다. 여자 친구에 차이고 그의 시간은 거의 멈춰지다시피 더디 간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니 그 시간들이 8시간이라는 넉넉한 시간임을 깨닫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는 한 슈퍼마켓에서 일하며 그 시간을 소비하기로 한다. 8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센스다. 마치 캐쉬백처럼 시간은 돈이 되어 진다.(알바비가 얼만지 몰라 가치는 모르겠다.;) 허나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했던 알바는 소년에게 또 다른 시간에 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의 순화된 기억은 이별에 대한 잔재를 매만지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무런 감정의 힘을 빼고서는 활활 탈 때의 그 뜨거움을 잊고 본질을 객관화한다. 그녀와 내가 얼마나 행복했으며, 헤어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천천히 머릿속에서 슬로비디오로 돌려 본다. 은 시간의 철학에서 시작한다. 빨라졌다가 느려졌다 나를 조롱하는 그 시간 말이다. 이별로 시작된 시간에 대한 막연한 고민들이 머릿속에 흩뿌려진다. 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빙빙 돌고 있는 넘쳐흐르는 시간이 아닌, 시간을 붙잡고픈 능력이다. 그녀와의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현재 흘러가는 덧없는 시간 속에서 그 어떤 재미를 찾고 싶다. 눈을 감고 현재를 멈추고, 그녀들의 옷을 벗기고서는 탐스러운 유방을 도화지 속에 그려 넣는다. 상상과 망상 사이를 사뿐히 뛰어 넘을 수 있다. 상상과 영화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에서 자무시가 제시하는 시간에 대한 철학은 현재의 미학이다. 내가 말하는 이 순간도 바로 과거가 되어버리는 인생의 원리를 생각한다. 옛 연인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자신을 찾으려는 이 남자는 한 소년과의 대화에서야 비로써 내가 살아온 인생이 단순한 꽃 꺾기에서 시작됨을 보여준다. 재미있게 꽃 꺾기 놀이를 하지만, 그 후로는 끝이다. 시들어 가는 꽃을 보면서 그 유희는 얼마나 가는가? 수년이 지나 그것을 돌아봤을 때 흔적조차 남지 않은 그 ‘없음’에 대해 그는 조금은 슬펐던 것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분간할 수 없는 그 상황에서 과연 현재의 재미가 어떠한 의미를 줄 수 있을까? 그 막연한 의미를 찾기 위해 그는 시들어진 꽃들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자신의 아들일지도 모르는 한 소년과의 짧은 만남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또 ‘없음’의 얼굴로 길을 걸어간다.
자무시는 현재는 시간이 지나더라도 기억에 저장되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 없이 현재 꺽은 꽃의 유희를 즐겨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는 ‘지금’에만 존재하는 너무도 탐스러운 향이기에 시들기 전에 충분히 느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향에 대한 내 느낌을 기억 속에 쌓아두곤 하나씩 꺼내본다. 반성을 하던 그 황홀함에 다시 젖어들던지 그것은 개인의 자유다. 인생의 이치는 여기서 시작된다. 미래를 보겠다는 ‘불가능’의 시도는 한낮에 늘어지게 자고 있는 개만도 못한 짓거리다. 내 과거를 알지 못하며,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자가 어찌 미래를 논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은 명확한 그 ‘현재의 미학’에 많은 것을 의지한다.
소년은 모든 여자들의 옷을 벗기고는 멈춰버린 그 현재를 즐긴다. 세상의 시간 속에 자신만이 현재를 넉넉히 즐길 수 있다는 스릴감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현재를 살리는 메시지다. 알 수 없는 미래에 괴로워하기 보다는 혹은 지나가 버린 현재에 큰 울음을 터뜨리기 보다는 과거를 바탕으로 복습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현재에 모든 것을 쏟아 불어넣는 소년은 웃고 있다. 감독은 미소 짓는다. 보는 이도 풍족해진다.
하루가 짧다고 생각지 않는가? 일어나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나면 어느새 밤이 되어 다음 날의 위해 숙면을 취하라는 자아성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버스를 타고 집에 와서 TV를 보다 잠이 든다. 내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가고,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 오늘은 속옷을 사간다. 가끔은 책도 한권 읽으며 나를 개발하고, 가끔은 네게 안부전화를 해서 인간관계를 유지한다. 너무도 할 일은 많고, 시간은 나를 압박해 온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길게 살기 위해서 별에 별 짓을 다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헛것이다.
길게 살고 싶다면 순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도 빨리 지나가 버린다면, 그 순간을 제대로 살고, 그것을 기억으로 순화시키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무료한 시간 때에 슬로우 비디오로 돌려볼 수가 있다. 그래 신중해야 한다. 잠시 멈추고 세상을 관망하는 여유. 모든 순간에 힘을 주어 세상에 융화되어야 한다. 그 누구의 말처럼 이 짧디짧은 순간을 즐길 자세를 취해야 한다.
결국은 사랑이다. 세상을 멈춰놓고는 그 아름다움을 각인시킨 이 소년은 자신이 반해버린 소녀를 그려서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데 성공한다. 기억에 집착하던 소년이 시간에 대한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각인시키고, 그려내어 마음을 얻어내는 꿈. 영화는 시간을 알기를 원한다. 돌릴 수는 없으며, 기억할 수는 있는 시간. 좀 더 현명해지길 원한다. 메모리가 너무도 작기에. 현재는 너무도 재빠른 놈이기에.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캐쉬백 (Cashback, 2006)
라이터를 키고서 지금 이 사진을 활활 태워버리면, 내 기억마저 온순한 양처럼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까 생각을 해 봤지만, 내가 불을 붙이는 순간 엄습해오는 소멸에 대한 집착 때문에 난 다시 멈추고야 만다. 시간과 기억, 비례하지 않는 잔재들이 마룻바닥을 휩쓸고, 연소로 인한 산소공급의 희박함은 내 숨을 턱하고 막히게 할 뿐이다.
어두운 방에 혼자 앉아서 머리를 짓이겨 봐도 나오는 것은 그 무엇 하나 없다. 근데, 지루하게 앉아서 생각해보니 시간이란 게 너무도 더디 가더라. 시계바늘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시간은 나를 조롱하듯 제자리에서 빙빙 돈다.
그래서인지 내게 8시간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 나를 놀리는 것인지, 내게 기회를 주는 것인지는 나하기에 따라 달려있다. 시간을 잘 소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행복할 수 있겠다 생각한다.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추억이 있을 것이다. 내가 기억에 대한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추억이라는 명목 하에 포장된 아련함 때문일 것이다. 감상에 잠겨 생각하면 행복해지고, 현재를 놓치는 그 여유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내면 깊은 곳까지 흘러 들어가서 그 곳의 온도에 순화된 기억을 만난다. 그게 무엇이든 머리가 달린 사람이 만들어낸 허구이기에 꽤나 매력적이지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그게 제대로 될 경우에 내 뒤통수가 짜릿해오며 머릿속에 영감이 떠오른다. 어떤 순간에는 시간이 더디 가고, 어떤 순간은 1초라도 지속되길 기도하지만, 붙잡을 수가 없다는 것. 시간이 지난다고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방금 전의 일이 생각이 나지 않아 괴롭다. 그런 모순들 속에서 고민을 해본이라면 을 재밌게 볼 수 있다. 시간에 대한 인간의 막연한 고민에 귀여운 해답을 제시하고 있게 때문이다.
감독은 어떤 생각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이별한 한 청년이 시간에 대한 이치를 깨닫고는 무한한 상상으로 하나의 철학을 꿈꾼다.
은 시간이 가지 않는 괴로운 인생을 사는 한 소년을 비춰준다. 여자 친구에 차이고 그의 시간은 거의 멈춰지다시피 더디 간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니 그 시간들이 8시간이라는 넉넉한 시간임을 깨닫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는 한 슈퍼마켓에서 일하며 그 시간을 소비하기로 한다. 8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는 센스다. 마치 캐쉬백처럼 시간은 돈이 되어 진다.(알바비가 얼만지 몰라 가치는 모르겠다.;) 허나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했던 알바는 소년에게 또 다른 시간에 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의 순화된 기억은 이별에 대한 잔재를 매만지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무런 감정의 힘을 빼고서는 활활 탈 때의 그 뜨거움을 잊고 본질을 객관화한다. 그녀와 내가 얼마나 행복했으며, 헤어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천천히 머릿속에서 슬로비디오로 돌려 본다. 은 시간의 철학에서 시작한다. 빨라졌다가 느려졌다 나를 조롱하는 그 시간 말이다. 이별로 시작된 시간에 대한 막연한 고민들이 머릿속에 흩뿌려진다. 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빙빙 돌고 있는 넘쳐흐르는 시간이 아닌, 시간을 붙잡고픈 능력이다. 그녀와의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현재 흘러가는 덧없는 시간 속에서 그 어떤 재미를 찾고 싶다. 눈을 감고 현재를 멈추고, 그녀들의 옷을 벗기고서는 탐스러운 유방을 도화지 속에 그려 넣는다. 상상과 망상 사이를 사뿐히 뛰어 넘을 수 있다. 상상과 영화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에서 자무시가 제시하는 시간에 대한 철학은 현재의 미학이다. 내가 말하는 이 순간도 바로 과거가 되어버리는 인생의 원리를 생각한다. 옛 연인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자신을 찾으려는 이 남자는 한 소년과의 대화에서야 비로써 내가 살아온 인생이 단순한 꽃 꺾기에서 시작됨을 보여준다. 재미있게 꽃 꺾기 놀이를 하지만, 그 후로는 끝이다. 시들어 가는 꽃을 보면서 그 유희는 얼마나 가는가? 수년이 지나 그것을 돌아봤을 때 흔적조차 남지 않은 그 ‘없음’에 대해 그는 조금은 슬펐던 것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분간할 수 없는 그 상황에서 과연 현재의 재미가 어떠한 의미를 줄 수 있을까? 그 막연한 의미를 찾기 위해 그는 시들어진 꽃들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자신의 아들일지도 모르는 한 소년과의 짧은 만남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또 ‘없음’의 얼굴로 길을 걸어간다.
자무시는 현재는 시간이 지나더라도 기억에 저장되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 없이 현재 꺽은 꽃의 유희를 즐겨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는 ‘지금’에만 존재하는 너무도 탐스러운 향이기에 시들기 전에 충분히 느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향에 대한 내 느낌을 기억 속에 쌓아두곤 하나씩 꺼내본다. 반성을 하던 그 황홀함에 다시 젖어들던지 그것은 개인의 자유다. 인생의 이치는 여기서 시작된다. 미래를 보겠다는 ‘불가능’의 시도는 한낮에 늘어지게 자고 있는 개만도 못한 짓거리다. 내 과거를 알지 못하며,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자가 어찌 미래를 논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은 명확한 그 ‘현재의 미학’에 많은 것을 의지한다.
소년은 모든 여자들의 옷을 벗기고는 멈춰버린 그 현재를 즐긴다. 세상의 시간 속에 자신만이 현재를 넉넉히 즐길 수 있다는 스릴감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자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현재를 살리는 메시지다. 알 수 없는 미래에 괴로워하기 보다는 혹은 지나가 버린 현재에 큰 울음을 터뜨리기 보다는 과거를 바탕으로 복습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현재에 모든 것을 쏟아 불어넣는 소년은 웃고 있다. 감독은 미소 짓는다. 보는 이도 풍족해진다.
하루가 짧다고 생각지 않는가? 일어나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나면 어느새 밤이 되어 다음 날의 위해 숙면을 취하라는 자아성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버스를 타고 집에 와서 TV를 보다 잠이 든다. 내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가고, 부모님께 효도하기 위해 오늘은 속옷을 사간다. 가끔은 책도 한권 읽으며 나를 개발하고, 가끔은 네게 안부전화를 해서 인간관계를 유지한다. 너무도 할 일은 많고, 시간은 나를 압박해 온다.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길게 살기 위해서 별에 별 짓을 다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헛것이다.
길게 살고 싶다면 순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도 빨리 지나가 버린다면, 그 순간을 제대로 살고, 그것을 기억으로 순화시키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무료한 시간 때에 슬로우 비디오로 돌려볼 수가 있다. 그래 신중해야 한다. 잠시 멈추고 세상을 관망하는 여유. 모든 순간에 힘을 주어 세상에 융화되어야 한다. 그 누구의 말처럼 이 짧디짧은 순간을 즐길 자세를 취해야 한다.
결국은 사랑이다. 세상을 멈춰놓고는 그 아름다움을 각인시킨 이 소년은 자신이 반해버린 소녀를 그려서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데 성공한다. 기억에 집착하던 소년이 시간에 대한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각인시키고, 그려내어 마음을 얻어내는 꿈. 영화는 시간을 알기를 원한다. 돌릴 수는 없으며, 기억할 수는 있는 시간. 좀 더 현명해지길 원한다. 메모리가 너무도 작기에. 현재는 너무도 재빠른 놈이기에.
캐쉬백, 참 괜찮은 표현이다.
내가 돌려줄게 인생의 인센티브를 인생의 마일리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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