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솔샤르는 없다

김종성2007.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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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8시즌 노팅엄 포레스트전 경기종료 12분전에 투입되어 4골
◆98/99시즌 리버풀과의 FA컵 8강전 결승골
◆98/99시즌 챔피언스리그 결승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인저리타임 결승골

 

 

올레 군나르 솔샤르 같은 공격수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솔샤르보다 더 많은 골을 넣고, 더 많은 경기를 뛰며 부상도 적고 더 큰 욕심을 가진 공격수들은 많다.

 

그러나, 계속되는 무릎 문제로 결국 34세의 나이로 은퇴했지만 솔샤르만큼 모두의 모범이 되는 선수 생활을 한 선수는 드물다.

 

개인적인 부 보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대한 의리를 더 중요하게 여겼고, 개인의 영광 보다는 팀을 먼저 생각했다는 것은 솔샤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돈만 밝히는 에이전트들, 기묘한 선수 소유권, 매 시즌 연중 행사처럼 벌어지는 구단 옮겨가기가 일반적인 오늘날의 축구에서, 유나이티드 역시 의리를 지키며 솔샤르에게 코치와 구단 홍보 대사의 역할을 맡기는 것으로, 솔샤르가 은퇴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올드 트레포드에 남을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은 정말 보기 좋은 일이다.

 

11년간의 올드 트레포드 생활에서 366경기에 출전해 126골을 넣었던 솔샤르가 골을 넣은 후 유니폼에 붙은 유나이티드 배지에 입을 맞출 때, 당신은 아마 생각 없는 다른 몇몇 선수들이 골을 넣은 후에 하는 의미 없는 행동들 보다 어쩌면 좀 더 진심이 담긴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솔샤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게 보여 주었던 이런 헌신은 그의 순진한 미소와 함께 축구팬 전체가 그를 사랑하도록 만들었던 모습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솔샤르에겐 벤치에서 교체되어 들어온 후 결정적인 골들 - 그것도 수없이 많은 - 을 넣어주는 초인적인 능력이 있었다.

 

노팅엄 포레스트와의 원정 경기에서 10분만에 네 골을 넣으며 팀의 8대 1 승리를 만든 것이나 에버튼과의 홈 경기에서 넣은 네 골 같은 일 말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대단했던 일은 당연히 1999년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벌어졌던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거의 반사적으로 차 넣은 골로, 그것은 유나이티드의 유명한 트레블과 함께 솔샤르에게 역사의 한 자리를 차지하도록 만들었던 골이었다.

 

그 날, 누 캄프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그 순간의 드라마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토니 던, 알렉스 스테프니, 노비 스타일스 같은 유나이티드의 선배들이 관중석에서 벌떡 일어나며 지었던 그 엄청난 환희의 표정. 그리고 결승전 내내 경기를 지배했지만 잔인하게도 인저리 타임에 우승 트로피를 뺏겨버린 바이에른의 충격.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라면 솔샤르가 왜 “동안의 암살자”라 불리는지의 이유를 누구보다도 확실히 알고 있을 것이다.

 

선수 생활의 후반기를 괴롭혔던 무릎 부상 없이, 완전히 정상 컨디션 상태의 솔샤르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보증 수표나 다름 없는 역할을 했었다.

 

다른 모든 대안들이 실패했을 때도 믿고 의지하며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선수로서 말이다.

 

솔샤르가 거의 정기적으로 보여 주었던 교체 투입 후의 엄청난 활약에 비교할 수 있는 선수는 아마 1970년대 리버풀의 슈퍼서브였던 데이빗 페어클로 한 명 뿐일 것이다.

 

하지만, 퍼거슨이 그를 가장 필요로 할 때 은퇴할 수 밖에 없었던 지금의 상황은 유나이티드에겐 정말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유나이티드는 올 여름 5천만 파운드 이상의 돈을 써서 팀을 강화시켰지만 공격수 부재라는 문제가 초반 부진으로 곧바로 이어지고 있다.

 

앨런 스미스가 뉴캐슬로, 쥐세페 로시비야르레알로 떠났다.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웨인 루니가 발 부상을 당한 상태이고 루이 사하의 몸 상태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현재 유나이티드는 아직 새로운 구단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 중인 카를로스 테베즈 한 명만이 사실상 유일한 공격수로 남아 있는 상태다.

 

이것은 바클레이스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챔피언 타이틀을 지킨다는 목적과는 아주 거리가 먼 출발이며 이적 시장이 끝나기 전에 퍼거슨이 디미타르 베르바토프, 니콜라스 아넬카 같은 공격수들을 영입하려 한다는 추측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축구에서 우승 트로피들은 충분한 스쿼드를 갖추는 동시에 다득점을 올려 주는 골잡이들이 있는 팀이 가져가는 것이다.

 

그러나, 퍼거슨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것처럼, 솔샤르 같은 교체 멤버를 교체해 줄 수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올레 군나르 숄사르]

 

1973년: 2월 26일, 노르웨이의 크리스티안순에서 태어남

 

1995: 클라우세네겐 FK에서 몰데로 이적, 첫 시즌 동안 26경기 출전 20골 기록. 노르웨이 U-21 대표팀으로 선발된 뒤 11월 22일에는 자마이카와의 경기로 첫 성인 대표팀 무대에 출전과 동시에 한 골을 기록함. (결과는 1대1 무승부)

 

1996: 몰데에서 리그 16경기 출전에 11골을 넣은 뒤 7월 29일에는 150만 파운드의 이적료로 멘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 8월 25일 블랙번과의 데뷔전에서 데이빗 메이의 교체 선수로 출전하여 데뷔와 동시에 리그 첫 골을 기록.

 

1996-97: 리그 18골로 유나이티드에서 최다 득점을 올리며 리그 우승과 함께 잉글랜드에서의 첫 시즌을 마감.

 

1997: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7년 계약에 합의.

 

1997-98: 두 번째 시즌에서는 부상 때문에 불규칙적인 출전을 했고 리그 6골만을 기록함.

 

1998: 3월,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전에서 모나코를 상대로 골을 기록했지만 원정골 우선 규정으로 인하여 유나이티드는 탈락. 4월에는 뉴캐슬의 롭 리에게 한 의도적인 파울로 인해 퇴장당함. 98 프랑스 월드컵에서 노르웨이 대표팀으로 출전, 16강에 진출하지만 이탈리아에게 패배.

 

1999: 5월 26일 - 누 캄프에서 드라마틱한 인저리 타임 결승골을 넣으며 바이에른 뮌헨을 꺾고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 리그, FA 컵 우승과 함께 트레블을 완성.

 

2005: 무릎 부상 때문에 가졌던 20개월간의 공백기를 마치고 복귀

 

2006: 3월 31일 - 유나이티드와 새로운 계약에 서명

8월 - 찰튼전에서 거의 3년 만의 첫 골을 기록함2007: 5월 - 11골을 넣으며 프리미어 리그 우승을 차지함.

 

8월 27일 - 은퇴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