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은 (體;本性) 모든 현상(用;色;相)의 깊숙한 곳에 숨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5감(五感 ;눈,귀,코,혀,몸)으로서 직접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뇌에 정보 전달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의식(意識;생각)으로서만 알 수 있으며, 이것은 수행을 통한 깨달음으로서 보는 것이므로 마음의 눈(心眼;慧眼)으로 본다고 합니다.
현재 의식을 연구하는 신경생리 학자들의 대부분은 "의식은 뇌의 산물이다"라고 주장합니다.
뇌에 들어오는 정보중에서 가장 많은 것은 시상(시각)에서 들어오며, 의식과 가장 관계가 깊은 신경물질은 입니다.
의식은 뇌과학의 궁극적인 목표 임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연구는 1970년대 부터 시작되었고 인류가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 미지의 영역중의 하나이며, 의식은 말을 통해서 이해되어 지는 영역입니다.
현상적인 것은 형상이 있어 말로서 표현이 되며, 내가 직접 볼 수도 있으며 만질 수도 있으나 본질적인 것은 형상이 없으므로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으며, 언어 문자로서 나타낼 수도 없습니다.
의식이 생기면 느낌이 생기고, 느낌은 감정을 생기게 하고, 감정이 생기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뇌에 정보 전달이 되어야만 생각을 하게되고 판단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의 습성으로 인하여 본능 처럼 되었습니다.
까닭으로 현상적이지 않으면 믿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본질을 알려면 우선 믿어야 합니다.
인류 최초로 우주의 본질을 가장 확실하게 보신 분이 이시므로 그 가르침을 믿어야 하며, 깨닫고 나면 깨닫기 전의 믿음이 다시는 의심이 생기지 않아 확실하게 믿게되는 것입니다.
본질을 알지 못하면 현상에 지혜롭게 대처할 수 없습니다.
병을 치료 하려면 병의 확실한 원인을 알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현상이 허상이 아닌 실상으로 착각하여 실상인 본질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無明)에 있습니다.
인간이 살아 가면서 일어나는 모든 고통의 원인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가르침(用)은 본질(體;진리)에서 나온 말입니다.
본질을 깨닫고 나면 완성된 지혜(반야지혜)로써 어떠한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으나,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의 어떠한 가르침(윤리,도덕,지식)도 모든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는 어렵습니다.
이유는 항상 변화하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적응하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모든 가르침도 깨닫기 전에는 팔만사천 법문이 각각 다른 내용(현상;用)으로 이해되나, 깨닫고 나면 모든 가르침이 회통되어 하나의 본질(體;진리)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주의 모든 현상(만물;삼라만상;用)은 하나(같은 것)의 본질(근본;體;法;진리)로 부터 생겨난 것이므로 생멸(生滅)은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잠시 흩어졌다가 인연따라 다시 나타나는 것이므로 있는 그대로 불생불멸(不生不滅;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이고, 부증불감(不增不減;늘어나지도 않고 줄어 들지도 않으며)이며, 불구부정(不垢不淨;더럽지도 않으며 깨끗 하지도 않다)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무엇을 보든 그 속에 너와 내가 함께하고 있음을 보게 되고, 하나의 거대한 생명 공동체로서 서로 유기적인 상호관계에 의해서 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므로써 차별심 분별심(이기심)이 끊어지고 서로서로 나누는 것(이타심;보시;보살행;십일조)을 생활화 하게 됩니다.
우리의 몸을 소우주로 생각하고 잘 음미해 보시면 이해가 빠르리라 생각 합니다.
손톱을 깍았다고 해서 내가 죽거나, 머리카락 몇가닥 빠졌다고 해서 내가 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장기가 죽으면 다른 장기도 죽게 됩니다.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세포도 불과 수개월이면 모두 새로운 세포로 바뀝니다.
이것을 무상(無常)이라고 하며, 무상을 보면 공(空;본질;體)을 보게되고, 空은 연기(緣起;業)에 의하여 다시 현상(用;色;물질)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은 끝없이 반복되므로 윤회(輪廻)라 합니다.
때문에 있는 그대로 `진공묘유(眞空妙有)'입니다.
무아(無我)는 `내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것은 하나로 통합된다'는 뜻이며, 또 다른 의미로는 `나를 잊는다(망아,忘我)'라는 뜻도 됩니다.
분별하여 나누어 편 가르고, 차별하여 나에게 이익되면 취하고, 그렇치 않으면 버리는 것은 본질을 보지 못하여 현상에 집착하므로써, 자아의식에 의한 탐(貪,욕심), 진(嗔,성냄), 치(痴,어리석음) 3독심(三毒心;無明)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몸을 중심으로 인식 되어지는 감각의 세계(현상)를 세간법(世間法;有漏法;有爲法)이라하고, 불법을 체득하는 수행을 통하여 본질을 보면 출세간법(出世間法;無漏法;無爲法)이라고 합니다.
이말은 깨닫지 못하여 지식(알음알이;아상;고정관념)으로서 살아가면 業이 남아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생멸법(生滅法) 즉 세간법이라하고, 깨달음을 체득한 지혜(中道의 삶)로서 살아가면 삼세윤회(三世輪廻)를 벗어나는 해탈열반(解脫涅槃)의 출세간법이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세간법과 출세간법이 어디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으면 세간법(邪法,사법;삿된 법)이 그대로 출세간법(正法,정법;진리)이고, 깨닫지 못하면 그대로 세간법이라는 말씀입니다.
깨달은 사람은 항상 지혜(無心;無我)를 사용하여 모두를 이익되게 하는 일(行)만하므로 사법을 쓰드라도 그것은 방편으로서 쓰는 것이므로 정법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고통의 원인인 탐, 진, 치 3독은 세간법이며, 계(戒律), 정(禪定), 혜(智慧) 3학(三學)은 수행의 단계를 의미 하므로 출세간법이고, 4성제 중에서 고(苦)성제와 집(集)성제는 세간법이고, 멸(滅)성제와 도(道)성제는 출세간법이 됩니다.
4성제중에서 고성제는 진리를 등지고 있는 삶이 괴롭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며, 집성제는 괴로움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입니다. 즉 존재의 본질(실상)을 모른채 자기중심적 삶을 살기 때문에 괴로움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멸성제는 괴로움이 소멸된 열반의 세계로 탐, 진, 치의 멸이며, `나(我相;고정관념;자아의식)'다 하는 착각의 멸입니다.
끝으로 도성제는 열반에 이르는 구체적 실천으로 바른 견해(正見,정견), 바른 생각(正思維,정사유), 바른 말(正語,정어), 바른 행위(正業,정업), 바른 생활(正命,정명), 바른 노력(正精進,정정진), 바른 관찰(正念,정념), 바른 선정(正定,정정)의 8정도입니다.
결론적으로 `깨닫는다'는 것은 숨어 있어 보이지 않는 본질(體;부처;如來;法身;참나)을 보는 것이므로, 인간은 누구나 본래 부처라는 말이며, 이것을 보아서 확실하게 알면 부처요, 모르면 중생이므로 중생과 부처는 둘이 아니며, 부처는 깨친사람이며 중생은 깨칠사람 입니다.
본질(體)과 현상(用)
본질은 (體;本性) 모든 현상(用;色;相)의 깊숙한 곳에 숨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5감(五感 ;눈,귀,코,혀,몸)으로서 직접 느낄 수 없기 때문에 뇌에 정보 전달이 되지 않습니다.
다만 의식(意識;생각)으로서만 알 수 있으며, 이것은 수행을 통한 깨달음으로서 보는 것이므로 마음의 눈(心眼;慧眼)으로 본다고 합니다.
현재 의식을 연구하는 신경생리 학자들의 대부분은 "의식은 뇌의 산물이다"라고 주장합니다.
뇌에 들어오는 정보중에서 가장 많은 것은 시상(시각)에서 들어오며, 의식과 가장 관계가 깊은 신경물질은 입니다.
의식은 뇌과학의 궁극적인 목표 임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연구는 1970년대 부터 시작되었고 인류가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 미지의 영역중의 하나이며, 의식은 말을 통해서 이해되어 지는 영역입니다.
현상적인 것은 형상이 있어 말로서 표현이 되며, 내가 직접 볼 수도 있으며 만질 수도 있으나 본질적인 것은 형상이 없으므로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으며, 언어 문자로서 나타낼 수도 없습니다.
의식이 생기면 느낌이 생기고, 느낌은 감정을 생기게 하고, 감정이 생기면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나 뇌에 정보 전달이 되어야만 생각을 하게되고 판단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의 습성으로 인하여 본능 처럼 되었습니다.
까닭으로 현상적이지 않으면 믿지를 않습니다.
따라서 본질을 알려면 우선 믿어야 합니다.
인류 최초로 우주의 본질을 가장 확실하게 보신 분이 이시므로 그 가르침을 믿어야 하며, 깨닫고 나면 깨닫기 전의 믿음이 다시는 의심이 생기지 않아 확실하게 믿게되는 것입니다.
본질을 알지 못하면 현상에 지혜롭게 대처할 수 없습니다.
병을 치료 하려면 병의 확실한 원인을 알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현상이 허상이 아닌 실상으로 착각하여 실상인 본질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無明)에 있습니다.
인간이 살아 가면서 일어나는 모든 고통의 원인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가르침(用)은 본질(體;진리)에서 나온 말입니다.
본질을 깨닫고 나면 완성된 지혜(반야지혜)로써 어떠한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얻을 수 있으나,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의 어떠한 가르침(윤리,도덕,지식)도 모든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는 어렵습니다.
이유는 항상 변화하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적응하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모든 가르침도 깨닫기 전에는 팔만사천 법문이 각각 다른 내용(현상;用)으로 이해되나, 깨닫고 나면 모든 가르침이 회통되어 하나의 본질(體;진리)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주의 모든 현상(만물;삼라만상;用)은 하나(같은 것)의 본질(근본;體;法;진리)로 부터 생겨난 것이므로 생멸(生滅)은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잠시 흩어졌다가 인연따라 다시 나타나는 것이므로 있는 그대로 불생불멸(不生不滅;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으며)이고, 부증불감(不增不減;늘어나지도 않고 줄어 들지도 않으며)이며, 불구부정(不垢不淨;더럽지도 않으며 깨끗 하지도 않다)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무엇을 보든 그 속에 너와 내가 함께하고 있음을 보게 되고, 하나의 거대한 생명 공동체로서 서로 유기적인 상호관계에 의해서 만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므로써 차별심 분별심(이기심)이 끊어지고 서로서로 나누는 것(이타심;보시;보살행;십일조)을 생활화 하게 됩니다.
우리의 몸을 소우주로 생각하고 잘 음미해 보시면 이해가 빠르리라 생각 합니다.
손톱을 깍았다고 해서 내가 죽거나, 머리카락 몇가닥 빠졌다고 해서 내가 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의 장기가 죽으면 다른 장기도 죽게 됩니다.
우리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세포도 불과 수개월이면 모두 새로운 세포로 바뀝니다.
이것을 무상(無常)이라고 하며, 무상을 보면 공(空;본질;體)을 보게되고, 空은 연기(緣起;業)에 의하여 다시 현상(用;色;물질)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것은 끝없이 반복되므로 윤회(輪廻)라 합니다.
때문에 있는 그대로 `진공묘유(眞空妙有)'입니다.
무아(無我)는 `내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것은 하나로 통합된다'는 뜻이며, 또 다른 의미로는 `나를 잊는다(망아,忘我)'라는 뜻도 됩니다.
분별하여 나누어 편 가르고, 차별하여 나에게 이익되면 취하고, 그렇치 않으면 버리는 것은 본질을 보지 못하여 현상에 집착하므로써, 자아의식에 의한 탐(貪,욕심), 진(嗔,성냄), 치(痴,어리석음) 3독심(三毒心;無明)이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몸을 중심으로 인식 되어지는 감각의 세계(현상)를 세간법(世間法;有漏法;有爲法)이라하고, 불법을 체득하는 수행을 통하여 본질을 보면 출세간법(出世間法;無漏法;無爲法)이라고 합니다.
이말은 깨닫지 못하여 지식(알음알이;아상;고정관념)으로서 살아가면 業이 남아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는 생멸법(生滅法) 즉 세간법이라하고, 깨달음을 체득한 지혜(中道의 삶)로서 살아가면 삼세윤회(三世輪廻)를 벗어나는 해탈열반(解脫涅槃)의 출세간법이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세간법과 출세간법이 어디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으면 세간법(邪法,사법;삿된 법)이 그대로 출세간법(正法,정법;진리)이고, 깨닫지 못하면 그대로 세간법이라는 말씀입니다.
깨달은 사람은 항상 지혜(無心;無我)를 사용하여 모두를 이익되게 하는 일(行)만하므로 사법을 쓰드라도 그것은 방편으로서 쓰는 것이므로 정법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고통의 원인인 탐, 진, 치 3독은 세간법이며, 계(戒律), 정(禪定), 혜(智慧) 3학(三學)은 수행의 단계를 의미 하므로 출세간법이고, 4성제 중에서 고(苦)성제와 집(集)성제는 세간법이고, 멸(滅)성제와 도(道)성제는 출세간법이 됩니다.
4성제중에서 고성제는 진리를 등지고 있는 삶이 괴롭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며, 집성제는 괴로움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입니다. 즉 존재의 본질(실상)을 모른채 자기중심적 삶을 살기 때문에 괴로움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멸성제는 괴로움이 소멸된 열반의 세계로 탐, 진, 치의 멸이며, `나(我相;고정관념;자아의식)'다 하는 착각의 멸입니다.
끝으로 도성제는 열반에 이르는 구체적 실천으로 바른 견해(正見,정견), 바른 생각(正思維,정사유), 바른 말(正語,정어), 바른 행위(正業,정업), 바른 생활(正命,정명), 바른 노력(正精進,정정진), 바른 관찰(正念,정념), 바른 선정(正定,정정)의 8정도입니다.
결론적으로 `깨닫는다'는 것은 숨어 있어 보이지 않는 본질(體;부처;如來;法身;참나)을 보는 것이므로, 인간은 누구나 본래 부처라는 말이며, 이것을 보아서 확실하게 알면 부처요, 모르면 중생이므로 중생과 부처는 둘이 아니며, 부처는 깨친사람이며 중생은 깨칠사람 입니다.
깨닫고나면 모든 상대적(분별경계;주관과 객관)인 것들이 다 사라져 버립니다.
즉, 부처-중생, 세간법-출세간법, 나-너, 옳다-그르다, 행복-불행, 기쁘다-슬프다, 번뇌-깨달음, 높다-낮다, 길다-짧다, 물-불, 생-사, 천국-지옥 등등,
내(我)가 없으니 다 없어 짐이며, 다 없어지니 다 얻음입니다.
함께하고 있으나 물들지 않으니 본래심(淸淨心) 그대로 이며, 이것이 모두를 초월한 것입니다.
지족(知足;自足,스스로 만족 하는 것)은 본질(法;진리)을 알아서 현상에 걸리지 않아 法을 즐기는 것입니다.
다른 어떠한 것으로도 知足은 얻을 수 없습니다.
"왜 좋으냐?"고 묻는 다면 "그저 그냥 좋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