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일단은 먼저 제 자신에 대한 바탕의 소개로 글의 서두를 시작해야겠네요저는 정말 어릴 적 제가 태어나서 부터 기독교라는 바탕 속에서 자라난 한 청년입니다오랫동안 믿어 왔던 하나님의 말씀아래 점점 게을러지고 나태해져교회를 일요일에 나갈까 말까하며 때로는 신의 존재를 의심하며 살아가는표면적으로는 기독교인 같지만 세례까지 받아놓고 믿음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기독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기독교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자 합니다기독교라는 종교 아래에도 정말 많은 종파가 있습니다 마치 같은 성씨에도 여러 종파가 이는 것 처럼 침례교, 장례교 등 부터 JMS 등까지기독교의 본질에서부터 벗어나 신의 행세를 하는 사이비교 등도 즐비하죠개중에 버스터미널에서 무조건적으로 강압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사람들 중에서진짜 기독교가 무엇인지 알까? 하는 정도로 의심을 가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예쑤믿고 천국가십시오 불신지옥입니다 하면서 기도하는 듯한 그들의 모습에기독교란 무엇인가? 라는 것에 대한 회의를 하기도 했던 적이 있습니다제가 하고싶은 수많은 말들 중 하나는 기독교를 믿는 신도들 속에도그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며 이해하지 못하는 무의식속에서 전파하는 자들도 있다는 것입니다성경을 멋대로 해석하거나 혹은 멋대로 해석해서 비판하는 사람들.그 누가 기도만 하면 모든 죄가 사하여진다하고 그 누가 십계를 어긴 자를 살해해야한다는 규칙을 기독교가 가지고 있다고 합니까?기독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지 기독교회 안의 사람들간에 신뢰와 유대감은 아니기에 개개인들의 비판하는 쪽 주장이나 방어하는 쪽 주장의 말다툼은 불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인들이 모두가 선하거나 악하거나 한 것이 아니고 미국인이라고 모든것에 월등한게 아닌것 처럼 기독교라는 종교적 의식 속의 사람들 또한 모두가 온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반지의 제왕'의 저자 J.R.R 톨킨의 친구'와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로 유명한 C.S 루이스는 톨킨과 더불어 기독교의 선구자격으로 인지되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그가 쓴 책 중에 온전한 기독교인 (원제: mere christianity)라는 책이 있습니다이 책은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학교에서 읽었던 책 중에 한 권 인데,이 책에 C.S 루이스의 전파의 목적은 무신론자를 기독교인으로 바꾸는 것은 자신들이해야하는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바로 그 자신들이 해야할 일은 '수 많은 문이 있는 통로(hall way)로 인도하는 것 뿐' 선택은 당사자의 몫이라고 언급합니다 저명한 기독교 인사들은 이 것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은 저는 어떤 의미에서C.S 루이스의 말에 동의를 합니다 지금 한국에 부분적인 기독교에서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마치 예전의 개신교가 생기기 전의 면죄부 시대와 같은 부패가 있는 곳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하지만 이 것은 그들의 문제이지 하나님이나 예수님등의 문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들의 본능은 언제나 꽃을 꺾는 것은 쉬워하지만 꽃을 심는 것은 힘들어하고사람을 상처주기는 쉬워하지만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어려워 합니다오늘 날 이 부패적 문제는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언제나 그렇듯해박한 지식 또는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기 전에 무작정 비판부터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봅니다.단연 이것은 기독교 문제만을 놓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함부로 했던 비판들이 초래했던 우리들의 과거의 결과를 두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뉴스라는 미디어 자체도 왜곡된 면이 많습니다 지금 이 기독교 비판이 왜곡되었다는 것이 아니라어떤 뉴스던간에 더 많은 대중들이 뉴스를 보고, 듣고, 읽게 하기위한가십거리를 만들기 위해 사실 전달보다는 그들의 순이익을 따진다는 것은그 누구보다 미디어매체를 접하는 우리가 더 잘 알지 않습니까? 자존심 때문에 많은 돈을 헌금이라는 명목 하에 기부해 더 크고 좋은 성전을 짓는다고 하는 몇몇 교회,믿음보다 구원이라는 이름에 혹해 말도 안되는 말을 외치고죄를 저질러도 믿기만 한다면 구원된다고 하는 몇몇 이상한 신도들그리고 그를 기독교 전체로 매도하면서 너도 나도 즐겁다고 비판하고 비웃는 사람들 하나님을 섬기기보단 오히려 기업 같은 곳들도 있고하나님을 믿기보다는 목사의 설교로 마음의 안식을 얻으려는 자들도 있으며자신의 부를 입증하기 위해 헌금을 경쟁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자들도 즐비한 것이 현재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기독교 뿐만이 아니라 어느 곳에도 있기에 항상 이런 문제는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유대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제가 교회를 좋아했고 좋아하는 이유는 교회를 갔을 때 나를 대하는 사람들과설교와 성경과 찬송 속에서 나의 진실 된 모습과 정말 남자들은 여자의 몸이나성적 얘기만 하고 여자들은 뒷담으로만 가득 찬 곳에서도' 아 아직도 세상이 아름답긴 하구나' 라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어서 인 것 같습니다 제가 바라는 기독교는, 제가 바라는 앞으로의 제 삶의 변화는하나님과 저 사이에 유대가 강해지고 제가 진심으로 세상에 대한 시각을성경의 시각에 맞추어서 살아가는 것 입니다그것은 단체적으로 모여서 한 마음 한 소리로 외치는 것이 아닌동네 풀밭에서 맨발로 노래를 불러도 진심으로 마음과 믿음이 진실 된 그런 삶 입니다 마틴 루터 킹의 연설문 내용 처럼 저는 언제나 꿈이 있습니다김혜자 저자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을 언제나 가슴 깊히 새기면서 존 레논의 imagine 가사처럼 몽상적 시각을 가지고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가사의 노래ㅋㅋ)저는 오늘도 세상에 아직은 조금이나마 남아있을 아름다움을 꿈꾸면서 살아갑니다 처음 말하고자 하는 취지와 제목에서 약간은 벗어난 부분도 보이지만그냥 저의 길고도 지루한 말을 그냥 대충 넘기면서 비웃지 않고 읽어주신 분들은 감사합니다 5
나는 나 자신을 기독교인이라 부를 수 없는 교인
안녕하세요
일단은 먼저 제 자신에 대한 바탕의 소개로 글의 서두를 시작해야겠네요
저는 정말 어릴 적 제가 태어나서 부터 기독교라는 바탕 속에서 자라난 한 청년입니다
오랫동안 믿어 왔던 하나님의 말씀아래 점점 게을러지고 나태해져
교회를 일요일에 나갈까 말까하며 때로는 신의 존재를 의심하며 살아가는
표면적으로는 기독교인 같지만 세례까지 받아놓고 믿음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기독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기독교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자 합니다
기독교라는 종교 아래에도 정말 많은 종파가 있습니다
마치 같은 성씨에도 여러 종파가 이는 것 처럼 침례교, 장례교 등 부터 JMS 등까지
기독교의 본질에서부터 벗어나 신의 행세를 하는 사이비교 등도 즐비하죠
개중에 버스터미널에서 무조건적으로 강압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사람들 중에서
진짜 기독교가 무엇인지 알까? 하는 정도로 의심을 가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예쑤믿고 천국가십시오 불신지옥입니다 하면서 기도하는 듯한 그들의 모습에
기독교란 무엇인가? 라는 것에 대한 회의를 하기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하고싶은 수많은 말들 중 하나는 기독교를 믿는 신도들 속에도
그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며 이해하지 못하는 무의식속에서 전파하는 자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멋대로 해석하거나 혹은 멋대로 해석해서 비판하는 사람들.
그 누가 기도만 하면 모든 죄가 사하여진다하고 그 누가 십계를 어긴 자를 살해해야한다는 규칙을 기독교가 가지고 있다고 합니까?
기독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지 기독교회 안의 사람들간에 신뢰와 유대감은 아니기에
개개인들의 비판하는 쪽 주장이나 방어하는 쪽 주장의 말다툼은 불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인들이 모두가 선하거나 악하거나 한 것이 아니고 미국인이라고 모든것에 월등한게 아닌
것 처럼 기독교라는 종교적 의식 속의 사람들 또한 모두가 온전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반지의 제왕'의 저자 J.R.R 톨킨의 친구'와 '나니아 연대기'의 저자로 유명한
C.S 루이스는 톨킨과 더불어 기독교의 선구자격으로 인지되는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가 쓴 책 중에 온전한 기독교인 (원제: mere christianity)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학교에서 읽었던 책 중에 한 권 인데,
이 책에 C.S 루이스의 전파의 목적은 무신론자를 기독교인으로 바꾸는 것은 자신들이
해야하는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바로 그 자신들이 해야할 일은
'수 많은 문이 있는 통로(hall way)로 인도하는 것 뿐' 선택은 당사자의 몫이라고 언급합니다
저명한 기독교 인사들은 이 것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은 저는 어떤 의미에서
C.S 루이스의 말에 동의를 합니다
지금 한국에 부분적인 기독교에서 문제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마치 예전의 개신교가 생기기 전의 면죄부 시대와 같은 부패가 있는 곳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것은 그들의 문제이지 하나님이나 예수님등의 문제는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들의 본능은 언제나 꽃을 꺾는 것은 쉬워하지만 꽃을 심는 것은 힘들어하고
사람을 상처주기는 쉬워하지만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어려워 합니다
오늘 날 이 부패적 문제는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해박한 지식 또는 사건의 전말을 이해하기 전에 무작정 비판부터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봅니다.
단연 이것은 기독교 문제만을 놓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함부로 했던 비판들이 초래했던 우리들의 과거의 결과를 두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뉴스라는 미디어 자체도 왜곡된 면이 많습니다
지금 이 기독교 비판이 왜곡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뉴스던간에 더 많은 대중들이 뉴스를 보고, 듣고, 읽게 하기위한
가십거리를 만들기 위해 사실 전달보다는 그들의 순이익을 따진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 미디어매체를 접하는 우리가 더 잘 알지 않습니까?
자존심 때문에 많은 돈을 헌금이라는 명목 하에 기부해
더 크고 좋은 성전을 짓는다고 하는 몇몇 교회,
믿음보다 구원이라는 이름에 혹해 말도 안되는 말을 외치고
죄를 저질러도 믿기만 한다면 구원된다고 하는 몇몇 이상한 신도들
그리고 그를 기독교 전체로 매도하면서 너도 나도 즐겁다고 비판하고 비웃는 사람들
하나님을 섬기기보단 오히려 기업 같은 곳들도 있고
하나님을 믿기보다는 목사의 설교로 마음의 안식을 얻으려는 자들도 있으며
자신의 부를 입증하기 위해 헌금을 경쟁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자들도 즐비한 것이 현재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기독교 뿐만이 아니라 어느 곳에도 있기에
항상 이런 문제는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유대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제가 교회를 좋아했고 좋아하는 이유는 교회를 갔을 때 나를 대하는 사람들과
설교와 성경과 찬송 속에서 나의 진실 된 모습과 정말 남자들은 여자의 몸이나
성적 얘기만 하고 여자들은 뒷담으로만 가득 찬 곳에서도
' 아 아직도 세상이 아름답긴 하구나' 라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어서 인 것 같습니다
제가 바라는 기독교는, 제가 바라는 앞으로의 제 삶의 변화는
하나님과 저 사이에 유대가 강해지고 제가 진심으로 세상에 대한 시각을
성경의 시각에 맞추어서 살아가는 것 입니다
그것은 단체적으로 모여서 한 마음 한 소리로 외치는 것이 아닌
동네 풀밭에서 맨발로 노래를 불러도 진심으로 마음과 믿음이 진실 된 그런 삶 입니다
마틴 루터 킹의 연설문 내용 처럼 저는 언제나 꿈이 있습니다
김혜자 저자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을 언제나 가슴 깊히 새기면서
존 레논의 imagine 가사처럼 몽상적 시각을 가지고 (기독교와는 거리가 먼 가사의 노래ㅋㅋ)
저는 오늘도 세상에 아직은 조금이나마 남아있을 아름다움을 꿈꾸면서 살아갑니다
처음 말하고자 하는 취지와 제목에서 약간은 벗어난 부분도 보이지만
그냥 저의 길고도 지루한 말을 그냥 대충 넘기면서 비웃지 않고 읽어주신 분들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