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드리던 질문을 이어 하겠습니다. 현재 여자친구는 없다고 하셨는데, 그럼 혹시 예전에도 없었나요?”
“뭐, 개인적인 질문이라 대답하기 좀 그렇지만, 예전에 한 번 사귈 뻔한 적은 있었죠. 스스로 여자 만날 기회를 찾기엔 숫기가 모자라기도 하고 왠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느껴져서, 소개팅을 통해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가 제발 한 번만 만나보라고 통사정을 해서 말이죠. 아마 상대 여자분이 책을 읽고, 저를 소개를 시켜달라고 졸랐던 모양입니다.”
이런 이야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때까지 묵묵히 사진 몇 방만 찍고 있던 용진의 졸린 눈이 반딱거린다.
“지금 떠올려보니, 그 여자는 생각 외로 괜찮은 여자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많이 읽고 똑똑한 여자였으니까요. 당시 소개팅에 별 흥미를 못 느끼던 저는 그저 얼른 시간이 다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죠. 그녀는 고시생이 아닌 저자로서의 나를 만나러 온 것이었기에, 유독 책 이야기를 많이 꺼내더군요. 제일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무엇이며, 내 책을 읽었는데 어느 부분이 특히 인상 깊었다는 둥, 저는 별 말 없이 그저 듣기만 하면 되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필자님, 방금 생각 외로 괜찮은 여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네, 그랬죠. 무슨 문제라도?”
“아뇨, 왠지 좋지 않은 뉘앙스로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요.”
“중요한 건 뉘앙스가 아니고 제가 하고 있는 말의 내용이겠죠. 말 없이 듣고만 있어도 되었기에 전 오히려 좋았는걸요. 게다가 요즘 같은 세상에 책을 많이 읽는 여자라면, 평균적으로 다른 여자들보다 좋은 사람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너무 단편적인 판단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단편적인 판단은 확실히 정확성이 떨어지는 반면, 속도는 빠르죠. 삶의 원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조그만 일부를 보고 전체를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에 더더욱 저 같은 사람의 속도에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먼저 발견하고 도달해서 그들에게 이쪽 길이라고 알려주는 것, 그것이 미리 알고 있는 자, 즉 선견자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힘주어 말한다.
“책을 많이 읽는 여자가 그렇지 않은 여자에 비해 좋은 사람일 확률은 90%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좋은 여자였어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도 인터뷰에 도움이 되는 건가요?”
“사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인 궁금증 때문에 질문을 드린 겁니다. 원치 않으신다면 이 부분은 지면에 싣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하하,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지면에 싣는 여부는 기자님 소관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당사자가 원치 않는 것은 싣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하네요.”
“별 것 없죠. 그 여자는 저에게 계속 책을 낼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고, 저는 고시가 먼저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아, 사랑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묻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말씀하셨나요?”
“잘 모르겠다, 역시 고시가 먼저다, 라고 말했죠.”
송희는 그 이후의 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느낌에 살짝 미소를 짓는다.
“인터뷰는 이것으로 마쳐야겠네요. 바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잘 대답해드렸는지 모르겠네요.”
이런 상투적인 인사는 지겹다. 그러나 맘에 없는 화답이라도 해주는 것이 생활의 지혜임을 송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답변 성실하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깊은 인상을 받았네요.”
“하하, 그렇습니까? 영광이네요.”
윤식은 송희의 인사가 마음에 든 표정이다. 그는 잠시 손목 시계를 바라본다.
“아, 벌써 저녁 시간이로군요. 어떻습니까, 제가 잘 아는 식당이 있는데, 괜찮으시다면 저녁이라도 대접해드리고 싶은데요.”
윤식은 송희의 대답이 이어지기도 전에 말을 늘어놓는다.
“그렇게 좋은 집은 아니고 그냥 일식을 파는 곳인데 분식집 치곤 꽤 괜찮거든요. 음식도 맛있고 주인 아주머니도 친절하고……괜찮으시면 저녁 드시고 가시죠.”
“말씀은 너무 감사합니다만, 그렇게까지는 시간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송희와 용진은 인사하고 윤식의 집을 나선다.
8
송희를 배웅하고 집으로 들어온 윤식은 서재에 앉아 인터뷰 내용을 곱씹어본다. 송희의 질문이 모두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자신이 상당히 진중하고도 재치 있게 답변했다고 생각하여 마음이 흡족하다. 이것은 그의 버릇이다. 자기만족이 강한 윤식은 자신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면 그 말들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묵상한다. 묵상은 자신감을 배가한다. 그는 스스로 이 과정이 자신의 정신을 정화하고 건강을 북돋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오늘 인터뷰는 특히나 그의 맘에 든다. 홀가분한 맘으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안경을 다시 한번 고쳐 쓰고 문단속을 철저히 한 뒤, 언제나 그랬듯 ‘가미’로 향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는 송희는 차 안에서 꾸벅 졸고 있다. 그러나 그런 단잠도 잠시, 평소 거친 운전을 자랑하는 용진의 우악스런 급정거 때문에 찌푸린 얼굴로 눈을 뜬다.
“정말, 운전 좀 살살할 수 없어?”
“미안해요. 많이 피곤했나 보네요?”
용진은 멋쩍은 웃음이다.
“인터뷰가 좀 따분했죠? 아, 나는 솔직히 지겨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인터뷰 때마다 고작 사진 몇 방 찍고 멍하니 앉아있어야 하는 심정, 선배는 모른다니까.”
“그게 싫으면 이 일을 왜 하냐.”
“오늘은 특히 심하더라. 뭐 그렇게 고리타분한 말만 늘어놓던지……근데, 그 사람 좀 멋지긴 하던데요? 젊은 나이에 성공도 하고, 뭔가 자기 철학도 갖고 있는 듯 하고……아무튼 요즘 젊은이랑은 많이 틀려 보이더라고요. 나도 책을 한 번 사서 읽어봐야겠어.”
“쓰레기야.”
“네?”
“넌 그 작자 하는 얘기가 심오하게 들리디? 난 인터뷰 내내 웃음 나서 참느라 힘들었는데.”
“그래요? 어떤 부분이?”
“어떤 부분도 안 웃긴 데가 없었지. 육체가 껍데기고 정신이 고매하고……나 참 어이가 없어서. 멋대가리 없는 놈, 식사 대접한다면서 분식집에 가자고 하는 거 봐라. 나중엔 딱하다는 생각까지 들더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자기만 무언가 신령한 비밀을 알고 있다잖아. 나는 그 사람 책을 읽어도 잘 모르겠던데. 아무튼 그렇게 멋없는 놈은 그 누구도 사랑해주지 않을 거야. 얄팍한데 고리타분한 사람처럼 멋없는 자들도 없어. 마치 우리 나라 네티즌들처럼 말이야.”
[창작 소설] - 음식점 가미 (4)
7
송희가 묻는다.
“아까, 드리던 질문을 이어 하겠습니다. 현재 여자친구는 없다고 하셨는데, 그럼 혹시 예전에도 없었나요?”
“뭐, 개인적인 질문이라 대답하기 좀 그렇지만, 예전에 한 번 사귈 뻔한 적은 있었죠. 스스로 여자 만날 기회를 찾기엔 숫기가 모자라기도 하고 왠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느껴져서, 소개팅을 통해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친구가 제발 한 번만 만나보라고 통사정을 해서 말이죠. 아마 상대 여자분이 책을 읽고, 저를 소개를 시켜달라고 졸랐던 모양입니다.”
이런 이야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때까지 묵묵히 사진 몇 방만 찍고 있던 용진의 졸린 눈이 반딱거린다.
“지금 떠올려보니, 그 여자는 생각 외로 괜찮은 여자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많이 읽고 똑똑한 여자였으니까요. 당시 소개팅에 별 흥미를 못 느끼던 저는 그저 얼른 시간이 다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죠. 그녀는 고시생이 아닌 저자로서의 나를 만나러 온 것이었기에, 유독 책 이야기를 많이 꺼내더군요. 제일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무엇이며, 내 책을 읽었는데 어느 부분이 특히 인상 깊었다는 둥, 저는 별 말 없이 그저 듣기만 하면 되는 거였습니다.”
“하지만 필자님, 방금 생각 외로 괜찮은 여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네, 그랬죠. 무슨 문제라도?”
“아뇨, 왠지 좋지 않은 뉘앙스로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요.”
“중요한 건 뉘앙스가 아니고 제가 하고 있는 말의 내용이겠죠. 말 없이 듣고만 있어도 되었기에 전 오히려 좋았는걸요. 게다가 요즘 같은 세상에 책을 많이 읽는 여자라면, 평균적으로 다른 여자들보다 좋은 사람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너무 단편적인 판단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단편적인 판단은 확실히 정확성이 떨어지는 반면, 속도는 빠르죠. 삶의 원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조그만 일부를 보고 전체를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에 더더욱 저 같은 사람의 속도에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남들보다 먼저 발견하고 도달해서 그들에게 이쪽 길이라고 알려주는 것, 그것이 미리 알고 있는 자, 즉 선견자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힘주어 말한다.
“책을 많이 읽는 여자가 그렇지 않은 여자에 비해 좋은 사람일 확률은 90% 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좋은 여자였어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도 인터뷰에 도움이 되는 건가요?”
“사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인 궁금증 때문에 질문을 드린 겁니다. 원치 않으신다면 이 부분은 지면에 싣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하하,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지면에 싣는 여부는 기자님 소관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당사자가 원치 않는 것은 싣지 않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하네요.”
“별 것 없죠. 그 여자는 저에게 계속 책을 낼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고, 저는 고시가 먼저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아, 사랑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묻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말씀하셨나요?”
“잘 모르겠다, 역시 고시가 먼저다, 라고 말했죠.”
송희는 그 이후의 이야기는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느낌에 살짝 미소를 짓는다.
“인터뷰는 이것으로 마쳐야겠네요. 바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잘 대답해드렸는지 모르겠네요.”
이런 상투적인 인사는 지겹다. 그러나 맘에 없는 화답이라도 해주는 것이 생활의 지혜임을 송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답변 성실하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깊은 인상을 받았네요.”
“하하, 그렇습니까? 영광이네요.”
윤식은 송희의 인사가 마음에 든 표정이다. 그는 잠시 손목 시계를 바라본다.
“아, 벌써 저녁 시간이로군요. 어떻습니까, 제가 잘 아는 식당이 있는데, 괜찮으시다면 저녁이라도 대접해드리고 싶은데요.”
윤식은 송희의 대답이 이어지기도 전에 말을 늘어놓는다.
“그렇게 좋은 집은 아니고 그냥 일식을 파는 곳인데 분식집 치곤 꽤 괜찮거든요. 음식도 맛있고 주인 아주머니도 친절하고……괜찮으시면 저녁 드시고 가시죠.”
“말씀은 너무 감사합니다만, 그렇게까지는 시간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송희와 용진은 인사하고 윤식의 집을 나선다.
8
송희를 배웅하고 집으로 들어온 윤식은 서재에 앉아 인터뷰 내용을 곱씹어본다. 송희의 질문이 모두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자신이 상당히 진중하고도 재치 있게 답변했다고 생각하여 마음이 흡족하다. 이것은 그의 버릇이다. 자기만족이 강한 윤식은 자신의 말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되면 그 말들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묵상한다. 묵상은 자신감을 배가한다. 그는 스스로 이 과정이 자신의 정신을 정화하고 건강을 북돋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오늘 인터뷰는 특히나 그의 맘에 든다. 홀가분한 맘으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안경을 다시 한번 고쳐 쓰고 문단속을 철저히 한 뒤, 언제나 그랬듯 ‘가미’로 향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하는 송희는 차 안에서 꾸벅 졸고 있다. 그러나 그런 단잠도 잠시, 평소 거친 운전을 자랑하는 용진의 우악스런 급정거 때문에 찌푸린 얼굴로 눈을 뜬다.
“정말, 운전 좀 살살할 수 없어?”
“미안해요. 많이 피곤했나 보네요?”
용진은 멋쩍은 웃음이다.
“인터뷰가 좀 따분했죠? 아, 나는 솔직히 지겨워서 죽는 줄 알았어요. 인터뷰 때마다 고작 사진 몇 방 찍고 멍하니 앉아있어야 하는 심정, 선배는 모른다니까.”
“그게 싫으면 이 일을 왜 하냐.”
“오늘은 특히 심하더라. 뭐 그렇게 고리타분한 말만 늘어놓던지……근데, 그 사람 좀 멋지긴 하던데요? 젊은 나이에 성공도 하고, 뭔가 자기 철학도 갖고 있는 듯 하고……아무튼 요즘 젊은이랑은 많이 틀려 보이더라고요. 나도 책을 한 번 사서 읽어봐야겠어.”
“쓰레기야.”
“네?”
“넌 그 작자 하는 얘기가 심오하게 들리디? 난 인터뷰 내내 웃음 나서 참느라 힘들었는데.”
“그래요? 어떤 부분이?”
“어떤 부분도 안 웃긴 데가 없었지. 육체가 껍데기고 정신이 고매하고……나 참 어이가 없어서. 멋대가리 없는 놈, 식사 대접한다면서 분식집에 가자고 하는 거 봐라. 나중엔 딱하다는 생각까지 들더라.”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자기만 무언가 신령한 비밀을 알고 있다잖아. 나는 그 사람 책을 읽어도 잘 모르겠던데. 아무튼 그렇게 멋없는 놈은 그 누구도 사랑해주지 않을 거야. 얄팍한데 고리타분한 사람처럼 멋없는 자들도 없어. 마치 우리 나라 네티즌들처럼 말이야.”
“에이, 아무렴 네티즌들보단 낫죠.”
차는 이후로 그 많은 교차로에서 단 한번도 적신호를 받지 않고 쾌속 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