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이 종영됐다. 이젠 예승이 보는 낙밖에는 없다 ㅠㅠ 간만에 마음에 쏙 드는 드라마를 만나서 기분이 좋았다. 빠른 전개, 실감나는 액션, 잘 짜여진 이야기 구성등등이 마음에 든다. 우리 오빠는 액션을 좋아하냐며 물었고 얼떨결에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그게 아니고 나는 그저 잘 만들어진 드라마를 좋아할 뿐이다. 식상한 주제, 식상한 볼거리는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암튼 오늘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민기를 좋아하던 국정원 여직원이 결국 민기와 결혼해서 아기를 낳고 유모차를 끄는 장면이 나왔다. 늘씬하고 이쁘고 또 국정원 소속이니 똑똑하긴 또 얼마나 똑똑할까 물론 드라마라 그런 완벽한 여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그 국정원 여직원이 민기랑 결혼해서 애 낳고 아줌마가 되더니 진짜 그야말로 아줌마가 다 되어 유모차를 끌더란말이다. 내 참.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아줌마는 왜 꼭 그렇게 멋없게 머리를 아무렇게나 질끈 올리고 편한 티셔츠에 보폭넓은 긴치마를 입고 일본말로 쓰래빠를 질질 끌면서 나와야 하는지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성격은 또 어찌나 괴팍하신지 ;; 게다가 그 국정원 여직원은 국정원에서는 세련되고 인텔리젼트했었는데 갑자기 아줌마가 되더니 망가져 버렸다.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다. 여자의 감수성은 질풍노도의 시기에 절정에 오르는 것 같다. 그래서 그때를 여자는 평생 잊고 살지 못한다. 사실, 대부분의 아줌마들는 그런 질풍노도의 시기를 잘 경험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간혹 티비에서 열심히 가정일에 충실했다는 아줌마들이 문득 "나는 누구지? 나는 도대체 뭐지? 내 삶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지?"등등의 바보같은 후회를 하면서 나온다. 물론 그녀들은 바보같이 살진 않았다. 남편을 위해서 아이들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한 일은 그 어떤 일보다도 숭고하다고 생각한다. 내 어머니가 그랬고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그랬다. 하지만 나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지는 않았지만 신현모양처라는 드라마의 제목처럼 그 누구를 위해 존재하기 보다는 제일 먼저 내 자신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내 어머니가 가족들을 위해 헌신했다고 해서 잘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은 않는다. 물론 죽을때까지 고맙고 또 고마워 해야 할 일이지만 난 늘 어머니가 자기 자신을 먼저 돌봤으면 하고 생각했었다. 어머니가 자기 자신을 위해 옷을 사고 먹을 것을 사고 하는 모습을 자식들이 보면서 무슨 엄마가 저래? 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거다. 물론 그렇다고 가족은 내팽겨치고 자기자신만 돌보라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내가 그래서 중립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게 바로 이런 이유이다. 왜 중립적으로 살지 못하는가? 내 자신을 먼저 돌보면서 가족을 지키고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다. 감수성이 또한 그렇다. 어떤 책에서 여자의 최대 장점이자 무기는 이 감수성이라 했다. 왜 결혼하면 자신의 최대 장점이자 무기인 이 감수성이 묵살되고 무덤으로 가야하는지 왜 주변에서 혹은 어른들이 또는 내 자신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지 너는 결혼한 여자니까, 혹은 나는 결혼한 여자니까,,,하면서. 적어도 나는 쓰래빠를 내 전유물로 삼고싶지 않다. 아줌마이기 이전에 여자로서 내가 가지고 태어난 내 최대의 장점이자 무기인 내 감수성을 지키면서 또 그것을 즐기면서 살고 싶다. 결혼으로 말미암아 감수성을 완성시킬 수 있는 위대한 여자가 되고싶다. 이 세상에 그런 여자가 분명 있을거라고 믿어의심치 않는다. 내가 그 뒤를 이어가고 싶다.
여자의 감수성은 결혼으로 완성된다.
드라마 개와 늑대의 시간이 종영됐다.
이젠 예승이 보는 낙밖에는 없다 ㅠㅠ
간만에 마음에 쏙 드는 드라마를 만나서 기분이 좋았다.
빠른 전개, 실감나는 액션, 잘 짜여진 이야기 구성등등이 마음에 든다.
우리 오빠는 액션을 좋아하냐며 물었고 얼떨결에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그게 아니고 나는 그저 잘 만들어진 드라마를 좋아할 뿐이다.
식상한 주제, 식상한 볼거리는 이제 그만 보고 싶다.
암튼 오늘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민기를 좋아하던 국정원 여직원이 결국 민기와 결혼해서 아기를 낳고 유모차를 끄는 장면이 나왔다.
늘씬하고 이쁘고 또 국정원 소속이니 똑똑하긴 또 얼마나 똑똑할까
물론 드라마라 그런 완벽한 여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그 국정원 여직원이 민기랑 결혼해서 애 낳고 아줌마가 되더니 진짜 그야말로 아줌마가 다 되어 유모차를 끌더란말이다.
내 참.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아줌마는 왜 꼭 그렇게 멋없게 머리를 아무렇게나 질끈 올리고 편한 티셔츠에 보폭넓은 긴치마를 입고 일본말로 쓰래빠를 질질 끌면서 나와야 하는지 도통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게다가 성격은 또 어찌나 괴팍하신지 ;;
게다가 그 국정원 여직원은 국정원에서는 세련되고 인텔리젼트했었는데 갑자기 아줌마가 되더니 망가져 버렸다.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아쉬움을 금할 길이 없다.
여자의 감수성은 질풍노도의 시기에 절정에 오르는 것 같다. 그래서 그때를 여자는 평생 잊고 살지 못한다.
사실, 대부분의 아줌마들는 그런 질풍노도의 시기를 잘 경험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간혹 티비에서 열심히 가정일에 충실했다는 아줌마들이 문득 "나는 누구지? 나는 도대체 뭐지? 내 삶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지?"등등의 바보같은 후회를 하면서 나온다.
물론 그녀들은 바보같이 살진 않았다.
남편을 위해서 아이들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한 일은 그 어떤 일보다도 숭고하다고 생각한다.
내 어머니가 그랬고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그랬다.
하지만 나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지는 않았지만 신현모양처라는 드라마의 제목처럼 그 누구를 위해 존재하기 보다는 제일 먼저 내 자신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내 어머니가 가족들을 위해 헌신했다고 해서 잘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은 않는다.
물론 죽을때까지 고맙고 또 고마워 해야 할 일이지만 난 늘 어머니가 자기 자신을 먼저 돌봤으면 하고 생각했었다.
어머니가 자기 자신을 위해 옷을 사고 먹을 것을 사고 하는 모습을 자식들이 보면서 무슨 엄마가 저래? 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거다.
물론 그렇다고 가족은 내팽겨치고 자기자신만 돌보라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내가 그래서 중립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게 바로 이런 이유이다.
왜 중립적으로 살지 못하는가?
내 자신을 먼저 돌보면서 가족을 지키고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다.
감수성이 또한 그렇다.
어떤 책에서 여자의 최대 장점이자 무기는 이 감수성이라 했다.
왜 결혼하면 자신의 최대 장점이자 무기인 이 감수성이 묵살되고 무덤으로 가야하는지
왜 주변에서 혹은 어른들이 또는 내 자신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지
너는 결혼한 여자니까, 혹은 나는 결혼한 여자니까,,,하면서.
적어도 나는 쓰래빠를 내 전유물로 삼고싶지 않다.
아줌마이기 이전에 여자로서 내가 가지고 태어난 내 최대의 장점이자 무기인 내 감수성을 지키면서 또 그것을 즐기면서 살고 싶다.
결혼으로 말미암아 감수성을 완성시킬 수 있는 위대한 여자가 되고싶다.
이 세상에 그런 여자가 분명 있을거라고 믿어의심치 않는다.
내가 그 뒤를 이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