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투이후 전라도는 안전하게 되었으며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해전금지령을 내립니다. 점차 수군에 중시하지않는데다가 보급선 마저 제때 보내지않아 결국 임진왜란 패전의 근본이 되지요//
이순신의 1차출동, 2차출동에 의해 114척의 크고 작은함선을 잃은 일본군은 수군을 대규모로 재편성하여 구키 요시타카, 와키자카 야스하루, 가토 요시아키에게 조선 수군 괴멸을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공을 독차지하려는 욕심에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단독 출전을 결정합니다 -_-; 그리고 견내량에 정박하여 선제공격을 계획합니다. 지금까지의 일본수군장은 이순신의 습격에 준비도 못하고 당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일본군을 피해 산으로 피란간 김천손에 의해 견내량에 일본군이 있다는 소식이 이순신에게 전해집니다.
역조류를 타면서 싸워야하기때문에 견내량으로의 출전이 불가하다는 부하들의 의견에도 출전의지를 나타내는 장군님. - 최적의 조건을 주어서어도 왜장 와키자카의 함대를 끌어내는 것! 그것이 우리 조선수군이 선택 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조건일세.
전선의 수는 지금까지 중 가장많은 70여척. . 거기에다가
늘 펴오던 기습작전이 아닌 전면전. 거기에 역조류의 부담까지..
전장에서 물러설수는 없지만 이 전면전만큼은 두려워하는
이순신아래 휘하장수들. .
일기를 쓰며 생각에 잠기는 이순신장군님.
-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적에게 있을 것이고,
적이 나를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또한 나에게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때때로 적이 되어 본다. 적장의 눈과 심장으로
나의 함대를 본다. 지난 여덟 차례의 싸움으로 화포의 위력과 ...
나의 함대의 명징한 일자진은 적의 심장에 분기를 심어주었다.
적은 그 일자진을 깨기 위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할 것이다. 이제는 적이 모르는 내가... 필요하다. 적이 일자진을 무력화 시켰다고
여기는 순간.. 나의 함대를 비상하게 할..
새로운 진형이.. 새로운 진형이 필요하다!
견내량은 매우 좁고 암초가 많은 곳입니다. 그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판옥선끼리 서로 부딪치게 될 가능성이 커 전투하기가
곤란한 지형이었습니다. 이순신은 견내량에서 싸울 생각을 하지 않고 적을 한산도 바다 한가운데로 끌어내어 모조리 잡아버릴 계획을 세웁니다. 판옥선 5,6척에 지시를 내려, 적의 선봉을 뒤쫒아 마치
전투를 벌일듯히 깊숙히 진격해 들어갔습니다.
일본 수군장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 - 제 발로 덫으로 뛰어들어온 놈들부터 처리를 해야겠군. .
돌격기 올려 ! !
너무 좋아하는 와키자카 ... ... .
이순신의 유인책에 완전히 말려드는 일본군.
조선의 선봉선은 함선을 돌려 급히 도망가는 것처럼 바삐 노를
저어나갑니다. 뒤이어 조선의 연합함대도 이순신의 지휘로 거짓으로 견내량의 입구에서 빠져나갑니다. 조선 수군이 견내량을 빠져나가자 일제히 빠른 속도로 추격합니다!
적의 함대는 기세 좋게 견내량의 좁은 수로를 통과하여 한산도 앞바다 까지 조선함대를 추격해왔습니다. 즉, 이순신이 쳐놓은 덫에
완전히 걸려든것이죠. "이 때를 놓쳐서는 안된다!" 하고 내리는
이순신의 명령이 한산도 앞바다를 울립니다.
지금까지 후미를 보이며 도망치던 조선함대가
일시에 몸체를 돌립니다.~ .. !
회심의 학익진(鶴翼陳)! 일본수군, 잠~ 깐 당황합니다.
아~ 이순신은 진법을 아는장수였습니다. 오합지졸의 조선육군만 상대해 오던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이순신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 . .
- 저런 병략의 기본도 모르는놈 같으니라고, 학익진은 아군의 수가 적군의 비해 많을 때 쓰는 진형이거늘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은 오히려 일본수군이 더 많다. 우리에겐 속도가 있다.
더 밀어붙여 바짝 붙어야한다. 라고 생각하는 와키자카.
그의 머리에 떠오른것은 "어린진(魚鱗陳)" 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딱~ 20년 전인 1572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이끄는 8,000여 병력과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이 이끄는 4만 3,000여 병력이 미카타 들판
에서 격돌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학익진"을 펼쳤고
다케다 신겐은 "어린진"을 폅니다. 위에 보시듯, 학익진은 우세한
전력일 경우 피는 진이지만 열세인 병력으로 학익진을 편 도쿠가와의 학익진은 측면이 무너지고, 병력보충이 불가능하여
1,2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며 처참하게 패배합니다.
위와 같이 대형의 중앙을 삼각형의 꼭지점처럼 뾰족하게 구축하는
人자 형태의 진이 "어린진"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학익진을 격멸한 어린진 형태로
돌격하는 와키자카의 함대. 조총 사정거리 확보를 위해 ㄱㄱ
, , 하지만 이미 조선수군은 전투배치를 끝내고 명령을 기다리는 중.
방 포 하 라 ! ! ! ! ! ! !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일본수군.
- 버틸 수 있다. 아니, 버텨야한다! 계속 돌격해!!
어차피 장전된 포는 바닥이 날께다. 재장전 시간을 노린다.
그 때 전속력으로 밀어붙여 도선을 할것이야! 그것이 우리 와키자카 군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다!
장전된 포를 다 쓰고 재장전 중인 조선수군
- 지금이다, 전속력으로 돌진하여, 도선하라!! !!!!!! !
자진해서 학익진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와키자카의 함대!
아뿔싸! 어쩝니까,, 판옥선은 제자리 선회가 가능한 평저선이에요.
배를 돌리는 조선수군입니다.
배를 돌리고 반대편 포문으로 다시 포를 쏘는 이순신함대! !
욕 나오죠 . . 암요암요,, 이해합니다. 와키자카 장군.
얼마나~ 피랍자스러운 기분이겠습니까.
- 배 붙여! ! 돌격해! 밀고나간다!! 노 저어! !
이 쯤 되면 막가자는 것이죠..? 일본함선은 가속도가 붙어 다시 선회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이젠 전멸도 각오하고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와키자카 야스하루.
우격다짐으로 포탄 속을 돌진하여 마침내 조총 사정거리에 들어온
와키자카, 일제히 조총사격을 명합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화살은 쏘는 조선수군. 격전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정예수군이 적함에 기어올라가 적을 섬멸할 것이라는 와키자카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때!
거북이 등장 ! !
빠른속도로 일본함대에 접근해 오는 거북선.
백병전을 펼칠 수 있을정도로 가까이 온 거북선, 일본수군이
도선하려고 해도 거북선 덮개에 박힌 못때문에 올라가지 못합니다.
속도를 늦추지않고 이미 포 사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일본함선을
그대로 들이받아버립니다~! ! 일본함대의 대형이 거북선의 돌격으로 순식간에 흩어져버립니다.
- 퇴각하라 ! ! 퇴각하라 ! ! !
하지만 후퇴도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좌, 우는 물론 앞까지 학익진에 막혀있고, 함선을 뒤로 돌려 도망가는 수밖에 없었걸랑요.
와키자카의 명령에 따라 전 함대가 뒤로 선회하려고 했지만
함선끼리 서로 충돌하고, 왼쪽, 오른쪽, 앞에서 조선수군의 포는
계속 날아왔습니다. 거북선이 이리저리 막 들이받고 =_=;; 이젠
조선수군의 본대가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와키자카의 밀집대형이 후퇴하려면 맨 뒤에 있는 대열의 함선부터 순차적으로 빼야했는데 맨 뒤의 대열은 와키자카 함선의 대열이었습니다. 와키자카의 함선을 뒤로 돌리는데는 겨우 성공하여 필사적으로 도망을 칩니다.
이순신은 그들을 끝까지 추격하려다 그만두었습니다.
장시간에 걸친 대접전으로 부하들의 피로가 극심하고 날도 저물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
이순신은 전투를 정리하고 조선함대가 그 밤을 안전하게 지낼 곳을 물색합니다.. 그리고 그 곳은 , 일본군이 정박해 있던 "견내량 안 바다" 였습니다 . ^-^
한산해전의 패전으로 와키자카는 도요토미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와키자카는 자신의 영광뿐 아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먕도 일순간에 날려버린것이니까요, ,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한산해전을 어떻게 기록했는지는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 『와키자카기(脇板記)』에 나와있습니다.
우리는 조선의 배를 약 30리 정도 추격했다. 조선 배들은 좁은 수로를 빠져나가 넓은 바다에 이르자, 갑자기 뱃머리를 돌려 우군의 배를 포위하고 들락날락 거리면서 공격했고, 그때마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할 수 없이 좁은 수로로 다시 후퇴하려고 했으나 적선들이 퇴로를 막고 커다란 불화살을 마구 쏘아 아군의 배는 화염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 때문에 나의 가신 와타나베를 비롯하여 많은 이가 전사했다. 대장인 나는 노가 많은 배를 탄 덕분에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다. 도망치는 도중에 조선군의 공격으로 갑옷에 화살을 맞아 위험했으나 구사일생으로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이 게시물은
불멸의이순신 73,74회 / 이순신의 두 얼굴(김태훈 著)
을 참고하여 만든 포스트입니다.
23전 23승, 전승무패. 현재 통용되고 있는 이순신장군의 전적입니다. 17전 17승에서 몇 년전인가가 23전 23승으로 바뀌었죠.
올 해 4월에 새로운 설이 등장했습니다.
해군교육사령부 충무공리더십센터 제장명 교수님이
충무공 탄신 462돌 기념 학술세미나에서 이순신의 전적은
43전 38승 5무라고 밝힌것입니다.
역시, 패전은 없습니다.. =ㅂ= ㅋㅋ
망할 일본왜곡교과서에는 이순신장군님의 이름이 아예없던가
상당히 교활한 사람으로 묘사되었다고 하던데, 참 .. ;ㅂ;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게도 존경을 받던 이순신장군님이. .
그저 일본의 적군 장수였다는 이유로 요즘세대의 높으신 원숭님들께 폄하되는게 통분할 일입니다.
[세계4대해전] 한산도대첩 시뮬레이션
[세계 4대 해전]
살라미스 해전
칼레 해전
트라팔가르 해전
그리고, 한산해전
임진왜란 3대 대첩(진주대첩, 행주대첩, 한산도대첩)에도 포함되는 한산해전!
이 전투이후 전라도는 안전하게 되었으며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해전금지령을 내립니다. 점차 수군에 중시하지않는데다가 보급선 마저 제때 보내지않아 결국 임진왜란 패전의 근본이 되지요//
이순신의 1차출동, 2차출동에 의해 114척의 크고 작은함선을 잃은 일본군은 수군을 대규모로 재편성하여 구키 요시타카, 와키자카 야스하루, 가토 요시아키에게 조선 수군 괴멸을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공을 독차지하려는 욕심에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단독 출전을 결정합니다 -_-; 그리고 견내량에 정박하여 선제공격을 계획합니다. 지금까지의 일본수군장은 이순신의 습격에 준비도 못하고 당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일본군을 피해 산으로 피란간 김천손에 의해 견내량에 일본군이 있다는 소식이 이순신에게 전해집니다.
역조류를 타면서 싸워야하기때문에 견내량으로의 출전이 불가하다는 부하들의 의견에도 출전의지를 나타내는 장군님. - 최적의 조건을 주어서어도 왜장 와키자카의 함대를 끌어내는 것! 그것이 우리 조선수군이 선택 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조건일세.
전선의 수는 지금까지 중 가장많은 70여척. . 거기에다가
늘 펴오던 기습작전이 아닌 전면전. 거기에 역조류의 부담까지..
전장에서 물러설수는 없지만 이 전면전만큼은 두려워하는
이순신아래 휘하장수들. .
견내량은 매우 좁고 암초가 많은 곳입니다. 그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면 판옥선끼리 서로 부딪치게 될 가능성이 커 전투하기가 곤란한 지형이었습니다. 이순신은 견내량에서 싸울 생각을 하지 않고 적을 한산도 바다 한가운데로 끌어내어 모조리 잡아버릴 계획을 세웁니다. 판옥선 5,6척에 지시를 내려, 적의 선봉을 뒤쫒아 마치 전투를 벌일듯히 깊숙히 진격해 들어갔습니다.
- 제 발로 덫으로 뛰어들어온 놈들부터 처리를 해야겠군. . 돌격기 올려 ! !
너무 좋아하는 와키자카 ... ... .
이순신의 유인책에 완전히 말려드는 일본군. 조선의 선봉선은 함선을 돌려 급히 도망가는 것처럼 바삐 노를 저어나갑니다. 뒤이어 조선의 연합함대도 이순신의 지휘로 거짓으로 견내량의 입구에서 빠져나갑니다. 조선 수군이 견내량을 빠져나가자 일제히 빠른 속도로 추격합니다!
적의 함대는 기세 좋게 견내량의 좁은 수로를 통과하여 한산도 앞바다 까지 조선함대를 추격해왔습니다. 즉, 이순신이 쳐놓은 덫에 완전히 걸려든것이죠. "이 때를 놓쳐서는 안된다!" 하고 내리는 이순신의 명령이 한산도 앞바다를 울립니다.
지금까지 후미를 보이며 도망치던 조선함대가일시에 몸체를 돌립니다.~ .. !
회심의 학익진(鶴翼陳)!
일본수군, 잠~ 깐 당황합니다.
아~ 이순신은 진법을 아는장수였습니다. 오합지졸의 조선육군만 상대해 오던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이순신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 . .
- 저런 병략의 기본도 모르는놈 같으니라고, 학익진은 아군의 수가 적군의 비해 많을 때 쓰는 진형이거늘 .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은 오히려 일본수군이 더 많다. 우리에겐 속도가 있다.
더 밀어붙여 바짝 붙어야한다. 라고 생각하는 와키자카.
그의 머리에 떠오른것은 "어린진(魚鱗陳)" 이었습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딱~ 20년 전인 1572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이끄는 8,000여 병력과
다케다 신겐(武田信玄)이 이끄는 4만 3,000여 병력이 미카타 들판
에서 격돌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학익진"을 펼쳤고
다케다 신겐은 "어린진"을 폅니다. 위에 보시듯, 학익진은 우세한
전력일 경우 피는 진이지만 열세인 병력으로 학익진을 편 도쿠가와의 학익진은 측면이 무너지고, 병력보충이 불가능하여
1,2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며 처참하게 패배합니다.
위와 같이 대형의 중앙을 삼각형의 꼭지점처럼 뾰족하게 구축하는
人자 형태의 진이 "어린진"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학익진을 격멸한 어린진 형태로
돌격하는 와키자카의 함대. 조총 사정거리 확보를 위해 ㄱㄱ
, , 하지만 이미 조선수군은 전투배치를 끝내고 명령을 기다리는 중.
방 포 하 라 ! ! ! ! ! ! !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일본수군.
- 버틸 수 있다. 아니, 버텨야한다! 계속 돌격해!!
어차피 장전된 포는 바닥이 날께다. 재장전 시간을 노린다.
그 때 전속력으로 밀어붙여 도선을 할것이야! 그것이 우리 와키자카 군에게 남은 마지막 기회다!
장전된 포를 다 쓰고 재장전 중인 조선수군
- 지금이다, 전속력으로 돌진하여, 도선하라!! !!!!!! !
자진해서 학익진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와키자카의 함대!
아뿔싸! 어쩝니까,, 판옥선은 제자리 선회가 가능한 평저선이에요.
배를 돌리는 조선수군입니다.
배를 돌리고 반대편 포문으로 다시 포를 쏘는 이순신함대! !
욕 나오죠 . . 암요암요,, 이해합니다. 와키자카 장군.
얼마나~ 피랍자스러운 기분이겠습니까.
- 배 붙여! ! 돌격해! 밀고나간다!! 노 저어! !
이 쯤 되면 막가자는 것이죠..? 일본함선은 가속도가 붙어 다시 선회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이젠 전멸도 각오하고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와키자카 야스하루.
우격다짐으로 포탄 속을 돌진하여 마침내 조총 사정거리에 들어온
와키자카, 일제히 조총사격을 명합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화살은 쏘는 조선수군. 격전이었습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정예수군이 적함에 기어올라가 적을 섬멸할 것이라는 와키자카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때!
거북이 등장 ! !
빠른속도로 일본함대에 접근해 오는 거북선.
백병전을 펼칠 수 있을정도로 가까이 온 거북선, 일본수군이
도선하려고 해도 거북선 덮개에 박힌 못때문에 올라가지 못합니다.
속도를 늦추지않고 이미 포 사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일본함선을
그대로 들이받아버립니다~! ! 일본함대의 대형이 거북선의 돌격으로 순식간에 흩어져버립니다.
- 퇴각하라 ! ! 퇴각하라 ! ! !
하지만 후퇴도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좌, 우는 물론 앞까지 학익진에 막혀있고, 함선을 뒤로 돌려 도망가는 수밖에 없었걸랑요.
와키자카의 명령에 따라 전 함대가 뒤로 선회하려고 했지만
함선끼리 서로 충돌하고, 왼쪽, 오른쪽, 앞에서 조선수군의 포는
계속 날아왔습니다. 거북선이 이리저리 막 들이받고 =_=;; 이젠
조선수군의 본대가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와키자카의 밀집대형이 후퇴하려면 맨 뒤에 있는 대열의 함선부터 순차적으로 빼야했는데 맨 뒤의 대열은 와키자카 함선의 대열이었습니다. 와키자카의 함선을 뒤로 돌리는데는 겨우 성공하여 필사적으로 도망을 칩니다.
이순신은 그들을 끝까지 추격하려다 그만두었습니다.
장시간에 걸친 대접전으로 부하들의 피로가 극심하고 날도 저물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
이순신은 전투를 정리하고 조선함대가 그 밤을 안전하게 지낼 곳을 물색합니다.. 그리고 그 곳은 , 일본군이 정박해 있던 "견내량 안 바다" 였습니다 . ^-^
한산해전의 패전으로 와키자카는 도요토미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와키자카는 자신의 영광뿐 아니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먕도 일순간에 날려버린것이니까요, ,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한산해전을 어떻게 기록했는지는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 『와키자카기(脇板記)』에 나와있습니다.
우리는 조선의 배를 약 30리 정도 추격했다. 조선 배들은 좁은 수로를 빠져나가 넓은 바다에 이르자, 갑자기 뱃머리를 돌려 우군의 배를 포위하고 들락날락 거리면서 공격했고, 그때마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할 수 없이 좁은 수로로 다시 후퇴하려고 했으나 적선들이 퇴로를 막고 커다란 불화살을 마구 쏘아 아군의 배는 화염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 때문에 나의 가신 와타나베를 비롯하여 많은 이가 전사했다. 대장인 나는 노가 많은 배를 탄 덕분에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다. 도망치는 도중에 조선군의 공격으로 갑옷에 화살을 맞아 위험했으나 구사일생으로 도망치는데 성공했다.
이 게시물은
불멸의이순신 73,74회 / 이순신의 두 얼굴(김태훈 著)
을 참고하여 만든 포스트입니다.
23전 23승, 전승무패. 현재 통용되고 있는 이순신장군의 전적입니다. 17전 17승에서 몇 년전인가가 23전 23승으로 바뀌었죠.
올 해 4월에 새로운 설이 등장했습니다.
해군교육사령부 충무공리더십센터 제장명 교수님이
충무공 탄신 462돌 기념 학술세미나에서 이순신의 전적은
43전 38승 5무라고 밝힌것입니다.
역시, 패전은 없습니다.. =ㅂ= ㅋㅋ
망할 일본왜곡교과서에는 이순신장군님의 이름이 아예없던가
상당히 교활한 사람으로 묘사되었다고 하던데, 참 .. ;ㅂ;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게도 존경을 받던 이순신장군님이. .
그저 일본의 적군 장수였다는 이유로 요즘세대의 높으신 원숭님들께 폄하되는게 통분할 일입니다.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후손들이 충무공탄신일(4월 28일)때 마다
이순신장군님을 추도하기 위해 우리나라를 찾는다는 이야기,,
아시나요?
일본내에서도 양심있는 일본인들은 참 많습니다.
그저, 극우주의의 높으신 원숭님들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공부하는
일본아이들을 생각하면,,,
과연 왜곡문제는 풀릴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