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재석을 처음 본.. 아니 기억에 남게 했던 프로그램은 목표달성토요일에서 동거동락이라는 코너이다.
분명히 그 전부터 유재석을 보았을 테지만 그 코너에서 나뿐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독특한 웃음소리와 깔끔한 진행 무엇보다도 게스트를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모습..
난 그런 인간적인 모습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최소한 TV속에서의 모습은 가식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비록 사람들을 웃기고 재밌게 하는 개그맨으로써 가끔은 우스워 보일수 있지만 나는 그 사람에게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하며 칭찬에 어쩔 줄모르는 그런 모습에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부끄러워진다.
About..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유재석은 15년의 연예생활 중 8~9년간을 무명으로 산 대표적인 '늦깍이 스타' 다. 그러니까 이제는 대중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MC 유'의 탄생은 10년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스스로 "하루에도 포기하기를 몇 백번씩 했다." 라는 말을 할 정도로 그의 무명 생활은 가혹하디 가혹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카메라 공포증' 과 '마이크 울렁증' 에도 시달렸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시절 실수 장면이라던가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유재석입니다." 라는 멘트를 "안녕갑습니다, 유재...." 로 잘못 날렸다는 이야기는 신인시절 그의 카메라 공포증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그렇다면 무명 생활에 허덕이던 메뚜기, 아니 유재석은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게 됐을까. 그 시초는 누가 뭐래도 의 인기 코너였던 '토크 박스' 였다. "메뚜기" 라는 별명으로 조금씩 이름을 알려가던 그는 '토크 박스' 에서 자신의 말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한층 높이는데 성공한 것이다.
학창시절 너무 배가 고파서 슈퍼를 지키는 할머니 몰래 과자박스 하나를 훔쳐 뒷동산에 올라가 박스를 열었더니 과자가 아니라 빨대만 잔뜩 들어있었다는, 그 유명한 '빨대 사건' 은 전국민의 배꼽을 쏙 빼놓으며 유재석이라는 이름 세글자를 확실하게 각인시켰고 유재석을 전국적인 '스타' 로 만들어놨다. 10년 무명생활의 내공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그의 연예운은 에 이어 을 진행하게 되면서 정점에 다다랐다. MC 초기에 얄밉고 촐랑대는 캐릭터로 유재석의 입지를 확실히 굳혀준 은 20%가 넘는 시청률로 시청자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유재석 특유의 진행 스타일에 모티브가 됐다.
의 빅히트가 MC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 놓은 유재석의 진행 스타일에 하나의 모티브를 줬다면 는 유재석의 캐릭터를 만들어주며 그의 생명을 연장 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강호동에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할말은 하는, 쿵쿵따 속 그의 캐릭터는 에서의 얄미운 캐릭터를 180도 변화시키며 큰 성공을 거뒀고 이 성공을 계기로 그는 강호동과 함께 A+급 MC로 올라가는 기염을 토한다.
.........10년의 무명생활을 견뎌낸 유재석은 6~7년 만에 엄청난 흥행작들을 기다렸다는 듯 쏟아내며 단박에 방송가에서 알아주는 '국민 MC' 의 반열에 올라섰다.
10시간이 넘는 촬영시간에도 후배들과 동료들을 다독거리며 프로그램의 재미를 정점으로 끌어올리는 그는 방송 진행의 교과서적 표본이라는 이경규, 서세원과는 달리 자신만의 자존독립적인 공간을 창조해내며 '유재석' 만의 개성을 끊임없이 창출해 왔다. 그의 개성, 그의 창의력, 그의 능수능란함이 지금의 유재석을 만든 것이며 앞으로의 유재석을 만들어가고 있다.
혁신없는 정체와 정체된 혁신 속에서 그는 어떠한 발자취를 남겨가고 있는가. 앞으로도 그는 변함없이 인간들을 지배할 수 있을까. 자못 10년 뒤, 브라운관 속 그의 모습이 기대가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감이나 불편함을 주지 않는 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오락이다." - MC 유재석 -
유재석
Profile..
본명 : 유재석
출생 : 1972년 8월 14일
학력 :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과
직업 : 개그맨
신체사항 : 178cm 65kg
가족사항 : 부모님, 1남 2녀 중 장남
혈액형 : B형
취미 : Drive
특기 : Drive
이상형 : 지적이고 도시적인 커리어 우먼
데뷔 : 1991년 제1회 대학 개그제 장려상 수상
소속 : DY enterainment
To me..
내가 유재석을 처음 본.. 아니 기억에 남게 했던 프로그램은 목표달성토요일에서 동거동락이라는 코너이다.
분명히 그 전부터 유재석을 보았을 테지만 그 코너에서 나뿐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독특한 웃음소리와 깔끔한 진행 무엇보다도 게스트를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모습..
난 그런 인간적인 모습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지 못하지만 최소한 TV속에서의 모습은 가식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비록 사람들을 웃기고 재밌게 하는 개그맨으로써 가끔은 우스워 보일수 있지만 나는 그 사람에게서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하며 칭찬에 어쩔 줄모르는 그런 모습에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부끄러워진다.
About..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유재석은 15년의 연예생활 중 8~9년간을 무명으로 산 대표적인 '늦깍이 스타' 다. 그러니까 이제는 대중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MC 유'의 탄생은 10년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스스로 "하루에도 포기하기를 몇 백번씩 했다." 라는 말을 할 정도로 그의 무명 생활은 가혹하디 가혹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카메라 공포증' 과 '마이크 울렁증' 에도 시달렸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시절 실수 장면이라던가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유재석입니다." 라는 멘트를 "안녕갑습니다, 유재...." 로 잘못 날렸다는 이야기는 신인시절 그의 카메라 공포증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그렇다면 무명 생활에 허덕이던 메뚜기, 아니 유재석은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게 됐을까. 그 시초는 누가 뭐래도 의 인기 코너였던 '토크 박스' 였다. "메뚜기" 라는 별명으로 조금씩 이름을 알려가던 그는 '토크 박스' 에서 자신의 말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한층 높이는데 성공한 것이다.
학창시절 너무 배가 고파서 슈퍼를 지키는 할머니 몰래 과자박스 하나를 훔쳐 뒷동산에 올라가 박스를 열었더니 과자가 아니라 빨대만 잔뜩 들어있었다는, 그 유명한 '빨대 사건' 은 전국민의 배꼽을 쏙 빼놓으며 유재석이라는 이름 세글자를 확실하게 각인시켰고 유재석을 전국적인 '스타' 로 만들어놨다. 10년 무명생활의 내공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로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그의 연예운은 에 이어 을 진행하게 되면서 정점에 다다랐다. MC 초기에 얄밉고 촐랑대는 캐릭터로 유재석의 입지를 확실히 굳혀준 은 20%가 넘는 시청률로 시청자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고 지금까지 이어지는 유재석 특유의 진행 스타일에 모티브가 됐다.
의 빅히트가 MC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 놓은 유재석의 진행 스타일에 하나의 모티브를 줬다면 는 유재석의 캐릭터를 만들어주며 그의 생명을 연장 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 강호동에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할말은 하는, 쿵쿵따 속 그의 캐릭터는 에서의 얄미운 캐릭터를 180도 변화시키며 큰 성공을 거뒀고 이 성공을 계기로 그는 강호동과 함께 A+급 MC로 올라가는 기염을 토한다.
.........10년의 무명생활을 견뎌낸 유재석은 6~7년 만에 엄청난 흥행작들을 기다렸다는 듯 쏟아내며 단박에 방송가에서 알아주는 '국민 MC' 의 반열에 올라섰다.
10시간이 넘는 촬영시간에도 후배들과 동료들을 다독거리며 프로그램의 재미를 정점으로 끌어올리는 그는 방송 진행의 교과서적 표본이라는 이경규, 서세원과는 달리 자신만의 자존독립적인 공간을 창조해내며 '유재석' 만의 개성을 끊임없이 창출해 왔다. 그의 개성, 그의 창의력, 그의 능수능란함이 지금의 유재석을 만든 것이며 앞으로의 유재석을 만들어가고 있다.
혁신없는 정체와 정체된 혁신 속에서 그는 어떠한 발자취를 남겨가고 있는가. 앞으로도 그는 변함없이 인간들을 지배할 수 있을까. 자못 10년 뒤, 브라운관 속 그의 모습이 기대가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감이나 불편함을 주지 않는 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오락이다." - MC 유재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