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실 나이론기독교인이고 성경에 대해서도 무지랭이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예수님에 관해서 흔들리지 않는 무언의 믿음이 있었지요. 너무 어릴적부터 당연하게 믿어온지라 저에게 하나님을 부정하라는 건 우리엄마보고 친엄마가 아니라고 하는거나 마찬가지일정도로요 . 저희 부모님도 기독교신자였는데 지금은 교회를 다니지 않습니다. 이유는 다니던 교회가 증설작업에 들어갔는데 저마다 몇 백에서 몇 천을 내놓는 상황에서 염치가 없어 다니기 힘들다는 거였습니다. 저희집 그때만 해도 단칸셋방살며 찢어지게 가난했 었거든요 .거의 20여년 전이니 얼마나 큰 돈이기고 부담이었을까요...교회재산은 없으면서 증설 작업한다고 공표해 놓으면 결국 찬조금으로 공사하겠단 말이지요 . 보탬이 되지 못 하는 신도는 도태되고 그때부터 교회에는 있는 자들의 권력이 형성되는 것 같더라구요. 성인이 되어서 교회다닌다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 일일줄은 ...어릴 땐 받기만 해서 몰랐는데 수많은 성인부의 찬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는 걸 지금에야 알았지요 . 마음속에 하느님만 모신 채 홀로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이 힘겨워 교회를 물색했는데 신호등앞에 한 초로의 노인이 오미자차를 만들어 전도에 열을 올리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무더위에도 환한 얼굴로 임하는 열정적인 노신도의 모습은 그 어떤 간증보다도 가슴에 와 닿았었죠. 저는 마침 교회가 절실하던 때였고해서 저의 전화번호를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제가 가벼운 접촉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때 과일이며 이것저것 챙겨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먹었고 퇴원 후 바로 교회에 출석했죠. 그때가 아프간피랍 하루 뒤인가 그랬어요. 전 고 김선일씨 사건도 있고 해서 정말 이번만큼은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무사귀환하기를 간절히 바랬지요..(지금 그들의 행태가 좀 많이 깨긴 하지만요) 그런데 그날의 설교내용 결국 신도하나라도 더 데려오라는 말씀 완전 대실망이었습니다. 개척교회라 더 큰 열정이 있을거라 기대하고 갔는데 그래도 전도해주신 노인분(장로님)이 너무 열심히 챙겨주셔서 그냥 열심히 다녀야 겠다 생각 하고 있었는데 그날부터 귀찮은 전화연락이 시작된겁니다. 전 사실 친구들과도 용건있을 때만 간단히 통화하고 끊는 타입인데 하루에 몇 통씩 전화하시고 언니.동생전화번호 형부는 무슨 일 하시냐 수입은 얼마나 되느냐 저를 호구로 보셨는지 노골적으로 들이대시더라구요. 신랑수입은 대략 짐작하고 있을 거 아니 냐구 말씀하시는데 정나미가 떨어지더라구요...이건 뭐 돈 없으면 종교생활도 내맘대로 못 하는 겁니다. 그때 일을 쉬고 있던 차라 신랑수입은 신랑수입이고 교회는 내가 다니는 건데 아직 교 회에 헌납할 여유없다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여동생 꼬셔서 같이 다닐 맘도 있었는데 제가 여동생 예민해서 모르는 사람이 전화하면 제가 난처하다고 제가 알아서 데 리고 나간다 분명히 말씀드렸고 여동생이랑 얘기도 잘 되어서 그 다음주에 같이 나가기로 약속도 다 해놓았는데 ...그 분이 그사이를 못 참고 동생에게 여러차례 전화를 한 겁니다. 냉정한 성격의 여동생 사이비다단계같다면서 저보고도 다른데 다니라 합디다. 왜 자기 전번 남한테 알려줬냐는 짜증과 함께 우리언니도 한동안 전화연락에 시달렸구요...뭡니까 이거 전도가 사람괴롭히는 겁니까? 전도가 아니라 회원유치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 한국교회 욕먹을만 합니다. 기독교 욕 먹이는 한국교회 빨리 자성하시고 좀 진짜 종교생활 좀 하자구요. 하나님 좀 가만 내버려둡시다. 당신들 돈 벌어주려고 있는 분 아니십니다. 3
어떤 교회에 전도를 받아 나갔는데...사담입니다만
저 사실 나이론기독교인이고 성경에 대해서도 무지랭이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예수님에 관해서 흔들리지 않는 무언의 믿음이 있었지요.
너무 어릴적부터 당연하게 믿어온지라 저에게 하나님을 부정하라는 건 우리엄마보고
친엄마가 아니라고 하는거나 마찬가지일정도로요 .
저희 부모님도 기독교신자였는데 지금은 교회를 다니지 않습니다.
이유는 다니던 교회가 증설작업에 들어갔는데 저마다 몇 백에서 몇 천을 내놓는 상황에서
염치가 없어 다니기 힘들다는 거였습니다. 저희집 그때만 해도 단칸셋방살며 찢어지게 가난했
었거든요 .거의 20여년 전이니 얼마나 큰 돈이기고 부담이었을까요...교회재산은 없으면서 증설
작업한다고 공표해 놓으면 결국 찬조금으로 공사하겠단 말이지요 . 보탬이 되지 못 하는 신도는
도태되고 그때부터 교회에는 있는 자들의 권력이 형성되는 것 같더라구요.
성인이 되어서 교회다닌다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 일일줄은 ...어릴 땐 받기만 해서 몰랐는데
수많은 성인부의 찬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는 걸 지금에야 알았지요 .
마음속에 하느님만 모신 채 홀로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이 힘겨워 교회를 물색했는데
신호등앞에 한 초로의 노인이 오미자차를 만들어 전도에 열을 올리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무더위에도 환한 얼굴로 임하는 열정적인 노신도의 모습은 그 어떤 간증보다도
가슴에 와 닿았었죠. 저는 마침 교회가 절실하던 때였고해서 저의 전화번호를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제가 가벼운 접촉사고로 병원에 입원해 있던 때 과일이며 이것저것 챙겨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먹었고 퇴원 후 바로 교회에 출석했죠.
그때가 아프간피랍 하루 뒤인가 그랬어요. 전 고 김선일씨 사건도 있고 해서
정말 이번만큼은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무사귀환하기를 간절히 바랬지요..(지금 그들의 행태가
좀 많이 깨긴 하지만요) 그런데 그날의 설교내용 결국 신도하나라도 더 데려오라는 말씀
완전 대실망이었습니다. 개척교회라 더 큰 열정이 있을거라 기대하고 갔는데
그래도 전도해주신 노인분(장로님)이 너무 열심히 챙겨주셔서 그냥 열심히 다녀야 겠다 생각
하고 있었는데 그날부터 귀찮은 전화연락이 시작된겁니다.
전 사실 친구들과도 용건있을 때만 간단히 통화하고 끊는 타입인데
하루에 몇 통씩 전화하시고 언니.동생전화번호 형부는 무슨 일 하시냐 수입은 얼마나 되느냐
저를 호구로 보셨는지 노골적으로 들이대시더라구요. 신랑수입은 대략 짐작하고 있을 거 아니
냐구 말씀하시는데 정나미가 떨어지더라구요...이건 뭐 돈 없으면 종교생활도 내맘대로 못 하는
겁니다. 그때 일을 쉬고 있던 차라 신랑수입은 신랑수입이고 교회는 내가 다니는 건데 아직 교
회에 헌납할 여유없다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래도 그때까지만 해도 여동생 꼬셔서 같이 다닐
맘도 있었는데 제가 여동생 예민해서 모르는 사람이 전화하면 제가 난처하다고 제가 알아서 데
리고 나간다 분명히 말씀드렸고 여동생이랑 얘기도 잘 되어서 그 다음주에 같이 나가기로
약속도 다 해놓았는데 ...그 분이 그사이를 못 참고 동생에게 여러차례 전화를 한 겁니다.
냉정한 성격의 여동생 사이비다단계같다면서 저보고도 다른데 다니라 합디다. 왜 자기 전번
남한테 알려줬냐는 짜증과 함께 우리언니도 한동안 전화연락에 시달렸구요...뭡니까 이거
전도가 사람괴롭히는 겁니까? 전도가 아니라 회원유치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
한국교회 욕먹을만 합니다. 기독교 욕 먹이는 한국교회 빨리 자성하시고 좀 진짜 종교생활 좀
하자구요. 하나님 좀 가만 내버려둡시다. 당신들 돈 벌어주려고 있는 분 아니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