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낯선 희망들 - 끊이지 않는 분쟁, 그 현장을 가다 (2007) 이유경 지음|인물과사상사 펴냄
낯선 아시아에서 찾은 내 얼굴
이유경 언니는 내가 편집을 맡고 있는 한 인터넷 매체에 Global Herstory라는 제목으로 아프간 여성들의 삶을 담아온 프리랜서 기자다. 언니가 아프간에 있는 동안 연결이 됐고, 한 달에 두세 차례씩 이메일로 소식과 원고를 주고받는 관계가 됐다.
얼굴 한번 본 적 없이 대단히 사무적일 수밖에 없는 이메일을 주고받는 게 대화의 전부였으니 언니와 내가 특별한 인연이라고 말하기엔 뭣하다. 그러나 세 편의 원고를 받는 동안, 아프간이나 터키, 레바논 등지에서 간단한 안부메일을 주고받는 동안, 유경언니는 마치 학교선배나 혹은 더 오래된 고향선배처럼 친근한 사람이 됐다. 물론 나 혼자만의 감정일 수 있지만 말이다.
최근 두어 달 동안 언니는 메일도 자주 보내지 못했고 원고도 보내질 못했다. 카메라와 더불어 원고를 쓰고 보내는 유일한 소통의 도구인 노트북이 말썽이었다. 그 근방의 컴퓨터 기기 사정은 꽤 열악해서 노트북의 회생 소식은 좀처럼 들려올 것 같지 않았다. 그 와중에 아프간에서 우리나라 사람 23명이 피랍된 사건이 있었고 걱정은 더해갔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에 발 동동 구르며 언니의 안부를 학수고대하던 내게 메일이 왔다. 노트북이 말썽이니 한글로 편지도 못 쓰는지 영문 메일이었다. 영어 울렁증이 있었지만 대충 해석이 가능했다. ㅡㅡ;;
"조만간 한국에 갈 것 같다. 그리고 내 책이 출판됐다"
원고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었다. 곧바로 검색해 보니 이란 제목의 아시아 분쟁지역 르포집이었다. 최근에 본 언니의 글은 모두 아프간에 관련한 글이었지만, 언니는 훨씬 이전부터 아시아 곳곳을 누비며 분쟁지역을 찾아 그곳의 소식을 전하고 있었고, 에 실렸던 언니의 글이 책으로 엮여 나온 것이다.
당장 사서 읽고 싶었지만 이래저래 시간을 흘러갔다. 그리고 며칠 전 언니의 학교후배이자 나의 전 직장동료인 한모군에게 그 책을 선물로 받았다...기보다는 강탈했다. ㅡㅡ;;;
아시아인 나의 머리는 서구의 식민지
짬짬이 책장을 넘기는 내내 나는 이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업무상(?) 이번 주 안에 읽어야 하는 책이 서너권이 밀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놓지 못했다. 그만큼 유경언니가 전해주는 아시아의 이야기는 낯설었고 흥미로웠고 가슴아팠고 감동적이었다. 타이, 버마(미얀마), 인도, 스리랑카, 네팔, 카슈미르... 언니의 발걸음이 옮겨가는 대로 나의 마음도 흘러갔다.
수십년째 분쟁이 계속돼온 그곳. 그러나 솔직히 고백컨대 나는 그 지역에서 어떠한 이유로 어떠한 분쟁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도, 지금도 수천명이 학살되거나 고문을 당하거나 납치되고 있다는 것 역시도, 모르고 있었다. 더 솔직해지자면 그 나라들이 지구본 어디쯤에 붙어있는지조차 정확히 짚어낼 자신이 없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 지역의 역사는 세계사 시간에도 배운 적이 없고 그 지역의 소식은 텔레비전 월드뉴스나 신문의 국제면에도 실린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그러나 당연하지 않다. 전혀.
나는 분명 동북아시아의 반도 이남땅에서 태어났고, 서른몇해를 이곳에서 자란 아시아인이다. 그러나 내 머리 속에 아시아는 일본이나 중국 같은 인접한 나라밖에 들어 있지 않았고, 그 외의 다른 나라들은 지구 반대편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보다 멀기만 했다. 당연히 그 지역들에서 일어나는 정치사회적 사건들은 미국이나 유럽연합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비교할 때 10분의 1도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간혹 그 나라들 이름을 들으면 그저 여행으로 한번쯤 가보면 좋을 만한 낯선 관광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만큼 나의 머릿속의 세계는 서구 중심으로 짜여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아시아인인 나의 머리가 서구의 식민지였다는 것을 절감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지역에서 분쟁을 일으킨 직접적 원인이 됐던 이슬람과 힌두의 종교적 갈등이나, 다수 민족과 소수 민족 간의 갈등,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해석하는 내 판단의 기준은 CNN 뉴스 논조와 다를 것이 없었다. 간혹 스리랑카 테러리스트들의 자살폭탄 테러라든지 카슈미르에서 무장세력과 교전이 있었다는 뉴스를 보더라도 한번도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아니, 그 입장을 알기 위해 그들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그저 서구언론이 전해주는 대로 서구언론을 베껴쓰는 수준의 저열한 이 나라 국제기사가 전해주는 대로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주워듣는 사이 내 머릿속의 식민지는 점점 더 영역을 넓혀간 것이다.
유경언니에게 새삼 고맙다. 지금이라도 내 머릿속의 식민지를 깨닫게 해주어서. 치열한 내전과 국지전이 벌어지는 분쟁지역에 겁없이 뛰어들 용기를 내주어서. (죽음을 무릅쓰고,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용기 있는, 등등... 이런 표현은 언니가 참 싫어하는 표현이지만)
저널리즘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
언니가 민주언론운동연합 활동을 10년 가까이 했고 지금도 여전히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유경언니의 기자정신을 통해 저널리즘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책이 내게 준 선물 중 하나다. 나 역시 언론계에 종사한 적이 있어서, 당시 글쓰는 것보다 객관성과 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게 훨씬 더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기자가 되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자주 들어야 하는 훈계가 '객관적 보도'다. '객관성'은 기자의 기본이고 철칙이다. 그러나 '객관적 보도'는 단지 주된 주장과 반대되는 주장을 함께 실음으로써 주류 권력에 기생하는 언론에 면죄부를 주는 수단으로 쓰일 때가 많다. 이것은 조중동과 같은 우리나라 황색언론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객관'이란 이름아래 힘없는 소수자들은 언론의 뭇매를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거의 없었지만 그나마 들려온 아시아의 소식 중 객관적인 척 하지 않았던 뉴스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 뉴스를 통해 이 책에서 읽은 진실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것이 바로 '객관적 보도'의 현주소다.
유경언니는 기자가 되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일류대학을 나오지도 않았고, 언론고시도 패스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실을 읽을 줄 알고 그것을 전할 줄 아는, 진짜 기자다.
다르게 공존하기
이 책에 나온 지역들의 모든 분쟁은 어쩌면 다름을 견디지 못하는, 반드시 척결해야 할 악惡으로 규정하고 공격하는 '제로 똘레랑스(인도 총리 만모한 싱이 했던 말)'로부터 비롯한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제로 똘레랑스'는 낯선 아시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60년 분단이 바로 이것으로 인해 지속돼왔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더 안으로 들어오면 우리 사회 안에서 이주노동자 문제나 성차별 문제, 지역감정 등 모든 문제가 '제로 똘레랑스'에 기인한다.
다름이 억압과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는 세상, 다름으로 인해 즐거운 세상,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인간적인 연대와 애정의 눈빛을 나눌 수 있는 세상. 낯선 아시아에서 만난 낯선 희망이다.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 - 끊이지 않는 분쟁, 그 현장을 가다 (2007)
이유경 지음|인물과사상사 펴냄
낯선 아시아에서 찾은 내 얼굴
이유경 언니는 내가 편집을 맡고 있는 한 인터넷 매체에 Global Herstory라는 제목으로 아프간 여성들의 삶을 담아온 프리랜서 기자다. 언니가 아프간에 있는 동안 연결이 됐고, 한 달에 두세 차례씩 이메일로 소식과 원고를 주고받는 관계가 됐다.
얼굴 한번 본 적 없이 대단히 사무적일 수밖에 없는 이메일을 주고받는 게 대화의 전부였으니 언니와 내가 특별한 인연이라고 말하기엔 뭣하다. 그러나 세 편의 원고를 받는 동안, 아프간이나 터키, 레바논 등지에서 간단한 안부메일을 주고받는 동안, 유경언니는 마치 학교선배나 혹은 더 오래된 고향선배처럼 친근한 사람이 됐다. 물론 나 혼자만의 감정일 수 있지만 말이다.
최근 두어 달 동안 언니는 메일도 자주 보내지 못했고 원고도 보내질 못했다. 카메라와 더불어 원고를 쓰고 보내는 유일한 소통의 도구인 노트북이 말썽이었다. 그 근방의 컴퓨터 기기 사정은 꽤 열악해서 노트북의 회생 소식은 좀처럼 들려올 것 같지 않았다. 그 와중에 아프간에서 우리나라 사람 23명이 피랍된 사건이 있었고 걱정은 더해갔다.
그저 안타까운 마음에 발 동동 구르며 언니의 안부를 학수고대하던 내게 메일이 왔다. 노트북이 말썽이니 한글로 편지도 못 쓰는지 영문 메일이었다. 영어 울렁증이 있었지만 대충 해석이 가능했다. ㅡㅡ;;
"조만간 한국에 갈 것 같다. 그리고 내 책이 출판됐다"
원고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었다. 곧바로 검색해 보니 이란 제목의 아시아 분쟁지역 르포집이었다. 최근에 본 언니의 글은 모두 아프간에 관련한 글이었지만, 언니는 훨씬 이전부터 아시아 곳곳을 누비며 분쟁지역을 찾아 그곳의 소식을 전하고 있었고, 에 실렸던 언니의 글이 책으로 엮여 나온 것이다.
당장 사서 읽고 싶었지만 이래저래 시간을 흘러갔다. 그리고 며칠 전 언니의 학교후배이자 나의 전 직장동료인 한모군에게 그 책을 선물로 받았다...기보다는 강탈했다. ㅡㅡ;;;
아시아인 나의 머리는 서구의 식민지
짬짬이 책장을 넘기는 내내 나는 이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업무상(?) 이번 주 안에 읽어야 하는 책이 서너권이 밀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놓지 못했다. 그만큼 유경언니가 전해주는 아시아의 이야기는 낯설었고 흥미로웠고 가슴아팠고 감동적이었다. 타이, 버마(미얀마), 인도, 스리랑카, 네팔, 카슈미르... 언니의 발걸음이 옮겨가는 대로 나의 마음도 흘러갔다.
수십년째 분쟁이 계속돼온 그곳. 그러나 솔직히 고백컨대 나는 그 지역에서 어떠한 이유로 어떠한 분쟁이 벌어지고 있었는지도, 지금도 수천명이 학살되거나 고문을 당하거나 납치되고 있다는 것 역시도, 모르고 있었다. 더 솔직해지자면 그 나라들이 지구본 어디쯤에 붙어있는지조차 정확히 짚어낼 자신이 없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 지역의 역사는 세계사 시간에도 배운 적이 없고 그 지역의 소식은 텔레비전 월드뉴스나 신문의 국제면에도 실린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그러나 당연하지 않다. 전혀.
나는 분명 동북아시아의 반도 이남땅에서 태어났고, 서른몇해를 이곳에서 자란 아시아인이다. 그러나 내 머리 속에 아시아는 일본이나 중국 같은 인접한 나라밖에 들어 있지 않았고, 그 외의 다른 나라들은 지구 반대편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보다 멀기만 했다. 당연히 그 지역들에서 일어나는 정치사회적 사건들은 미국이나 유럽연합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비교할 때 10분의 1도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간혹 그 나라들 이름을 들으면 그저 여행으로 한번쯤 가보면 좋을 만한 낯선 관광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만큼 나의 머릿속의 세계는 서구 중심으로 짜여 있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아시아인인 나의 머리가 서구의 식민지였다는 것을 절감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지역에서 분쟁을 일으킨 직접적 원인이 됐던 이슬람과 힌두의 종교적 갈등이나, 다수 민족과 소수 민족 간의 갈등,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해석하는 내 판단의 기준은 CNN 뉴스 논조와 다를 것이 없었다. 간혹 스리랑카 테러리스트들의 자살폭탄 테러라든지 카슈미르에서 무장세력과 교전이 있었다는 뉴스를 보더라도 한번도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아니, 그 입장을 알기 위해 그들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그저 서구언론이 전해주는 대로 서구언론을 베껴쓰는 수준의 저열한 이 나라 국제기사가 전해주는 대로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주워듣는 사이 내 머릿속의 식민지는 점점 더 영역을 넓혀간 것이다.
유경언니에게 새삼 고맙다. 지금이라도 내 머릿속의 식민지를 깨닫게 해주어서. 치열한 내전과 국지전이 벌어지는 분쟁지역에 겁없이 뛰어들 용기를 내주어서. (죽음을 무릅쓰고, 총탄이 빗발치는 가운데, 용기 있는, 등등... 이런 표현은 언니가 참 싫어하는 표현이지만)
저널리즘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
언니가 민주언론운동연합 활동을 10년 가까이 했고 지금도 여전히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유경언니의 기자정신을 통해 저널리즘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책이 내게 준 선물 중 하나다. 나 역시 언론계에 종사한 적이 있어서, 당시 글쓰는 것보다 객관성과 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게 훨씬 더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기자가 되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자주 들어야 하는 훈계가 '객관적 보도'다. '객관성'은 기자의 기본이고 철칙이다. 그러나 '객관적 보도'는 단지 주된 주장과 반대되는 주장을 함께 실음으로써 주류 권력에 기생하는 언론에 면죄부를 주는 수단으로 쓰일 때가 많다. 이것은 조중동과 같은 우리나라 황색언론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객관'이란 이름아래 힘없는 소수자들은 언론의 뭇매를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거의 없었지만 그나마 들려온 아시아의 소식 중 객관적인 척 하지 않았던 뉴스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 뉴스를 통해 이 책에서 읽은 진실을 한번도 만난 적이 없다. 그것이 바로 '객관적 보도'의 현주소다.
유경언니는 기자가 되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일류대학을 나오지도 않았고, 언론고시도 패스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실을 읽을 줄 알고 그것을 전할 줄 아는, 진짜 기자다.
다르게 공존하기
이 책에 나온 지역들의 모든 분쟁은 어쩌면 다름을 견디지 못하는, 반드시 척결해야 할 악惡으로 규정하고 공격하는 '제로 똘레랑스(인도 총리 만모한 싱이 했던 말)'로부터 비롯한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제로 똘레랑스'는 낯선 아시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60년 분단이 바로 이것으로 인해 지속돼왔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더 안으로 들어오면 우리 사회 안에서 이주노동자 문제나 성차별 문제, 지역감정 등 모든 문제가 '제로 똘레랑스'에 기인한다.
다름이 억압과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는 세상, 다름으로 인해 즐거운 세상,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인간적인 연대와 애정의 눈빛을 나눌 수 있는 세상. 낯선 아시아에서 만난 낯선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