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을 무기로 활용하는 건 정말 끔찍한 방법이예요.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그런 방법을 사용하는 걸 막아야 해요!
그래. 하지만 국가들에 대해 금지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단다. 국가들뿐 아니라, 다국적기업들도 그런 무기를 사용하고 있거든.
정말요? 어떤 기업이요?
세계 제2위의 식품회사인 스위스의 네슬레와 관련한 유명한 이야기 한 가지만 들려주마. 1080년 1월 1일, 칠레의 좌파정당과 노동조합이 연대한 '인민전선'이라는 동맹이 101가지 행동강령을 발표했어. 그 중 제1항은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들의 후보가 승리할 경우, 15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무상으로 배급하겠다는 것이었지. 당시 칠레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가 많은 아이들의 영양실조였거든.
1970년 9월 드디어 대통령선거가 실시되었고, 인민전선의 후보인 살바도르 아옌데가 36.5퍼센트의 득표율로 당선되었어. 그리고 11우러에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지명되었지.
아옌데가 누군데요?
아옌데는 소아과 의사 출신의 정치인이라서 유아기의 비타민 및 단백질 부족, 소년소녀들의 건강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었지. 그래서 그가 가장 우선적으로 내건 공약이 분유의 무상 배급이었던 거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분유와 유아식을 판매하여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던 다국적기업 네슬레가 당시 이 지역의 분유시장을 독점하고 있었지. 네슬레는 우유공장을 경여하며 목축업자들과 독점계약을 맺고 판매망도 장악하고 있었어. 그래서 아이들에게 분유를 무상으로 배급하기 위해서는 네슬레와의 원활한 관계가 필요했지. 아옌데는 결코 네슬레에 분유를 공짜로 달라고 하지 않았어. 제값을 주고 사려 했지.
그런데요?
그러나 1971년 스위스 베베이의 네슬레 본사는 칠레 민주정부와의 협력을 모두 거부했어.
왜요?
당시 미국의 닉슨 대통령과 그 보좌관 헨리 키신저가 아옌데 정권의 사회주의적 개혁정책을 꺼리고 있었기 때문이지. 또 외국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칠레의 자립성을 높이고 국내적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아예덴 정권의 개혁정책이 제대로 추진되면, 미국의 국제기업이 그때까지 누려온 많은 특권들이 침해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란다. 키신저는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칠레의 민주정부를 괴롭히려고 했지. 칠레에 대한 지원을 끊어버리고, 운수업계의 파업을 뒤에서 조종하고, 광산이나 공장의 태업을 부채질했어. 서구의 많은 다국적 은행이나 기업, 상사들처럼 네슬레 역시 아옌데 정권의 개혁정책을 강하게 반대했던 것이란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매일 0.5리터의 분유를 배급하겠다는 아옌데의 공약은 수포로 돌아갔어. 아옌데가 추진한 개혁정책의 대부분은 엄청난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했지. 1973년 9월 11일,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의 군부쿠데타를 도왔어. 아옌데와 그의 동지들은 대통령궁인 모네다궁에서 무력으로 저항했지. 오전 11시, 아옌데 대통령은 라디오를 통해 대국민 연설을 마지막으로 했고, 오후 2시 30분에 살해되었단다. 피노체트의 무차별 탄압으로 많은 대학생, 기독교 성직자, 노동조합 간부, 지식인, 예술가, 그리고 일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어. 그리고 아옌데정권이 들어서기 전처럼 수 만 명의 아이들이 다시 영양실조와 배고픔에 시달리게 되었지.
기아을 악용하는 국제기업-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식량을 무기로 활용하는 건 정말 끔찍한 방법이예요.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그런 방법을 사용하는 걸 막아야 해요!
그래. 하지만 국가들에 대해 금지시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단다. 국가들뿐 아니라, 다국적기업들도 그런 무기를 사용하고 있거든.
정말요? 어떤 기업이요?
세계 제2위의 식품회사인 스위스의 네슬레와 관련한 유명한 이야기 한 가지만 들려주마. 1080년 1월 1일, 칠레의 좌파정당과 노동조합이 연대한 '인민전선'이라는 동맹이 101가지 행동강령을 발표했어. 그 중 제1항은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들의 후보가 승리할 경우, 15세 이하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하루 0.5리터의 분유를 무상으로 배급하겠다는 것이었지. 당시 칠레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가 많은 아이들의 영양실조였거든.
1970년 9월 드디어 대통령선거가 실시되었고, 인민전선의 후보인 살바도르 아옌데가 36.5퍼센트의 득표율로 당선되었어. 그리고 11우러에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지명되었지.
아옌데가 누군데요?
아옌데는 소아과 의사 출신의 정치인이라서 유아기의 비타민 및 단백질 부족, 소년소녀들의 건강문제를 잘 이해하고 있었지. 그래서 그가 가장 우선적으로 내건 공약이 분유의 무상 배급이었던 거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분유와 유아식을 판매하여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던 다국적기업 네슬레가 당시 이 지역의 분유시장을 독점하고 있었지. 네슬레는 우유공장을 경여하며 목축업자들과 독점계약을 맺고 판매망도 장악하고 있었어. 그래서 아이들에게 분유를 무상으로 배급하기 위해서는 네슬레와의 원활한 관계가 필요했지. 아옌데는 결코 네슬레에 분유를 공짜로 달라고 하지 않았어. 제값을 주고 사려 했지.
그런데요?
그러나 1971년 스위스 베베이의 네슬레 본사는 칠레 민주정부와의 협력을 모두 거부했어.
왜요?
당시 미국의 닉슨 대통령과 그 보좌관 헨리 키신저가 아옌데 정권의 사회주의적 개혁정책을 꺼리고 있었기 때문이지. 또 외국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칠레의 자립성을 높이고 국내적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아예덴 정권의 개혁정책이 제대로 추진되면, 미국의 국제기업이 그때까지 누려온 많은 특권들이 침해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란다. 키신저는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칠레의 민주정부를 괴롭히려고 했지. 칠레에 대한 지원을 끊어버리고, 운수업계의 파업을 뒤에서 조종하고, 광산이나 공장의 태업을 부채질했어. 서구의 많은 다국적 은행이나 기업, 상사들처럼 네슬레 역시 아옌데 정권의 개혁정책을 강하게 반대했던 것이란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나요?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매일 0.5리터의 분유를 배급하겠다는 아옌데의 공약은 수포로 돌아갔어. 아옌데가 추진한 개혁정책의 대부분은 엄청난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했지. 1973년 9월 11일,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의 군부쿠데타를 도왔어. 아옌데와 그의 동지들은 대통령궁인 모네다궁에서 무력으로 저항했지. 오전 11시, 아옌데 대통령은 라디오를 통해 대국민 연설을 마지막으로 했고, 오후 2시 30분에 살해되었단다. 피노체트의 무차별 탄압으로 많은 대학생, 기독교 성직자, 노동조합 간부, 지식인, 예술가, 그리고 일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어. 그리고 아옌데정권이 들어서기 전처럼 수 만 명의 아이들이 다시 영양실조와 배고픔에 시달리게 되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