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진보진영의 눈길을 한몸에 받고 있는 베네수엘라. 21세기 사회주의를 부르짖으며 볼리바리안 혁명(중남미 해방 영웅 시몬 볼리바르를 따르는 혁명)을 이끌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2007년 1월 대통령 두 번째 임기에 들어선 이후 꾸준히 제기되어 온 개헌 문제를 드디어 제출했다.
미국발 외신을 그대로 받아적고 있는 한국의 언론들에서는, 차베스가 대통령 임기를 6년에서 7년으로 연장하고 연임을 제한하고 있는 현재의 헌법을 고쳐서 영구집권의 길, 즉 독재자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얘기를 일제히 떠들어대고 있다. 차베스가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실시해서 수많은 빈민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일에는 조용한 언론들이 좋은 건수를 만났는지 신이 났다.
2007년 8월 15일, 이 날은 2004년 같은 날의 대통령 소환투표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기도 했다. 차베스는 기념행사에서 전격적으로 개헌안을 발표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이날 저녁 의회에서 4시간의 특별 연설을 통해 현행 헌법 350개 항 가운데 개정되는 것은 33개항인 점을 지목하며 "이는 10%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개헌을 통해 새 시대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네수엘라 의회는 8월 21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제출한 개헌안을 1차 심의에서 통과시켰다. 167명 의원 전원이 차베스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의회는 앞으로 2차례 더 심의를 거쳐 개헌안을 비준하고 국민투표에 넘기게 되어 있는데 현재의 정치일정으로서는 12월 초에 국민투표가 실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개헌안 마련에 참여한 카를로스 에스카라 의원은 "우리는 사회주의 국가, 사회주의 정부 그리고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굳건하게 건설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999년에 처음으로 대통령에 취임해서 벌써 집권 9년째에 접어드는 차베스도 그동안의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취임 뒤 곧바로 제헌의회를 소집해서 기존의 헌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헌법을 제정했다. 구 헌법에 근거한 기존의 국가기구를 해체하고 새로운 헌법에 근거해 2000년에 대선, 총선, 지방선거를 한꺼번에 새로 치러 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국가기구를 구성했다. 그리고, 그동안 미제국주의와 소수의 기득권층만을 위해 석유수입을 사용해 온 PDVSA(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을 민중의 통제 하에 두기 위한 개혁을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미제국주의와 국내 보수반동세력의 쿠데타 음모로 2002년 4월, 차베스는 죽을 고비를 맞지만 민중들과 애국적 군인들이 역쿠데타를 일으켜 48시간만에 차베스를 구출하는 기적같은 일이 벌어진다. 2002년 11월에는 자본가들과 보수어용노조가 한통속이 되어 석유산업을 중심으로 총파업을 벌인다.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PDVSA를 민중의 통제하에 두게 된 차베스는 이 회사에서 나오는 재원을 통해 민중들을 위한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실시하게 된다. 차베스에게 대통령직은 민중혁명을 수행하기 위한 자리일 뿐이다.
민중혁명을 위해 대통령이 되어서도 죽을 고비를 넘기는 혁명가 차베스가 과연 임기욕심 때문에 개헌을 하는 것일까? 진실을 알게되면 삼척동자라도 이러한 의문점이 들게 된다. 그렇다면 베네수엘라의 개헌안은 어떠한 내용들을 담고 있을까?
새로운 권력 구조
차베스는 개헌을 통해 ‘새로운 권력구조’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주민 총투표를 통한 승인 하에, 기존의 지방정부 및 지방의회의 통제를 넘어 주민들이 스스로 통치하는 자치구들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일련의 개헌안을 제시했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넘어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해 나가고 있는 볼리바리안 혁명 과정을 심화시키는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조치는 다른 의미에서 또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아직 지역 차원에서는 혁명과정에 소극적이거나 심지어는 반대하기도 하는 인사들이 지방정부 및 의회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차베스는 이런 지역에서 주민들이 지방정부 및 의회를 통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들이 통치기구를 구성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고 혁명을 심화시켜 나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위의 조치에 대해 반대세력 뿐만 아니라 차베스 지지세력 내부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차베스 혁명정부에 협력하면서도 개량적인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알려진 Podemos의 수크레 주(州) 책임자 라몬 마르티네즈는 “지역의 자치권을 지켜내겠다” 면서 주지사와 시장들을 반대파로 조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역의 자치권이란 것은 지방정부와 의회의 자치권이기 이전에 지역주민의 자치권일 것이다. 지역의 주민자치를 직접 민주주의 방식으로 더욱 심화시키는 개헌안에 대해 지역 자치권을 지키겠다며 반대하는 것은 기득권 챙기기로 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베네수엘라 혁명세력 내부에 기회주의자들이 아직도 또아리를 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차베스는 예전부터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 내부의 기회주의와 관료주의에 맞서서 민중들이 직접적으로 정치에 개입해야 한다고 얘기해 왔다. 이것은 “가난을 끝장내는 유일한 방법은 빈민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차베스의 신념과 철학에 기반하고 있다. 차베스가 개헌을 통해 ‘새로운 권력구조’를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대의제의 한계를 넘어 민중들이 정치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기반을 확대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임기연장 및 연임제한 철폐
가장 논란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는 내용은 203조를 수정하는 개헌안으로 대통령의 임기를 6년에서 7년으로 연장하고 연임이 가능하도록 제한을 없애는 내용이다. 혁명 반대파들은 차베스가 쿠바식 독재를 꿈꾸고 있다며 즉각 격렬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과연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의장이 독재를 하고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이러한 반응에 대해 베네수엘라 부통령 호르헤 로드리게즈는 연임제한 철폐에 대한 우파들의 공격은 민주주의와 전혀 상관이 없음을 언급하며, 바로 우파들이야말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차베스 정부를 2002년에 쿠데타로 전복하려 했음을 지적했다.
개헌안이 통과되면 차베스는 7년의 임기를 마친 후에 다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대통령 선거라는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당선이 되어야 다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개헌안 자체가 국민투표를 통해 승인되어야하기 때문에 차베스의 임기연장 여부는 전적으로 국민의 의사에 달린 것이다. 현재의 분위기로는 개헌안이 어렵지 않게 국민투표로 승인될 것으로 예측된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차베스라는 지도자와 함께 지속적으로 혁명 사업을 진행하기 원한다는 의미이다.
베네수엘라 혁명은 21세기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한참 내부의 적뿐만 아니라 외부의 적(미국)과도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다.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연임제한이라는 형식 민주주의에 발목이 잡혀 훌륭한 혁명 지도자와 함께 성공적인 길을 열어나갈 기회가 차단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베네수엘라 민중들이 차베스와 함께 하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만약 차베스가 민중의 기대와 희망을 저버린다면 그들은 베네수엘라 헌법에 명시된 권리를 사용해서 차베스를 끌어내릴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베네수엘라 민중의 판단에 달린 것이며 현재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사회경제 분야의 전진
차베스는 선주민과 흑인의 문화를 보호하고 장려하며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개헌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노동자들에 비해 복지혜택이 취약했던 영세자영업자들을 위해 ‘사회안전기금’을 마련해서 유급휴가, 퇴직금, 출산 및 육아휴가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21세기 사회주의를 전진시키기 위해 공동재산, 공동체 소액금융, 공동재산조합, 공동저축 등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적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내용도 개헌안에는 담겨있다. 석유, 천연가스 등의 자원에 대한 국유화에 관한 헌법의 내용을 더욱 강화해서 민간기업이 이윤추구를 위해 자원을 사용할 여지를 완전히 차단할 계획이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확고히 하고 거시경제안정화기금을 폐지함으로써 정경분리라는 허울좋은 슬로건을 내걸고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들을 추진하던 경제기구들을 개혁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개헌안 중에서 또한 눈에 띠는 것은 헌법 90조로 하루 8시간 노동제를 하루 6시간 노동으로 단축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단축해서 일자리를 창출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자기개발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이다.
자본가들은 특히 헌법 90조에 대해서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개헌안대로 노동시간이 줄어들게 되면 이전과 같은 임금을 지급하기 힘들며, 비용증가로 인해 상품가격을 올려야 할 것이라고 불만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정부가 최저임금과 물가를 강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가들이 원하는대로 일이 진행되기는 힘들 것이다. 이러한 조치들은 자본주의적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공동체적 협동조합이나 국유화된 기업으로 전환될 수 있는 조건들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자본가들이 회사를 경영하면서 예전처럼 골프치고 미국 마이애미로 가서 쇼핑할만큼 돈벌기가 어렵다고 불평한다면 차라리 그 공장을 노동자들에게 넘겨주기 바란다. 현재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노동자 자주관리 운동을 통해 노동자들이 공장을 스스로 잘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은 증명되고 있다. 공장은 자본주의적으로만 운영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군대의 개혁
현행 헌법에 베네수엘라 군대는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명시되어있다. 그러나, 헌법 개정안에는 베네수엘라의 군대를 적극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군대는 애국적이며, 인민의 군대이며, 반제국주의 군대라고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혁명 사업에 이바지하는 군대의 성격을 명확하게 드러낸 것이다. 또한, 예비군의 역할을 확대강화해서 베네수엘라 군대의 중요한 한 축으로 세우며, 군을 현대화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남한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군대라는 것은 생소한 개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남쪽의 특수한 경험일 뿐이다. 차베스 자신이 공수부대의 장교 출신의 혁명적 군인이며,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진보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세력이 군부이다. 조국과 혁명을 위해 목숨을 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베네수엘라의 군인들인 것이다.
개헌안에 대한 입장은 차베스 정부와 혁명에 대한 입장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베네수엘라의 보수세력들은 개헌안에 대해서 사사건건 불만 일색이다. 그러나 압도적 대중들이 개헌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반대세력들은 개헌안을 무력화시킬 마땅한 대응책이 없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미 권력은 그들의 수중에 있지 않다.
인터넷뉴스 8월 18일자 기사에서는 베네수엘라의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최근 베네수엘라 민간 여론조사 기구인 다따아날리시스의 발표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국민 82%가 자신의 미래가 희망적이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62%는 차베스가 추진중인 볼리바리안 혁명 프로젝트가 긍정적으로 잘 추진이 되고 있다고 응답했다. 나아가 83%의 국민들은 자신들의 소득수준이 향상되고 있다고 대답하고 앞으로 더욱 잘살게 될 것이라고 차베스 정부에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혁명과정에서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경험하고 자신들이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힘을 가진 주체임을 자각한 베네수엘라 민중들에게 더 이상 두려움은 없다. 혁명을 통해 자신들이 행복해질 수 있음을 알게 된 베네수엘라 민중들은 차베스와 함께 새로운 사회, 21세기 사회주의를 열어갈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이번 개헌은 2007년에 새로 시작된 차베스의 임기동안 추진할 새로운 개혁 조치들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의미가 있다. 앞선 내용들에서 확인했듯이 헌법 350개 조항 중에서 33개만을 개정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적 측면 등 다루지 않는 범위가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변화가 예상된다.
베네수엘라에서는 현재 집권당인 MVR(제5공화국운동)을 해체하고 진보적인 제 정당사회단체들을 연합사회주의당이라는 단일한 혁명정당으로 통합하는 당건설 사업이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최근 소식에 의하면 조직된 당원수가 6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당건설 사업 또한 올해 안에 완수할 계획이다. 개헌과 당건설 사업이 올 해 안에 끝나면 2008년 부터는 새로운 내용으로 더욱 21세기 사회주의 건설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내용의 폭과 깊이가 어떠할지 사뭇 기대가 된다.
“혁명에서 민중이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 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라”고 얘기한 독일 철학자의 말이 베네수엘라에서 실현되고 있다면 과도한 해석일까? 최근에 베네수엘라 혁명에 대한 관심이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면서 어느덧 이남의 진보진영 사이에서도 ‘혁명’이라는 단어가, 그리고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살아나고 있다. 이것이 혁명의 진정한 위력이 아닐까.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말이다.
베네수엘라 개헌, 의미와 전망
** 월간 지 2007년 10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
베네수엘라 개헌, 의미와 전망
전세계 진보진영의 눈길을 한몸에 받고 있는 베네수엘라. 21세기 사회주의를 부르짖으며 볼리바리안 혁명(중남미 해방 영웅 시몬 볼리바르를 따르는 혁명)을 이끌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이 2007년 1월 대통령 두 번째 임기에 들어선 이후 꾸준히 제기되어 온 개헌 문제를 드디어 제출했다.
미국발 외신을 그대로 받아적고 있는 한국의 언론들에서는, 차베스가 대통령 임기를 6년에서 7년으로 연장하고 연임을 제한하고 있는 현재의 헌법을 고쳐서 영구집권의 길, 즉 독재자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얘기를 일제히 떠들어대고 있다. 차베스가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실시해서 수많은 빈민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일에는 조용한 언론들이 좋은 건수를 만났는지 신이 났다.
2007년 8월 15일, 이 날은 2004년 같은 날의 대통령 소환투표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기도 했다. 차베스는 기념행사에서 전격적으로 개헌안을 발표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이날 저녁 의회에서 4시간의 특별 연설을 통해 현행 헌법 350개 항 가운데 개정되는 것은 33개항인 점을 지목하며 "이는 10%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개헌을 통해 새 시대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네수엘라 의회는 8월 21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제출한 개헌안을 1차 심의에서 통과시켰다. 167명 의원 전원이 차베스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의회는 앞으로 2차례 더 심의를 거쳐 개헌안을 비준하고 국민투표에 넘기게 되어 있는데 현재의 정치일정으로서는 12월 초에 국민투표가 실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개헌안 마련에 참여한 카를로스 에스카라 의원은 "우리는 사회주의 국가, 사회주의 정부 그리고 사회주의 민주주의를 굳건하게 건설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999년에 처음으로 대통령에 취임해서 벌써 집권 9년째에 접어드는 차베스도 그동안의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취임 뒤 곧바로 제헌의회를 소집해서 기존의 헌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헌법을 제정했다. 구 헌법에 근거한 기존의 국가기구를 해체하고 새로운 헌법에 근거해 2000년에 대선, 총선, 지방선거를 한꺼번에 새로 치러 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국가기구를 구성했다. 그리고, 그동안 미제국주의와 소수의 기득권층만을 위해 석유수입을 사용해 온 PDVSA(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을 민중의 통제 하에 두기 위한 개혁을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미제국주의와 국내 보수반동세력의 쿠데타 음모로 2002년 4월, 차베스는 죽을 고비를 맞지만 민중들과 애국적 군인들이 역쿠데타를 일으켜 48시간만에 차베스를 구출하는 기적같은 일이 벌어진다. 2002년 11월에는 자본가들과 보수어용노조가 한통속이 되어 석유산업을 중심으로 총파업을 벌인다.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PDVSA를 민중의 통제하에 두게 된 차베스는 이 회사에서 나오는 재원을 통해 민중들을 위한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실시하게 된다. 차베스에게 대통령직은 민중혁명을 수행하기 위한 자리일 뿐이다.
민중혁명을 위해 대통령이 되어서도 죽을 고비를 넘기는 혁명가 차베스가 과연 임기욕심 때문에 개헌을 하는 것일까? 진실을 알게되면 삼척동자라도 이러한 의문점이 들게 된다. 그렇다면 베네수엘라의 개헌안은 어떠한 내용들을 담고 있을까?
새로운 권력 구조
차베스는 개헌을 통해 ‘새로운 권력구조’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계획의 일환으로 주민 총투표를 통한 승인 하에, 기존의 지방정부 및 지방의회의 통제를 넘어 주민들이 스스로 통치하는 자치구들을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일련의 개헌안을 제시했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넘어 직접 민주주의를 강화해 나가고 있는 볼리바리안 혁명 과정을 심화시키는 중요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조치는 다른 의미에서 또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아직 지역 차원에서는 혁명과정에 소극적이거나 심지어는 반대하기도 하는 인사들이 지방정부 및 의회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차베스는 이런 지역에서 주민들이 지방정부 및 의회를 통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들이 통치기구를 구성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고 혁명을 심화시켜 나갈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위의 조치에 대해 반대세력 뿐만 아니라 차베스 지지세력 내부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차베스 혁명정부에 협력하면서도 개량적인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알려진 Podemos의 수크레 주(州) 책임자 라몬 마르티네즈는 “지역의 자치권을 지켜내겠다” 면서 주지사와 시장들을 반대파로 조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역의 자치권이란 것은 지방정부와 의회의 자치권이기 이전에 지역주민의 자치권일 것이다. 지역의 주민자치를 직접 민주주의 방식으로 더욱 심화시키는 개헌안에 대해 지역 자치권을 지키겠다며 반대하는 것은 기득권 챙기기로 밖에는 해석할 수 없다. 베네수엘라 혁명세력 내부에 기회주의자들이 아직도 또아리를 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차베스는 예전부터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 내부의 기회주의와 관료주의에 맞서서 민중들이 직접적으로 정치에 개입해야 한다고 얘기해 왔다. 이것은 “가난을 끝장내는 유일한 방법은 빈민들에게 권력을 주는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차베스의 신념과 철학에 기반하고 있다. 차베스가 개헌을 통해 ‘새로운 권력구조’를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대의제의 한계를 넘어 민중들이 정치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기반을 확대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임기연장 및 연임제한 철폐
가장 논란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는 내용은 203조를 수정하는 개헌안으로 대통령의 임기를 6년에서 7년으로 연장하고 연임이 가능하도록 제한을 없애는 내용이다. 혁명 반대파들은 차베스가 쿠바식 독재를 꿈꾸고 있다며 즉각 격렬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과연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의장이 독재를 하고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이러한 반응에 대해 베네수엘라 부통령 호르헤 로드리게즈는 연임제한 철폐에 대한 우파들의 공격은 민주주의와 전혀 상관이 없음을 언급하며, 바로 우파들이야말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차베스 정부를 2002년에 쿠데타로 전복하려 했음을 지적했다.
개헌안이 통과되면 차베스는 7년의 임기를 마친 후에 다시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대통령 선거라는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당선이 되어야 다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개헌안 자체가 국민투표를 통해 승인되어야하기 때문에 차베스의 임기연장 여부는 전적으로 국민의 의사에 달린 것이다. 현재의 분위기로는 개헌안이 어렵지 않게 국민투표로 승인될 것으로 예측된다.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차베스라는 지도자와 함께 지속적으로 혁명 사업을 진행하기 원한다는 의미이다.
베네수엘라 혁명은 21세기 사회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한참 내부의 적뿐만 아니라 외부의 적(미국)과도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다.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연임제한이라는 형식 민주주의에 발목이 잡혀 훌륭한 혁명 지도자와 함께 성공적인 길을 열어나갈 기회가 차단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베네수엘라 민중들이 차베스와 함께 하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함께 가야 하는 것이다. 만약 차베스가 민중의 기대와 희망을 저버린다면 그들은 베네수엘라 헌법에 명시된 권리를 사용해서 차베스를 끌어내릴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베네수엘라 민중의 판단에 달린 것이며 현재 그렇게 진행되고 있다.
사회경제 분야의 전진
차베스는 선주민과 흑인의 문화를 보호하고 장려하며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개헌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노동자들에 비해 복지혜택이 취약했던 영세자영업자들을 위해 ‘사회안전기금’을 마련해서 유급휴가, 퇴직금, 출산 및 육아휴가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21세기 사회주의를 전진시키기 위해 공동재산, 공동체 소액금융, 공동재산조합, 공동저축 등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적 경제활동을 지원하는 내용도 개헌안에는 담겨있다. 석유, 천연가스 등의 자원에 대한 국유화에 관한 헌법의 내용을 더욱 강화해서 민간기업이 이윤추구를 위해 자원을 사용할 여지를 완전히 차단할 계획이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에 대한 정부의 통제를 확고히 하고 거시경제안정화기금을 폐지함으로써 정경분리라는 허울좋은 슬로건을 내걸고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들을 추진하던 경제기구들을 개혁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개헌안 중에서 또한 눈에 띠는 것은 헌법 90조로 하루 8시간 노동제를 하루 6시간 노동으로 단축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단축해서 일자리를 창출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자기개발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이다.
자본가들은 특히 헌법 90조에 대해서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개헌안대로 노동시간이 줄어들게 되면 이전과 같은 임금을 지급하기 힘들며, 비용증가로 인해 상품가격을 올려야 할 것이라고 불만을 표하고 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정부가 최저임금과 물가를 강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자본가들이 원하는대로 일이 진행되기는 힘들 것이다. 이러한 조치들은 자본주의적 기업들이 자연스럽게 공동체적 협동조합이나 국유화된 기업으로 전환될 수 있는 조건들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자본가들이 회사를 경영하면서 예전처럼 골프치고 미국 마이애미로 가서 쇼핑할만큼 돈벌기가 어렵다고 불평한다면 차라리 그 공장을 노동자들에게 넘겨주기 바란다. 현재 베네수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노동자 자주관리 운동을 통해 노동자들이 공장을 스스로 잘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은 증명되고 있다. 공장은 자본주의적으로만 운영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군대의 개혁
현행 헌법에 베네수엘라 군대는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명시되어있다. 그러나, 헌법 개정안에는 베네수엘라의 군대를 적극적으로 정의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군대는 애국적이며, 인민의 군대이며, 반제국주의 군대라고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혁명 사업에 이바지하는 군대의 성격을 명확하게 드러낸 것이다. 또한, 예비군의 역할을 확대강화해서 베네수엘라 군대의 중요한 한 축으로 세우며, 군을 현대화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남한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진보적이고 혁명적인 군대라는 것은 생소한 개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남쪽의 특수한 경험일 뿐이다. 차베스 자신이 공수부대의 장교 출신의 혁명적 군인이며, 베네수엘라에서 가장 진보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세력이 군부이다. 조국과 혁명을 위해 목숨을 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베네수엘라의 군인들인 것이다.
개헌안에 대한 입장은 차베스 정부와 혁명에 대한 입장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베네수엘라의 보수세력들은 개헌안에 대해서 사사건건 불만 일색이다. 그러나 압도적 대중들이 개헌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반대세력들은 개헌안을 무력화시킬 마땅한 대응책이 없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미 권력은 그들의 수중에 있지 않다.
인터넷뉴스 8월 18일자 기사에서는 베네수엘라의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최근 베네수엘라 민간 여론조사 기구인 다따아날리시스의 발표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국민 82%가 자신의 미래가 희망적이라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62%는 차베스가 추진중인 볼리바리안 혁명 프로젝트가 긍정적으로 잘 추진이 되고 있다고 응답했다. 나아가 83%의 국민들은 자신들의 소득수준이 향상되고 있다고 대답하고 앞으로 더욱 잘살게 될 것이라고 차베스 정부에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혁명과정에서 무상의료, 무상교육을 경험하고 자신들이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힘을 가진 주체임을 자각한 베네수엘라 민중들에게 더 이상 두려움은 없다. 혁명을 통해 자신들이 행복해질 수 있음을 알게 된 베네수엘라 민중들은 차베스와 함께 새로운 사회, 21세기 사회주의를 열어갈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이번 개헌은 2007년에 새로 시작된 차베스의 임기동안 추진할 새로운 개혁 조치들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의미가 있다. 앞선 내용들에서 확인했듯이 헌법 350개 조항 중에서 33개만을 개정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적 측면 등 다루지 않는 범위가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변화가 예상된다.
베네수엘라에서는 현재 집권당인 MVR(제5공화국운동)을 해체하고 진보적인 제 정당사회단체들을 연합사회주의당이라는 단일한 혁명정당으로 통합하는 당건설 사업이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최근 소식에 의하면 조직된 당원수가 6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 당건설 사업 또한 올해 안에 완수할 계획이다. 개헌과 당건설 사업이 올 해 안에 끝나면 2008년 부터는 새로운 내용으로 더욱 21세기 사회주의 건설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내용의 폭과 깊이가 어떠할지 사뭇 기대가 된다.
“혁명에서 민중이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 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라”고 얘기한 독일 철학자의 말이 베네수엘라에서 실현되고 있다면 과도한 해석일까? 최근에 베네수엘라 혁명에 대한 관심이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나면서 어느덧 이남의 진보진영 사이에서도 ‘혁명’이라는 단어가, 그리고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살아나고 있다. 이것이 혁명의 진정한 위력이 아닐까.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