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대장정, 노동운동의 희망과.....

김영경2007.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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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100%" border="0" cellPadding="0" cellSpacing="0" 현장대장정, 노동운동의 희망과 혁신을 파종하다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의 현장대장정 후기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시련은 겹쳐왔다. 대의원대회가 폭력사태로 얼룩지는가하면 노조비리사건들이 이어졌다. 80만 조합원의 지도부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하면서 밤새 잠 못 자고 시달렸다.
  
   자본과 권력은 민주노총을 향하여 집중공격을 퍼붓는데 우리는 내부갈등이 심화될대로 심화되고 있었다. 20년 동안 줄기차게 달려온 노동운동의 길은 험준했지만 언제나 기쁘고 가슴 벅찬 희망의 길이었고 승리의 길이었다. 하지만 2년 전 가을은 노동운동의 위기라는 내외부의 진단 속에 절망이 엄습하면서 반석처럼 단단하게 단련시켜온 노동해방의 신념마저 잠시 흔들리는 듯했다.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수없이 고민하면서 하루 종일 운동장을 달리기도하고 산에도 올랐다. 사무치게 외로웠다. 마음속에서 피가 난다는 말을 실감하던 그때 현장에서 전화가 왔다. 대동공업노조, 현대백화점, 미도파백화점, 시그네틱스, KT노조 등등에서. “우리 조합원들에게 교육 좀 해주이소.”
  
   현장대장정, 노동운동의 희망과..... △현장대장정을 다녀온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가운데) ⓒ월간 말
  
  하지만 내가 무슨 자격으로 조합원들을 교육 한단 말인가? 망설이다가 조합원들에게 면목 없고 미안한 마음으로 용서라도 빌고 오자는 결심으로 길을 나섰다. 수많은 조합원들의 선량한 눈빛 앞에서 다리가 떨리고 온몸이 떨려왔다. 흔들리는 목소리로 “동지들!”하고 부르는데 가슴에 불덩이가 떨어지듯 뜨거워졌다. 나의 영원한 동지는 조합원임을 마음깊이 진심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는 ‘노동조합간부의 자세와 역할’에 대해 말하면서 동지들은 “나와 같은 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절실하게 호소했다. 그런 나의 강의를 들은 조합원들은 한결같이 힘내라고, 실망하지 말라고, 우리와 함께 새로운 민주노총을 만들어가자고 내 손을 잡아 주었다. 먹구름만 그득하던 마음에 밝은 햇살이 비쳐들었다. 그 후 기회만 되면 현장으로 찾아가서 같이 자고 이야기했다. 나의 현장대장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현장과 함께 호흡하자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당선되었을 때에도 조합원들이 동지적 애정으로 다시 한 번 기회를 준 것이라는 확신으로 조합원에게 신뢰받는 민주노총 집행부가 되는 길은 현장과 함께 호흡하는것 말고는 없다고 생각했다. 현장에 가면 한결같은 얘기가 중앙에서 내려오는 지침이 너무 많고 일방적이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민주노총 사업지침이 현장곳곳에 빠르고 깊게 스며들어 실천되는 것이 아니라 공문을 통해 지역본부, 산별조직 등 민주노총 조직체계를 따라 내려가면서 반드시 받아 안아야 할 나의 요구가 아닌 빨리 처리해야할 실무로 전락하는 것이다.
  
  중앙의 지침들이 더욱 풍부해지는 실천방안들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조직체계까지 건조하게 전달되다가 현장에 가 닿기도 전에 투쟁지침은 앙상한 뼈대만 남기고 실천해야할 사명이 아닌 강요되는 고역인 경우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굳어졌던 것이다.
  
   현장대장정은 이러한 동맥경화를 뚫기 위해 현장조합원들의 정서, 고민, 희망, 요구 등을 먼저 듣고 노동운동이 나아갈 바를 정확히 찾자는 의도에서 시작한 사업이다.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집행부의 목소리가 되고 조합원들의 요구대로 사업해 가기 위해 현장속으로 뛰어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중앙의 일은 어떻게 하려느냐’는 걱정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현장의 신뢰를 잃어버린 민주노총 지도부가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장의 힘을 살려내는 것에서 시작해야한다고 믿고 밀어부쳤다.
  
   현장대장정, 노동운동의 희망과..... △현장의 노동자들과 만나 악수를 나누는 이석행 위원장 ⓒ월간 말
  
  현장을 관찰하는 힘, 현장을 느끼는 힘, 현장을 체험하는 힘, 현장으로 되돌아가는 힘이야말로 당당한 민주노총의 원동력이며 노동운동의 원동력이라고 믿었다. 우직하게 시작하고 싶었다.
  
   지난 3월26일 시작한 현장대장정은 오전 6시에서 시작하여 이튿날 새벽2시에 마감하는 일정으로 8월31일까지 5개월간 진행됐다. 16개 지역본부를 거점으로 총 547개 사업장을 찾았다.
  
   꽃샘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던 3월 26일 오전5시 인천송내역 인력시장에서 새벽부터 일자리를 찾아 나선 건설일용직 노동자들과 함께 현장대장정 첫날을 열었다. 건설 현장 내 ‘함바집’에 들어서자 아침 식사를 하던 노동자들은 깜짝 놀라 경계하는 듯한 표정까지 지었다.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밀자 그들은 겸연쩍게 인사하고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절반이 넘는 중국동포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한 노동자가 내게 일단 한 달 뒤에 월급이 나오는 속칭 쓰메끼리(유보임금)와, 아파트 분양가 인상에도 15년째 제자리 수준인 일당 문제를 호소했다.
  
  건설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고 자만했던 나는 첫날 건설현장을 방문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유보임금문제나 저임금문제 등은 건교부 장관을 만났을 때도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문제였다. 현장에 와서 조합원들에게 직접 애기를 들으면서 알게 된 것이다. 첫 날 건설노동자와 현장 방문은 마치 선거에 출마한 뒤 인사하는 것처럼 어색하게 시작했지만 현장의 힘을 확인하고 반드시 현장대장정을 끝까지 해내겠다는 결심을 굳힌 날이었다.
  
   160여 일 동안 현장을 누비면서 만난 조합원들을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구슬땀을 흘리면서 민주노총에 대한 변함없는 희망을 보여준 우리 조합원들은 그 누구보다 훌륭했다. 이랜드비정규여성노동자를 비롯해, 망향휴게소, 금산·파주축협, 충주대, 콜텍, 정안농산 등 대부분 여성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말 그대로 뼈아픈 고통이었다. 콜텍은 80%가 여성인 사업장인데 매년 20억 원의 흑자를 내고 부채비율도 20%가 안 되는 회사가 고용불안 때문에 노조를 만든 여성노동자에게 상급단체를 바꾸라는 요구를 하고 말을 듣지 않자 폐업을 했다.
  
   또 지역의 한 예술단에서는 기관장이 술자리에서 연주하라고 시켰다가 거부했다고 해고한 경우도 있었다. 겉으로는 화려한데 안으로 보면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런데 어렵고 힘든 노동자일수록 민주노총에 대한 사랑은 깊었다. 80만 조합원 누구도 애환 없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힘들고 어렵게 싸우는 조합원들을 보면서 같이 울고, 힘들게 싸워 이긴 조합원들을 보면 희열을 느꼈다. 민주노총 소속 노조라고 부르기에도 곤란한 노조도 봤고, 민주노총 깃발 하나 잡고 희망이라고 얘기하는 노조도 있었다.
  
   현장대장정, 노동운동의 희망과..... △불꽃 튀는 노동의 현장. "당신이 민주노총 입니다" ⓒ월간 말
  
   “조합원동지 여러분, 반갑습니다. 여러분이 있는 곳이 민주노총이며 여러분이 민주노총의 희망입니다!” 현장대장정 동안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라며 눈물을 쏟는 버스노동자, 내 손을 잡아끌며 쓰레기봉투가 터지도록 어패류 찌꺼기가 담긴 모양을 보여주고, 비린내가 피부를 파고드는 어시장의 쓰레기더미를 함께 치우며 제대로 대접받지 못함을 시시콜콜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일러바치는 어시장의 늙은 노동자, 사다리를 잡은 손아귀의 힘이 빠지는 통에 순간 죽음을 떠올리며 상공 80m까지 쫓아 올라가 만나야했던 타워크레인 노동자, 투쟁천막에서 위원장과 같이 잠을 청하는 일을 박수를 치며 반기던 중년의 여성노동자, 그리고 미처 만나 뵙지 못하고 안타깝게 보내야 했던 택시노동자 허세욱 열사, 또 ‘위원장님 식사를 못해서 어떡하냐’고 못내 잡은 손을 놓지 못하던 휴게소 여성노동자,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노조현판식을 하며 남몰래 눈물 훔치던 청소용역 여성노동자, 회사가 어용노조를 내세워 교활한 탄압을 하는 중에도 반드시 민주노조를 사수하겠다고 약속하는 투박한 플랜트노동자까지 그 자신들이 모두 민주노총임을 알리고 더불어 나도 깨닫는 시간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 소박한 노동자들에게 현장대장정의 목표가 △지도부-현장간부-현장조합원 상호간의 신뢰와 결합력 강화 △총괄적인 현장조직력강화 전망과 방향을 제시하여 공감대 형성 △당면현안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원들과 교감하며 현장과 함께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딱딱하게 설명하기 보다는 “당신이 민주노총입니다”라는 단 한마디의 의미를 제대로 알린다면 그걸로 족하다 싶었다.
  
  그렇게 전국을 돌며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농부가 되기로 했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조합원들과의 만남 후에도 어김없이 이어지는 이른 아침의 일정은 휴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일주일씩 돌아가면서 대장정에 참가했던 간부들 대개가 피곤에 지친 모습으로 나를 강철체력이라고 추켜세웠지만 강행군에 다리가 무겁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는 오히려 스스로를 채찍질 하는 것으로 기운을 북돋았다.
  
   현장대장정, 노동운동의 희망과..... △조합원들의 출ㆍ퇴근 선전전에도 함께하고 ⓒ월간 말
  
  졸음을 쫒느라 일부러 서서 강연하고 현장을 순회하는 발걸음도 빠르게 재촉함으로써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조합원들에 대한 약속을 곱씹으며 쓰러질 각오로 나선 길이었기에 난 악착같을 수 있었지만 특별일정으로 함께 했던 간부들은 무척이나 지치고 피곤했을 것이다. 함께한 간부들에게도 감사한 일이다.
  
  현장과 함께 희망을 추수할 때
  
  현장대장정. 처음 나서는 생소한 길이기에 적잖은 냉소도 있었고 얼마나 성공적이었냐는 공격적인 질문도 있었지만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민주노총은 상임집행위회, 중앙집행위원회, 중앙위원회, 대의원대회 등 매 의사결정 시기마다 끝없는 논란과 논쟁을 거듭하며 결론을 마련한다. 날 선 공방이 오가고 그러면서도 속 시원한 해답을 찾기란 좀처럼 어렵다. 그 중심에 서 있는 민주노총 위원장은 그래서 참으로 어려운 자리이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현장대장정을 통해 각인된 현장은 커다란 힘이 되고 있다. 생동감 있는 현장의 얘기를 전하고 현장조합원들의 바람과 관점을 통해 의견을 제시하고 실천을 도모하는 것으로 난제를 풀어 온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렇게 결정된 방침이 조금씩 조금씩 중앙과 현장을 하나로 뭉쳐내리라 기대한다.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10년은 노동운동이 약진해왔던 시기였지만 IMF 이후 10년은 국내외 자본의 총공세 속에서 어려움을 거듭 겪었던 시간이었다. 그 위기의 시기가 짙게 드리운 어둠을 반성하며 많은 고민을 해왔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하다”라는 말이 있듯 그럴 때마다 난 이론에 집착하기 보다는 투박하지만 현장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신념으로 알고 살아왔다. 현장대장정 또한 그 신념의 실천이었다.
  
   신념의 실천은 당연한 것이었지만 현장대장정을 주장했던 내가 당시 얼마나 교만했던가를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학비를 마련하기 위한 광산노동에서부터 시작해 오랜 세월 나의 또 다른 이름이었던 노동자. 그 이름을 자랑으로 여기며 현장에 뿌리박은 투쟁으로 잔뼈가 굵었다고 자부했던 나는 금속노조 부위원장, 민주노총 사무총장을 거치면서 중앙과 현장을 모두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현장대장정, 노동운동의 희망과..... △강행군 속에 피곤이 몰려 왔다 ⓒ월간 말
  
  그러나 현장대장정이 가져다 준 체험은 현장의 역동성과 노동자의 지혜를 다시금 나에게 일깨워주었고, 더불어 새로운 민주노총의 모습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현장대장정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민주노총을 조합원들에게 돌려주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는데 그것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었다. 민주노총은 몇몇 활동가들이 쥐고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열심히 노동하고 투쟁하고 탄압받는 현장이었고, 현장대장정은 민주노총 간부들이 잃어버렸던 민주노총을 찾아나서는 길이었다. 조합원들의 가르침은 준절했다.
  
   현장대장정 일정의 80% 정도를 중소영세사업장의 현장과 투쟁을 찾아 나서는 것으로 할애했다. 인간 네비게이션이라는 농담을 들을 만큼 전국의 곳곳을 누비고 다닌 경험을 갖고 있었지만 현장대장정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곳을 방문하면서는 “아, 이런 곳도 민주노총 사업장이었구나!”하는 경험을 축적해야 했다. 건물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작은 청소업체에서부터 어느덧 잊혀져버린 광산, 그리고 국가의 중추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곳까지 사회 전반을 받치고 있는 민주노총의 면면은 나에게 새로운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이들 모두를 촘촘히 엮어낸 그물을 가진 민주노총이라면 1,500만 노동자에게 만선의 기쁨을 선물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힘이 받쳐주지 못하는 대화는 구걸이다. 정부와 자본과 언제든 대화할 의지가 있으며 또 적잖은 시도도 해봤지만 저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힘을 보여주기를 원하는 듯하다. 민주노총은 오직 현장의 노동자에게 성실함과 책임감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힘 없이 지배자들을 설득시키는 행위는 비굴하게 보인다. 3년 임기 내에 반드시 80만 민주노총의 힘을 사무치게 확인시켜 줄 것이다.
  
   현장대장정, 노동운동의 희망과..... △울산미포조선의 노동자들 ⓒ월간 말
  
   이제 현장에서 뽑아낸 혁신과제를 충실하게 이행한다면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당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현장을 고려하지 못한 투쟁지침 및 지역본부의 실정에 맞지 않는 조직운영 개선 △현장조직력 강화를 위한 실질적 대책 마련 △민주노총 조직운영 전반의 개선 △전략적인 사업과제의 수립 등 아직은 정리가 좀 거칠다 싶은 혁신과제들을 실천하기 위한 대장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현장대장정보다도 더 광범위한 조직실천이 요구된다.
  
   즉 민주노총 산하 제 조직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혜가 필요하다. 현장대장정이든 총파업이든 결국 현장과 조직이 움직여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몸 속 가득 현장의 기대와 비판을 담고자 했던 내게 주어진 과제이기도 하다.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바느질 놓듯 현장의 뜻을 조직 전체에 전할 것이다.
  
  가을이다. 봄부터 이어 온 뉴코아-이랜드 투쟁을 추석 전에 결실 맺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녹록치 않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이제 새로운 방식으로 현장과 대화하고자 한다. 고단한 노동자들이 계속 절망을 추수해서는 안 된다. 마침내 희망을 추수할 때라고 우리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장대장정은 바로 그 희망과 혁신을 추수키 위한 파종이었다. 천하지대본인 농업의 땅처럼 노동운동의 현장 또한 땅과 같다. 한시라도 잊는다면 근본을 무너뜨리게 될 것이다. 땅을 딛고 힘차게 나서는 큰 걸음, 현장대장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현장은 살아있다.


2007년09월21일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