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언어 가장 작은 은사 이면서 가장 흔한 은사_ 하늘의 언어, 방언 하지만 그 가운데에선 가장 기본적인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바라볼 수 있다. 우린 왜 _ 작은 것을 통해 큰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가? 다시금 _ 나의 무지를 돌아보게 만든 책. 김우현 PD를 다시금 조명하게끔 한 책.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로마서 5:5)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4)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이사야 35:6)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이사야 11:1-3) 성령님은 흔히 생각하듯 단순한 어떤 체험 또는 능력이 아니다.그분은 이 땅에서 창조와 구속사를 실행하시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나라의 본질적인 영감과 지식, 모략을 주시는분이시다.성령님의 치유와 은사 체험의 영역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재능과 모략의 성령님이라는 것_ 성령님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와 본질을 조명하신 진정한 저자이시며 '진리의 성령님'이시다.그리고 우리가 가장 갈망해야 하는 그 분의 능력은 _여호와를 경외하는 기름부음인 것이다. 이 것을 통해 진정한 능력과 전략과 회복이 나온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고린도 전서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고린도 전서 14:4)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고린도 전서 14:39)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린도 전서 14:18)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 전서 12: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고린도 전서 2:7)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린도 전서 2:7)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고린도 전서 14:22)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사야 28:11-12) # 방언은 구원과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시는 성령님과 더불어 기도하는 하늘 보좌로부터 흘러나온 '하늘의 언어' 이다.많은 이들이 방언을 하는데도 능력의 삶이 열리지 않는 이유는결국 주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그것을 갈망할 때, 능력으로써 깊어지기 때문이다.그저 적당히 어떤 체험을 하려는 심산이 아니라진실한 순종의 시간으로 우리 영혼을 가득 채우는 노력이 필요하다.방언의 은사는 오늘날 엄청난 영적 공격을 당하고 있는 교회가 음부의 권세를 이기기 위해반드시 회복해야 할 하늘의 능력이다.방언은 단순히 개인적인 은사의 문제를 넘어선다.오순절에 초대교회에서 그랬듯이 이것은 하늘 아버지가 이 땅을 여시는 통로다.이것은 특이한 코드에 집착하는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작업이 아니다.하늘 아버지의 마음이다. 방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 자기의 덕을 세우는 것', 즉 '영적인 충전' 이다.초대 교회 때 그랬듯이 방언은 오늘날 지치고 무기력해진 주님의 교회를 강하게 충전시키는 귀중한 에너지다.1
하늘의 언어 가장 작은 은사 이면서 가장 흔한 은사
하늘의 언어
가장 작은 은사 이면서 가장 흔한 은사_ 하늘의 언어, 방언
하지만 그 가운데에선 가장 기본적인
성령님의 내주하심을 바라볼 수 있다.
우린 왜 _ 작은 것을 통해 큰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가?
다시금 _ 나의 무지를 돌아보게 만든 책.
김우현 PD를 다시금 조명하게끔 한 책.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로마서 5:5)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4)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이사야 35:6)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이사야 11:1-3)
성령님은 흔히 생각하듯 단순한 어떤 체험 또는 능력이 아니다.
그분은 이 땅에서 창조와 구속사를 실행하시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나라의 본질적인 영감과 지식, 모략을 주시는분이시다.
성령님의 치유와 은사 체험의 영역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재능과 모략의 성령님이라는 것_
성령님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와 본질을 조명하신
진정한 저자이시며 '진리의 성령님'이시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갈망해야 하는 그 분의 능력은 _
여호와를 경외하는 기름부음인 것이다.
이 것을 통해 진정한 능력과 전략과 회복이 나온다.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고린도 전서 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고린도 전서 14:4)
그런즉 내 형제들아 예언하기를 사모하며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라.
(고린도 전서 14:39)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고린도 전서 14:18)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 전서 12: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고린도 전서 2:7)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고린도 전서 2:7)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고린도 전서 14:22)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사야 28:11-12)
# 방언은
구원과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시는 성령님과
더불어 기도하는 하늘 보좌로부터 흘러나온 '하늘의 언어' 이다.
많은 이들이 방언을 하는데도 능력의 삶이 열리지 않는 이유는
결국 주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그것을 갈망할 때,
능력으로써 깊어지기 때문이다.
그저 적당히 어떤 체험을 하려는 심산이 아니라
진실한 순종의 시간으로 우리 영혼을 가득 채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방언의 은사는
오늘날 엄청난 영적 공격을 당하고 있는 교회가 음부의 권세를 이기기 위해
반드시 회복해야 할 하늘의 능력이다.
방언은 단순히 개인적인 은사의 문제를 넘어선다.
오순절에 초대교회에서 그랬듯이
이것은 하늘 아버지가 이 땅을 여시는 통로다.
이것은 특이한 코드에 집착하는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나 작업이 아니다.
하늘 아버지의 마음이다.
방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 자기의 덕을 세우는 것', 즉 '영적인 충전' 이다.
초대 교회 때 그랬듯이 방언은
오늘날 지치고 무기력해진 주님의 교회를 강하게 충전시키는
귀중한 에너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