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수(?)와 같은 신의 은총(!)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뿐 아니라 온 세상을 격앙시켰지만... 결국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신의 영역에
다시금 겸허함으로 고개를 숙일수 밖에 없었다.
이제 한 대학교수의 해외명문대 학위위조에 연류된 배후와 그와 연관된 부정부패적 사건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다. 배경과 스케일에 있어 단순한 개인적(?) 착오와 오류에 인한 일탈은 분명 아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접근해 본다면
확실히 한국사회는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지 못해서 비교불가- 줄을 잘 서야만 하는 나라임은 분명한것 같다.
한 영리한 여자는 자신의 프로필을 조작하고 꾸며진 커리어와 배경으로 문화계라는 감히 상류사회와 근접해 있으므로써 문제가 불거지게 만들었다.
사실 여성이 어떤 분야에서 지위를 얻는다는 건 남성중심의 사회구조속에서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게다가 적어도 박사학위라는 일정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만 하는 학력은 더우기 남녀차별(?)없는 공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은 그들의 젊은 날중 약 1000여일가량을 나라의 부름을 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과 같은 비전시시에 과연 이런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해야하는 지에 대해 자문하거나 문제를 제기한다. 남성들이 적어도 사회 경험을 정상적인 시간을 밟아 일정수준의 교육을 마친다면 대략 28~30세정도에 실질적인 독립(?)이란걸 할 수 있다.
전 동국대 교수인 신정아는 그녀가 큐레이터로 활동한 경력외에
그녀의 학력 수준을 과히 업그레이드한 터보엔진을 가진 액티브한 여성으로 언론에 전해졌다.
평가와 평판. 물론 그것들은 기존의 기득권자들에 있어 일정한 잣대이며 수준을 측정키 위함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기준과 판단의 근간이 흔들리거나 부조리해졌을때는 "수준"이라는 명제 자체가 성립되기 힘들다.
가끔 개인전이나 연주회등에 초대받을때 느끼는 것이지만 집안 잔치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스스로는 대중의 사랑을 목말라 하지만 뭔가 차별화된 존재감에 특권의식을 갖는것 또한 예술계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작품활동을 위해선 돈이 필요하고 스폰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단지 미술작품을 위한 브로커 역할만을 큐레이터가 한다면 작품의 질과 수준과는 상관없이 홍보와 마케팅적 역할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의 살롱제도와 비교되며 오히려 시스템적으로만 모방한 천박한 자본주의의 한 부분으로밖에 인식될 수 없다.
예전 어떤 가난한 작가는 물감을 살 돈이 없어 흙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방송을 본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큰 미술대전에 상을 탔다고 하더라도 경제능력이 없거나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들의 작품활동은 상당한 고통이 수반될 수 밖에 없다.
문단이든 화단이든...
그들의 그룹에 들어가려면 그 나름대로의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단지 기득권자들을 위한 투자라면 그 역시 부조리의 반복적 악습일 것이다.
신정아란 한 개인이 국정의 중심에 서 있는 공직자와의 관계와
그녀 개인의 야망을 위한 결과들이 결국은 개인의 문제가 우리가 사는 사회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에는 참으로 대단한(?) 여성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로맨스가 아무런 지위와 권력과 상관이 없었다면 단순한 개인적 애정문제로 끝났었을 것을... 이순을 바라보는 고위공직자의 순정(?)이 결국 기회균등의 원칙- 물론 실제 평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에 위배됨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더 씁쓸한것은 문제가 썩어서 이렇게 들어나기전에는 깊고 더러운 수렁을 허부적거리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되지않겠느냐는 아닐한 생각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정아 변영균 사건을 보며
한국이라는 나라가 드디어 세상에 중심에 있는 건 맞나보다.
작년 황우석박사의 줄기세포는 마치 죽어가는 어린양들을 위한
생명수(?)와 같은 신의 은총(!)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뿐 아니라 온 세상을 격앙시켰지만... 결국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신의 영역에
다시금 겸허함으로 고개를 숙일수 밖에 없었다.
이제 한 대학교수의 해외명문대 학위위조에 연류된 배후와 그와 연관된 부정부패적 사건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다. 배경과 스케일에 있어 단순한 개인적(?) 착오와 오류에 인한 일탈은 분명 아니다
개인적인 관점에서 접근해 본다면
확실히 한국사회는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지 못해서 비교불가- 줄을 잘 서야만 하는 나라임은 분명한것 같다.
한 영리한 여자는 자신의 프로필을 조작하고 꾸며진 커리어와 배경으로 문화계라는 감히 상류사회와 근접해 있으므로써 문제가 불거지게 만들었다.
사실 여성이 어떤 분야에서 지위를 얻는다는 건 남성중심의 사회구조속에서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게다가 적어도 박사학위라는 일정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만 하는 학력은 더우기 남녀차별(?)없는 공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은 그들의 젊은 날중 약 1000여일가량을 나라의 부름을 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과 같은 비전시시에 과연 이런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해야하는 지에 대해 자문하거나 문제를 제기한다. 남성들이 적어도 사회 경험을 정상적인 시간을 밟아 일정수준의 교육을 마친다면 대략 28~30세정도에 실질적인 독립(?)이란걸 할 수 있다.
전 동국대 교수인 신정아는 그녀가 큐레이터로 활동한 경력외에
그녀의 학력 수준을 과히 업그레이드한 터보엔진을 가진 액티브한 여성으로 언론에 전해졌다.
평가와 평판. 물론 그것들은 기존의 기득권자들에 있어 일정한 잣대이며 수준을 측정키 위함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기준과 판단의 근간이 흔들리거나 부조리해졌을때는 "수준"이라는 명제 자체가 성립되기 힘들다.
가끔 개인전이나 연주회등에 초대받을때 느끼는 것이지만 집안 잔치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스스로는 대중의 사랑을 목말라 하지만 뭔가 차별화된 존재감에 특권의식을 갖는것 또한 예술계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작품활동을 위해선 돈이 필요하고 스폰서가 필요하다.
하지만 단지 미술작품을 위한 브로커 역할만을 큐레이터가 한다면 작품의 질과 수준과는 상관없이 홍보와 마케팅적 역할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의 살롱제도와 비교되며 오히려 시스템적으로만 모방한 천박한 자본주의의 한 부분으로밖에 인식될 수 없다.
예전 어떤 가난한 작가는 물감을 살 돈이 없어 흙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방송을 본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큰 미술대전에 상을 탔다고 하더라도 경제능력이 없거나 지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들의 작품활동은 상당한 고통이 수반될 수 밖에 없다.
문단이든 화단이든...
그들의 그룹에 들어가려면 그 나름대로의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단지 기득권자들을 위한 투자라면 그 역시 부조리의 반복적 악습일 것이다.
신정아란 한 개인이 국정의 중심에 서 있는 공직자와의 관계와
그녀 개인의 야망을 위한 결과들이 결국은 개인의 문제가 우리가 사는 사회에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에는 참으로 대단한(?) 여성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로맨스가 아무런 지위와 권력과 상관이 없었다면 단순한 개인적 애정문제로 끝났었을 것을... 이순을 바라보는 고위공직자의 순정(?)이 결국 기회균등의 원칙- 물론 실제 평등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에 위배됨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더 씁쓸한것은 문제가 썩어서 이렇게 들어나기전에는 깊고 더러운 수렁을 허부적거리더라도 결과만 좋으면 되지않겠느냐는 아닐한 생각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착하게 산다고 알아주는 건 분명아니다.
그리고 굳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산다고 꼭 손해를 보지 않는 것
또한 아니다.
우리는 분명 무언가 잘못 배우고 잘못 받아들이고 있으며
잘못된 행동들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여기서 신정아와 변영균이라는 두 사람을 꼬집기 보다
그 두사람같은 상황과 과정들이 얼마나 이 사회에 만연해 있는가를 먼저 짚어보고 싶다.
결국 모두가 피해자이며 가해자일 뿐인
답답하고 암울한 사회를 과연 후세들에게 물려주고 싶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