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1)

김충현2007.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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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1)

1.

 

 “그냥……. 그냥 혼자 있고 싶어.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아.”

 갑작스러웠다. 그녀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시간을 달라고 하기에 그저 그렇구나 하고 생각을 했을 뿐이었다. 그리곤 다시 돌아오겠지 하고 생각을 했다.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을까? 슬프다기 보다는 오히려 정신이 없다는 표현이 더 나은 표현이리라.

 그녀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하고 말했다.

 “그럼 이제 영영 보지 못하는 건가?”

 “글쎄……. 아마 그래야 하는 것이 맞지 않나?”

 간단하고 명료했다. 다른 대답을 상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 특유의 대화하는 호흡은 기대를 가지게 한다.  그 기대를 저버리는 것은 언제나 이쪽의 경험이었다.

그녀가 살며시 얼굴을 들어 내게 다가온다. 살포시 내 입술에 그녀의 입술이 포개어졌다. 씁쓸했다. 누가 그랬던가 이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것은 연인의 키스라고. 하지만 이별하는 연인의 키스는 결코 씁쓸하다. 하지만 그녀의 웃음은 맑았다.

 

 그녀는 지쳐있었고 그런 그녀를 난 받아줄 수 없었다. 객관적 입장에서 본다면야 내 쪽이 훨씬 뚜렷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스스로를 되돌아보았을 때는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조그마한 기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 경기가 사업을 많이 힘들게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뭐, 그럭저럭 행복한 가족인듯 싶었다.

 작년에 갑작스럽게 알게 된 어머니의 대장암은 결정적으로 그녀를 힘들게 해 버렸다. 말기였다. 옆에서 바라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저 바라보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녀 역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몸부림 쳤다. 왜 자신의 어머니께 그러한 병이 생겼는지 알 수 없다며 울부짖었다. 항상 TV의 도네이션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보면 착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몹쓸 병에 걸린 장면을 보곤 하지 않은가.

 

 돌아서는 그녀의 어깨는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그걸로 되었다. 그녀는 스스로 가장 알맞은 답을 내린 것 이다 생각했다. 그렇게 또 한 번의 인연은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꾸 그녀의 등이 겹쳐보였다. 아직 나의 마음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한 듯 했다.

 

 친구 녀석을 불러내었다. 초등학교 시절 전학 후 유난히도 날 챙겨주었던 그런 녀석이었다. 그 녀석의 유일한 단점은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이다.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유난히 패션감각이 뛰어난 녀석의 머리 모양과 옷은 항상 첨단이었다.

 “왜 그래?”

 녀석은 짧지만 다분히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조용히 소주잔을 채우기 시작했다.

 “무슨 일 있어?”

 다시 한 번 물었을 때 겨우 말을 이을 수 있었다.

 “그냥……. 그냥 너랑 같이 한 잔 하고 싶어서.”

 그 한 마디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그러자 녀석은 또 무슨 청승이냐며 면박이다. 다 털어놔 보라고, 그래도 말을 하면 좀 더 나아지지 않겠냐며 물었다. 조용히 아랫입술을 물었다.

 “못난놈……. 그래 사내놈이 기집애 하나 땜에 이 난리를 치고 있다는 거야?”

 말은 밉게 해도 걱정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한 잔을 더 채우려 손을 뻗자 술병을 가로챈다. 그리곤 말없이 잔을 향해 병을 내밀며 까딱인다. 잔은 녀석을 향했다. 그리곤 조용히 채워졌다. 단숨에 한 잔이 목젖을 치고 들어간다. 쓰다. 술은 상처난 가슴을 할퀴기 시작했다. 무차별적으로. 가슴이 쓰라리고 속이 아팠다. 정신은 어지러워지고 기억이 아득해져간다. 그리곤 그걸로 끝이었다.

 

 눈을 떴을 때 천정이 아득했다. 마치 높은 곳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착각을 일으켰다. 어지러웠다. 조각나버린 기억을 짜맞추기 위해 한동안 애를 썼다. 그렇게 흘러버린 시간을 부여잡는 것이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쉽게 포기 할 수 없었다.

 이별은 항상 일방적인 것이다. 통보를 해주고 그 통보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 반려의 기회는 전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해지를 할 수 있는 쪽은 오직 통보를 하는 쪽의 선택일 뿐이다.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이쪽이 아직 희망이라는 여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리석은 희망. 그걸로 끝나버릴 그런 마음이다.

 몸을 추스르고 책상을 마주했다. 컴퓨터에 남아있는 사진 파일을 하나하나 삭제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참 사람을 우습게 만든다. 이렇게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는데……. 우스웠다. 사진 속 사람들은 하나같이 웃고 있었다. 사진의 왜곡이다. 항상 사람들은 사진을 찍을 때는 웃어야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와 그녀 역시 그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사진을 정리하다가 최근의 사진에 다다랐다. 저 사진들을 찍으며 웃는 동안에도 그녀의 머릿속은 갖은 고민들로 가득했으리라 생각하니 속이 뒤틀렸다. 저 순간에도 그리 내색을 하지 않았다니 참 무서운 사람이었다.

 

 침대에 누웠다가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보니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하늘은 층층이 각기 다른 색을 나타내고 있었다. 지상에서 가까운 쪽은 달빛이 무색할 만큼 태양을 흉내낸 인간의 빛으로 옅은 주황빛을 띄고 멀어질수록 짙은 푸른색의 벨벳천을 연상시켰다.

창가로 다가가 문을 열어 젖혔다. 살랑살랑 약한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책상에 놓였던 담배갑을 집어들었다. 한 개피를 입에 물었다가 도로 넣어둔다. 아마 그녀가 옆에 있었다면 분명 한 소리 했을 것이 분명했다. 입맛이 쓰다. 웃음이 흘렀다. 그렇게 곁에 있을 때는 죽어라 피워댔던 담배였다.

 

 “너 자꾸 필래? 어쩜 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랑 같이 있는데도 그렇게 피냐? 내가 그렇게 아무런 사람도 아냐?”

 

 문득 들린 말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주책없는 눈에선 또 여러 갈래의 강이 만들어졌다. 스무살의 사랑과 몇 년이 지난 뒤의 사랑은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누겹의 시간 동안 인류는 진화를 했다고 하는데 내 눈물샘은 어찌 그리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문득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살이 빠지거나 눈 밑에 다크서클이 생기는 식으로 티가 나지 않게 하고 싶었다. 그냥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제 ‘어른’이니까.

 배가 고프진 않았지만 가스렌지 위에 물을 올렸다. 간단히 인스턴트 라면이나 끓여 먹을 요량이었다. 봉지를 뜯고 스프를 먼저 넣었다. 중학교 이후 버릇이었다. 화학시간이었을 것이다. 물 속의 스프가 빨리 물을 끓게 한다고 배운 이후의 습관이었다. 스프를 털어 넣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아들, 일어났어? 어디서 또 그렇게 술은 퍼 드셨어? 내가 살수가 없다. 비싼 밥 먹여서 여적 키웠더니 이젠 애미한테 술국까지 끓이게 만드니?”

 어머니는 항상 그 레파토리로 잔소리를 하셨다. 쉽게 말하면 냄비에 해장거리를 해 놓았으니 먹고 속이나 풀라는 것이다. 대충 대답을 하고 끊었다. 돌아오자 물이 팔팔 김을 올리며 끓고 있었다. 계란을 넣을까 하다가 국물이 탁해질 듯 싶어서 그냥 먹기로 하였다. 냉장고에서 대충 먹다 남은 김치를 꺼내고 TV앞에 앉았다. 재미없는 드라마만 채널마다 주구장창 해대고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이었다. 이 드라마, 지난주까지는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했었다.

 TV를 끄고 일어났다. 좀 달려볼 생각이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을 때까지 대지를 밀어볼 생각이다. 유난히 엘리베이터가 느리게 움직이는듯 싶다. 역시 너무나 주관적인 관점이다. 이 아파트 지은지도 얼마 안되었고, 더구나 30층이 넘는 건물이라 초고속 엘리베이터였다.

 생각보다 밤공기는 후텁지근했다.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살 좀 빼야겠다. 우리 둘 다 너무 쪄 버렸어……. 운동해서 우리 이뻐질까?”

 

 ‘그냥 그대로도 괜찮아.’

 그녀의 말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좀 더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피가 돌고 돈다. 심장은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숨이 차온다. 힘들다. 군대를 전역하고 오랫동안 운동을 쉬었던 듯 싶다. 숨쉬기가 힘들어지자 제자리에 섰다. 몸은 자연스럽게 앞으로 고끄러졌다. 어깨가 들썩인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힘들어서 들썩이는 것 처럼 보이기에 충분했다. 이미 티셔츠는 충분히 적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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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차 수정본 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20대 중후반의 남성입니다.

 느낌을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