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춘천가는 기차>

정선미2007.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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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춘천가는 기차>

 

 

2. 


화창한 일요일 이른 아침. 나는 청량리에서 춘천행 기차에 올랐다. 얼마만인지... 지저분한 플랫폼과 녹슨 기차가 반갑기 그지없다. 내가 탄 차량은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창가 쪽  좌석이었다. 일요일 아침 등산을 가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꽤 많이 기차에 오른다. 금방 기차의 좌석이 찰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좌석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푸른 의자의 색이 많이 바래져 보인다. 하지만 시트의 감촉은 예전 그대로이다. 그리고 약간 시큼한 냄새 역시 그렇다. 오래전 그 시절 그 때 느꼈던 그 느낌이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내 옆에는 등산복 차림의 남자가 앉아 있다는 것뿐이다. 어느새 기차가 달리기 시작한다. 역사 주변의 상점들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건물 외벽에 지저분하게 피어있는 곰팡이만이 도드라져 보인다. 건물 뒤로는 파아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오랜만에 느끼는 상쾌함이다. 기차의 조용한 울림도 왠지 경쾌하기만 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어느새 기차는 대성리역에 도착해 있었다. 청량리 역에서 함께 탔었던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내린다. 하지만 아직도 내 옆 좌석의 남자는 코를 골며 고개를 내 쪽으로 기울이고 있다. 나는 다시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침 일찍 일어난 터라 졸음기가 가시지 않는다. 아직 춘천까지는 시간이 남아 있다. 오랜만에 꿈속에 빠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함께 나의 정신 또한 육체를 놓아버린다. 왠지 맛이 달다.


대학생이었던 그 시절, 나는 누군가가 내 옆 자리를 차지하는 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었는지 혼자 창 밖을 바라보며 감상에 잠기는 것을 좋아했다. 기차 뒤 편으로 스쳐지나가는 그냥 말그대로 지나가는 나무, 집 그리고 푸르스름한 강물... 모두들 그 곳에 그렇게 머물러 있었던 것이 아닌 듯 했다. 오히려 이곳 저곳으로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고정되어 있는 물체처럼 느껴진다. 그 때였다. 아득히 먼 곳으로부터 가벼운 음성이 들려온다. "저 여기 앉아도 되나요?" 딴 생각에 잠겨 창 밖을 바라보고 있는 내게 누군가 물었다. 정적인 내 마음에 소리가 생동감을 준다.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머리가 긴 여자였다. 난 잠시 머뭇거리다 "그러세요" 라고 대답하며 옆 좌석에 놓인 가방과 책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면서 짧은 순간 내 행동이 어색했다는 자책을 했다. 고맙다는 대답과 함께 긴 머리 여자는 내 옆 자리에 앉았다. 현실을 거부했던 내 몸이 이 순간만큼은 아드레날린의 분출을 느끼고 있다. 중고교 시절을 남자학교만 다녔던 내게 이런 순간은 항상 새롭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