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진, 프랑스를 보았던 궁녀

박효진2007.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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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이 끝나고 한동안 소설을 닥치는대로 읽었던 적이 있다.

 

조정래 태백산맥

황석영 삼국지

이문열 아가

박완서 미망, 그대 아직도 꿈꾸는가, 나목, 엄마의 말뚝.

권현숙 인샬라

양귀자 원미동 사람들

공지영 봉순이언니

 

대충 생각나는게 이 정도.. 아마 더 읽었을 거다.

 

 

소설은,

그 인물이 결국 죽어야 끝이나는 이야기이다.

언제까지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고 방긋 웃는 동화가 아니란 말이다.

 

 

신데렐라가 동화 속에서 왕자랑 행복하게 살았다면,

소설 속의 신데렐라는

궁궐의 법도와 예법을 익히느라 힘들어했고,

아무런 권력 기반이 없었기에 귀족들의 눈치를 보느라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냈고,

자신의 입지를 굳히려는 수단으로 왕자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인 나날을 보내다가

질려버린 왕자로부터 버림받아 서쪽 궁궐 높은 탑에서 늙어 죽던지.. 했을 것이다.

 

 

 

간접적으로 한 인간의 인생을 들여다보니

엄청난 허탈과 허무감에 빠져서 한동안 소설을 읽지 않았다..

 

굳이 유식하게 말해보자면

바로크 미술을 강타했던 바니타스 (라틴어로 무상함, 허무, 덧없음) 정신이

나에게도 찾아왔다고나 할까.

굳이 대놓고 말해보자면

삐까뻔쩍 잘나간다 난다 긴다 하는 녀석들도 종당에는 빌빌대더니 결국 죽는, 

어차피 거기서 거기인 사람 이야기인데 구태여 읽을 필요 있나..

 - 뭐 그런 생각으로 한동안 소설을 읽지 않았다. 

 

 

 

거의 3년만에 다시 읽은 소설이다. 리진.

 

 

 

배경은 조선 후기 - 명성황후와 맞물려 돌아가는 이야기이다.

프랑스 대사관의 사랑을 얻어 프랑스로 건너간 조선 최고의 궁중 무희.

하지만 다시 조선으로 되돌아와서 -

사랑하는 왕비를 따라 죽음을 선택한 한많은 여인의 이야기.

 

그녀에게는 남자의 사랑마저도 모진 형벌이었다.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은 매혹적인 그녀라서,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법한  - 너무 많은 것을 보았던 그녀라서,

남들보다 더 힘들고 고된 인생을 살지 않았나 싶다.

 

 

 

리진과 함께한 모파상이나 루브르 박물관 이야기가 나오는데

처음엔 조금 황당하기도 했으나 상당히 흥미롭다.

질투하는 한 여인, 번민하는 연약한 인간으로서의 명성황후를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신경숙.

 

 

그녀의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그것을 이야기로 차분히 뱉어내는 힘은 정말 대단하다.

또한

독자를 책 속으로 빨아들이게 하는 그 흡입력이 장난이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박완서 뺨 치고 하이킥 날리는 수준이다.

 

 

 

그녀 덕분에

다시 소설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죽음 그 자체로 끝나버리는, 허무한 이야기가 아니라

죽기위해 살아가는, 피처럼 처절하지만 아름다운 사람의 이야기에

다시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