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여성과 남성

김선주2007.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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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여성과 남성


김신명숙(페미니스트 작가)


성평등한 미래


“오랜 세월 동안 여성은 남성지배에서 억압을 받으며 살아왔다. 여성은 고통받고 강간을 당하거나 동물처럼 대접 받아왔다. 여성의 생활이 개선될 때도 더 강력한 억압이 있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크리티컬 매스(criticalmass)의 조짐이 나타났다. 상징적으로 말해 여신이 잠을 깬 것이다. 어려운 시절이 올 수도 있으나 다시 옛날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여성은 오늘날의 수준에까지 도달했던 적이 없다. 오랫동안 잊혀졌고 묻혀왔던 여성의 힘과 아름다움, 창조성이 이처럼 대규모로 다시 태어난 적이 없다.


사람들은 여성 해방 투쟁과 여성을 낮게 평가하는데 너무 익숙해 있어 다음 단계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즉 여성들이 기관을 만들고 남성과 동등한 자격으로 협력하고 남성지배구조를 변화시킬 때 세계가 어떻게 달라질지 전망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훈련을 시작해야만 한다. 여성의 해방이 결코 끝이 아니며 많은 일들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여성과 남성이 함께 일하고 건설하고 창조하는 세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다음에 무엇이 올 것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가 아내 패트리셔 애버딘과 함께 쓴 서문에서 한 말이다. 이들은 현재 ‘여성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이같은 관점은 미국의 인류학자인 헬렌 피셔가 쓴 역시 공유하고 있다.

이 책은 여성들이 견인하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이런 예측을 내놓는다.

“지금 여성들은 행진중이다. 그들은 농경문화시대가 시작되던 수 천년 전에 자신에게 주어졌던 역할인 제2의 성으로서의 지위를 털어내고 있다. 그들의 성취와 리더십은 커 갈 것이다. 그들은 기업 교육 직업 정부 그리고 시민사회에서 막강한 지위를 얻고 있다. 경제의 일부 분야에서는 여성들이 제1의 성이 되었다. 그들은 또한 자신의 성적 관심을 표현하고 로맨스와 가족의 삶을 다시 정의하기 시작했다. 빙하처럼 서서히 현대의 여성들은 새로운 경제 및 사회적 풍경을 새김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고 있다. 우리는 진정으로 협력적인 사회를 향해 남녀 양성의 장점을 서로 이해하고 평가하고 채택하는 글로벌 문화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다. 21세기는 근대 이후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자격으로 일하며 함께 사는 첫 시대가 될 것이다. 원래 남성과 여성이 삶을 영위하게 되어 있던 방식 그대로, 한 때 수 천년 동안 남성과 여성이 살았었던 방식대로 말이다.”


이들의 예측은 어쩌면 너무 낙관적인지도 모른다.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가부장제와 남성중심주의는 완강해 보이고 사회 각 분야에서의 여성차별은 갈수록 교묘해지면서 쉽사리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 세계 빈곤층의 다수가 여성이고 아직도 많은 여성들은 교육의 기회를 봉쇄당하고 있으며 직업 세계에서의 차별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여성에 대한 각종 폭력도 광범위하게 자행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쨌든 세상은 느리더라도 양성이 평등한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이를 되돌리기는 이제 불가능해 보인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너버렸다. 가부장제는 아직 잎이 무성한 나무처럼 보일수도 있으나 그 뿌리와 토양은 이미 많이 썩고 부실해져 곧 고사할 위기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다. 언제 고사하느냐는 이제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이 같은 세상의 변화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지난 수천년 인류가 살아온 세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에 대한 준비를 요구하고 있다.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고 조화롭게 협조하며 살기 위해서는 모두의 의식변화와 함께 적절한 대응자세, 구체적인 실천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급변하고 있는 한국사회 양성관계


전 세계적으로 여성들이 이끄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사회 역시 급변하는 양성관계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언론보도를 보면 남자들이 독점했던 힘 있고 빛나는 자리에 똑똑하고 당찬 여성들이 속속 떼를 지어 진입하는가 하면 결혼해도 경제적인 자립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여성들이 다수가 되고 있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가 아직 나이든 세대의 기억에 생생한데 몇 년전부터는 심각한 저출산이 국가적 난제로 제기돼 있다.


어린 세대의 경우는 그 변화가 정말 놀라울 정도다. 학업과 운동, 리더십 등 모든면에서 남자를 앞선다는 알파걸들이 등장했고 외고가 여고화 되고 있다는 언론보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보도들에 언론의 호들갑이 없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한국사회에서 여성파워는 갈수록 강해지면서 전대미문의 새로운 앞날을 예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 같은 변화에 거부감을 느끼는 반동적인 세력의 반격(backlash)도 생겨나고 있다. 적지 않은 남성들이 급변하고 있는 양성관계 속에서 가부장제 사회가 만들어낸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에 위기를 느끼며 당황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듯하다.
토끼뜀으로 변하는 여성의 의식과 현실에 거북이 걸음으로 대응하거나 짐짓 무시하려는 남성들-이런 상황이 만들어낸 괴리와 대립구도가 가정과 사회 곳곳, 일상의 아침저녁을 통해 각종 마찰음을 내고 있는 중이다.


최근에 다시 제기된 군가산점 논쟁에서부터 취업과 입시 등에서의 할당제를 둘러싼 여남간 갈등, 가사와 육아노동 분담, 성과 사랑 친족관계 등을 둘러싼 부부간의 갈등 등은 이제 양성간의 문제가 우리 사회의 주요한 갈등 축의 하나로 부상해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지금까지 여성문제를 ‘시혜’ 차원에서 다뤄왔던 우리 사회에서도 성민주주의가 주요과제로 떠올랐고 이와 함께 성전쟁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여성들은 현재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꿔나가고 있는가?


결혼과 가족의 변화


여성들이 의식이 깨이면서 그녀들이 처음으로 깨닫게 된 주요한 사실들 중 하나는 결혼제도의 억압성이었다. 현재 우리의 다수가 구성하고 있는 가부장적 핵가족-남편은 가장이자 생계부양자로서 ‘집밖’에서 일해 가정을 책임지고 아내는 주부거나 부업을 하는 생계보조자로서 ‘집안’에서 가족구성원을 뒷바라지하고 보살피는-이 여성의 예속을 유지시키는 불평등한 제도라는 데에는 페미니스트들 뿐 아니라 대다수의 학자들도 동의하고 있다. 결혼은 자유와 평등을 기치로 내세운 근대사회의 민주화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제도였다.


성별 역할의 명확한 구분에 따른 핵가족은 전통의 잔재가 아니라 산업사회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하는 임금 노동자는 가사 노동자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산업사회는 여남의 불평등한 역할에 의존하고 있다.


여성운동의 시작과 함께 여성들이 일터에 진입하면서 이혼할 권리가 요구되고 그와 함께 이혼율이 높아진 것은 그러므로 필연적인 일이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도 10여 년만에 이혼율이 3배나 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미국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혼 혹은 별거를 제의하는 10명 중 7명이 여성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하루 평균 840쌍이 결혼하고 398쌍이 헤어졌다.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와 욕망에 충실해지면서 남자의 결혼과 여자의 결혼 사이의 괴리는 더 커지고 있는 중이다.


이혼이 늘면서 재혼가정도 늘고 있지만 (결혼식을 올리는 4쌍 중 1쌍이 신랑 신부 모두, 혹은 어느 한쪽이 재혼하는 경우다) 싱글맘과 싱글대디 역시 증가하고 있다.

‘비혼’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말해주듯 젊은 여성들 사이에 결혼을 기피하는 풍조도 늘고 있으며 (그녀들은 ‘왜 남편이 필요한가’에 대한 답을 필요로 한다) 결혼 대신 동거를 택하기도 하고, 기증받은 정자로 임신한 방송인 허수경의 경우처럼 아이만 원하는 여성들도 생겨나고 있다. 여성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상승하면서 연상녀-연하남, 이혼녀-총각의 결혼도 괄목할 정도로 늘고 있고 황혼이혼 추세도 꾸준하다.


간단히 말해 연상남-연하남 커플과 그들의 자녀들로 이루어진 산업사회 성별분업적 핵가족(우리가 흔히 ‘정상가족’이라고 부르는)은 조만간 소수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다.

현재 한국의 가족 구조와 문화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사건은 호주제 폐지다. 호주제가 폐지되고 2008년부터 개인별 신분등록제가 실시된다는 것은 양성평등과 함께 개인화(individualization)가 우리 사회의 시대적 가치 혹은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호주제가 사라진다는 것은 남성인 호주가 대표하는 가(家)에 부차적 존재로 종속돼 있던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법적 신분을 획득한다는 의미와 함께 이제 더 이상 ‘보호자’없이 자신의 생계와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함의를 갖는 것이다. 이제 남성이라고 해서 가장의 의무를 질 이유가 없고 여자라고 해서 의존적인 삶이 용인될 수 없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남성 가장 시대에서 공동가장 시대로 바뀌게 됐다는 말이다.

개인화는 여성과 남성이 산업사회가 제시한 삶의 방식, 즉 핵가족이라는 삶의 방식에 따라 주어진 성별역할로부터 해방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곧 닥칠 이같은 변화는 앞으로 부부관계가 가족문화의 측면에 있어 적지 않은 도전들도 우리에게 던져 줄 것이다. (울리히 벡, 엘리자베스 벡-게른샤임 공저)에서 기술되고 있듯 사회의 개인화 현상은 각 개인에게 자기만의 주체적인 삶을 살 것을 요구하면서 가족관계에 대한 책무와 갈등관계에 놓이도록 만든다. 부부가 모두 노동시장의 요구에 따르다 보면 필연적으로 부부관계나 어머니 아버지 노릇에서 필요한 역할을 소홀히 할 수 밖에 없게 되고, 이 노동시장의 요구와 인간관계 요구 사이의 모순이 가족의 위기를 부를 수 있다. ‘나 자신이 되는 것’과 ‘함께 사는 것’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과제로 떠오르는 것이다. 가족은 모두 한 집에 거주해야 한다는 생각도 낡은 생각으로 치부될지 모른다. 직장 때문에 부부나 가족이 따로 거주하는 경우는 이미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결혼을 했더라도 변하는 상황과 선택지에 맞춰 그때 그때 끊임없는 의미 부여와 의사 결정, 협상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 존중, 그리고 충분한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대화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두 개인이 가정을 이루며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적 조건들(유연한 노동시간, 질 좋은 보육시설, 믿을 수 있는 공교육, 가정생활에 대한 기업과 정부의 배려등)도 함께 만들어 내야 한다.


직업세계의 변화


한국사회에서 취업은 이제 더 이상 남자들만의 절대 과제가 아니다. 여대생들의 취업 열기는 결코 남대싱들 못지 않으며 그녀들은 ‘여풍’이라는 언론의 표현이 나타내듯 뛰어난 능력과 노력으로 각종 고시와 치열한 경쟁을 보이는 입사시험들에서 급증하는 합격률을 보이고 있다. 그와 함께 기혼여성들의 취업 열기 역시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물론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다. 현재 한국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비율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고 일하는 여성의 70% 가까이가 앞날이 불안한 비정규직이다. 당연히 임금수준도 낮아 남자들의 63% 정도에 불과하고 대졸 이상 고학력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OECD회원국 평균보다 20% 정도나 낮은 최하위 수준이다. 취업시장에는 아직도 다양한 직간접 차별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의 교육수준이나 성취도 (현재 학교에서 여학생들이 남학생들을 앞서는 상황이 미래에 시사하는 바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다), 취업에 대한 열망, 우리 사회의 여성인력에 대한 수용 정도 등을 종합해 볼 때 앞으로 여성들의 직업세계 진출은 크게 늘어날 뿐 아니라 질적인 향상도 이룰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 결과 우리 사회의 직업 세계와 직장 문화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여성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 한국의 직업 세계와 직장 문화에 가장 큰 도전을 던지고 있는 사람들은 ‘일하는 엄마들’이다. 왜 그런가?


산업혁명 이후 일터와 집이 확실하게 분리되고 밖에 나가 일하고 돈벌어 오는 일은 남자가, 집안에서 살림하고 애 키우는 일은 여자가 전담하는 것으로 굳어지면서 근대사회는 남자들의 가치와 생활양식에 맞게 형성돼 왔다. 집에서 밥 할 필요도 없고 아이 때문에 일찍 퇴근할 필요도 없으며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직장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남자들에 맞게 직업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상황은 21세기를 맞은 요즘에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간은 여전히 방해받지 않고 자기 시간을 온전히 회사 일에 쓸 수 있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인간, 즉 남자거나 미혼의 여자인 것이다.


뒤집어 말한다면 이혼이 일상사가 돼버린 불안한 결혼의 시대, 군중 속에서도 늘 고독을 느끼는 우울의 시대를 맞아서도 남자들에게 여전히 가정생활과 아내와 아이등 가족간의 관계를 가꿔 나갈 기회가 봉쇄돼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는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온전치 못한 반쪽의 삶만을 허용하고 있다. 일하는 엄마나 가정생활을 중시하는 남자들은 이 같은 체제의 위반자들이면서 그들의 필요에 맞는 새로운 체제, 즉 공/사의 경계를 해체하며 가정과 직장을 양립할 수 있도록 하는 체제와 문화를 요구하고 있다. 아직 미미하긴 하지만 일하는 엄마들이 늘어나면서 우리 사회에서도 아이 양육 등 사적인 부분들을 경영목록에 통합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다.


가정과 직장을 양립하는 길, 그 길을 평등하게 열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사회의 직장인에 대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육아와 가사일로부터 자유로운, 사용 가능한 대부분의 시간을 직장 일에 쓸 수 있는 남성’에서부터 ‘직장일 뿐 아니라 육아와 가사 가족관계도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감당해야 하는 여성과 남성’으로 근본적인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래서 회사에 보육시설도 설치하고 가족친화적인 제도나 프로그램들도 많이 도입하는 것이다. 또 직장인 스스로 밤늦은 회식을 자제하는 등 태도 변화도 중요하다.


가정과 직장의 양립이라는 관점에서 또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중요한 문제는 노동시간의 단축이다. 잘 알다시피 한국은 세계적으로 최장의 노동시간으로 유명하다.

현재의 긴 노동시간은 살림하는 아내를 둔 남편들을 기준으로 설정된 것이므로 아이도 보살피고 집안일도 해야 하는 여남 직장인에 맞는 노동시간을 새로 고민해 봐야 하는 것이다.


독일의 사회학자이자 작가인 에스터 빌라는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직업생활에 참여하는 것을 전제로 ‘하루 8시간 노동을 단계적으로 5시간으로 줄이자’는 파격적인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주25시간 노동제인데 대신 임금도 그에 맞게 줄여나가되 육아에 드는 비용은 국가가 다 지불하고, 어린아이가 있는 부모들에겐 노동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해 주자는 것이다. 부부가 함께 생계도 책임지고 국가 지원 아래 가정일과 육아도 나누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주장이다.


독일에서는 이미 1993년 폴크스바겐사가 대량해고를 피하기 위해 주 4일 근무제를 결정하고 임금도 삭감했던 선례가 있다. 프랑스는 이미 주 35시간 노동을 달성했다. 로 유명한 사회비평가 제러미 리프킨은 생산의 거의 모든 과정을 기계가 담당하는 자동화, 컴퓨터화의 결과 생기게 될 대향실업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노동의 나눔’을 강조하면서 장기적으로 주20시간 근무제로 나가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기도 하다.


직업세계에 진입한 여성들은 남성들과 다른 업무처리 스타일과 리더십으로 새로운 직장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위계적 서열구조에 익숙한 남자들과 달리 여성들은 협력과 수평적 인간관계를 옹호하고 팀워크에 능하며 경청하는 자세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얘기되고 있다. 또 타인의 마음을 읽고 관계를 가꾸며 보살피는 능력,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거나 생각하는 능력, 어떠한 이슈든 넓게 전후 맥락으로 보는 폭넓은 시각, 네트워킹과 협상에 뛰어난 재능 등을 활용해 여성적 리더십을 구축하면서 직업세계에 폭넓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앞서 말했듯 직장과 가정생활의 조화 추구도 직업세계의 중요한 미래비전으로서 점점 더 폭넓은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가치관의 변화


경제와 정치 문화 시민 사회 등 사회 각 영역에서 여성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남성 중심적인 가치관 역시 도전 받기 시작하고 있다.


우선적인 권력 추구보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여성들은 자본주의 가부장제 체제가 만들어내는 모든 종류의 지배 종속 관계, 차별과 억압, 단절과 대립, 유일한 진리나 획일적 가치기준, 서열과 경쟁제일주의, 폭력과 전쟁에 반대하는 경향이 강하다. 대신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 협력과 보살핌, 다양성과 복수성, 자연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상호 연결성과 공존, 사랑과 평화를 옹호한다.


환경 평화 운동 등 시민운동에 여성들의 참여가 많은 데서도 드러나듯 여성들은 분리적이고 단절적이며 위계적인 남성 중심적 시각을 넘어 모든 존재가 상호 연결돼 있으며 전체 속의 평등한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옹호한다. 또 남성의 윤리가 정의의 윤리라면 여성의 그것은 보살핌의 윤리다.


여성들은 투표행태에 있어서도 남성들과 분명히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여성들은 자신들 뿐 아니라 어린이와 노인, 건강, 교육, 혜택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관심을 쏟는 반면 군사비 지출과 핵무기 등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또 비폭력을 지지하고 군제분쟁에도 평화적인 해결책을 찬성한다.

한마디로 여성들이 지향하는 세상은 여성적 혹은 모성적 가치관도 긍정적인 남성적 가치관과 함께 존중되는 보다 따뜻하고 안전하며 평화로운 세상이다.


‘신남성’을 부르는 시대


시대가 바뀌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상도 바뀐다. 새 부대에는 새 술만이 담길 자격이 있다. 여성의 주도로 양성관계가 급변하고 있는 한국 사회는 지금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새로운 모습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여성들은 이미 많이 바뀌고 있는 중이다. 많은 여성들은 경제적 자립을 바탕으로 자율성과 독립성을 갖춘 당당한 여성이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들을 하고 있으며 사회 각 부문들에서 여성의 존재와 여성의 목소리를 보이고 들리게 만들고 있다.


물론 아직도 가부장제적 의식과 구조 속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도 많다. 그녀들에게는 여성의 세기라는 21세기가 오히려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여성의 세기란 여남이 평등해지는 세기, 여성들에게 자기 삶을 구현할 수 있는 기회가 획기적으로 주어지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이제 더 이사 평생 의존할 가장이 없어지는 시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들보다 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한 사람들은 남성들이다. 아직도 많은 남성들은 과거의 틀에 갖힌 채 양성관계에서 급변하고 있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남성으로서의 가부장제적 정체성과 여성적 일과 가치에 대한 폄훼에서 놓여나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하며 불평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공룡처럼 멸종할 것인가, 카멜레온처럼 살아남을 것인가?”


매리언 살츠먼, 이라 마타시아, 앤 오라일리 등 유명한 트렌드 분석가들이 저술한 는 이렇게 쓰고 있다.

“이제 남성이 모든 카드를 쥐고 여성은 남성의 뜻에 따라 삶을 운명에 맡기던 시대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 만약 남성이 그런 사고방식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아예 결혼도 못하고 말 것이다. 따라서 남성은 남녀가 상호작용하는 방법에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여성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노동인구로 흡수되기 전에는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것처럼 남성도 변화된 생활에 적응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오늘날의 남성은 남성성이 남성이 아닌 여성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을 인정하느라 힘겨워 하고 있다. 남성은 그저 반어적인 표현을 통해 혹은 농담처럼 남서성의 옛날 모습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남성은 지금 여성이 거둔 성공의 언저리에서 새로운 역할을 찾고 있는 중이다.

현대 남성에게 미래가 있는가? 물론 그렇다. 남성이 싸워야 할 상대는 여성이나 다른 남성, 변화하는 시대가 아니다. 그들은 남성이 최고이며 언제나 최고일 거라는 잘못된 고정관념과 맞서야 한다. 그들은 언제나 그랬듯 늘 그럴 거라는 잘못된 방심과 싸워야 한다. 이제 남성이 자신만의 혁명을 위해 싸울 차례다.“


의 저자 댄 킨들러(하버드대 아동심리학 교수)는 알파걸의 출현에 불안해 하는 남성들을 향해 앞으로 남자들은 ‘스트레스도 덜 받고 장수할 수 있으며 미처 개발하지 못했던 다른 면들을 개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남자다워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 더 사랑스러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도 “양성평등 사회가 오면 남성이 지금보다 더 자유롭고 혜택을 받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변화해야 하다”고 주장한다.


20세기 초 우리 사회에는 근대교육을 받고 평등한 개인으로서의 자신에 눈 뜬 일군의 신여성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당시 강고했던 가부장제의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하고 말았지만 그 유산은 지금까지 단속적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현재 한국여성들이 이룬 성취의 바탕에는 그녀들의 깨인 의식과 활동들이 소중한 자양분으로 분명히 존재한다. 그로부터 한 세기 후인 지금 한국 사회가 새롭게 요구하는 것은 변화를 기꺼이 수용할 준비가 돼 있는 신남성들이다.


신남성이 누구인가는 앞으로 계속 모색돼야 할 과제겠지만 한가지 확실해 보이는 것은 그가 양성적 특질을 고루 갖춘, 성별 구분으로부터 자유로운 인간일 것이라는 점이다. 신여성들이 ‘여자다워야 한다’는 성역할 규정과 억압으로부터 해방되려 했던 것처럼 신남성들도 ‘남자다워야 한다’는 규정과 억압들에 의문을 던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씩씩한 남성들에게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여성적인 무엇이고 얌전한 여성들에게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남자다운 무엇이다”-수잔 손탁


“성공적인 인간은 남성적 특성과 여성적 결합을 갖는다. 가장 창의적인 사람은 서로 대립되는 성격이 혼합돼 있다. 경쟁적이며 동정적이고 목적 지향적이면서 주변을 잘 돌보고 직관적이며 위기를 잘 돌파하는 타입일 것이다.”-존 나이스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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