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3-24화> 공주님 스타일

바다의기억2006.07.28
조회9,712

아아... 새벽입니다.

 

이 시간까지 깨어있어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내일 출근할 걱정에 눈앞이 캄캄합니다.

 

========================== 달려라! 새벽까지! ============================

 

 

다가온 주말.


민아의 집에서 얼마 멀지 않은 찻집에서


난 또다시 한나와 약속을 잡았다.


연습실이 아닌 밖에서 만나자는 이야기에 그녀는


=드디어 데이트 신청이에요?=


라며 반색을 했지만


오늘은 분명히 이야기 할 생각이다.


그녀와 더 이상 춤추지 않겠다고....



한나 - 오빠~.


기억 - 아, 왔어?



가게로 들어선 그녀는


미안하리만치 밝은 얼굴로 내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한나 - 웬일이에요? 이런 곳으로 다 부르고.


기억 - 아.... 그게...



대뜸 용건부터 말하기가 어색해


잠시 입술을 축이며 뜸을 들이는 사이


우리에게 다가온 점원이 주문을 받았다.



점원 - 주문하시겠어요?


한나 - 아~네. 스페셜파르페요. 오빠, 이거 시켜도 되죠?


기억 - 응.... 전 에스프레소로 하겠습니다.


점원 - 에스프레소 작은 잔에 원액으로 나오는데 괜찮으세요?


기억 - 예. 레몬이나 오렌지 조각 있으면 같이 주세요.



일단 주문을 마치고 나자


분위기는 다시 소강상태로 돌아섰다.


빨리 말을 해야 한다.


또 구렁이 담 넘어 가듯 다른 일로 가기 전에....



기억 - 한나야, 그... 댄스 연습 말인데...


한나 - 네~. 오늘부터 본격적인 왈츠 연습에 들어가야죠.


기억

- 아.. 그래, 그러기로 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만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한나 - 예? 또 왜요? 오빠는 만날 때마다 그래.


기억

- 공주랑 연습할 때마다....


네 생각에 집중이 안 돼.


너랑 췄으면 이렇게 췄을 텐데.... 더 화려했을 텐데


이런 생각이 자꾸 드니까...


민아가 절대 못 추는 게 아닌데도


거기 맞추려고 하기보다 자꾸 비교만 하게 돼.


차라리 민아와 어떻게든 노력해보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렇게 할말을 마친 난


주문한 게 나올 때 까지 기다릴지 바로 일어날지


잠시 고민하고 앉아있었다.


나가는 길에 계산하고 테이크아웃으로 들고 나갈까?



하지만 내 말을 들은 그녀는


변함없이 환한 얼굴로 아무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한나

- 아~ 그런 거였어요?


그럼 간단하네요, 내가 민아 언니처럼 추면되겠네.



기억 - 아니 내 말은....


한나

- 아~ 깝깝해 깝깝해~. 아직도 모르겠어요?


오빠는 나 없으면 안 돼요~.


잠재력이 아무리 크면 뭘 해요,


그걸 끄집어 낼 수가 없는데.



기억 - 아니 나도 그건 알지만.... 역시....


한나 - 오빠, 내가 오빠한테 흑심 있어서 이러는 것 같아요?


기억 - .........



선뜻 =아니= 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동안 그녀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건 인정하지만


한편으론 그 속내가 궁금했다.


왜 그녀가 내 일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주는 걸까?



한나

- 어머, 어머, 어머? 진짜 그렇게 생각하나봐?


착각하지 마요~ 난 다 언니 때문에 그러는 거니까.



기억 - .... 공주 때문에?


한나

- 그래요! 언니가 다른 마수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려고 그러는 거라고요!


안군 오빠는 악당, 오빠는 기사.


난 악당을 물리치기 위해 기사를 도와주는 요정!


공통의 적을 가진 아군이잖아요?



기억 - ...... 정말 그런 거야?


한나

- 그래요! 또 한 가지 분명히 말할 건


오빠는 제 타입이 아니에요.


제 이상형은 키도 저보다 훤칠하게 크고,


말도 재밌게 잘 하고,


무엇보다 인상이 여름바다처럼 해맑은 사람이라고요!



기억 - ...... 난 다 해당 없음이네?


한나 - 네~. 그러니까 안심해요.



안심에 앞서서 갑자기 서글픈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기억 - 그럼 연습은....


한나

- 아유참! 당연히 계속해야죠!


역할 뺏기고 닭 쫓던 개꼴 나 봐야 정신 차릴래요?



왜... 왜 계속 내가 끌려 다니는 느낌이 드는 걸까.



과연 이 전개가 제대로 된 것인가


심각하게 고찰해보는 사이


접시를 받쳐든 점원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점원 - 주문하신 음료 나왔습니다.


한나 - 어머나~ 푸짐하기도 해라.



큼직한 잔 위로 10cm는 더 솟아올라


막강한 칼로리가 눈으로 보이는 파르페.


대체 저런 걸 즐겨 먹으면서


어떻게 저 몸매를 유지하는 걸까?



한나

- 에스프레소는 무슨 맛으로 먹어요?


양도 적지, 무지 쓰기만 하던데.


무슨 보약도 아니고...



기억 - 아냐, 이렇게 레몬즙을 좀 짜서 먹으면... 맛있어.


한나 - 정말요? 쪼금만 줘 봐요.


기억 - ...여기.


한나 - 에에~ 레몬즙 넣은 보약 같아! 거짓말쟁이!


기억 - 아...아닌데... 괜찮은데....




결국 내 결의와는 또 무관하게


댄스특훈을 계속하게 된 나.


모든 게 민아와 연극을 위한 것이다.


안무 완성! 타도 안군!



한나

- 그럼 일단~ 아까 약속한대로


언니가 추는 스타일로 맞춰 볼게요.


음.... 말로 설명해보자면 =반짝반짝 동화 속 공주님 댄스=?



기억 - 뭐.... 뭐야 그게.


한나

- 최대한 아기자기하고 로맨틱하게 추는 거예요.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면서


=아~ 왕자님~= 이런 느낌으로....



기억 - ......


한나 - 자자, 일단 한 번 춰보면서 차이를 느껴 봐요.



춤이 무슨 모창도 아니고


=누구 스타일=식으로 맞춰 출 수 있는 건지


미심쩍은 느낌이 드는 나였지만


일단은 그녀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한나

- 일단 스텝은 보폭은 저랑 출 때의 2/3정도.


발을 디딜 땐 최대한 사뿐~ 사뿐.


파트너를 주변으로 휘돌리기 보다는


같이 조그만 원을 그리는 느낌으로~.



기억 - 아... 정말 비슷한데?


한나 - 연습 때 쭉~ 지켜봤으니까요.



과연 아까 한 말이 빈말은 아닌 듯,


한나의 스텝에선 정말로 민아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대체 춤을 얼마나 배워야 이런 게 가능한 걸까?



한나

- 반짝반짝 샤랄랄라를 잊으면 안돼요!


이건 춤에 취하기보다 상대에 취하는 로맨틱 스타일이니까


최대한 몽상적인 느낌으로 춰야하는 거라고요!



기억 - 샤..샤랄랄라가 뭐야?


한나 - 최대한 부드럽~게~ 다정~하게~ 상냥하게~


기억 - ...... 너무 추상적이야.


한나

- 좀 더 성심성의껏 추란 이야기에요!


파트너가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스텝이 밟힐 만큼 부드럽게 리드해주면서~


상대는 하늘하늘 날아갈 것 같은 가녀린 공주님!


거칠게 대하면 상처받는다고요!



어쩐지 예전보다 몇 배는 어려워진 것 같은 왈츠.


스텝마다 그녀가 강조한 주의사항이


3열종대로 운동장 두 바퀴였다.



한나

- 흠.... 아직 백마탄 왕자님은 못 되지만....


그럭저럭 마음여린 마족 전사 정도는 된 것 같네요.



기억 - 허억...허억.... 뭐... 뭐야 그게.


한나

- 어머나? 그런 설정 본 적 없어요?


인간과 마족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마족 전사가 인간 공주와 사랑에 빠져서....



두 시간이 넘는 강행군 끝에


그녀가 평가한 내 댄스 등급은


=Lv5. 마음여린 마족 전사= 였다.



3주차 월요일.


난 주말동안 한나가 추천한 순정만화들을 보며


=빙글빙글 사랄랄라=란 어떤 느낌인가를 파악하고


민아와의 댄스연습에 임하게 되었다.



민아 - ...... 연습 많이 했어?


기억 - 아~ 이번에는 정말로 맡겨 봐.



다시금 느끼는 거지만


나와 안무를 맞추기 전 민아의 표정은 썩 밝지가 않다.


어쩐지 마지못해 추는 느낌이랄까...


물론 분위기가 이렇게 된 데는


안군 사건도 한 몫을 했지만


그녀의 댄스 스타일을 맞추지 못한 내 잘못이 더 큰 것 같다.


오늘은 반드시 그런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백마탄 왕자님으로 거듭나는 거다!



댄서킴 - 두 사람 다 준비 됐나요? 그럼 뮤~직~.


=빰 빠밤~ 빰 빠밤~ 짠짠 짜라잔~=



최대한 충격력을 줄이면서 접촉시간은 길게,

(한나의 표현에 따르면 상냥하고 다정하게)


저중력 상태에 놓인 듯한 느낌으로

(한나의 표현에 따르면 꿈속을 걷는 듯한 느낌으로)


무마찰 평면 위에서 작용반작용을 주고받듯 위치 전환한다.

(한나의 표현에 따르면 상대 스텝을 반 정도 마중 나간다.)



민아 - .......!



과연 그 특훈이 효과가 있었는지


민아의 표정에 놀라움과 편안함이 동시에 떠올랐다.


내 팔에 의지해서 크게 원을 그리던 한나와는 반대로


내 어깨에 몸을 의지하며 더욱 몸을 밀착해오는 민아.



아.... 이게 바로 아기자기 동화 속 공주님 스타일이구나.



음악이 끝나고 사람들 사이에선


예전보다 훨씬 큰 호응이 일었다.



연출 - 그렇지! 이제 호흡이 척척 맞는구나!


회계 - 그래, 이전엔 기억이가 너무 앞서갔었어.


박군 - 으아~ 한 쌍의 바퀴벌레 같다 정말. 아! 물론 칭찬이야.



반응이 좋은 건 민아도 마찬가지였다.


내내 나와 춤을 추기 꺼리던 그녀가


먼저 연습을 청해오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민아

- 기억아, 지그재그 스텝 한 번만 더 잡아줄래?


아무래도 그 부분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기억 - 응, 얼마든지.



그날 늦게까지 연습을 함께 하면서


난 간만에 민아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민아 - 연습 정말 많이 했나봐?


기억 - 아... 응. 명색이 주역인데 열심히 해야지.


민아 - 따로 학원 같은데 다니는 거야?


기억 - 아니... 집에서 이것저것 좀 찾아보고....


민아 - 그래? 정말 빨리 느는 것 같아.



춤 한 번으로 분위기가 이렇게 회복되다니...


역시 한나와의 특훈은 그만둬선 안 되는 걸까?


일단 이 기세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느낀 난


그녀에게 특별연습을 제안했다.



기억 - 저... 괜찮으면 언제 따로 연습해보는 게 어때?


민아 - 어디서? 연습실에서?


기억 - 연습실도 좋고.... 장소는 찾아보면 많지 않을까?


민아

- 그럼 목요일 저녁에 우리 집에 올래?


그날 연극부 연습도 없고....


한나도 밖에 나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옳지! 나이스! 그런데 잠깐....


그날은 내가 한나랑 연습하기로 한 날이잖아?



기억 - 아..... 그래, 그게 좋겠다.



어디까지나 민아를 위한 특훈이었으니까....


한나와 약속시간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그 정도는 한나도 이해해 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