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70세 된 나두봉(羅頭峰) 할아버지. 오늘도 변함없이 이른 아침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로의 환승을 서두르고 있었다. 등산복 차림으로 한 손엔 등산용 지팡이를 든 것이, 누가 보더라도 여지없이 건강을 위해 느긋한 걸음을 걸어가는 여유로운 모습 그대로다. 등산용 재킷 한쪽 주머니엔 신세대식으로 울긋불긋 장식한 휴대폰이 긴 목줄에 연결되어 넣어져 있고, 아직도 건장한 체격에 힘 있게 걷는 걸음걸이는 누가 보아도 실제 나이를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가끔 손녀에게 배운 문자 날리기 실력을 발휘해 어디론가 열심히 손가락 공사를 시도하기도 한다. 문자를 날리고 난 다음에는 휴대폰을 두 손을 모아 꼭 쥐고 있다가 반갑게 되돌아오는 메아리 소리에 휴대폰과 함께 몸을 부르르 떨며 기쁨을 만끽하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등산을 하기 위해 나선 것이 아니었다. 매일 등산복 차림으로 집을 나서는 것은 위장용이었고, 실제로는 산 밑에 있는 체육공원으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가는 것이었다.
나두봉 할아버지는 지리산 서쪽 사면을 따라 누워 있는 전남 구례에서 잔뼈를 굵게 한 전형적인 농부 출신이다. 지리산에서 받아들인 젊은 날의 혈기를 오직 처자식과의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한 것에 다 바치며 바깥으로 향하려는 본능적인 욕구를 꾹꾹 누르며 살아온 모범적인 가장이었다. 아내인 진미인(眞美人) 할머니와는 동갑내기로 고향에서 어릴 적부터 그 정분을 깊이 하며 살아온 터였다. 할아버지가 외모에서 풍겨나는 다분한 기질에도 불구하고 농사에만 충실하며 살아오게 된 것에는 진미인 할머니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할머니를 끔찍이 생각하는 할아버지는 할머니 앞에서는 언제나 고양이 앞의 쥐 신세를 면치 못하는 전형적인 공처가 흉내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도 간혹 마을 장터에서 들려오는 끈적끈적한 소문이 할머니의 귀에 들려오기도 했으니, 할아버지의 끼가 가끔씩은 발동하기도 했었는가 보다. 그럴 때마다 지리산이 할머니의 외침으로 들썩들썩 했고, 때로는 모험을 감행한 할아버지의 기(氣)도 할머니의 그것에는 전혀 맥을 추지 못했던 것이다.
이 두 노부부가 다시 돌아와 살 것을 기약하며 지리산 자락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하게 된 것은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아들 내외의 성화 때문이었다. 아들을 따라 번화한 도시로 옮겨온 뒤에 두 사람의 삶은 많은 변화를 겪어갈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할아버지는 그 끼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신문화에 신속하게 적응해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경로우대증 사용하기를 싫어했다. 자신의 현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지만,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이나 건강이 할아버지의 자존심을 더욱 강하게 세워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항상 교통카드를 충전해가지고 다니면서 여느 젊은이들과 똑같이 버스를 탈 때나 지하철을 이용할 때 언제든지 교통카드를 사용했다. 신세대들과 마찬가지로 카드를 읽는 곳에 지갑을 대고 개찰구를 나서던 할아버지는 또 한 번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직도 내 귀에는 분명히 “환장합니다”로 들린단 말이야... 젊은 것이 벌써부터 혀가 꼬부라져가지고...”
할아버지가 아파트 벤치에 앉아 무료함을 달래고 있던 어느 한 날, 도시에 와 처음으로 사귄 젊은 날 부산에서 삐끼 생활을 하기도 했던 같은 연배의 임가봉(任假峰) 영감이 다가오며 말했다.
“어이, 두봉. 심심하지? 우리 물 좋은데 한 번 놀러갈까?”
“좋은 물 하면 지리산이지. 지리산보다 더 좋은 데가 있겠어?”
“그런 물 말고...”
“그럼 어떤 물?”
“이런 돌멩이하고는... 아무리 촌구석 출신이라고 해도 그렇지... 거기 가면 사람 사는 맛이 나. 지금 가자.”
“어딘데?”
“으응, 노인대학이 하나 있는데 거기 가면 신바람 나게 놀 수 있어. 물이 기가 차단 말이야...”
“대학? 그런데 난 못 가. 난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는걸. 가봉이 자넨 고등학교 나왔어?”
“고등학교는 무슨... 이 사람 완전히 쑥물이네...”
“.............”
“그런 대학이 아니고... 어쨌든 가자...”
“난 관심 없어. 자네나 가.”
“거기는 있잖아... 응, 인생 공부 하는 데야. 우리처럼 나이든 사람들끼리 모여 이 얘기 저 얘기 하며 놀이도 하고 같이 어울려 춤도 추면서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는 곳이란 말이야...”
“지금까지 지겹도록 인생 공부 해왔는데 또 무슨...”
“그런 공부가 아니라니까? 응, 맞아.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공부... 그러면서 우리들 시간을 활력 있게 만들자는 것이지...”
바람둥이 할아버지- “환장합니다”(1)
올해로 70세 된 나두봉(羅頭峰) 할아버지. 오늘도 변함없이 이른 아침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로의 환승을 서두르고 있었다. 등산복 차림으로 한 손엔 등산용 지팡이를 든 것이, 누가 보더라도 여지없이 건강을 위해 느긋한 걸음을 걸어가는 여유로운 모습 그대로다. 등산용 재킷 한쪽 주머니엔 신세대식으로 울긋불긋 장식한 휴대폰이 긴 목줄에 연결되어 넣어져 있고, 아직도 건장한 체격에 힘 있게 걷는 걸음걸이는 누가 보아도 실제 나이를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가끔 손녀에게 배운 문자 날리기 실력을 발휘해 어디론가 열심히 손가락 공사를 시도하기도 한다. 문자를 날리고 난 다음에는 휴대폰을 두 손을 모아 꼭 쥐고 있다가 반갑게 되돌아오는 메아리 소리에 휴대폰과 함께 몸을 부르르 떨며 기쁨을 만끽하기도 한다. 할아버지는 등산을 하기 위해 나선 것이 아니었다. 매일 등산복 차림으로 집을 나서는 것은 위장용이었고, 실제로는 산 밑에 있는 체육공원으로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가는 것이었다.
나두봉 할아버지는 지리산 서쪽 사면을 따라 누워 있는 전남 구례에서 잔뼈를 굵게 한 전형적인 농부 출신이다. 지리산에서 받아들인 젊은 날의 혈기를 오직 처자식과의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한 것에 다 바치며 바깥으로 향하려는 본능적인 욕구를 꾹꾹 누르며 살아온 모범적인 가장이었다. 아내인 진미인(眞美人) 할머니와는 동갑내기로 고향에서 어릴 적부터 그 정분을 깊이 하며 살아온 터였다. 할아버지가 외모에서 풍겨나는 다분한 기질에도 불구하고 농사에만 충실하며 살아오게 된 것에는 진미인 할머니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할머니를 끔찍이 생각하는 할아버지는 할머니 앞에서는 언제나 고양이 앞의 쥐 신세를 면치 못하는 전형적인 공처가 흉내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도 간혹 마을 장터에서 들려오는 끈적끈적한 소문이 할머니의 귀에 들려오기도 했으니, 할아버지의 끼가 가끔씩은 발동하기도 했었는가 보다. 그럴 때마다 지리산이 할머니의 외침으로 들썩들썩 했고, 때로는 모험을 감행한 할아버지의 기(氣)도 할머니의 그것에는 전혀 맥을 추지 못했던 것이다.
이 두 노부부가 다시 돌아와 살 것을 기약하며 지리산 자락에서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하게 된 것은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아들 내외의 성화 때문이었다. 아들을 따라 번화한 도시로 옮겨온 뒤에 두 사람의 삶은 많은 변화를 겪어갈 수밖에 없었다. 특히 할아버지는 그 끼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신문화에 신속하게 적응해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경로우대증 사용하기를 싫어했다. 자신의 현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지만,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이나 건강이 할아버지의 자존심을 더욱 강하게 세워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항상 교통카드를 충전해가지고 다니면서 여느 젊은이들과 똑같이 버스를 탈 때나 지하철을 이용할 때 언제든지 교통카드를 사용했다. 신세대들과 마찬가지로 카드를 읽는 곳에 지갑을 대고 개찰구를 나서던 할아버지는 또 한 번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직도 내 귀에는 분명히 “환장합니다”로 들린단 말이야... 젊은 것이 벌써부터 혀가 꼬부라져가지고...”
할아버지가 아파트 벤치에 앉아 무료함을 달래고 있던 어느 한 날, 도시에 와 처음으로 사귄 젊은 날 부산에서 삐끼 생활을 하기도 했던 같은 연배의 임가봉(任假峰) 영감이 다가오며 말했다.
“어이, 두봉. 심심하지? 우리 물 좋은데 한 번 놀러갈까?”
“좋은 물 하면 지리산이지. 지리산보다 더 좋은 데가 있겠어?”
“그런 물 말고...”
“그럼 어떤 물?”
“이런 돌멩이하고는... 아무리 촌구석 출신이라고 해도 그렇지... 거기 가면 사람 사는 맛이 나. 지금 가자.”
“어딘데?”
“으응, 노인대학이 하나 있는데 거기 가면 신바람 나게 놀 수 있어. 물이 기가 차단 말이야...”
“대학? 그런데 난 못 가. 난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는걸. 가봉이 자넨 고등학교 나왔어?”
“고등학교는 무슨... 이 사람 완전히 쑥물이네...”
“.............”
“그런 대학이 아니고... 어쨌든 가자...”
“난 관심 없어. 자네나 가.”
“거기는 있잖아... 응, 인생 공부 하는 데야. 우리처럼 나이든 사람들끼리 모여 이 얘기 저 얘기 하며 놀이도 하고 같이 어울려 춤도 추면서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는 곳이란 말이야...”
“지금까지 지겹도록 인생 공부 해왔는데 또 무슨...”
“그런 공부가 아니라니까? 응, 맞아.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공부... 그러면서 우리들 시간을 활력 있게 만들자는 것이지...”
“그럼 뭐야? 경로당? 콜라방?”
“이런 궁색... 갈 거야 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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