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el [ 01. 나비 ] - 제 5화 -

김혁건2007.10.05
조회37

"혀어어엉!!!!!! 맥주 한 잔 하자아!~~~~!!!!!!!!!"

 

꽝- 꽈과과과광----

 

정적. 초저녁의 빈 집, 어둑어둑한 정적을 얄짤없이 무너뜨리는 굉음을 내며 한 소년이 들어온다.

 

"에에?? 혀엉? 형아!!!!!! 혁건이 형!!!!!!"

 

"..................................................."

 

"뭐야... 아무도 없나..... 오랜만에 형 보러 왔는데........"

 

소년은 양손에 든 커다란 비닐봉지를 떨어트리듯 내려놓았다.

 

"헤에... 갈 데도 없고... 그냥 여기서 뻘짓이나 해야겠다.... 히잉...."

 

그리고서 소년은 집안의 이곳 저곳을 둘러 보았다.

 

혁건의 집. 언제나 단조로운 그의 집에서는 오늘따라 무슨 이상한 향기가 풍기는 듯했다.

어둑해진 하늘. 푸르스름한 저녁의 빛깔이 나쁘진 않다. 집안의 모든 공간이 신비로워 보인다. 

 

"오늘따라... 이상해.... "

 

딸깍-

 

아무 방이나 문고리를 잡고 돌리는 소년. 그제서야 그는 모든 것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분명히 안 쓰는 방이랬잖아.. 여기..."

 

깨끗하게 정돈된 방. 단정하게 개 놓은 이불.

 

그리고, 침대 위에 놓여 있는......

 

 

"여... 여자옷???? 에에??? 혁건형이 설마?????"

 

가늘던 소년의 눈이 갑자기 동그래졌다. 그가 살면서 이렇게 놀란 건 두 번째일 것이다.

 

"으아아!!!!!!!! 그런 나만 아직도 쏠로라는 거잖아!!!!!!!! 건이형마저도 어떻게!!!!!!! 으아아아아아!!!!!!!!!!! 나도 커플되고 싶단 말야!!!!!!!!!!!!!!"

 

 소년은 잠시 머리를 싸매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절규했다. 소년이 살아온 나날에 여자란 없었나 보다. 솔로 생활이 너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이성이라는 존재 자체에 무관심해지는 경지가 나타나긴 하지만, 소년은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진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경지에 이르는 대단하신 도인은 인간들 중에 매우 극소수의 극소수란다.

 

소년은... 평민이었다......

 

딸까각 - 덜컥 -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소년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문을 쾅 닫은 후에

 

문앞에 나가서..... 아니 문에 붙어서...

 

"흡!"

 

"......"

 

철컼-

 

"누구냐 너......."

 

"혀... 혀엉...."

 

"그 거수경례는 무슨 의미지?"

 

"으아아!!! 형이 나한테 총을 겨누다니!!!!!!! 내가 대역죄인이지!!!!!! 형이 커플된 걸 축하하지는 못할 망정 저주하면서 머리를 싸매다니!!!!!! 혀엉!!!!!!!!!!!!!! 제발 목숨만은 살려줘~~~~~~~ 형!!!!!!!!!!!"

 

"원철아.... 오버는 좀 그만 해라... 거수경례부터가 심상치 않다 너...."

 

"아.. 아니 그냥... 형, 우리 맥주 한 잔 안 할래?"

 

"좋지. 진작 얘기하면 좋을 것을. 왜 또 그렇게 오버를 해."

 

"그.. 그야.... 하하하..... 그냥 버... 버릇이 되었다고나 할까... 아하하하하하...."

 

"스물 두 살이나 되어 가지고. 그렇게 철이 없으면 곤란해. 어서 봉지 뜯어. 안주는 사 왔지?"

 

"당근이지!!!!!!!!! 형 진짜 오랜만이야!!!!!!"

 

하하... 외관상으론 중딩에 더 가까운 소년이건만........ 불쌍한 건지 복받은 건지 모를 일이다.

 

혁건은 양복 상의를 벗고 원철과 마주 앉았다.

전깃불을 켜지 않았는데도 분위기는 그리 침침하지 않았다.

아까보다는 조금 더 짙어진 저녁의 푸르스름함은 오히려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불.. 켤까??? 그냥 난 이 색깔이 이뻐서..."

 

"아니, 됐어."

 

잠시 원철을 쳐다보는 혁건. 원철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그의 모습에 놀라고 또 놀란다.

 

"형, 그 눈빛은.. 뭐야????"

 

"왜?"

 

"아니... 좀 이상해서... 형은 어떨 때 보면 정말정말 후덜덜덜해....."

 

"내가 널 해칠 일은 절대로 없어. 걱정 마라."

 

"아... 알았어. 형........"

 

"도대체 맥주를 얼마나 먹으려고 피쳐 다섯 병을 사왔어..."

 

"아니... 그... 그냥.. 나... 나쁘진 않잖아???? 독은 없다구!!!!"

 

"너는, 독 같은 거 타지도 못하는 놈이다."

 

잠시 말없이 술을 마시는 두 사람.

 

앞에는 김이 모락모락 솟을락말락한 후라이드치킨과 스낵과자가 놓여 있다.

 

"형, 일하고 왔어? 노래하고 왔어?"

 

"이번엔, 노래."

 

"헤에- 그러면 뭐, 굳이 손 씻을 필요는 없네 뭐."

 

"물수건으로 손 닦았다. '일'하고서는, 그냥 치킨 먹으면 안 되나 보지?"

 

"아무래도... 손에 쓸데없는 이물질이 묻은 상태라면.. 좀 그렇잖아. 위생상."

 

"일하고 나면 손은 꼭 씻는 편이야. 옛날에나 급해서 그랬던 거지."

 

"아하... 형, 혹시 부탁할 알리바이 같은 거 있어? 이번에도 충분히, 멋지게 만들어줄게!"

 

"없어. 너희 조직 일이나 잘 챙겨라. "

 

"으음.. 형이라면... 걱정마. 내 목숨을 걸고라도 살려줄 수 있으니까."

 

원철은 조금 취한 듯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각자 피쳐 한 벙씩을 끌어안고 따라 먹거나 병나발을 부는 중이었다. 원철은 술을 잘 마시는 소년, 아니 청년이 아니었다. 소주 3병을 마셔도 맨정신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혁건에 비해, 원철은 소주 반 병 정도의 알코올 분량이면 취해서 정신이 헤롱헤롱, 소주만 마시고도 마약 중독자의 상태에 돌입하는 것이 가능하다.

 

"원철아, 너 좀 취했다."

 

"혀어어엉~ 나 하나 물어볼 거 있써."

 

"뭔데.. 노래야? 총이야? 사시미야?"

 

"안.. 그게 아니구... 혀엉, 나 이거 물어봤다고~ 나 죽이진 않을 꺼지이?"

 

"그래. 나는 너 안 죽인다고 말했잖냐. 처음부터."

 

"그러면.. 형아........... 혹시 여자친구.... 생겼써?"

 

"풉!"

 

혁건은 마시고 있던 맥주를 뿜을 뻔했다. 술이 한번에 확 깨는 것 같았다.

혈중 알코올 농도라는 이름으로 즐겁게 혈관을 헤엄치던 알코올들이 한방에 머리 꼭대기로 파다닥파다닥 증발하는 듯했다. 그것은 원철도 마찬가지였다.

 

"혀엉! 으아아앙~ 내가 물어보지 말았어야 되는데!!!!!!!!! 형 화났어?????"

 

"아.. 아니........ 화난 건 아니야."

 

"그.. 그럼..???"

 

"여자친구.. 애인이라.........

너, 그 방 문 열었지?"

 

"으.. 으응...... 아니.. 형이 암만 기다려도 오지 않길래..... 근데 거기가 너무 깔끔하게 되어 있어서.... 알다시피... 거기 옛날에 쥐하고 뱀도 나왔었잖아......."

 

"..........................."

 

"결정적인 건, 거기 여자 옷도 있고.... 형, 진짜 여자랑 같이 사는 거야?"

 

"아니, 나비랑 같이 사는 거야."

 

"나비? 술집 여자같다.... 근데 정말로 하늘하늘, 이쁜가봐...."

 

"나도 잘 모르는 일이다."

 

"뭐야 형, 변태야?"

 

"잠깐 미쳤을 거야. 그 때. 나쁘지 않아서 데리고 있을 뿐이야."

 

그러면서도 혁건은 성가시다는 표정은 전혀 짓지 않았다.

오히려 악간 웃는 듯한 얼굴이었다.

 

"혀.. 형........ 그.. 그러면.. 해...... 해... 봤어???????"

 

"뭘."

 

"아, 아니.... 그.. 있잖아.... 그.... 그거......!!!!! 시.... 십구금......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그... 저.. 전설의.."

 

"아니."

 

"뭐어? 집안에 여자랑 같이 사는데 한 번도 안 덮쳤단 말이야? 형, 아무리 여자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그렇지!!!!!!!! 그건 고자의 경지란 말이야!!!!! 형이 내시야? 신부님이야? 땡중이야?

으허헉.... 형이 그 정도로 심한 고자였다니.... 형이 고자라니! 고자라니! 고자라니이이이이!!!!!!!!"

 

"그냥 어쩌다 주워온 여자일 뿐이야. "

 

"에에? 형이..... 여자를... ?????"

 

"뛰어내리는 나비를 잡았어. 병원에 데려갔더니, 임신중이었더군. 하얀 시트와 치맛자락 위로 무언가 태어나는 것이 보였어. 그러나 아이가 아니라 장미 꽃잎이었지."

 

"무.. 무슨 얘길 하는 거야..."

 

"그 행위의 시작부터, 나도 전혀, 이성이 거의 없다시피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던 일들이야. 지금도 마찬가지고. 굳이 네가 이해하지 않아도 나쁘지 않을 대목이야. 어쨌든, 중요한 건 내가 구해주고 데려왔다는 거지."

 

"형이.... 사람도.... 구할 수 있어???????"

 

"이상해? 4일 전 얘기다."

 

"그런 여자..... 형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잖아... 

 형처럼 여자에 관심 없는 사람이.........그것도 4일 전이면, 형 의뢰 처리한 날이잖아."

 

"이유는, 나도 아직도 몰라."

 

"형."

 

"?"

 

"형, 안 하던 짓, 너무 많이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내 행동이 이상해?"

 

"사람이 안하던 짓을 갑자기 하게 되면 무슨 징조가 오는 거래.

 형, 조심해.

 나는, 형이 어떤 모습으로든, 내 곁에서 살아 있는 게 좋아.

 그러니까 형................... 혁건이 형....................

 너무 형스럽지 않은, 이상한 일들은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무슨 일이 있어도 형을 꼭 살리고 싶어. 그리고 그렇게 할 거야.

 

 나 갈게. 일 있으면 나한테 말해. 알리바이 하나는, 멋지게 만들어 줄테니까!"

 

"잘 가라. 나도, 적어도 너는 살린다. 신원철.

 충고, 고마웠다."

 

"으응!"

 

 

방문을 나가는 소리.

 

단조롭고도 따스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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