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위 사진의 출처는 "MBC 한글날 특집 미스터리 한글 해례 6211의 비밀"의 영상임을 밝힙니다.
우리의 글자 '한글'
훈민정음(訓民正音: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바른 소리)
조선 세종 28년(서기 1446년)에 창제된 훈민정음을 왕의 명령으로 정인지(鄭麟趾: 조선초기 문신 겸 학자) 등 집현전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한문해설서입니다. 책이름을 글자이름인 훈민정음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고도 하고,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합니다. 전권 33장 1책의 구성으로 된 목판본(나무판에 직접 문자를 새겨 넣어 만든 뒤 먹물로 찍어낸 종이) 입니다.
구성을 보면 총 33장 3부로 나누어, 제1부는 훈민정음의 본문을 4장 7면으로 하여 면마다 7행 11자씩, 제2부는 훈민정음해례를 26장 51면 3행으로 하여 면마다 8행 13자씩, 제3부는 정인지의 서문을 3장 6면에 1자 내려싣고, 그 끝에 ‘정통 11년’(1446)이라 명시하고 있다.『세종실록』에 의하면 훈민정음은 세종 25년(1443)에 왕이 직접 만들었으며, 세종 28년(1446)에 반포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이 책에서 서문과 함께 정인지가 근작(謹作:신중하게 삼가하여 만듬)하였다는 해례(解豫:보기를 들어 풀이함)를 빌어서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한글의 제작원리도 확연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 출처: 문화재청 -
세종대왕님은 임금님이기 이전 문자학(文字學: 문자의 종류와 역사, 표기법의 원리 등의 연구에 관련된 학문), 음운학(音韻學:음운과 음성의 연구에 관련된 학문)에 정통한 언어학자 였습니다.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적 제도차이로 인하여 어려운 중국의 한자를 많은 백성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하여 그 뜻을 담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만백성이 쉽게 배워 익혀 나날이 사용하고 쓰기에 편하게 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 훈민정음입니다.
훈민정음을 창조하기 까지 많은 시련들이 있었습니다. 세종대왕님의 훈민정음 제정에 조정에서는 수 많은 반대와 상소가 잇달았습니다.
"중국의 한자가 있는데 굳이 우리의 글자를 만들 필요가 있냐", "자기글자를 가지는 것은 오랑캐들이나 하는 짓이다", (당시 중화사상을 엿 볼 수 있습니다. 거란,여진족 등 북방 민족을 폄하하여
오랑캐라 칭하였습니다.) "학문을 배우는 선비에게만 글자가 필요한 것이지 천한 백성에게 글자가 필요하냐"
등의 상소가 이어졌지만, 우리의 세종대왕님! 뜻을 굽히지 않으시고 집현전의 학자들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에 혼신을 다 하셨습니다. 그 결과 지금의 유물이자 우리가 쓰고 있는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진 문자 '한글'이 탄생된 것입니다.
한글의 창제원리에서 자음(ㄱㄴㄷㄹ...)은 발음시 구강구조의 모양을 본따 만들었으며 모음(ㅏㅣㅜㅔㅗ...) 은 천지인(天地人) 이라는 하늘( ㆍ ) 땅( ㅡ ) 사람( ㅣ ) 의 모양을 본따 만들었습니다.
한글은 때로는 탄압을 받게 되었습니다.
조선 연산군 10년(서기 1504년) 연산군의 폭정에 의해 한글로 쓰여진 문서들이 도처에 뿌려지게 되었고 많은 백성들이 그 문서들을 통해서 연산군의 폭정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연산군은 급기야 한글까지 탄압하게 되었는데, 당시 관군을 동원하여 한글로 된 책 들을 불태우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뜻이 있던 당시의 학자들은 한글로 된 책들을 발각되지 않도록 깊숙하게 숨겨 놓았으며, 세월이 흘러가면서 다시 문자로서의 그 꽃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일제강점기 때 역시, 일본이 한민족의 언어를 말살하기 위하여 한글의 사용을 금지하기에 이르렀으며 수 많은 한글로 된 책들과 자료들이 소실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탄압 속에서도 우리의 글자 '한글'은 독립운동과 함께 유지되고 전승되었으며 민족의 혼으로서 우리 민족의 글자로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던 은폐되어 조심스럽게 보관되었던 훈민정음 해례본(현재 국보70호로 지정된)이 1940년 경상북도 안동에 소재한 긍구당에서 발견되어 한글에 대한 그 뛰어난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에서 '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민족의 정서와 함께 해온 '한글'
세종대왕님의 훈민정음 창제와 배포에 이르기까지 '한글'은 백성들이 널리 사용하는 문자로서 민족의 희노애락이 담겨져 많은 문학작품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대부의 문학작품이 주로 중국의 한자를 빌어 표기된 것에 반해 서민층은 '한글'을 빌어 당시 생활의 고단함과 아픔, 때로는 기쁨의 표현을 '한글'이라는 문자를 통해 표현하고 널리 함께 하여 왔습니다. 만약 '한글'이 없었다면 곤궁한 처지에 있었던 서민들의 생활상을 나타낼 수단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500년이 넘는 역사와 함께 해온 '한글', 민족과 역사를 함께 해왔습니다.
안타까운 현실
'한글'의 우수함과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문제점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 중 외국어의 유입으로 우리말 '한글'의 붕괴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화의 정세 속에서 만국 공통어라고 일컬어지는 영어로 인하여 '한글'의 입지가 좁아지고 언어로서의 '한글'의 학습에도 소홀히 하기에 이르렀으며 인터넷의 급속한 발달과 함께 '한글' 붕괴 현상이 심화 되고 있습니다. 유행을 타고 신속하게 번져가는 신조어 역시 아름다운 '한글' 말들의 본래의 뜻마저 무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외계어 역시 한글 본래의 모습을 파괴하고 민족의 언어 '한글'의 참모습을 변질 시키고 있습니다.
이토록 귀중한 '한글' 우리가 지키고 아껴야 합니다.
'한글'을 사랑합시다.
우리 민족은 반만년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그 자긍심으로 세계 속에서 꽃을 피워나가고 있습니다. 그 반만년동안 민족의 문자다운 문자가 없던 시간 속에서 '한글'은 우리 민족에게 하나가 될 수 있는 구심점이 되어 왔으며 수 많은 아픔 속에서도 민족의 혼과 정신으로 함께하여 왔습니다.
우리의 ''한글'' 아끼고 사랑합시다.
우선 위 사진의 출처는 "MBC 한글날 특집 미스터리 한글 해례 6211의 비밀"의 영상임을 밝힙니다.
우리의 글자 '한글'
훈민정음(訓民正音:백성을 가르치기 위한 바른 소리)
조선 세종 28년(서기 1446년)에 창제된 훈민정음을 왕의 명령으로 정인지(鄭麟趾: 조선초기 문신 겸 학자) 등 집현전 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한문해설서입니다.
책이름을 글자이름인 훈민정음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고도 하고,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합니다.
전권 33장 1책의 구성으로 된 목판본(나무판에 직접 문자를 새겨 넣어 만든 뒤 먹물로 찍어낸 종이) 입니다.
구성을 보면 총 33장 3부로 나누어, 제1부는 훈민정음의 본문을 4장 7면으로 하여 면마다 7행 11자씩, 제2부는 훈민정음해례를 26장 51면 3행으로 하여 면마다 8행 13자씩, 제3부는 정인지의 서문을 3장 6면에 1자 내려싣고, 그 끝에 ‘정통 11년’(1446)이라 명시하고 있다.『세종실록』에 의하면 훈민정음은 세종 25년(1443)에 왕이 직접 만들었으며, 세종 28년(1446)에 반포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이 책에서 서문과 함께 정인지가 근작(謹作:신중하게 삼가하여 만듬)하였다는 해례(解豫:보기를 들어 풀이함)를 빌어서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한글의 제작원리도 확연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 출처: 문화재청 -
세종대왕님은 임금님이기 이전 문자학(文字學: 문자의 종류와 역사, 표기법의 원리 등의 연구에 관련된 학문), 음운학(音韻學:음운과 음성의 연구에 관련된 학문)에 정통한 언어학자 였습니다.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적 제도차이로 인하여 어려운 중국의 한자를 많은 백성들이 제대로 배우지 못하여 그 뜻을 담아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만백성이 쉽게 배워 익혀 나날이 사용하고 쓰기에 편하게 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 훈민정음입니다.
훈민정음을 창조하기 까지 많은 시련들이 있었습니다.
세종대왕님의 훈민정음 제정에 조정에서는 수 많은 반대와 상소가 잇달았습니다.
"중국의 한자가 있는데 굳이 우리의 글자를 만들 필요가 있냐",
"자기글자를 가지는 것은 오랑캐들이나 하는 짓이다",
(당시 중화사상을 엿 볼 수 있습니다. 거란,여진족 등 북방 민족을 폄하하여
오랑캐라 칭하였습니다.)
"학문을 배우는 선비에게만 글자가 필요한 것이지 천한 백성에게 글자가 필요하냐"
등의 상소가 이어졌지만, 우리의 세종대왕님! 뜻을 굽히지 않으시고 집현전의 학자들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에 혼신을 다 하셨습니다.
그 결과 지금의 유물이자 우리가 쓰고 있는 전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알려진 문자
'한글'이 탄생된 것입니다.
한글의 창제원리에서 자음(ㄱㄴㄷㄹ...)은 발음시 구강구조의 모양을 본따 만들었으며
모음(ㅏㅣㅜㅔㅗ...) 은 천지인(天地人) 이라는 하늘( ㆍ ) 땅( ㅡ ) 사람( ㅣ ) 의 모양을 본따
만들었습니다.
한글은 때로는 탄압을 받게 되었습니다.
조선 연산군 10년(서기 1504년) 연산군의 폭정에 의해 한글로 쓰여진 문서들이 도처에
뿌려지게 되었고 많은 백성들이 그 문서들을 통해서 연산군의 폭정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연산군은 급기야 한글까지 탄압하게 되었는데, 당시 관군을 동원하여 한글로 된 책 들을
불태우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뜻이 있던 당시의 학자들은 한글로 된 책들을 발각되지
않도록 깊숙하게 숨겨 놓았으며, 세월이 흘러가면서 다시 문자로서의 그 꽃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일제강점기 때 역시, 일본이 한민족의 언어를 말살하기
위하여 한글의 사용을 금지하기에 이르렀으며 수 많은 한글로 된 책들과 자료들이 소실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탄압 속에서도 우리의 글자 '한글'은 독립운동과 함께 유지되고 전승되었으며
민족의 혼으로서 우리 민족의 글자로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던 은폐되어 조심스럽게 보관되었던
훈민정음 해례본(현재 국보70호로 지정된)이 1940년 경상북도 안동에 소재한 긍구당에서 발견되어 한글에 대한 그 뛰어난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에서 '기록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민족의 정서와 함께 해온 '한글'
세종대왕님의 훈민정음 창제와 배포에 이르기까지 '한글'은 백성들이 널리 사용하는 문자로서
민족의 희노애락이 담겨져 많은 문학작품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대부의 문학작품이 주로 중국의 한자를 빌어 표기된 것에 반해 서민층은 '한글'을 빌어
당시 생활의 고단함과 아픔, 때로는 기쁨의 표현을 '한글'이라는 문자를 통해 표현하고
널리 함께 하여 왔습니다. 만약 '한글'이 없었다면 곤궁한 처지에 있었던 서민들의 생활상을
나타낼 수단이 쉽지 않았을 겁니다.
500년이 넘는 역사와 함께 해온 '한글', 민족과 역사를 함께 해왔습니다.
안타까운 현실
'한글'의 우수함과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문제점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 중 외국어의 유입으로 우리말 '한글'의 붕괴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화의 정세 속에서 만국 공통어라고 일컬어지는 영어로 인하여 '한글'의 입지가
좁아지고 언어로서의 '한글'의 학습에도 소홀히 하기에 이르렀으며 인터넷의 급속한
발달과 함께 '한글' 붕괴 현상이 심화 되고 있습니다. 유행을 타고 신속하게 번져가는
신조어 역시 아름다운 '한글' 말들의 본래의 뜻마저 무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외계어 역시 한글 본래의 모습을 파괴하고
민족의 언어 '한글'의 참모습을 변질 시키고 있습니다.
이토록 귀중한 '한글' 우리가 지키고 아껴야 합니다.
'한글'을 사랑합시다.
우리 민족은 반만년이라는 역사를 가지고 그 자긍심으로 세계 속에서 꽃을 피워나가고
있습니다. 그 반만년동안 민족의 문자다운 문자가 없던 시간 속에서 '한글'은
우리 민족에게 하나가 될 수 있는 구심점이 되어 왔으며 수 많은 아픔 속에서도
민족의 혼과 정신으로 함께하여 왔습니다.
10월 9일 한글날, 민족의 글자 '한글'의 고귀한 뜻을 이어 받아
세종대왕님과 집현전 학자들의 드높은 정신을 기리며 자긍심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야 겠습니다.
이천 칠년 십월 구일 새벽, 이상훈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