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정은 조금 바쁘다..종묘를 돌아 창경궁 그리고 서대문 형무소까지 가는게 계획..뭐 시간안되면 다음으로 미루는것이고..그것이 내 여행 스타일이다..ㅎㅎ
하여간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11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종묘..어른신들 많이들 모여 계시기 때문에 금방 알게된다..
종묘 입구..입장료 1000냥..65세 어르신부터는 무료 입장..그래서 많은 어른신들이 종묘와 창경궁을 산보 삼아 구경하신다..나머지 구체적인 내용은 맨아래 공식홈에서 얻으시기를...
망묘루
제향때 임금께서 정전을 보면서 선왕과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하여간 개인적으로 이 망묘루보다는 그 옆에 작은 공민왕신당이 더 눈길이 갔다..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가 한자리에 있는 영정(影幀)과 준마도(駿馬圖)가 봉안되어 있는 신당
신당의 정식 명칭은 '고려 공민왕 영정 봉안지당(高麗 恭愍王 影幀 奉安之堂)'이다.
신당은 정전에 비하면 참 초라할 정도다.. 그래도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고려 31대 공민왕의 업적을 기르기 제사 지내기 위해 만든 신당..그외 여러 다른 이야기도 있다.(조선건국과 고려의 관계라고 해야하나..더 자세한건 그때 역사를 알아보세용.)
하여간 현재 모셔진 영정과 준마도는 복제품..
공민왕
고려 제31대 왕(재위 1351∼1374). 원나라 배척운동을 통해 몽골풍, 몽골 연호·관제를 폐지했다. 쌍성총관부를 폐지하고 영토를 회복했다. 신돈을 등용하여 개혁 정치를 펼쳤다.
노국대장공주
보탑실리공주(寶塔實里公主)라고도 한다. 중국 원(元)나라의 황족인 위왕(魏王)의 딸로서, 1349년(충정왕 1) 원나라에서 공민왕과 결혼하였다. 1351년 12월 공민왕과 함께 귀국하였고 공민왕은 그 달에 즉위하였다. 1365년(공민왕 14)에 난산(難産)으로 죽었다. 공민왕은 그녀를 매우 사랑하여 그녀가 죽은 뒤부터 정사(政事)를 돌보지 않았으며, 친히 왕비의 진영(眞影)을 그려 벽에 걸고 밤낮으로 바라보면서 울었다. 또 그녀의 영(靈)을 위로해 주기 위해 혼제(魂祭)를 지냈으며, 그 진영을 모시기 위해 장려한 영전(影殿)을 지었다.
종묘제례 때 사용되는 향, 축, 폐를 보관하고, 제사에 참석하는 제관들이 제례 준비를 하며 머무르는 곳
건물 중앙으로 입장해서 가운데로 들어가 슬리퍼로 바꿔신고 두곳을 보고 왼쪽 끝 문으로 나옴.
하여간 제기 하나하나에 있던 모양이 예사롭지 않은 물건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 싶다.
어숙실
왕이 목욕하고 재계하며 의복을 정재하여 세자와 함께 제사를 올릴 준비를 하던 곳으로, 재궁, 어재실이라고도 한다.
정전
건물의 크기와 아름다움으로 압도당한 느낌이다..정말 멋진 건물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런지 외국분들도 감탄사를 연발..사진 셔터 소리 연신 들린다..
약간 45도 각도에서 전체를 넣어보려고 했지만 공간의 제한으로 조금 짤렸다..ㅎㅎ
세계 어디를 가도 쉽게 보지못하는 그런 건물이 아닌런지..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신 곳으로, 정전은 종묘의 중심 건물로 영녕전과 구분하여 태묘(太廟)라 부르기도 한다.
정전은 조선시대 초 태조 이성계의 4대조(목조, 익조, 탁조, 환조) 신위를 모셨으나, 그 후 당시 재위하던 왕의 4대조(고조, 증조, 조부, 부)와 조선시대 역대 왕 가운데 공덕이 있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하는 곳이 되었다.
종묘는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지내는 사직단과 함께 국가에서 가장 중요시한 제례 공간으로, 그 건축 양식은 최고의 격식을 갖춘다.
현재 정전에는 서쪽 제1실에서부터 19분 왕과 왕비의 신주를 각 칸을 1실로 하여 모두 19개의 방에 모시고 있다.
이 건물은 칸마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매우 단순한 구조이지만, 19칸이 옆으로 길게 이어져 우리나라 단일건물로는 가장 긴 건물이다.
정전 남문은 혼백이 드나드는 곳으로 사람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이란다. 그런대 관광개 대부분이 이 남문으로 정전을 들어온다..아휴..나 또한 모르고 들어갔지만..이런 의미가 있는 남문은 금줄이나 출입금지를 시켜서 왜 다른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써놓으면 더 좋지 않나 싶다..
남문위에 동서로 문이 또 있다. 서문은 악공들이 드나드는 문이고 동문이 어로..정전 건물바로 앞에 기단은 못 올라가게 되어있음..
여기서 사진을 안찍을 수 없어서 멋지게 찍어본다..ㅎㅎ 그외 설명은 공식홈에서 살펴 보시기를..
맨위 왼쪽이 전사청(종묘제사에 사용하는 제수의 진찬 준비를 하던 곳으로, 뜰을 가운데 두고 그 주위로 건물을 ㅁ자형으로 배치하였다.)
우상과 하좌 이미지는 제정(향제(享祭)에 사용되는 우물)인데..어찌나 맑게 보이던지..ㅎㅎ
우측 하단 이미지는 영녕전..또 다른 정전이라고 하면 될란가..
영녕전 남문
영녕전을 짓게 된 동기는 시간이 흐르고 죽은 왕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건물을 늘리거나 새로 지어야 할 필요 때문이었다.
이 건물은 세종 3년(1421) 정종의 신주를 종묘에 모실 때 지은 것으로, 태조의 4대조와 정전에서 계속 모실 수 없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옮겨 모신 곳이다.
현재 영녕전에는 가운데 4개의 방을 양쪽 옆에 딸린 방들보다 높게 꾸미고, 각 방에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탁조, 환조와 왕비들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그리고 서쪽 5번째 방부터 16번째 방까지 각각 정종과 왕비, 문종과 왕비, 단종과 왕비, 덕종과 왕비, 예종과 왕비, 인종과 왕비, 명종과 왕비, 원종과 왕비, 경종과 왕비, 진종과 왕비, 장조와 왕비, 의민황태자(영친왕)와 태자비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작지만 정전과 달리 또 다른 건축미를 뽐내는 것 같다.
영녕전에 한때 폐위되었다 숙종때 복위된 단종의 신위는 모셔져있으나..연산군과 광해군 신위는 정전과 영녕전에 모셔져 있지 않다..
종묘의 맨 위쪽으로 가면 이렇게 다리가 있는데..이 다리를 건너면 바로 창경궁이다..결국 돈 천냥으로 종묘에서 창경궁 혹은 창경궁에서 입장해서 종묘를 보고 나오면 된다..이 사실을 잘 모르는 외국인은 또 돈을 내고 창경궁을 갈지도 모르겠다..영어로 안내판이 있나 모르겠네..
하여간 개방시간은 사진에 나와 있으니 참고..혹은 공식홈에도..ㅎㅎ
종묘의 위성사진..생각보다 긴 거리..연인이나 외국인 혹은 가족과 같이 방문해보시면 좋지 않나 싶다..다음은 창경궁으로 거거..
창경궁 안내도..사실 내가 아주 어릴적 기억도 안나지만..여기에 동물원이 있었다..바로 일제가 이 아름다운 궁에 동물원을 만들었다는 사실..슬프게도 1983년 12월 30일에야 본 모습인 창경궁으로 환원
홍화문
홍화문은 창경궁의 정문으로 조선 성종 15년(1484)에 지은 건물이다.
임진왜란(1592) 때 불에 타, 광해군 8년(1616)에 다시 지었고 지금 있는 건물은 그 뒤로도 여러 차례 수리하였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동쪽을 향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며, 지붕은 앞쪽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명정전
조선 성종 15년(1484)에 창경궁이 조성되고, 그 정전으로서 명정전이 세워졌다. 이때 명정전은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정전과는 달리 남향이 아닌 동향이었다. 이는 창경궁의 지세에 따른 것이다. 그후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8년(1616)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 다른 궁의 정전과 같이 이중의 월대를 두어 그 위에 건물 기단을 마련하고, 큰 사각 주초 위에 원형의 운두 높은 주좌(柱座)를 조각하여 초석을 배열하였다.
경복궁에는 천장에 용조각이 있던데 여기는 봉황이..문에 새겨진 모양 또한 예사롭지않다..
왼쪽 상단 두번째 이미지에 일월오봉병(새 만원권에도 있는 해와 달과 다섯 봉우리가 그려져있는 병풍)이 있다.
명정전앞에서 명정문과 그 뒤에 홍화문을 바라보니..마치 왕이 된 기분이 잠시나마 든다..상상은 자유니 ㅎㅎ..
그외 별채..여러건물의 이름과 내용은 아래 창경궁 공식홈에서 살펴보시기를..ㅎㅎ
맨아래 오른쪽 영춘원이 정조대왕께서 오래 머무신 곳이라고 합니다. 영춘원 뒤쪽에 사도세자의 사당이 있었고 그 사당으로 가기 위해서 월근문(이 문은 정조가 그 부친 사도세자의 묘(廟)인 경모궁에 수시로 참배하기 위하여 정조 3년(1779)에 건립하였다. 정조가 매달 초하루 경모궁에 참배하러 거둥할 때에는 반드시 이 문을 경유하였기 때문에 월근문(月覲門)이라 이름하였다 한다.)을 만듬 또한 영춘원 옆에 언덕에 정조대왕의 어머님(혜경궁홍씨)거처가 있어서 사도세자 사당을 맞주보게 했다고 하니 정조대왕의 효심을 알수있는 곳이라하겠다..
사도세자가 나오면 필연적으로 나오는게 영조대왕과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그리고 정조대왕..
영춘헌은 내전 건물이며 집복헌(集福軒)은 영춘헌의 서행각으로 초창 연대는 알 수 없다. 집복헌에서는 영조 11년(1735)에 사도세자가 태어났고 정조 14년(1790) 6월에는 순조가 태어났으며 정조는 영춘헌에서 거처하다가 재위 24년(1800) 6월 승하하였다.
풍기대와 해시계..잠시 옛조상들의 지혜를 엿볼수 있다..
태실비는 태실 동쪽에 있는데 귀부(龜趺)와 비신(碑身), 이수를 갖추고 있고 비신 앞면에는 "성종대왕 태실"이라 새겨져 있다. 이들은 원래 조선 제9대 성종의 태를 묻은 곳인 경기도 광주군 경안면에 있었던 것인데 1930년 5월 전국에 있는 조선 역대 임금의 태실을 대부분 서삼릉으로 이봉하면서 이곳으로 옮겼다고 전한다.
춘당지는 1909년에 조성된 원지(苑池)이다. 두 개의 연못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위의 것이 1,107평방미터, 아래 것이 6,483평방미터이다. 연못 속의 섬(366평방미터)과 다리는 1984년에 조성한 것이다.
춘당지가 있는 이곳은 원래 연산군이 서총대(瑞총臺) 앞 대지를 파다가 중종반정으로 중단한 곳이다. 그 후 권농장(勸農場)의 논이 있었는데 연못으로 만들었다.
대온실
1909년에 준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식물원이다. 건축 당시 한국 최대의 목조구조 식물원이었으며,열대지방의 관상식물을 비롯한 희귀한 식물을 전시하였다. 1986년 창경궁 복원공사를 계기로 자생목본류를 중심으로 야생화와 함께 전시하고 있다.
대온실앞에 분수대앞이 포토존인듯..ㅎㅎ
돌고 돌아 홍화문으로 빠져 나왔다..예전에 친구랑 같이왔다가 관람시간을 넘겨서 못 들어갔던 기억이..ㅎㅎ
길게 늘어져 있는 궁궐벽..데이트하기에 좋지않나 싶다..ㅎㅎ
분홍색원이 종묘와 연결된 다리 노란실선은 이동선이고 녹색선안은 창덕궁이랍니다..창덕궁은 다른 문으로 가셔야 함.
종묘와 창경궁 나들이
오늘 일정은 조금 바쁘다..종묘를 돌아 창경궁 그리고 서대문 형무소까지 가는게 계획..뭐 시간안되면 다음으로 미루는것이고..그것이 내 여행 스타일이다..ㅎㅎ
하여간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11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종묘..어른신들 많이들 모여 계시기 때문에 금방 알게된다..
종묘 입구..입장료 1000냥..65세 어르신부터는 무료 입장..그래서 많은 어른신들이 종묘와 창경궁을 산보 삼아 구경하신다..나머지 구체적인 내용은 맨아래 공식홈에서 얻으시기를...
망묘루
제향때 임금께서 정전을 보면서 선왕과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하여간 개인적으로 이 망묘루보다는 그 옆에 작은 공민왕신당이 더 눈길이 갔다..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가 한자리에 있는 영정(影幀)과 준마도(駿馬圖)가 봉안되어 있는 신당
신당의 정식 명칭은 '고려 공민왕 영정 봉안지당(高麗 恭愍王 影幀 奉安之堂)'이다.
신당은 정전에 비하면 참 초라할 정도다.. 그래도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고려 31대 공민왕의 업적을 기르기 제사 지내기 위해 만든 신당..그외 여러 다른 이야기도 있다.(조선건국과 고려의 관계라고 해야하나..더 자세한건 그때 역사를 알아보세용.)
하여간 현재 모셔진 영정과 준마도는 복제품..
공민왕
고려 제31대 왕(재위 1351∼1374). 원나라 배척운동을 통해 몽골풍, 몽골 연호·관제를 폐지했다. 쌍성총관부를 폐지하고 영토를 회복했다. 신돈을 등용하여 개혁 정치를 펼쳤다.
노국대장공주
보탑실리공주(寶塔實里公主)라고도 한다. 중국 원(元)나라의 황족인 위왕(魏王)의 딸로서, 1349년(충정왕 1) 원나라에서 공민왕과 결혼하였다. 1351년 12월 공민왕과 함께 귀국하였고 공민왕은 그 달에 즉위하였다. 1365년(공민왕 14)에 난산(難産)으로 죽었다. 공민왕은 그녀를 매우 사랑하여 그녀가 죽은 뒤부터 정사(政事)를 돌보지 않았으며, 친히 왕비의 진영(眞影)을 그려 벽에 걸고 밤낮으로 바라보면서 울었다. 또 그녀의 영(靈)을 위로해 주기 위해 혼제(魂祭)를 지냈으며, 그 진영을 모시기 위해 장려한 영전(影殿)을 지었다.
공민왕릉과 이야기
http://blog.naver.com/psunh512?Redirect=Log&logNo=120020156006
향대청
종묘제례 때 사용되는 향, 축, 폐를 보관하고, 제사에 참석하는 제관들이 제례 준비를 하며 머무르는 곳
건물 중앙으로 입장해서 가운데로 들어가 슬리퍼로 바꿔신고 두곳을 보고 왼쪽 끝 문으로 나옴.
하여간 제기 하나하나에 있던 모양이 예사롭지 않은 물건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 싶다.
어숙실
왕이 목욕하고 재계하며 의복을 정재하여 세자와 함께 제사를 올릴 준비를 하던 곳으로, 재궁, 어재실이라고도 한다.
정전
건물의 크기와 아름다움으로 압도당한 느낌이다..정말 멋진 건물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런지 외국분들도 감탄사를 연발..사진 셔터 소리 연신 들린다..
약간 45도 각도에서 전체를 넣어보려고 했지만 공간의 제한으로 조금 짤렸다..ㅎㅎ
세계 어디를 가도 쉽게 보지못하는 그런 건물이 아닌런지..
종묘는 조선왕조 역대 임금의 신위를 모신 곳으로, 정전은 종묘의 중심 건물로 영녕전과 구분하여 태묘(太廟)라 부르기도 한다.
정전은 조선시대 초 태조 이성계의 4대조(목조, 익조, 탁조, 환조) 신위를 모셨으나, 그 후 당시 재위하던 왕의 4대조(고조, 증조, 조부, 부)와 조선시대 역대 왕 가운데 공덕이 있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하는 곳이 되었다.
종묘는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지내는 사직단과 함께 국가에서 가장 중요시한 제례 공간으로, 그 건축 양식은 최고의 격식을 갖춘다.
현재 정전에는 서쪽 제1실에서부터 19분 왕과 왕비의 신주를 각 칸을 1실로 하여 모두 19개의 방에 모시고 있다.
이 건물은 칸마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매우 단순한 구조이지만, 19칸이 옆으로 길게 이어져 우리나라 단일건물로는 가장 긴 건물이다.
정전 남문은 혼백이 드나드는 곳으로 사람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이란다. 그런대 관광개 대부분이 이 남문으로 정전을 들어온다..아휴..나 또한 모르고 들어갔지만..이런 의미가 있는 남문은 금줄이나 출입금지를 시켜서 왜 다른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써놓으면 더 좋지 않나 싶다..
남문위에 동서로 문이 또 있다. 서문은 악공들이 드나드는 문이고 동문이 어로..정전 건물바로 앞에 기단은 못 올라가게 되어있음..
여기서 사진을 안찍을 수 없어서 멋지게 찍어본다..ㅎㅎ 그외 설명은 공식홈에서 살펴 보시기를..
맨위 왼쪽이 전사청(종묘제사에 사용하는 제수의 진찬 준비를 하던 곳으로, 뜰을 가운데 두고 그 주위로 건물을 ㅁ자형으로 배치하였다.)
우상과 하좌 이미지는 제정(향제(享祭)에 사용되는 우물)인데..어찌나 맑게 보이던지..ㅎㅎ
우측 하단 이미지는 영녕전..또 다른 정전이라고 하면 될란가..
영녕전 남문
영녕전을 짓게 된 동기는 시간이 흐르고 죽은 왕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건물을 늘리거나 새로 지어야 할 필요 때문이었다.
이 건물은 세종 3년(1421) 정종의 신주를 종묘에 모실 때 지은 것으로, 태조의 4대조와 정전에서 계속 모실 수 없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옮겨 모신 곳이다.
현재 영녕전에는 가운데 4개의 방을 양쪽 옆에 딸린 방들보다 높게 꾸미고, 각 방에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탁조, 환조와 왕비들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그리고 서쪽 5번째 방부터 16번째 방까지 각각 정종과 왕비, 문종과 왕비, 단종과 왕비, 덕종과 왕비, 예종과 왕비, 인종과 왕비, 명종과 왕비, 원종과 왕비, 경종과 왕비, 진종과 왕비, 장조와 왕비, 의민황태자(영친왕)와 태자비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작지만 정전과 달리 또 다른 건축미를 뽐내는 것 같다.
영녕전에 한때 폐위되었다 숙종때 복위된 단종의 신위는 모셔져있으나..연산군과 광해군 신위는 정전과 영녕전에 모셔져 있지 않다..
종묘의 맨 위쪽으로 가면 이렇게 다리가 있는데..이 다리를 건너면 바로 창경궁이다..결국 돈 천냥으로 종묘에서 창경궁 혹은 창경궁에서 입장해서 종묘를 보고 나오면 된다..이 사실을 잘 모르는 외국인은 또 돈을 내고 창경궁을 갈지도 모르겠다..영어로 안내판이 있나 모르겠네..
하여간 개방시간은 사진에 나와 있으니 참고..혹은 공식홈에도..ㅎㅎ
종묘의 위성사진..생각보다 긴 거리..연인이나 외국인 혹은 가족과 같이 방문해보시면 좋지 않나 싶다..다음은 창경궁으로 거거..
창경궁 안내도..사실 내가 아주 어릴적 기억도 안나지만..여기에 동물원이 있었다..바로 일제가 이 아름다운 궁에 동물원을 만들었다는 사실..슬프게도 1983년 12월 30일에야 본 모습인 창경궁으로 환원
홍화문
홍화문은 창경궁의 정문으로 조선 성종 15년(1484)에 지은 건물이다.
임진왜란(1592) 때 불에 타, 광해군 8년(1616)에 다시 지었고 지금 있는 건물은 그 뒤로도 여러 차례 수리하였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동쪽을 향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며, 지붕은 앞쪽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명정전
조선 성종 15년(1484)에 창경궁이 조성되고, 그 정전으로서 명정전이 세워졌다. 이때 명정전은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정전과는 달리 남향이 아닌 동향이었다. 이는 창경궁의 지세에 따른 것이다. 그후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8년(1616)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른다. 다른 궁의 정전과 같이 이중의 월대를 두어 그 위에 건물 기단을 마련하고, 큰 사각 주초 위에 원형의 운두 높은 주좌(柱座)를 조각하여 초석을 배열하였다.
경복궁에는 천장에 용조각이 있던데 여기는 봉황이..문에 새겨진 모양 또한 예사롭지않다..
왼쪽 상단 두번째 이미지에 일월오봉병(새 만원권에도 있는 해와 달과 다섯 봉우리가 그려져있는 병풍)이 있다.
명정전앞에서 명정문과 그 뒤에 홍화문을 바라보니..마치 왕이 된 기분이 잠시나마 든다..상상은 자유니 ㅎㅎ..
그외 별채..여러건물의 이름과 내용은 아래 창경궁 공식홈에서 살펴보시기를..ㅎㅎ
맨아래 오른쪽 영춘원이 정조대왕께서 오래 머무신 곳이라고 합니다. 영춘원 뒤쪽에 사도세자의 사당이 있었고 그 사당으로 가기 위해서 월근문(이 문은 정조가 그 부친 사도세자의 묘(廟)인 경모궁에 수시로 참배하기 위하여 정조 3년(1779)에 건립하였다. 정조가 매달 초하루 경모궁에 참배하러 거둥할 때에는 반드시 이 문을 경유하였기 때문에 월근문(月覲門)이라 이름하였다 한다.)을 만듬 또한 영춘원 옆에 언덕에 정조대왕의 어머님(혜경궁홍씨)거처가 있어서 사도세자 사당을 맞주보게 했다고 하니 정조대왕의 효심을 알수있는 곳이라하겠다..
사도세자가 나오면 필연적으로 나오는게 영조대왕과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그리고 정조대왕..
영춘헌은 내전 건물이며 집복헌(集福軒)은 영춘헌의 서행각으로 초창 연대는 알 수 없다. 집복헌에서는 영조 11년(1735)에 사도세자가 태어났고 정조 14년(1790) 6월에는 순조가 태어났으며 정조는 영춘헌에서 거처하다가 재위 24년(1800) 6월 승하하였다.
풍기대와 해시계..잠시 옛조상들의 지혜를 엿볼수 있다..
태실비는 태실 동쪽에 있는데 귀부(龜趺)와 비신(碑身), 이수를 갖추고 있고 비신 앞면에는 "성종대왕 태실"이라 새겨져 있다. 이들은 원래 조선 제9대 성종의 태를 묻은 곳인 경기도 광주군 경안면에 있었던 것인데 1930년 5월 전국에 있는 조선 역대 임금의 태실을 대부분 서삼릉으로 이봉하면서 이곳으로 옮겼다고 전한다.
춘당지는 1909년에 조성된 원지(苑池)이다. 두 개의 연못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위의 것이 1,107평방미터, 아래 것이 6,483평방미터이다. 연못 속의 섬(366평방미터)과 다리는 1984년에 조성한 것이다.
춘당지가 있는 이곳은 원래 연산군이 서총대(瑞총臺) 앞 대지를 파다가 중종반정으로 중단한 곳이다. 그 후 권농장(勸農場)의 논이 있었는데 연못으로 만들었다.
대온실
1909년에 준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식물원이다. 건축 당시 한국 최대의 목조구조 식물원이었으며,열대지방의 관상식물을 비롯한 희귀한 식물을 전시하였다. 1986년 창경궁 복원공사를 계기로 자생목본류를 중심으로 야생화와 함께 전시하고 있다.
대온실앞에 분수대앞이 포토존인듯..ㅎㅎ
돌고 돌아 홍화문으로 빠져 나왔다..예전에 친구랑 같이왔다가 관람시간을 넘겨서 못 들어갔던 기억이..ㅎㅎ
길게 늘어져 있는 궁궐벽..데이트하기에 좋지않나 싶다..ㅎㅎ
분홍색원이 종묘와 연결된 다리 노란실선은 이동선이고 녹색선안은 창덕궁이랍니다..창덕궁은 다른 문으로 가셔야 함.
종묘 공식홈 http://jm.cha.go.kr/
창경궁 공식홈 http://cgg.ch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