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있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방승일2007.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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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있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많은 독립투사와 애국지사들의 아픔과 한이 서린 장소이다..그래서 그런지..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거대한 태극기 앞에 자연스레 고개가 숙여진다..


사실 여기를 가고자한 이유는 모방송에서 중국수학여행의 잘못된 점을 방송하면서 반대로 어떤것이 좋은 수학여행인가를 한 일본 학교의 학생들이 우리의 서대문형무소를 탐방하면서 느낀점과 일본의 잘못을 미안해하는 학생들의 인터뷰를 보면서..근처에가면 꼭 한번 들려봐야겠다고 생각하던차에..종묘와 창경궁 그리고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찾게 되었다.


 


아픔이 있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들어오면 김구선생과 윤봉길의사가 서있는 포토존이 있는데 한번쯤 찍어보시는것도 좋을듯 싶다..흑백처리하면 그당시의 독립투사의 모습이 될지도..이 나라를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하는 시간이였던것 같다..


 


그나저나 의외로 외국인 관광객도 꽤 많이 왔다..어떻게 이 장소를 알고 왔을까?^^ 좀더 다양하게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설명해주는 시설이 많았으면 더 좋을것같다..관광이란 한번오고 마는 곳이아니라 재차 다시 오고 싶어하는 곳으로 만드는것이 아닐까 싶다..


 


아픔이 있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하여간 코스를 약간 벗어나서리 다시 정코스로 회귀..맨 오른쪽 하단이 매표소 움직이는 동선은 맨아래 위성사진으로 설명..


 


아픔이 있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박물관 내부의 서대문형무소 모형...


 


아픔이 있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어떤곳은 촬영금지라..많이 찍지 못했다..그리고 요기 건물안에는 고문과 여러 잔혹한 전시관이 있어서리 생략햇다..건물들어서기전에 벌써 노약자나 산모 어린이는 놀랐지도 모르니 주의..라고 써있어서리..대충 독립기념관가보셨으면 아실터..그만큼 우리 독립투사와 애국지사들이 모진 고초를 겪은 곳이라서 절로 가슴이 아팠다..다시는 나라를 잃는 일은 없어야 할것이다.


 


아픔이 있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이렇게 포토존이 설치 되어있다..물론 외국인들은 잘 모르는지 잘 안찍더만..가이드처럼 한번 찍어본다..외국인들이여 나처럼 찍으시오..ㅎㅎ


흑백사진처럼 약간 설정해봤다..


 


김구선생의 이말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하나님이 물으신다면 나는 서슴치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하면 나는 또 "대한민국의 독립이요."할 것이다.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백범일지 중에서-


 


아픔이 있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차디찬 형무소의 내부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간다..좁디 좁은 독방에서 벽을 보면서 애국의 글을 쓰는 재현 인형도 있었는데..그 모습을 보면서 그 분은 무엇을 담아 벽에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백범김구선생이 즐겨 읇으셨다는 이 시 구절주에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오는 사람에게 이정표가 될것이니..즉..나라를 생각하는 작은 마음이 이 작은 독방에 글로 남아 다음에는 이런 나라 잃는 아픔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 아닐런지..


 


< 夜 雪 >

踏雪夜中去 (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今日我行蹟 (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 밤 눈 >

눈을 밟으며 밤길을 갈 때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오는 사람에게는 이정표가 될 것이니


서산대사 휴정의 한시라는데 근래 일각에서는 조선후기 문신인 이양연(李亮淵)의 시라는 설도 있음...


 


아픔이 있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세곳중에 한곳만 개방이고 두곳은 그냥 잠긴 상태..그래서 더 보는 느낌이 아팠는지 모르겠다.


 


아픔이 있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맨앞에 힘차게 가는 외국인 그 뒤를 따르는 어느 회사원..어느회사인지 단체로 탐방왔었다..정말이지 멋진 회사가 아닐까 싶다..직원들을 단체로 이런 의미있는 장소를 탐방하게 하다니..^^ 그래서 안내하시는분도 열심히 설명하시던데..나또한 그 인파에 묻혀 두 귀 쫑긋 세우고 들었다..


 


하여간 개방된 한 통로에는 감방안을 다 들어갈수도 엿볼수도 있게 해놨는데..참 색다른 체험이였다..


 


아픔이 있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지나가다가 형무소 벽쪽을 찍어봤다..나도 모르게 그냥 찍어봤다..가끔 사진기를 들고 다니면 그냥 아무 의미없이 찍는 사진도 있는데 그중에 한 사진이 아닐런지..ㅎㅎ


 


아픔이 있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또 다른 체험방..감방 반대편에 대형거울을 설치해 놓아서 셀카아닌 셀카를 찍게되었다..근데 나중에보니 사람이..처음에 깜짝 놀랐다..혼자 찍은건데..그새 사람이 지나갔었나 ㅎㅎ


 


아픔이 있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아참..지하감옥중에 여성옥사가 있는데..이 곳이 유관순 열사가 고문과 영양실조 때문에 1920년 10월 12일에 장렬히 옥중 순국하신 장소랍니다..


 


다보고 밖으로 나오면 사형집행장이 있는데 사형집행장은 촬영금지라..셔터를 안눌렀다..사실 찍었어도..못 올렸을것 같다..순국선열들의 피가 서려있는 장소라..다시한번 독립된 이나라를 잘 보존해서 세계에서 제일 살기좋은 나라로 만드는것이 이 땅에 사는 우리들이 해야할 일이 아닌가 생각되어진다..그래야 그 옛날 이 나라 독립을 위해서 애쓰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기쁨을 드리는 일이 아니겠는가?


 


아픔이 있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독립관



독립협회의 서재필(徐載弼)·윤치호(尹致昊) 등은 사대주의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는 모화관의 명칭을 고쳐서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독립관으로 명명하고, 그 건물을 독립협회 회관으로 사용하였다. 모화관 옆에 세운 영은문(迎恩門) 자리에 독립문을 세웠는데, 이것 역시 독립정신을 고취하기 위해서였다.


본래 모화관은 조선시대에 중국의 사신을 영접하던 곳이다. 1894년 갑오경장 후에 사용하지 않다가 1897년 독립협회가 건물을 고쳐 집회장소로 사용하였다. 독립협회는 사대주의를 외형적으로 청산하였을 뿐만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독립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독립신문을 발간하여 민중계몽에 힘썼다.


 


아픔이 있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독립문..사진으로나 봤던 것을 직접보니 감회가 새롭다 ㅎㅎ


 


아픔이 있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지하철 독립문역에서 내려서 녹색 실선따라 서대문독립공원을 가로질러 입구에 도착하면 노란실선따라 움직이면서 관람하면됩니다.


 


주황색원이 백범김구선생과 윤봉길의사가 있는 포토존이고 녹색원이 사형장이고 하늘색원이 독립관이고 분홍색원이 독립문임.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공식홈 http://www.sscmc.or.kr/culture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