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r Weg] 프랑크푸르트의 괴테

조규영200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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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 않게 찾아간 삼촌의 지인-이름은 명훈-은 첫인상 만큼이나 마음이 넉넉하고 배려심이 깊었다. 덕분에 독일에 온 첫 음식으로 볶음밥에 묵은 김치를 먹었으니 말이다.

 

성악을 공부하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그의 독일어는 완벽했다.

 

독일어도 구슬 구르는 소리가 난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동시에 한국에서 수업시간 교수님의 나치 친위대 같은 독일어도 떠올랐다.

 

오후엔 내 유레일 패스도 오픈 하고 내 여행을 위해 기차 예약도 할 겸 밖으로 나갔다.

 

명훈의 집이 위치한 오펜바흐라는 작은 역에서 모나코로 가기 위한 열차편을 알아 보기로 했다.

 

역내는 가끔 중학생 정도 돼 보이는 아이 몇 명이나 유모차 같은 노인용 보행기를 끌고 지나가는 할머니 들 뿐 한가하고 조용했다.

 

역에서 할 일 없이 앉아 있던 창구 직원은 나의 여행지를 매우 흥미롭게 여겼다.

 

"모나코... 모나코.." 라며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골똘히 생각하더니

 

아주 열성적으로 Fahrplan(열차시간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잠시후 그는 종이 한장을 내밀며 말했다.

 

"6월 말이기 때문에 아직 본격적인 휴가 철이 아니에요. 아마 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그는 내 얼굴을 보며 또박 또박 천천히 얘기했다.

 

"그런데 왜 모나코죠?"

 

"언제부턴지 모르겠는데.. 꽤 오래전부터 나중에 유럽에 가게 된다면 가장 먼저 모나코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재미있다는 듯 웃더니 행운을 빈다고 했다.

 

 

계획표에는 출발 도착 역과 시간, 탑승 플랫폼 번호와 예약된 좌석번호가 적혀 있었다.

 

오늘 저녁 야간열차: 프랑크푸르트 발 파리 도착

내일 오후 4시경: 파리 발 니스 도착

 

니스와 모나코는 기차로 20분이 채 안되는 거리다.

 

론리 플래닛의 충고를 따라 저렴하게 숙소를 잡을 수 있는 니스에 머물 생각이었다.

 

나는 배고픈 학생 배낭 여행자이므로 론리의 분류에 따르면.

 

 

오펜바흐역에서 기차를 타고 우리는 프랑크푸르트 중심가로 향했다.

 

명훈은 프랑크푸르트의 중심 거리인 자일거리와 마인강 그리고 유명한 분수대가 있는 뢰머광장 등을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가 가리키는 건물 조형물 거리 등은 모두 몇 백년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렇게 오래된 것들 위를 사람들은 걸어다니거나 시청으로 쓰고 있었다.

 

뢰머 광장에서 우리는 부어스트(독일식 소세지)와 빵 그리고 헤페바이젠으라는 밀로 만든 맥주를 마셨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도 가끔씩 낮에 캔맥주에 빨대를 꽂아 마시며 다녔다.

 

그래도 왠지 낮에 마치 음료수처럼 맥주를 마셔대는 사람들을 보고 놀라워 해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관광객이니까 말이다.

 

더욱이 명훈이 그 말을 기대하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네요."

 

그는 아주 흡족해 보였다.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괴테하우스였다.  

 

괴테가 커서 바이마르로 가기 전까지 살았던 생가로 보존 및 복원이 놀라울 정도였다.

 

 

[Der Weg] 프랑크푸르트의 괴테

 


 

구지 독일어를 배우기 때문이 아니라도 괴테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다.

 

그의 삶의 대한 끊임없는 열정을 나는 본받고 싶다.

 

아시아권에서는 독일=괴테, 괴테=독일로 통한다. 

 

하지만 독일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믿는다면 순진한 착각이다.

 

괴테는 독일 밖에서 더 유명한 것이 사실이다.

 

 

[Der Weg] 프랑크푸르트의 괴테


 

[Der Weg] 프랑크푸르트의 괴테      

그동안 화보나 책에서만 봤던 것들을 직접 눈 앞에 있었다.

 

몇 백년이 지난 지금도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초고를 쓴 책상이나 그의 방 등이 잘 보존하고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기껏해야 골격만 앙상한 고가나 전시할 물품이 없어 썰렁한 박물관 등 우리의 문화재가 떠올라서 더 그랬다.

 

[Der Weg] 프랑크푸르트의 괴테
    그 이후 더 거리를 거닐던 우리는 저녁까지 밖에서 해결하고 명훈의 집으로 돌아왔다.    기차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어 여행 짐도 싸고 조금 쉴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