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미친 그들이 있었기에…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이양자200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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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미친 그들이 있었기에…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강명관 지음 | 푸른역사 | 380쪽 | 1만5000원

 


역사는 책벌레가 만든다. 성리학적 지배 이데올로기로 온 백성을 포박하려 했던 조선 사대부 사회, 책이 지식과 사유의 유일 창고였던 그 시대를, 저자(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는 탐서가들을 통해 포착한다. 수직 사회를 관철한 족쇄이자 그에 저항할 도구였던 ‘책’에 미쳤던 이들의 자취를 조선사의 중대 변곡점에서 발견한다.

삼봉 정도전이 “서적포를 설치해 금속활자로 책을 인쇄하자”고 주장한 것은 “혁명은 무력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뿌리박음에 의해 완수된다”는 철칙에 충실한 것이었다. 그는 금속활자가 성리학을 대량 전파할 수단이라고 믿었다.

혁명 주역 정도전의 이 아이디어는 그의 정적(政敵) 태종(이방원)에 의해 실현된다. “사병(士兵) 혁파”를 주장한 정도전에게 반감을 품은 태종은 그를 죽인 지 2년 뒤 즉위해 그로부터 3년 후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고 금속활자 계미자를 만든다. 태종은 “책은 유교 정치이념을 담보할 수단인데 책이 적어 유생들이 널리 보지 못한다”고 했는데, 이는 정도전의 논리와 같다. 저자는 “주자소 설치는 지금까지 우리 사고의 틀로 작용하는 유교 이데올로기를 본격 유포하는 계기가 된 문화사적·정치사회적 일대 사건이며, 이후 신권(臣權)이 왕권보다 우월한 사회, 왕이 아닌 사대부가 지배하는 사회를 만든 원인(遠因)이 됐다”고 해석한다.

 

 


책에 미친 그들이 있었기에… 책벌레들 조선을 만들다 ▲ 세종은 광적인 독서를 통해 스스로를 위대한 군주로 만들었고, 활자 개량과 집현전 확대로 조선 문화의 최고 전성기를 일궜다. 그림은 집현전 학사도(세종대왕 기념사업회 소장).


세종을 성군(聖君)으로 만든 건 책이었다. “수라를 들 때도 반드시 책을 좌우에 놓았던” 세종은 유학·문학·역사·언어학·음악·천문·농학·기계학·수학을 가리지 않은 독서 기계였다.

금속활자 개량은 조선의 법·제도·문화를 세운 세종의 찬란한 업적 중 하나다. 저자는 “조선 조 임금은 왕이란 이름의 수탈자에 불과하나, 세종만이 예외였다”면서도, 세종의 애민(愛民)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구텐베르크 활자가 독서 대중을 만든 것과 달리, 그보다 훨씬 앞선 우리 금속활자는 중세 지배층(사대부) 탄생에만 기여했다는 것이다.

출생에서 사망까지 구체적 행위를 명한 책 ‘소학(小學)’은 조선 지배계급을 강화한 장치였고, 그 중심엔 ‘소학의 화신’ 조광조가 있었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쫓겨난 뒤 중용된 사림 세력이 도덕화 정책을 펴면서, ‘소학’은 하루에 1300부가 인쇄된 날도 있었다.

저자는 “조광조를 축출한 기묘사화(1519)는 소학과 반(反)소학파의 대립이 원인이며, 선조 때 사림들이 정계 복귀하면서 ‘소학’도 복권됐으나 도덕적 사회는 결코 도래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위대한 주자학자 이황도 43세에야 ‘주자대전’과 조우하고, 자신을 매료시킨 ‘주자대전’을 추려 ‘주자서절요’를 낸다. 저자는 “퇴계의 저작은 주자학에 대한 이해를 넓혔지만, 조선 지식인들을 마르지 않는 호수 ‘주자대전’에 갇히게 해 학문적 상상력을 제한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이에게도 같은 비판을 가한다.

1766년, 36세였던 실학자 홍대용은 학문적 도반(道伴)을 얻어 토론하고 책을 구입하려는 욕심에 베이징에 갔고, 엄성·반정균 두 지식인과 문예를 논한 뒤 그 내용을 ‘담헌서’에 남긴다.

저자는 이 3자 대담을 조선 후기 지성사의 일대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양국 지식인들이 개인적으로 만난 최초 사례고, 이 때의 인맥이 훗날 이덕무·유득공·박제가·박지원·김정희가 중국 학자·문인과 교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안 본 책이 없다”는 호학(好學) 군주 정조를, 저자는 책과 사상의 탄압자로 규정한다. 정조는 1785년 이승훈·정약전·정약용·이벽 등 남인 자제들이 천주교 교리를 논하고 의식을 거행하다 적발된 사건을 계기로, “문체와 사상의 오염은 중국 서적에 그 원인이 있다”며 지식인 검열에 나선다.

저자는 통설과 세평(世評)에 가려진 부분을 조명하려 애쓴다. “허균의 천재성은 인정하나, 양명학·양명좌파의 영향을 받은 이단자나 ‘조숙한 근대인’으로 묘사된 그의 이미지는 허상이다” “산문의 최고봉 연암(박지원)의 독창성은 과장된 것이고, 김성탄·원굉도 같은 중국 비평가들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 “근대 계몽주의자 단재(신채호)는 한문으로 기술된 구지식을 혐오하면서도,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외 유출된 민족문화의 정수인 구서(舊書·한문서적)를 사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한다.

 

 

박영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