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줄불놀이에 감동먹다. 하늘에 수 많은 별들이 심어졌다. 우린 감나무집에서 좀 많이 불은 안동찜닭과 자반고등어를 먹고 식당주인이 안내원이 되어 줄불놀이를 구경하러 갔었다. 경이롭다라는 말을 이럴 때 써야 하는거 맞는거지?????? 한참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줄에 메달린 불을 보는게 아니라 줄 사이에 있는 하늘 의 별들을 ...... 숯에서 떨어지는 불꽃들이 바람을 따라 별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몇해전에 대부리에 유성쇼를 보기 위해 간 적이 있었다. 별똥별을 고대하며 옥상에 누워 ( 그 옥상에 누워 바다를 바라보고 별을 바라보고 또 바다가 들려 주는 파도의 노래 소리를 듣고 ~~아 그립다) 망원경을 눈에서 한시도 떼지도 않고 화장실 가고 싶은 것도 참아가며 별똥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에게게 달랑하나~~~ 오늘에서야 그 광경을 가짜로나마 목격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눈 시울이 붉어 졌다. 복 받쳐 오는 슬픔을 참느라 애먹었다는 게 맞는 거겟지. 왜? 슬펐냐구 ? 그냥 ~~ 누군가가 너무 그리워서 ~~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볼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가 사랑하는 이 일테지! 언젠가는 이 순간을 함께 볼 날이 있지 않을까? 힘내자구 ~~ 아자 아자 파샤~~ ziayo " 낙화야" 라는 소리가 들린다. 불꽃이 굴러 떨어질때마다 내 마음속에 커다란 별똥이 하나 씩 떨어졌다. 커다란 별똥별이니 아주 커다란 소원도 이루어 주지 않을까 하여 단 하나의 소원을 계속 되뇌었다. 하회 선유줄불놀이의 유래는 구전이나 기록물에 의하면 하회의 선유줄불놀이는 서애(유성룡)선생의 부친인 관찰사 유중영 공 이전부터 행하였다 하고 또한 조선 초엽 풍산유씨의 시조로부터 7대손인 종혜 공(임향시조)이 임향한 이후 동족마을이 형성된 뒤부터라는 기원설이 전해오고 있어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지금부터 약450년 전부터 실시된 놀이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 시기는 매년 음력 7월 기망(16일) 야음 짙어서야 시작되었으며, 장소는 하회마을을 굽이처 흐르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는 부용대와 만송정 사이, 남북으로는 겸암정과 우연정 사이에서 실시되었다고 한다. 이 놀이에 소요되는 경비는 동족 풍산유씨가 전담하고 준비와 사역은 서민층에서 전담했다는 기록 있으며, 과거에는 연중행사처럼 매년실시해 왔다고 하나 일제시대를 거쳐 최근에 이르기까지는 수년만에 한번씩 실시하였으며 제대로 재현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 놀이는 네가지 놀이인 뱃놀이, 줄불놀이, 달걀불농이, 낙화놀이가 잘 조화된 독특한 놀이다. "하회 줄불놀이", 하회불꽃놀이", 하회선유놀이" 등의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일부기록이나 재현의 과정에서 감지된 것은 선유의 중심놀이이고 선유에서도 선상시회가 놀이의 핵이며 거기에는 또한 선비의 낭만이 함께 담겨져 있다. 다만 달걀불놀이, 낙화놀이, 줄불놀이는 각기 그 아름다음의 특성은 지니고 있으나 선유의 흥취를 돕기 위한 보조놀이로서 선유와의 조화적인 미와 낙을 추구함은 물론 어둠속의 줄불과 깍아 세운 듯한 절벽의 낙화, 하늘의 달과 강 위의 달걀불이 잘 조화된 종합예술과 같은 느낌을 주는 놀이 구성요소라 하겠다. 1. 선유(뱃놀이) 선유는 배에 청사초롱을 여러 개 달고 사공이 노를 저어 강 한가운데를 선회하며 배 안에서는 선비와 양반이 즉흥시를 읊고 술을 즐기면서 기녀들에게는 시창이나 가무, 가야금을 타게 하였다. 시창이 끝날 때 새로운 시창이나 가무를 정하는 뜻에서 배안에서 부용대 위의 낙화지점을 향하여 "낙화야"라고 소리치는 신호에 따라 떨어지는 솔가지불의 낙화와 절벽과 공중의 줄불, 강물위의 달걀불, 보름달의 아름다운 달빛 등의 조화를 이루는 장관을 보고 즐긴다. 이 때 선유에는 선비, 양반, 초대받은 연사가의 빈재,또는 관료들이 타고 여자는 기녀만이 허용 되었다고 하니 그닥 좋은 놀이는 아닐 듯 싶다.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의 파티라고나 할까? 강가에 뭔가가 뛰워져 있긴 했지만 우리들의 눈은 일제히 줄불놀이를 쫓아가기 바빴다. 한 참을 줄불놀이를 감상한 뒤 저게 뭔가 하고 봤더니.... 그들의 퍼포먼스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듯 하여 씁쓸했다. 노래는 현대음악이 흐르고 그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양반흉내를 내는 이들 " 야 야 야 똑바로 하란 말이야~~~ " 좀더 구체적으로 했더라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라도 우리나라의 민요로 해 줄 것이지...... 즉흥시도 읊어 보고 기생들이 타는 가야금 소리도 들려주고... 그랬더라면 이 놀이의 주체가 줄불놀이 만은 아니었을텐데.... 2. 줄불놀이 부용대의 정상에서 강을 사이에 두고 만송정까지 약230m의 본선(동아줄)과 보조선 (숯가루 봉지를 담아 올리는 선)을 각각 한가닥으로 한 네쌍의 줄을 부채살 모양으로 설치하고 각 동아줄마다 백 수십개의 숯가루봉지 (뽕나무 뿌리로 만든 숯가루와 굴피 송피가루와 소금으로 배합하여 만듬)를 걸어 점화시키면서 네 개의 보조선을 서서히 부용대 쪽으로 당기면 숯가루 봉지가 부용대쪽으로 이동하면서 허공에서 한마디 한마디씩 타올라 불티가 확산함과 동시에 휘황찬란한 광경이 발현되며 이것이 강물에 반사되어 그 또한 장관을 이루며 선유의 흥취를 돋군다. 3. 낙화놀이 낙화놀이는 일면 불화(火)자가 아닌 꽃화(花)자의 낙화놀이라고 한다.선유에서 시창이나 가무가 끝날때마다 새로운 시창이나 가무를 청하는 뜻에서 "낙화야"라고 소리치면 그 말을 일제히 제창하면서 약65m 높이의 부용대 정상에서는 준비된 솔가지단을 부용대 절벽 바위에 부딪쳐 사방으로 흩어져 떨어지면서 그것이 강물에 반사되어 장관을 이룬다. 4. 달걀불놀이 (카메라 밧데리 방전으로 휴대폰으로.... ) 일면 연화놀이라고도 하는데 뱃놀이가 시작될 무렵 경앙정 앞 형제바위 위에서 달걀불을 띄우면 이것이 뱃놀이하는 곳 가까이 떠내려와 소(고인물)의 물위에서 물결따라 이리저리 떠돌게 된다. 이때 물위의 불꽃과 그 불꽃이 강물에 반사된 아름다운 모습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탈춤이 서민들의 놀이라면 이 놀이는 양반들의 놀이다. 양반들이 즐기기 위해서 많은 서민들의 노력이 있어야 했다. 지네들은 배 위에서 기생년들과 노닥거리고 있었을 때 서민들은 한 밤중에 부용대에 올라 양반네들이 " 낙화야" 하고 외치는 순간 불을 굴러 떨어뜨리기 위해 얼마나 똥줄을 빼야 했을까? 그리고 부용대와 만송정을 잇는 줄을 메달고 일일이 숯을 만들어 끼워야 했으니..... 에 효 서민들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놀이였구나! 지금으로 따지면 고급 사교클럽 같은 곳이 아닐런지?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지만 옛 서민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우는 듯 하다. 거의 모든 축제의 끝은 폭죽을 쏘아 올리는 일이다. 왜 일까? 그 폭죽쇼때문에 앞에 받았던 감동이 조금 덜해 지는 기분이다. 하늘에 저토록 수많은 별들이 우릴 밝혀주고 있는데 그보다 화려함이 오데 있을라고~~~ 줄불놀이를 뒤로한채 아쉬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안동 하회마을의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있었다. 지리산 산중에서 바라본 별들을 축소시켜 놓았다고 할까? 잠이 오질 않아 별이랑 산책을 할까하여 밖을 나갔더니 칠흙 어둠속이라 너무 무서웠다. 용기를 내어서 한 발자국만 옮겨 볼까 ???? 역시 겁많은 난 어쩔수가 없다. 숙소 처마밑을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쪼그리고 앉아 반쪽짜리 하늘 만 쳐다 보았다. 지리산 산중에 뜬 별을 보고 친구와 밤새 이야길 나누었던 생각이 난다. 누구 이 별 보며 나랑 밤새 수다 떨 사람~~~ 이 렇 게 안 동 에 서 의 밤이 깊 어 갔 다. 안동 1박2일 코스 월령교- 도산서원 - 하회줄불놀이 - 하회마을 - 병산서원 - 부용대 - 봉정사 http://www.cyworld.com/maruandara
안동여행기3- 하회줄불놀이
하회줄불놀이에 감동먹다.
하늘에 수 많은 별들이 심어졌다.
우린 감나무집에서 좀 많이 불은 안동찜닭과 자반고등어를 먹고
식당주인이 안내원이 되어 줄불놀이를 구경하러 갔었다.
경이롭다라는 말을 이럴 때 써야 하는거 맞는거지??????
한참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줄에 메달린 불을 보는게 아니라
줄 사이에 있는 하늘 의 별들을 ......
숯에서 떨어지는 불꽃들이 바람을 따라 별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몇해전에 대부리에 유성쇼를 보기 위해 간 적이 있었다.
별똥별을 고대하며 옥상에 누워
( 그 옥상에 누워 바다를 바라보고 별을 바라보고 또 바다가 들려 주는 파도의 노래 소리를 듣고 ~~아 그립다)
망원경을 눈에서 한시도 떼지도 않고 화장실 가고 싶은 것도 참아가며 별똥별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에게게 달랑하나~~~
오늘에서야 그 광경을 가짜로나마 목격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눈 시울이 붉어 졌다.
복 받쳐 오는 슬픔을 참느라 애먹었다는 게 맞는 거겟지.
왜? 슬펐냐구 ?
그냥 ~~ 누군가가 너무 그리워서 ~~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볼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가 사랑하는 이 일테지!
언젠가는 이 순간을 함께 볼 날이 있지 않을까?
힘내자구 ~~ 아자 아자 파샤~~ ziayo
" 낙화야" 라는 소리가 들린다.
불꽃이 굴러 떨어질때마다 내 마음속에 커다란 별똥이 하나 씩 떨어졌다.
커다란 별똥별이니 아주 커다란 소원도 이루어 주지 않을까 하여 단 하나의 소원을 계속 되뇌었다.
하회 선유줄불놀이의 유래는 구전이나 기록물에 의하면 하회의 선유줄불놀이는
서애(유성룡)선생의 부친인 관찰사 유중영 공 이전부터 행하였다 하고 또한
조선 초엽 풍산유씨의 시조로부터 7대손인 종혜 공(임향시조)이 임향한 이후
동족마을이 형성된 뒤부터라는 기원설이 전해오고 있어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지금부터 약450년 전부터 실시된 놀이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 시기는 매년 음력 7월 기망(16일) 야음 짙어서야 시작되었으며,
장소는 하회마을을 굽이처 흐르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동서로는 부용대와 만송정 사이,
남북으로는 겸암정과 우연정 사이에서 실시되었다고 한다.
이 놀이에 소요되는 경비는 동족 풍산유씨가 전담하고 준비와 사역은 서민층에서 전담했다는 기록 있으며,
과거에는 연중행사처럼 매년실시해 왔다고 하나 일제시대를 거쳐 최근에 이르기까지는
수년만에 한번씩 실시하였으며 제대로 재현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 놀이는 네가지 놀이인 뱃놀이, 줄불놀이, 달걀불농이, 낙화놀이가 잘 조화된 독특한 놀이다.
"하회 줄불놀이", 하회불꽃놀이", 하회선유놀이" 등의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일부기록이나 재현의 과정에서 감지된 것은 선유의 중심놀이이고 선유에서도 선상시회가 놀이의 핵이며
거기에는 또한 선비의 낭만이 함께 담겨져 있다.
다만 달걀불놀이, 낙화놀이, 줄불놀이는 각기 그 아름다음의 특성은 지니고 있으나 선유의 흥취를 돕기 위한
보조놀이로서 선유와의 조화적인 미와 낙을 추구함은 물론 어둠속의 줄불과 깍아 세운 듯한 절벽의 낙화,
하늘의 달과 강 위의 달걀불이 잘 조화된 종합예술과 같은 느낌을 주는 놀이 구성요소라 하겠다.
1. 선유(뱃놀이)
선유는 배에 청사초롱을 여러 개 달고 사공이 노를 저어 강 한가운데를 선회하며 배 안에서는
선비와 양반이 즉흥시를 읊고 술을 즐기면서 기녀들에게는 시창이나 가무, 가야금을 타게 하였다.
시창이 끝날 때 새로운 시창이나 가무를 정하는 뜻에서 배안에서 부용대 위의 낙화지점을 향하여
"낙화야"라고 소리치는 신호에 따라 떨어지는 솔가지불의 낙화와 절벽과 공중의 줄불,
강물위의 달걀불, 보름달의 아름다운 달빛 등의 조화를 이루는 장관을 보고 즐긴다.
이 때 선유에는 선비, 양반, 초대받은 연사가의 빈재,또는 관료들이 타고 여자는 기녀만이 허용 되었다고 하니
그닥 좋은 놀이는 아닐 듯 싶다. 소위 잘 나가는 사람들의 파티라고나 할까?
강가에 뭔가가 뛰워져 있긴 했지만 우리들의 눈은 일제히 줄불놀이를 쫓아가기 바빴다.
한 참을 줄불놀이를 감상한 뒤 저게 뭔가 하고 봤더니.... 그들의 퍼포먼스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듯 하여 씁쓸했다.
노래는 현대음악이 흐르고 그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양반흉내를 내는 이들
" 야 야 야 똑바로 하란 말이야~~~ "
좀더 구체적으로 했더라면....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라도 우리나라의 민요로 해 줄 것이지......
즉흥시도 읊어 보고 기생들이 타는 가야금 소리도 들려주고... 그랬더라면 이 놀이의 주체가
줄불놀이 만은 아니었을텐데....
2. 줄불놀이
부용대의 정상에서 강을 사이에 두고 만송정까지 약230m의 본선(동아줄)과 보조선
(숯가루 봉지를 담아 올리는 선)을
각각 한가닥으로 한 네쌍의 줄을 부채살 모양으로 설치하고 각 동아줄마다 백 수십개의 숯가루봉지
(뽕나무 뿌리로 만든 숯가루와 굴피 송피가루와 소금으로 배합하여 만듬)를 걸어 점화시키면서
네 개의 보조선을 서서히 부용대 쪽으로 당기면 숯가루 봉지가 부용대쪽으로 이동하면서 허공에서
한마디 한마디씩 타올라 불티가 확산함과 동시에 휘황찬란한 광경이 발현되며 이것이
강물에 반사되어 그 또한 장관을 이루며 선유의 흥취를 돋군다.
3. 낙화놀이
낙화놀이는 일면 불화(火)자가 아닌 꽃화(花)자의 낙화놀이라고 한다.
선유에서 시창이나 가무가 끝날때마다 새로운 시창이나 가무를 청하는 뜻에서 "낙화야"라고 소리치면
그 말을 일제히 제창하면서 약65m 높이의 부용대 정상에서는 준비된 솔가지단을 부용대 절벽 바위에 부딪쳐
사방으로 흩어져 떨어지면서 그것이 강물에 반사되어 장관을 이룬다.
4. 달걀불놀이
(카메라 밧데리 방전으로 휴대폰으로.... )
일면 연화놀이라고도 하는데 뱃놀이가 시작될 무렵 경앙정 앞 형제바위 위에서 달걀불을 띄우면
이것이 뱃놀이하는 곳 가까이 떠내려와 소(고인물)의 물위에서 물결따라 이리저리 떠돌게 된다.
이때 물위의 불꽃과 그 불꽃이 강물에 반사된 아름다운 모습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
탈춤이 서민들의 놀이라면 이 놀이는 양반들의 놀이다.
양반들이 즐기기 위해서 많은 서민들의 노력이 있어야 했다.
지네들은 배 위에서 기생년들과 노닥거리고 있었을 때 서민들은 한 밤중에 부용대에 올라
양반네들이 " 낙화야" 하고 외치는 순간 불을 굴러 떨어뜨리기 위해 얼마나 똥줄을 빼야 했을까?
그리고 부용대와 만송정을 잇는 줄을 메달고 일일이 숯을 만들어 끼워야 했으니..... 에 효
서민들의 피땀으로 이루어진 놀이였구나!
지금으로 따지면 고급 사교클럽 같은 곳이 아닐런지?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에 넋을 잃고 바라보았지만
옛 서민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우는 듯 하다.
거의 모든 축제의 끝은 폭죽을 쏘아 올리는 일이다.
왜 일까?
그 폭죽쇼때문에 앞에 받았던 감동이 조금 덜해 지는 기분이다.
하늘에 저토록 수많은 별들이 우릴 밝혀주고 있는데
그보다 화려함이 오데 있을라고~~~
줄불놀이를 뒤로한채 아쉬운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안동 하회마을의 밤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있었다.
지리산 산중에서 바라본 별들을 축소시켜 놓았다고 할까?
잠이 오질 않아 별이랑 산책을 할까하여 밖을 나갔더니
칠흙 어둠속이라 너무 무서웠다.
용기를 내어서 한 발자국만 옮겨 볼까 ????
역시 겁많은 난 어쩔수가 없다.
숙소 처마밑을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쪼그리고 앉아
반쪽짜리 하늘 만 쳐다 보았다.
지리산 산중에 뜬 별을 보고 친구와 밤새 이야길 나누었던 생각이 난다.
누구 이 별 보며 나랑 밤새 수다 떨 사람~~~
이 렇 게 안 동 에 서 의 밤이 깊 어 갔 다.
안동 1박2일 코스
월령교- 도산서원 - 하회줄불놀이 - 하회마을 - 병산서원 - 부용대 - 봉정사
http://www.cyworld.com/maruanda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