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28일 오후 4시 부산고등법원 103호 법정에서 열린 첫번째 항소심 공판에서였다.
『이봐 신창원! 서울에서 익산까지 뛰어간 게 정말이야』
재판장이 호기심 섞인 어조로 물었다.
『걷다 뛰다 했어요』
신창원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4층 건물 옥상에서 그냥 뛰어내린 것도 맞아?』
『네』
『안 다쳤어?』
『괜찮았어요』
엉뚱한 질문을 하던 재판장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이봐 신창원! 자신을 제 정신이라고 생각하나?』
재판장의 목소리가 준엄해졌다.
『예??』
신창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재판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동안 해온 행동 하나하나가 올바른 정신상태에서 했느냐 말이야』
재판장이 재차 다그쳤다. 탈옥수 신창원의 변호사인 나는 순간 일반인들은 알 수 없는, 그가 던지는 화두의 의미를 알아챘다. 김능환 부장판사, 그는 사랑이 많은 판사였다. 관례나 기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이었다. 그는 내심으로 「심신미약」이라는 법률적 減輕(감경)사유를 만들어주려고 유도하는 것이었다. 신창원은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통 재판에서 봐줄 사유를 발견하지 못한 재판장들이 『그날 너 술 많이 먹었지?』하고 피고인에게 묻는 수가 있다. 그렇게 유도하는데도 『한 잔도 안 먹고 말똥말똥했어요』 라는 헛똑똑이들도 많았다. 재판장이 던지는 그런 비밀코드는 정직한 사람만이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신창원의 표정에 순간 모욕감이 어렸다. 그러나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저 역시 정신이 제대로 박힌 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창원의 자기 고백이었다. 순간 재판장의 얼굴에 얼핏 작은 미소가 스쳤다.
『재판부의 직권으로 정신감정을 결정합니다』
재판장이 선언했다.
그렇게 신창원 공판의 제2라운드가 시작됐다. 신창원은 항소를 포기했다. 그러나 사형을 구형했던 검찰이 용납하지 않았다. 공소사실은 크게 분류하면 두 가지였다. 도피자금을 구하기 위한 여러 번의 절도와 강도사건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강도라는 무거운 죄명의 속을 들여다보면 택시비 1만원과 기사가 동전을 준 것도 하나의 강도죄였다. 그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파렴치범인 특수강도 강간죄였다. 그에 대한 사회적 동정이 떠나간 주요 원인이었다. 그러나 1심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결백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무죄가 언론에 보도되는 걸 보지 못했다. 강간범으로 대서특필해서 세뇌시킨 국민들의 마음을 돌리기 싫어서였을까. 그게 세상 인심이었다. 검찰은 그를 끝까지 강간범으로 단죄를 하기 위해 항소를 하고 지금까지 노력해 왔다.
「파렴치범」으로 몰린 담당형사의 증언
강간죄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엉뚱한 인물이 나서 주었다. 신창원의 검거를 전담했던 경기경찰청의 김구현 경장이었다. 그는 신창원과 평택에서 격투를 벌이기도 한 용감한 경찰관이었다. 그는 신창원 때문에 경찰에서 파면과 복직을 되풀이했다. 그가 신창원측의 증인을 자청한 것이다.
『선서하세요. 만약 거짓이 있으면 처벌받습니다』
재판장이 엄중 경고했다.
『알겠습니다』
김경장의 얼굴에 결연한 의지가 서렸다. 신창원이 가장 증오한 인물이 바로 김경장이었다. 신창원은 일기에 김경장이 자기 여자를 강간했다고 썼었다. 김경장은 그 일기 때문에 파면됐다. 서로 강간범이 된 두 사람은 원수 같은 사이이기도 했다. 변호사인 내가 먼저 묻기 시작했다.
『공명심에서 사적으로 신창원을 체포하려다 실패한 것으로 보도가 됐었는데 어떻습니까?』
내가 물었다.
『아닙니다. 형사기동대장이 권총과 실탄을 주면서 신창원을 잡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다 검거에 실패하고 언론이 알게 되니까 저를 속죄양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경찰청장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에서 이겨서 복직을 했었다. 그의 증언의 동기는 몸담았던 경찰에 대한 환멸과 배신감인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신창원의 성질과 범죄수법을 경험하셨는데 설명해 주시죠』
『소년범 시절부터 주먹은 써도 여자는 안 건드린 것 같습니다』
범죄인마다 터부시하는 것이 있다. 죄를 지었어도 특히 사기범을 혐오하기도 했다. 자기 원칙과 질서를 만들기도 했다. 보석털이 전문이면 골동품이 있어도 가져가지 않았다. 범죄세계의 신사라고 알려진 인물들이 기피하는 게 강간이었다. 범죄계 거물들의 독특한 자존심이라고나 할까.
『증인은 신창원과 아는 사이인가요?』
『단 한 번 조우해서 격투를 벌였을 뿐입니다. 저기 있는 신창원이 내가 그의 여자를 강간했다고 일기에 쓰면서 저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 것도 알고 있습니다』
『증인은 신창원의 여자를 강간했나요?』
『그런 적 없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건 누명이란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묘한 상황이었다. 강간죄란 것은 만들어지는 것인가. 나는 경찰의 일반적인 수사방법을 지적하는 쪽으로 질문의 방향을 돌렸다.
『증인은 형사로서 강간죄를 조사해 봤지요. 보통 어떻게 합니까?』
『여자는 강간당했다고 하고 남자는 아니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때는 어떻게 합니까?』
『여자의 진술을 토대로 강간으로 몰고 가는 때가 많습니다』
『속칭 꽃뱀의 경우같이 여자측에서 교활한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걸 알아내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형사들이 폭주하는 업무에 밀리다 보면요』
『이번에 형사인 증인이 강간으로 조사를 받아봤지요?』
『네. 저는 끝까지 버텼습니다. 그랬더니 저보고 그러면 강간하지 않았다는 걸 입증하라고 다그쳤어요. 강간을 증명할 수 있어도 안 한 걸 어떻게 증명합니까? 마지막에는 기진맥진했어요. 그때 경찰 간부들이 언론에 났으니 어쩔 수 없다고 사정까지 했어요. 결국 저도 허위자백을 했습니다. 조사서류에 저는 아직도 강간범입니다』
『신창원에 대한 강간죄는 어떤 형태로 조사되어 갔나요?』
『강간 피해자의 신고 중에서 신창원과 비슷하다고 하면 혐의를 두고 수사해 나갔습니다』
사칭범죄가 많았다. 스웨덴 여자 등 외국인을 강간하면서 자신이 신창원이라고 한 범인들도 있었다.
『피해 여성들의 기억이 신뢰할 만큼 명확합니까?』
『진술이 막연한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인의 기억은 막연한 경우가 보통이다. 조서를 작성하는 형사는 명확한 기록을 만들어야 한다. 종종 시간이 갈수록 증인의 기억이 또렷해지는(?) 해프닝도 많았다. 증인의 소심함과 수사관의 과잉의욕이 빚어내는 현상들이다. 김경장은 자신이 겪었던 신창원이 강간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러 법정에 선 셈이었다.
일년 전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신창원은 내게 자기는 강간을 한 사실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다만 그 피해자는 지금 기소된 강간죄의 그 여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유죄가 나오면 그냥 처벌을 감수하겠다고 말했다. 공소장에 나온 그 여자는 아니더라도 죄인인 것은 틀림없기 때문에.
담당변호사에게 털어놓은 진상
『그럼 자기가 강간당했다고 진술하는 그 여자는?』
내가 물었다.
『처음 보는 전혀 모르는 여자예요. 황당했어요. 법정에서 저를 보고 씩 웃는 표정인데 소름이 돋았어요』
1심판사는 그녀의 증언을 배척했다. 오히려 담당형사와 소주를 여러 차례 마셨다며 횡설수설하는 그 여자에게 주의까지 주었다.
『법정에서 다 말해버리고 싶은데 그 여자의 명예 때문에 가만 있는 거예요. 제가 범한 그 여자는 천사였어요. 한번 들어보세요』
그는 그렇게 과거로 돌아갔었다. 그녀의 보호를 위해 일시와 장소 인적사항을 약간 바꾸어 적기로 한다.
<장마 비가 밤까지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신창원은 벌써 몇 시간째 비를 맞으며 청담동의 5층 건물 옥상에 서 있었다. 건물주는 정말 고마운 분이었다. 그의 도움이 없으면 거미줄같이 촘촘한 수사망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뼈저리게 고독하고 힘든 도망자 신세였다. 면도날 같은 신경줄을 펼치면서 머리 속은 잡히면 안 된다는 의식 하나로 꽉 찼었다.
이제는 지쳤고 차라리 인간이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는 손에 든 술병을 입에 대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목구멍에 부었다. 취해야만 잠시라도 편할 수 있었다. 빗속에서 하나 둘 주택가의 불이 꺼져가고 있었다. 망연히 내려다보는 그의 시야에 열려진 2층 창문 안에서 책을 읽는 여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늑한 풍경이었다. 위로받고 싶었다. 이윽고 그녀가 침대에 누웠다. 눌려 있었던 욕정이 온몸에서 들끓었다. 어느새 신창원은 그녀의 창문 아래 골목에 서 있었다. 벽에 붙은 가스관이 빗물로 번들거렸다. 그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운동화를 벗고 가스관을 기어올랐다.
『돈 있는 거 다 드릴게요』
신창원을 본 그녀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가만 있어, 그거 때문에 온 게 아니야』
신창원이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신창원이 그녀의 잠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한 차례 뜨거운 것을 쏟아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게 후회가 엄습했다.
『못할 짓 했다. 미안하다』
그는 복면을 벗으면서 사과했다. 그는 자신이 탈주범임을 밝혔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을 독백같이 늘어놓았다. 어느새 그의 얘기를 듣는 여자의 얼굴에서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있었다.
『결혼할 남자가 있는데 난 어떻게 하면 좋아요?』
그녀의 얼굴은 낙망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녀가 신고하면 그 자리에서 잡혀가 속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신발 어디 있어요?』
갑자기 그녀가 물었다. 신창원이 맨발이었기 때문이다.
『골목길에 두고 왔는데…』
신창원이 우물쭈물했다.
『돈 뭉치 한번 깔고 앉아봤으면…』
『어디 가지 말고 기다려요』
그녀가 주위를 살피더니 조용히 나갔다. 그는 그대로 방바닥에 누워버렸다. 경찰에 알리든 말든 이제 그것은 그녀의 일이었다. 그는 운명에 순종하고 싶었다.
『신발이 거기 없어요. 같이 가서 찾아요』
한참 만에 돌아온 그녀가 말했다. 밖은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굵은 빗물이 바닥에 떨어져 사방으로 은방울을 튀겼다. 방에 돌아온 그녀는 조그만 서랍장을 열더니 마른 트레이닝복을 한 벌 꺼냈다.
『이거 갈아입어요』
그녀는 구석에 있는 싱크대로 가서 가스 불을 켰다.
『저녁 안 먹었죠?』
그녀가 씻을 쌀이 든 냄비를 올려놓으며 물었다.
『…』
신창원이 가만히 있었다. 그녀의 가슴에서 생명수 같은 정이 흘러 들어왔다. 순간 그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허름한 가구 몇 점이 전부였다. 직장에 다니는 가난한 집 딸 같았다.
『아가씨는 꿈이 뭐였어?』
그가 그녀의 등에 대고 물었다.
『대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싶었어요. 좋은 책도 실컷 읽고 싶었구요. 그런데 돈이 없는 거 있죠? 원수 같은 돈 뭉치를 한번 깔고 앉아봤으면 하는 게 소원이었어요. 아저씨도 없는 집 아들이라 이해하죠?』
그녀가 뚝배기에 된장을 떠 넣으며 대답했다.
『난 말이야 평범한 남자가 되고 싶었어. 아내가 싸준 도시락 들고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웠지. 지금은 그 정도는 감히 마음도 못 먹고 그저 경찰이 알아볼 수 없게 광대로 분장한 엿장수가 돼 고향에라도 가보면 한이 없겠지만…』
어느새 그는 근처의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서 커다란 가방 하나를 들고 그녀의 방에 돌아왔다.
『이거 다 가져』
신창원이 가방에서 돈다발을 방바닥에 쏟아놓으며 말했다. 현찰 4000만원과 달러뭉치였다. 그녀가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돈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찌개와 밥을 허겁지겁 먹었다. 그녀는 돈다발들을 차곡차곡 방바닥에 쌓고 있었다.
『다 들었으면 씻어요』
신창원은 샤워기가 달린 좁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신창원이 벗어놓은 속옷을 가져다 빨았다. 항상 쫓기는 도망자의 옷은 몹시 더러웠다. 몸을 씻고 나온 신창원은 그녀가 돈 다발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저씨, 나 소원 성취했어요』
그녀가 서글픈 눈으로 신창원을 바라 보았다. 그녀는 돈다발들을 다시 가방 안에 차곡차곡 넣기 시작했다.
신창원이 만난 여자들은 두 모습이었다. 철저히 그를 이용하거나 끝없는 자기희생이었다. 티켓다방에서 일하던 J에게 신창원은 알라딘의 요술램프였다. 그녀는 신창원에게 도둑질을 재촉하기도 했다. 집을 사달라고 하기도 하고 가족까지 동원해서 장물과 수표들을 처분했다. 수많은 현찰과 장물들이 지금도 그녀의 가족 소유다. 어떤 여자는 험하게 고생하며 모은 돈을 몽땅 신창원에게 털어주기도 했다. 신창원을 도망시킨 후 그녀는 괴로워하다가 자살했다. 그에게 천사와 악마는 교대로 나타났다.
『아저씨, 이 돈도 가져가세요』
『아저씨 이제 그만 가세요』
그녀가 돈이 들어 있는 가방을 손에 들고 신창원에게 말했다. 갑자기 그녀의 태도가 냉랭해졌다. 신창원은 씁쓸한 마음으로 신발을 신었다.
『아저씨 이 돈도 가져가세요』
그녀가 돈 가방을 그에게 돌려주었다. 의외였다. 그녀의 표정에는 개결한 자존심이 엿보였다.
『그럼 차라도 한 대 사주면 안 될까?』
신창원이 멋쩍어하며 물었다.
『아니에요. 필요없어요』
그녀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신창원이 떠밀리듯 나가면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저씨! 나말고 다른 여자한테도 이런 짓 했어요?』
『이번이 처음이야』
『그러면 나하고 손가락 걸고 약속해요. 앞으론 절대 이런 짓 안 한다고』
신창원이 쑥스러워하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녀가 손가락을 꼭 걸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나는 주님을 믿어요. 예수님은 나 같은 가난한 사람이나 아저씨같이 죄지은 사람을 위해 세상에 오셨어요. 그분은 분명히 아저씨도 사랑하실 거예요』
신창원은 목구멍으로 주먹 같은 회한이 치밀어 올랐다. 천사 같은 그녀가 믿는 하나님이라면 언젠가 그도 한번 찾아갈 것이라고 맹세하면서>
신창원이나 大盜(대도) 조세형 같은 탈주범과 특히 악연을 맺는 게 일부 교정간부들이었다. 신창원은 자기를 괴롭혔던 간부에게 보복하기 위해 그가 탈출한 부산교도소를 1년 만에 다시 찾아갔었다. 大盜 조세형도 징역살이보다 교정간부들의 편견과 매도가 더 괴로웠다고 토로했었다.
반면 젊은 하급 교도관들은 다르다. 가장 오지에 있다는 청송교도소를 갔을 때 조세형씨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몰래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신창원을 대하는 젊은 공무원들의 눈빛에서 재소자와 교도관을 초월한 정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간부들의 눈은 차가운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범죄자들에게 속고 시달렸기 때문에 무디어졌는지도 모른다. 젊고 착한 교도관들은 오래 근무할수록 회의가 늘어가고 인간성을 상실할까 봐 두렵다고들 했다. 좋은 사람만 보고 살아도 인생은 짧은데 밥벌이를 위해 감옥 안에서 죄인들과 함께 벌을 받고 있다고 자조하기도 했다. 신창원이 가족을 통해 급히 와달라고 해서 간 적이 있었다. 그의 얼굴이 꺼칠하고 병색이 완연했다.
『며칠 전에 두들겨맞았는데 목을 잡고 머리통을 벽에 짓찧는 바람에 다 토했어요. 뇌진탕인가 봐요. 보통 때 때리면 그런대로 참겠는데 몸이 괴로울 때 그러면 정말 힘들어요』
세상의 관심이 식을 무렵이면 보복이 시작될 것이라고 짐작은 했었다. 그러나 방법이 의외였다. 私感이 개입되지 않고 직접 그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신창원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왜 맞았는데?』
내가 다그쳐 물었다.
『청원서를 다섯 번 썼는데 과장이 전부 찢어버렸어요』
『어떤 내용이었는데?』
내가 물었다.
『쇠사슬을 하고 수갑을 두 개 찼는데 어깨가 붓고 여름에 손목 피부가 찢어지고 곪아요. 밤에는 허리가 배겨서 잠을 못 자겠어요. 그리고 면회 오는 어린 조카를 보는 순간만이라도 수갑을 안 보였으면 하는 그런 내용이었어요』
『안 해주면 되지, 때리긴 왜 때리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뭔가 맞을 짓을 도발하지 않았나 의문이 들었다.
『청원서를 찢으니까 교도소장 면담신청을 했어요. 안 된다는 거예요. 한번은 우연히 교도소장이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소장님을 불렀다가 얻어터진 거예요. 자기는 정년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고소를 하든지 세상에 알리든지 마음대로 하래요. 두 번을 맞았어요』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계속했다.
『그 사람과는 어릴 때부터 악연이에요. 대구, 안동, 청송, 부산교도소에서 네 번 만났어요』
탈주범 조세형이 自殺을 권유한 까닭
총 징역 31년을 살았던 탈주범 조세형은 신창원이 잡히지 말고 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상의 관심만 줄어들면 아마 합법을 가장해서 말려 죽일 거라고 장담했었다. 신창원을 위해 모른 척할까 말까 몇 달을 고민했다. 마침내 항의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생각해 보니 나도 일종의 피해자였다. 변호사의 접견권은 헌법상의 권리였다. 그런데 그 간부는 경찰청에서 조사를 나왔으니 그만 접견하라고 막기도 했었다. 더 좋은 부산변호사를 소개해 주겠다고 신창원과 가족을 유혹하기도 했었다. 그에게 항의하러 갔다가 만나지를 못한 적도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다시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지금 소장하고 함께 계시는데 잠깐만 기다리세요』
직원 한 명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책상 여러 개가 줄을 지은 넓은 방이었다. 사무실 한쪽 벽에 문이 열린 간부의 방이 있었다. 검은 얼굴의 중년 사나이가 점심 후 간부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가 교도소장인 것 같았다. 그 안에서 후리후리한 키의 그 간부가 걸어 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그는 내게 넓은 사무실 중앙의 낡은 비닐의자를 권했다.
『신창원과 여러 번 인연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내가 말을 꺼냈다.
『세 번 만났죠. 안동교도소 때는 신창원이가 각목으로 유리창을 깨고 난동을 부렸죠. 이 안에 재소자가 2000명 정도 있는데 다섯 명 정도가 말썽이죠』
『신창원이가 서류를 제출했다고 하던데…』
내가 조심스럽게 핵심으로 접근했다.
『청원한 적 없어요』
그가 단호하게 부인했다. 행형법은 수용자의 청원을 저지하거나 그걸 이유로 불이익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고 있었다. 그러나 위반해도 공무원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다.
『수갑을 두 개나 차고 있던데 왜 그렇습니까?』
내가 다시 물었다.
『한 개를 풀었어도 다시 한 개를 여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벌려고요』
그가 사무적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범죄인에 대해서 바깥의 시각과 제가 보는 눈이 달라요. 저는 항상 의심하고 있어요. 밖에서는 인권 운운 하지만 재소자가 도망가면 우리 교도관만 피해를 보니까요』
행형법 시행령을 보면 「특히 필요한 경우」에 쇠사슬 등 형구를 사용할 수 있다. 판단 주체는 교정공무원이다.
★★탈옥수신창원 변호사의 진솔한이야기★★
『이봐 신창원! 서울에서 익산까지 뛰어간 게 정말이야』
재판장이 호기심 섞인 어조로 물었다.
『걷다 뛰다 했어요』
신창원이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4층 건물 옥상에서 그냥 뛰어내린 것도 맞아?』
『네』
『안 다쳤어?』
『괜찮았어요』
엉뚱한 질문을 하던 재판장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이봐 신창원! 자신을 제 정신이라고 생각하나?』
재판장의 목소리가 준엄해졌다.
『예??』
신창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재판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동안 해온 행동 하나하나가 올바른 정신상태에서 했느냐 말이야』
재판장이 재차 다그쳤다. 탈옥수 신창원의 변호사인 나는 순간 일반인들은 알 수 없는, 그가 던지는 화두의 의미를 알아챘다. 김능환 부장판사, 그는 사랑이 많은 판사였다. 관례나 기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이었다. 그는 내심으로 「심신미약」이라는 법률적 減輕(감경)사유를 만들어주려고 유도하는 것이었다. 신창원은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통 재판에서 봐줄 사유를 발견하지 못한 재판장들이 『그날 너 술 많이 먹었지?』하고 피고인에게 묻는 수가 있다. 그렇게 유도하는데도 『한 잔도 안 먹고 말똥말똥했어요』 라는 헛똑똑이들도 많았다. 재판장이 던지는 그런 비밀코드는 정직한 사람만이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신창원의 표정에 순간 모욕감이 어렸다. 그러나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저 역시 정신이 제대로 박힌 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신창원의 자기 고백이었다. 순간 재판장의 얼굴에 얼핏 작은 미소가 스쳤다.
『재판부의 직권으로 정신감정을 결정합니다』
재판장이 선언했다.
그렇게 신창원 공판의 제2라운드가 시작됐다. 신창원은 항소를 포기했다. 그러나 사형을 구형했던 검찰이 용납하지 않았다. 공소사실은 크게 분류하면 두 가지였다. 도피자금을 구하기 위한 여러 번의 절도와 강도사건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강도라는 무거운 죄명의 속을 들여다보면 택시비 1만원과 기사가 동전을 준 것도 하나의 강도죄였다. 그에게 가장 치명적인 것은 파렴치범인 특수강도 강간죄였다. 그에 대한 사회적 동정이 떠나간 주요 원인이었다. 그러나 1심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결백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무죄가 언론에 보도되는 걸 보지 못했다. 강간범으로 대서특필해서 세뇌시킨 국민들의 마음을 돌리기 싫어서였을까. 그게 세상 인심이었다. 검찰은 그를 끝까지 강간범으로 단죄를 하기 위해 항소를 하고 지금까지 노력해 왔다.
「파렴치범」으로 몰린 담당형사의 증언
강간죄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엉뚱한 인물이 나서 주었다. 신창원의 검거를 전담했던 경기경찰청의 김구현 경장이었다. 그는 신창원과 평택에서 격투를 벌이기도 한 용감한 경찰관이었다. 그는 신창원 때문에 경찰에서 파면과 복직을 되풀이했다. 그가 신창원측의 증인을 자청한 것이다.
『선서하세요. 만약 거짓이 있으면 처벌받습니다』
재판장이 엄중 경고했다.
『알겠습니다』
김경장의 얼굴에 결연한 의지가 서렸다. 신창원이 가장 증오한 인물이 바로 김경장이었다. 신창원은 일기에 김경장이 자기 여자를 강간했다고 썼었다. 김경장은 그 일기 때문에 파면됐다. 서로 강간범이 된 두 사람은 원수 같은 사이이기도 했다. 변호사인 내가 먼저 묻기 시작했다.
『공명심에서 사적으로 신창원을 체포하려다 실패한 것으로 보도가 됐었는데 어떻습니까?』
내가 물었다.
『아닙니다. 형사기동대장이 권총과 실탄을 주면서 신창원을 잡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다 검거에 실패하고 언론이 알게 되니까 저를 속죄양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경찰청장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에서 이겨서 복직을 했었다. 그의 증언의 동기는 몸담았던 경찰에 대한 환멸과 배신감인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신창원의 성질과 범죄수법을 경험하셨는데 설명해 주시죠』
『소년범 시절부터 주먹은 써도 여자는 안 건드린 것 같습니다』
범죄인마다 터부시하는 것이 있다. 죄를 지었어도 특히 사기범을 혐오하기도 했다. 자기 원칙과 질서를 만들기도 했다. 보석털이 전문이면 골동품이 있어도 가져가지 않았다. 범죄세계의 신사라고 알려진 인물들이 기피하는 게 강간이었다. 범죄계 거물들의 독특한 자존심이라고나 할까.
『증인은 신창원과 아는 사이인가요?』
『단 한 번 조우해서 격투를 벌였을 뿐입니다. 저기 있는 신창원이 내가 그의 여자를 강간했다고 일기에 쓰면서 저를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 것도 알고 있습니다』
『증인은 신창원의 여자를 강간했나요?』
『그런 적 없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건 누명이란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묘한 상황이었다. 강간죄란 것은 만들어지는 것인가. 나는 경찰의 일반적인 수사방법을 지적하는 쪽으로 질문의 방향을 돌렸다.
『증인은 형사로서 강간죄를 조사해 봤지요. 보통 어떻게 합니까?』
『여자는 강간당했다고 하고 남자는 아니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때는 어떻게 합니까?』
『여자의 진술을 토대로 강간으로 몰고 가는 때가 많습니다』
『속칭 꽃뱀의 경우같이 여자측에서 교활한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걸 알아내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형사들이 폭주하는 업무에 밀리다 보면요』
『이번에 형사인 증인이 강간으로 조사를 받아봤지요?』
『네. 저는 끝까지 버텼습니다. 그랬더니 저보고 그러면 강간하지 않았다는 걸 입증하라고 다그쳤어요. 강간을 증명할 수 있어도 안 한 걸 어떻게 증명합니까? 마지막에는 기진맥진했어요. 그때 경찰 간부들이 언론에 났으니 어쩔 수 없다고 사정까지 했어요. 결국 저도 허위자백을 했습니다. 조사서류에 저는 아직도 강간범입니다』
『신창원에 대한 강간죄는 어떤 형태로 조사되어 갔나요?』
『강간 피해자의 신고 중에서 신창원과 비슷하다고 하면 혐의를 두고 수사해 나갔습니다』
사칭범죄가 많았다. 스웨덴 여자 등 외국인을 강간하면서 자신이 신창원이라고 한 범인들도 있었다.
『피해 여성들의 기억이 신뢰할 만큼 명확합니까?』
『진술이 막연한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인의 기억은 막연한 경우가 보통이다. 조서를 작성하는 형사는 명확한 기록을 만들어야 한다. 종종 시간이 갈수록 증인의 기억이 또렷해지는(?) 해프닝도 많았다. 증인의 소심함과 수사관의 과잉의욕이 빚어내는 현상들이다. 김경장은 자신이 겪었던 신창원이 강간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러 법정에 선 셈이었다.
일년 전 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신창원은 내게 자기는 강간을 한 사실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다만 그 피해자는 지금 기소된 강간죄의 그 여자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유죄가 나오면 그냥 처벌을 감수하겠다고 말했다. 공소장에 나온 그 여자는 아니더라도 죄인인 것은 틀림없기 때문에.
담당변호사에게 털어놓은 진상
『그럼 자기가 강간당했다고 진술하는 그 여자는?』
내가 물었다.
『처음 보는 전혀 모르는 여자예요. 황당했어요. 법정에서 저를 보고 씩 웃는 표정인데 소름이 돋았어요』
1심판사는 그녀의 증언을 배척했다. 오히려 담당형사와 소주를 여러 차례 마셨다며 횡설수설하는 그 여자에게 주의까지 주었다.
『법정에서 다 말해버리고 싶은데 그 여자의 명예 때문에 가만 있는 거예요. 제가 범한 그 여자는 천사였어요. 한번 들어보세요』
그는 그렇게 과거로 돌아갔었다. 그녀의 보호를 위해 일시와 장소 인적사항을 약간 바꾸어 적기로 한다.
<장마 비가 밤까지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신창원은 벌써 몇 시간째 비를 맞으며 청담동의 5층 건물 옥상에 서 있었다. 건물주는 정말 고마운 분이었다. 그의 도움이 없으면 거미줄같이 촘촘한 수사망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뼈저리게 고독하고 힘든 도망자 신세였다. 면도날 같은 신경줄을 펼치면서 머리 속은 잡히면 안 된다는 의식 하나로 꽉 찼었다.
이제는 지쳤고 차라리 인간이 아니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는 손에 든 술병을 입에 대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목구멍에 부었다. 취해야만 잠시라도 편할 수 있었다. 빗속에서 하나 둘 주택가의 불이 꺼져가고 있었다. 망연히 내려다보는 그의 시야에 열려진 2층 창문 안에서 책을 읽는 여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아늑한 풍경이었다. 위로받고 싶었다. 이윽고 그녀가 침대에 누웠다. 눌려 있었던 욕정이 온몸에서 들끓었다. 어느새 신창원은 그녀의 창문 아래 골목에 서 있었다. 벽에 붙은 가스관이 빗물로 번들거렸다. 그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운동화를 벗고 가스관을 기어올랐다.
『돈 있는 거 다 드릴게요』
신창원을 본 그녀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가만 있어, 그거 때문에 온 게 아니야』
신창원이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신창원이 그녀의 잠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한 차례 뜨거운 것을 쏟아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에게 후회가 엄습했다.
『못할 짓 했다. 미안하다』
그는 복면을 벗으면서 사과했다. 그는 자신이 탈주범임을 밝혔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삶을 독백같이 늘어놓았다. 어느새 그의 얘기를 듣는 여자의 얼굴에서는 두려움이 사라지고 있었다.
『결혼할 남자가 있는데 난 어떻게 하면 좋아요?』
그녀의 얼굴은 낙망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녀가 신고하면 그 자리에서 잡혀가 속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신발 어디 있어요?』
갑자기 그녀가 물었다. 신창원이 맨발이었기 때문이다.
『골목길에 두고 왔는데…』
신창원이 우물쭈물했다.
『돈 뭉치 한번 깔고 앉아봤으면…』
『어디 가지 말고 기다려요』
그녀가 주위를 살피더니 조용히 나갔다. 그는 그대로 방바닥에 누워버렸다. 경찰에 알리든 말든 이제 그것은 그녀의 일이었다. 그는 운명에 순종하고 싶었다.
『신발이 거기 없어요. 같이 가서 찾아요』
한참 만에 돌아온 그녀가 말했다. 밖은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굵은 빗물이 바닥에 떨어져 사방으로 은방울을 튀겼다. 방에 돌아온 그녀는 조그만 서랍장을 열더니 마른 트레이닝복을 한 벌 꺼냈다.
『이거 갈아입어요』
그녀는 구석에 있는 싱크대로 가서 가스 불을 켰다.
『저녁 안 먹었죠?』
그녀가 씻을 쌀이 든 냄비를 올려놓으며 물었다.
『…』
신창원이 가만히 있었다. 그녀의 가슴에서 생명수 같은 정이 흘러 들어왔다. 순간 그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허름한 가구 몇 점이 전부였다. 직장에 다니는 가난한 집 딸 같았다.
『아가씨는 꿈이 뭐였어?』
그가 그녀의 등에 대고 물었다.
『대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싶었어요. 좋은 책도 실컷 읽고 싶었구요. 그런데 돈이 없는 거 있죠? 원수 같은 돈 뭉치를 한번 깔고 앉아봤으면 하는 게 소원이었어요. 아저씨도 없는 집 아들이라 이해하죠?』
그녀가 뚝배기에 된장을 떠 넣으며 대답했다.
『난 말이야 평범한 남자가 되고 싶었어. 아내가 싸준 도시락 들고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웠지. 지금은 그 정도는 감히 마음도 못 먹고 그저 경찰이 알아볼 수 없게 광대로 분장한 엿장수가 돼 고향에라도 가보면 한이 없겠지만…』
어느새 그는 근처의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서 커다란 가방 하나를 들고 그녀의 방에 돌아왔다.
『이거 다 가져』
신창원이 가방에서 돈다발을 방바닥에 쏟아놓으며 말했다. 현찰 4000만원과 달러뭉치였다. 그녀가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돈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찌개와 밥을 허겁지겁 먹었다. 그녀는 돈다발들을 차곡차곡 방바닥에 쌓고 있었다.
『다 들었으면 씻어요』
신창원은 샤워기가 달린 좁은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신창원이 벗어놓은 속옷을 가져다 빨았다. 항상 쫓기는 도망자의 옷은 몹시 더러웠다. 몸을 씻고 나온 신창원은 그녀가 돈 다발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저씨, 나 소원 성취했어요』
그녀가 서글픈 눈으로 신창원을 바라 보았다. 그녀는 돈다발들을 다시 가방 안에 차곡차곡 넣기 시작했다.
신창원이 만난 여자들은 두 모습이었다. 철저히 그를 이용하거나 끝없는 자기희생이었다. 티켓다방에서 일하던 J에게 신창원은 알라딘의 요술램프였다. 그녀는 신창원에게 도둑질을 재촉하기도 했다. 집을 사달라고 하기도 하고 가족까지 동원해서 장물과 수표들을 처분했다. 수많은 현찰과 장물들이 지금도 그녀의 가족 소유다. 어떤 여자는 험하게 고생하며 모은 돈을 몽땅 신창원에게 털어주기도 했다. 신창원을 도망시킨 후 그녀는 괴로워하다가 자살했다. 그에게 천사와 악마는 교대로 나타났다.
『아저씨, 이 돈도 가져가세요』
『아저씨 이제 그만 가세요』
그녀가 돈이 들어 있는 가방을 손에 들고 신창원에게 말했다. 갑자기 그녀의 태도가 냉랭해졌다. 신창원은 씁쓸한 마음으로 신발을 신었다.
『아저씨 이 돈도 가져가세요』
그녀가 돈 가방을 그에게 돌려주었다. 의외였다. 그녀의 표정에는 개결한 자존심이 엿보였다.
『그럼 차라도 한 대 사주면 안 될까?』
신창원이 멋쩍어하며 물었다.
『아니에요. 필요없어요』
그녀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신창원이 떠밀리듯 나가면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저씨! 나말고 다른 여자한테도 이런 짓 했어요?』
『이번이 처음이야』
『그러면 나하고 손가락 걸고 약속해요. 앞으론 절대 이런 짓 안 한다고』
신창원이 쑥스러워하며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녀가 손가락을 꼭 걸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저씨 나는 주님을 믿어요. 예수님은 나 같은 가난한 사람이나 아저씨같이 죄지은 사람을 위해 세상에 오셨어요. 그분은 분명히 아저씨도 사랑하실 거예요』
신창원은 목구멍으로 주먹 같은 회한이 치밀어 올랐다. 천사 같은 그녀가 믿는 하나님이라면 언젠가 그도 한번 찾아갈 것이라고 맹세하면서>
신창원이나 大盜(대도) 조세형 같은 탈주범과 특히 악연을 맺는 게 일부 교정간부들이었다. 신창원은 자기를 괴롭혔던 간부에게 보복하기 위해 그가 탈출한 부산교도소를 1년 만에 다시 찾아갔었다. 大盜 조세형도 징역살이보다 교정간부들의 편견과 매도가 더 괴로웠다고 토로했었다.
반면 젊은 하급 교도관들은 다르다. 가장 오지에 있다는 청송교도소를 갔을 때 조세형씨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몰래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신창원을 대하는 젊은 공무원들의 눈빛에서 재소자와 교도관을 초월한 정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간부들의 눈은 차가운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범죄자들에게 속고 시달렸기 때문에 무디어졌는지도 모른다. 젊고 착한 교도관들은 오래 근무할수록 회의가 늘어가고 인간성을 상실할까 봐 두렵다고들 했다. 좋은 사람만 보고 살아도 인생은 짧은데 밥벌이를 위해 감옥 안에서 죄인들과 함께 벌을 받고 있다고 자조하기도 했다. 신창원이 가족을 통해 급히 와달라고 해서 간 적이 있었다. 그의 얼굴이 꺼칠하고 병색이 완연했다.
『며칠 전에 두들겨맞았는데 목을 잡고 머리통을 벽에 짓찧는 바람에 다 토했어요. 뇌진탕인가 봐요. 보통 때 때리면 그런대로 참겠는데 몸이 괴로울 때 그러면 정말 힘들어요』
세상의 관심이 식을 무렵이면 보복이 시작될 것이라고 짐작은 했었다. 그러나 방법이 의외였다. 私感이 개입되지 않고 직접 그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신창원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왜 맞았는데?』
내가 다그쳐 물었다.
『청원서를 다섯 번 썼는데 과장이 전부 찢어버렸어요』
『어떤 내용이었는데?』
내가 물었다.
『쇠사슬을 하고 수갑을 두 개 찼는데 어깨가 붓고 여름에 손목 피부가 찢어지고 곪아요. 밤에는 허리가 배겨서 잠을 못 자겠어요. 그리고 면회 오는 어린 조카를 보는 순간만이라도 수갑을 안 보였으면 하는 그런 내용이었어요』
『안 해주면 되지, 때리긴 왜 때리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뭔가 맞을 짓을 도발하지 않았나 의문이 들었다.
『청원서를 찢으니까 교도소장 면담신청을 했어요. 안 된다는 거예요. 한번은 우연히 교도소장이 그 앞을 지나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소장님을 불렀다가 얻어터진 거예요. 자기는 정년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고소를 하든지 세상에 알리든지 마음대로 하래요. 두 번을 맞았어요』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계속했다.
『그 사람과는 어릴 때부터 악연이에요. 대구, 안동, 청송, 부산교도소에서 네 번 만났어요』
탈주범 조세형이 自殺을 권유한 까닭
총 징역 31년을 살았던 탈주범 조세형은 신창원이 잡히지 말고 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상의 관심만 줄어들면 아마 합법을 가장해서 말려 죽일 거라고 장담했었다. 신창원을 위해 모른 척할까 말까 몇 달을 고민했다. 마침내 항의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생각해 보니 나도 일종의 피해자였다. 변호사의 접견권은 헌법상의 권리였다. 그런데 그 간부는 경찰청에서 조사를 나왔으니 그만 접견하라고 막기도 했었다. 더 좋은 부산변호사를 소개해 주겠다고 신창원과 가족을 유혹하기도 했었다. 그에게 항의하러 갔다가 만나지를 못한 적도 있었다. 어느 날 나는 다시 그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지금 소장하고 함께 계시는데 잠깐만 기다리세요』
직원 한 명이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책상 여러 개가 줄을 지은 넓은 방이었다. 사무실 한쪽 벽에 문이 열린 간부의 방이 있었다. 검은 얼굴의 중년 사나이가 점심 후 간부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가 교도소장인 것 같았다. 그 안에서 후리후리한 키의 그 간부가 걸어 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그는 내게 넓은 사무실 중앙의 낡은 비닐의자를 권했다.
『신창원과 여러 번 인연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내가 말을 꺼냈다.
『세 번 만났죠. 안동교도소 때는 신창원이가 각목으로 유리창을 깨고 난동을 부렸죠. 이 안에 재소자가 2000명 정도 있는데 다섯 명 정도가 말썽이죠』
『신창원이가 서류를 제출했다고 하던데…』
내가 조심스럽게 핵심으로 접근했다.
『청원한 적 없어요』
그가 단호하게 부인했다. 행형법은 수용자의 청원을 저지하거나 그걸 이유로 불이익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고 있었다. 그러나 위반해도 공무원에 대한 처벌규정이 없다.
『수갑을 두 개나 차고 있던데 왜 그렇습니까?』
내가 다시 물었다.
『한 개를 풀었어도 다시 한 개를 여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벌려고요』
그가 사무적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범죄인에 대해서 바깥의 시각과 제가 보는 눈이 달라요. 저는 항상 의심하고 있어요. 밖에서는 인권 운운 하지만 재소자가 도망가면 우리 교도관만 피해를 보니까요』
행형법 시행령을 보면 「특히 필요한 경우」에 쇠사슬 등 형구를 사용할 수 있다. 판단 주체는 교정공무원이다.
『수갑을 여러 개 채운 건 과장 전결이죠?』
소장이 알면 그렇게 할 것 같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