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납치되고 금지옥역 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는 오매불망 범인의 전화를 기다린다. 여느 스릴러 장르라면 밑바탕으로 세웠을 '유괴'라는 설정을 실화라는 묵직함 위에 문제화시킨 이 작품.
는 미수사건으로 처리된 이형호 유괴사건을 토대로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용의자의 실제 전화녹음 목소리를 들려주며 관객에게 격양된 어조로 물음을 던지는 영화다. 이미 실화를 토대로 한 두 편의 영화를 선보인 박진표 감독은 실화가 갖는 관객들의 관음적 효과를 노리며 자신이 바라보는 사건의 진상을 과감히 드러낸다.
탁상공론하는 언론, 무능한 경찰, 기복신앙에 빠진 종교. 어느것하나 도움이 되지 못하는 '유괴'라는 문제속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온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 9시 뉴스앵커가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인을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대목은 언론에 뿌리는 경종일 수 있다. 과학수사에 한계일 수 밖에 없던 당시의 경찰들을 무능하지만 순박한 사람들로 묘사한 것 , 언론과 경찰을 전복시킴으로써 당시 TV로만 시청했던 관객들에게 사건의 진상에 한층 더 다가가는 효과를 거두었다.
내 옆에서 어쩌면 같이 당시를 회상하고 있을지도 모를 범인. 이것은 에서부터 이어진 실화사건들이 관객들에게 주는 파급효과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당시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이 영화는 어떠했을까. 영화 는 삼풍백화점 붕괴참사를 재연하므로 조심스러운 속을 내비쳤고, 은 故 김성재의 베일에 싸인 죽음을 모티브 삼아 시끄러운 한 때를 보내기도 했다. 비단 영화뿐만이 아니라 드라마 에서도 배우 최민수와 부친 故 최무룡의 명예를 놓고 진통을 앓았던 사례가 있으며, 조성모의 뮤직비디오 는 월남참전 용사들이 비참하게 죽는 장면을 재연했다하여 사용된 부대마크를 없애고 재촬영하는 헤프닝마저 벌어졌었다.
이처럼 실화사건을 토대로 한, 특히나 그 사건을 초점으로 하는 영화는 그 사건의 진위여부를 확인 할 어떠한 의심없이 관객으로 하여금 연출 의도대로 감상을 강요시킨다. 이것은 영화자체로선 연출의 힘으로 작용할지는 모르겠으나 사건의 시각에 있어선 굉장히 위험한 왜곡효과를 불러 올 수도 있다. 사건의 피해자들은 적어도 이러한 왜곡앞에 안심할 수 없다.
박진표 감독의 필모를 살펴보면 를 통해 노년의 성이나 현실적인 사랑을 여과없이 또한 대역없이 촬영하여 이슈를 불러일으킨 저력이 있다. 노부부는 언론매체 앞에 당당히 섰고, 노부부의 성생활은 사회일각에서 굉장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박진표 감독의 행보에 초석이 되었다. 그의 후속작 . '실화'라는 구절은 첫장면의 단 한줄뿐. 그러나 이를 통해 들여다보는 주인공들의 멜로는 픽션이 아니라는 의식속에 눈물샘을 자극시켰다. 그리고 를 통해 비로소 실화극은 관객에게 호소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너무 길게 끌어온 감이 있지만 는 야누스의 얼굴을 지닌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공소시효 폐지논란과 더불어 이형호군 납치사건이 다시 회자되며 인터넷과 매체를 달구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상업적이란 느낌이 훨씬 많이 드는 것은 비단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오락적 만족을 추구하며 극장을 찾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캠페인적인 공개수배. 상업시스템으로 무장한 영화에서 관객들은 얼마나 사건에 참여하려 할까. 아까도 얘기했듯 당시의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하는 의문은 늘 이런곳에서 방점을 찍는다.
누군가의 아픈과거가 타인에게는 팝콘타임일 수도 있다는것. 영화라는 매체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 근본적인 것부터 자문해볼 수 밖에 만든 묵직한 숙제를 안겨준 이 영화. 그리 달갑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그놈 목소리>
감독 : 박진표
출연 : 설경구(한경배), 김남주(오지선), 강동원(유괴범)
아이가 납치되고 금지옥역 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는 오매불망 범인의 전화를 기다린다. 여느 스릴러 장르라면 밑바탕으로 세웠을 '유괴'라는 설정을 실화라는 묵직함 위에 문제화시킨 이 작품.
는 미수사건으로 처리된 이형호 유괴사건을 토대로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용의자의 실제 전화녹음 목소리를 들려주며 관객에게 격양된 어조로 물음을 던지는 영화다. 이미 실화를 토대로 한 두 편의 영화를 선보인 박진표 감독은 실화가 갖는 관객들의 관음적 효과를 노리며 자신이 바라보는 사건의 진상을 과감히 드러낸다.
탁상공론하는 언론, 무능한 경찰, 기복신앙에 빠진 종교. 어느것하나 도움이 되지 못하는 '유괴'라는 문제속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온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 9시 뉴스앵커가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인을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대목은 언론에 뿌리는 경종일 수 있다. 과학수사에 한계일 수 밖에 없던 당시의 경찰들을 무능하지만 순박한 사람들로 묘사한 것 , 언론과 경찰을 전복시킴으로써 당시 TV로만 시청했던 관객들에게 사건의 진상에 한층 더 다가가는 효과를 거두었다.
내 옆에서 어쩌면 같이 당시를 회상하고 있을지도 모를 범인. 이것은 에서부터 이어진 실화사건들이 관객들에게 주는 파급효과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당시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이 영화는 어떠했을까. 영화 는 삼풍백화점 붕괴참사를 재연하므로 조심스러운 속을 내비쳤고, 은 故 김성재의 베일에 싸인 죽음을 모티브 삼아 시끄러운 한 때를 보내기도 했다. 비단 영화뿐만이 아니라 드라마 에서도 배우 최민수와 부친 故 최무룡의 명예를 놓고 진통을 앓았던 사례가 있으며, 조성모의 뮤직비디오 는 월남참전 용사들이 비참하게 죽는 장면을 재연했다하여 사용된 부대마크를 없애고 재촬영하는 헤프닝마저 벌어졌었다.
이처럼 실화사건을 토대로 한, 특히나 그 사건을 초점으로 하는 영화는 그 사건의 진위여부를 확인 할 어떠한 의심없이 관객으로 하여금 연출 의도대로 감상을 강요시킨다. 이것은 영화자체로선 연출의 힘으로 작용할지는 모르겠으나 사건의 시각에 있어선 굉장히 위험한 왜곡효과를 불러 올 수도 있다. 사건의 피해자들은 적어도 이러한 왜곡앞에 안심할 수 없다.
박진표 감독의 필모를 살펴보면 를 통해 노년의 성이나 현실적인 사랑을 여과없이 또한 대역없이 촬영하여 이슈를 불러일으킨 저력이 있다. 노부부는 언론매체 앞에 당당히 섰고, 노부부의 성생활은 사회일각에서 굉장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며 박진표 감독의 행보에 초석이 되었다. 그의 후속작 . '실화'라는 구절은 첫장면의 단 한줄뿐. 그러나 이를 통해 들여다보는 주인공들의 멜로는 픽션이 아니라는 의식속에 눈물샘을 자극시켰다. 그리고 를 통해 비로소 실화극은 관객에게 호소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너무 길게 끌어온 감이 있지만 는 야누스의 얼굴을 지닌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공소시효 폐지논란과 더불어 이형호군 납치사건이 다시 회자되며 인터넷과 매체를 달구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상업적이란 느낌이 훨씬 많이 드는 것은 비단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오락적 만족을 추구하며 극장을 찾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캠페인적인 공개수배. 상업시스템으로 무장한 영화에서 관객들은 얼마나 사건에 참여하려 할까. 아까도 얘기했듯 당시의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보였을까 하는 의문은 늘 이런곳에서 방점을 찍는다.
누군가의 아픈과거가 타인에게는 팝콘타임일 수도 있다는것. 영화라는 매체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에 대해 근본적인 것부터 자문해볼 수 밖에 만든 묵직한 숙제를 안겨준 이 영화. 그리 달갑게만 보이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