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출근길, 대구·경북 지역민들은 습관적으로 에프엠(FM) 라디오 95.3㎒에 채널을 맞췄다가 ‘어?’하고, 채널을 확인해 봤을 법하다. 매일 아침 들어왔던 김영주(40·위)씨 목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매일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전파를 타는 〈대구문화방송〉 ‘FM 모닝쇼’의 진행자가 바뀌었다.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14년 동안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김씨가 오후 방송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랫 동안 진행하다보니, 챙겨듣는 애청자가 아니더라도 이 지역 사람이라면 출근길에 그의 목소리와 함께 해 보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다. 프로그램 개편에 따른 김씨의 교체 소식이 알려지면서 해당 방송사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진행자 교체를 아쉬워하는 글이 적잖게 올라왔다. 1999년부터 꾸려진 그의 인터넷 팬카페(ddamo.com) 회원 30여명이 지난 13일 방송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청취자들의 출근길을 함께 하는 대신 결혼 9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 출근길 배웅을 하는 것도 행복하던 걸요.” 김씨는 특유의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아쉬움이 얼굴에 묻어났다.
오전7시 ‘모닝쇼’ 디제이 14년만에 바뀌어 팬카페 회원들 방송사 앞 항의시위하기도 5천회 가까운 비결 “방송이 너무 좋아서”
‘14년.’ 중학생이던 청취자가 직장인이 되고, 입사 첫날 떨리는 마음으로 사연을 보냈던 애청자가 회사의 중견 간부가 된 세월이었다. 등굣길에 듣는다는 아버지와 수험생 자녀, 부부가 함께 하는 출근길에 ‘깔깔대며 웃을 수 있어 좋다’는 애청자들의 사연을 뒤로 하는 게 아쉬울 수 밖에.
5천회 방송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전국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틀어도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장수한 진행자다. 그의 말 대로 “모닝쇼는 그야말로 일상이고 삶”이었다. 그는 그동안 진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결혼 7년 만에 딸 아이를 가졌을 때”라고 했다. 입덧 때문에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던 임신 초기에는 2시간 방송을 하고, 8시간씩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버텼다. 그는 “방송이 너무 좋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한 마디로 타고난 디제이 기질을 드러냈다.
“눈 오는 날은 혹시 방송에 늦을까 아예 전날 밤부터 방송사 근처 숙소에서 잠을 자던” 근성 그대로 김씨는 “새로 맡은 프로그램에 열정을 쏟겠다”고 말했다. 팬카페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그는 한번도 팬카페 모임에 나간 적이 없다. “애청자 뿐만 아니라 우연히 채널을 맞추다 듣게 되는 이들도 똑같이 소중한 청취자”라는 생각에 일부 팬들과 가깝게 지내는 게 조심스러워서다. 그만큼 애청자들의 집단 항의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더 솔직한 속내도 숨기지는 않았다. “저 이만하면 정말 행복한 디제이 아닌가요?”
대구 mbc김영주의 fm모닝쇼 한겨례 신문에 나온 기사 입니다...
지난 월요일 출근길, 대구·경북 지역민들은 습관적으로 에프엠(FM) 라디오 95.3㎒에 채널을 맞췄다가 ‘어?’하고, 채널을 확인해 봤을 법하다. 매일 아침 들어왔던 김영주(40·위)씨 목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매일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전파를 타는 〈대구문화방송〉 ‘FM 모닝쇼’의 진행자가 바뀌었다.
지역에서는 보기 드물게 14년 동안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김씨가 오후 방송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랫 동안 진행하다보니, 챙겨듣는 애청자가 아니더라도 이 지역 사람이라면 출근길에 그의 목소리와 함께 해 보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다. 프로그램 개편에 따른 김씨의 교체 소식이 알려지면서 해당 방송사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진행자 교체를 아쉬워하는 글이 적잖게 올라왔다. 1999년부터 꾸려진 그의 인터넷 팬카페(ddamo.com) 회원 30여명이 지난 13일 방송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청취자들의 출근길을 함께 하는 대신 결혼 9년 만에 처음으로 남편 출근길 배웅을 하는 것도 행복하던 걸요.” 김씨는 특유의 쾌활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아쉬움이 얼굴에 묻어났다.
오전7시 ‘모닝쇼’ 디제이 14년만에 바뀌어
팬카페 회원들 방송사 앞 항의시위하기도
5천회 가까운 비결 “방송이 너무 좋아서”
‘14년.’ 중학생이던 청취자가 직장인이 되고, 입사 첫날 떨리는 마음으로 사연을 보냈던 애청자가 회사의 중견 간부가 된 세월이었다. 등굣길에 듣는다는 아버지와 수험생 자녀, 부부가 함께 하는 출근길에 ‘깔깔대며 웃을 수 있어 좋다’는 애청자들의 사연을 뒤로 하는 게 아쉬울 수 밖에.
5천회 방송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전국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틀어도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장수한 진행자다. 그의 말 대로 “모닝쇼는 그야말로 일상이고 삶”이었다. 그는 그동안 진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결혼 7년 만에 딸 아이를 가졌을 때”라고 했다. 입덧 때문에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던 임신 초기에는 2시간 방송을 하고, 8시간씩 병원에서 링거를 맞고 버텼다. 그는 “방송이 너무 좋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한 마디로 타고난 디제이 기질을 드러냈다.
“눈 오는 날은 혹시 방송에 늦을까 아예 전날 밤부터 방송사 근처 숙소에서 잠을 자던” 근성 그대로 김씨는 “새로 맡은 프로그램에 열정을 쏟겠다”고 말했다. 팬카페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그는 한번도 팬카페 모임에 나간 적이 없다. “애청자 뿐만 아니라 우연히 채널을 맞추다 듣게 되는 이들도 똑같이 소중한 청취자”라는 생각에 일부 팬들과 가깝게 지내는 게 조심스러워서다. 그만큼 애청자들의 집단 항의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더 솔직한 속내도 숨기지는 않았다. “저 이만하면 정말 행복한 디제이 아닌가요?”
글·사진/박주희 기자 hop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