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노턴

이진용200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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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노턴

8전 씨네 21에 난 기사


1999/02/23 16:07

배우 에드워드 노턴(30)은 할리우드 4년차다. 해사한 미남형도 아니고 섹스 심벌은 더더욱 아니지만, 노턴은 할리우드에서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고 있다. 3년이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연기파와 스타 작위를 동시에 얻어낸 것이다. 한사람의 스타가 뜨고 지는 일이 워낙 순식간의 일이긴 하지만, 3년간 6편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그만한 성채를 쌓기란 쉽지 않다. 노턴에게는 보통 배우들이 밝히길 꺼려하는, 시시한 데뷔작이나 무명시절의 졸작 하나 없다. 96년 (프라이멀 피어)에서 가장 인상적인 데뷔연기 목록에 오를 만한 연기를 보여준 이래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래리 플린트)를 거쳐 최근의 (라운더스) (아메리칸 히스토리 X)까지 출연작마다 화려한 조명 세례를 받았다.

그렇다고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한 소쩍새 울음이 필요없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할리우드에 발을 늦게 들여놓았을 뿐, 노턴은 연극무대에서 오랜 훈련을 쌓은 정통 연기파다. "내 직업의 배경과 훈련은 전적으로 연극에 기반한다"고 할 만큼, 어릴 때 연기를 시작해서 대학에서도 연극을 했고 수년간 뉴욕 연극계에 몸담았다. 자신을 세상에 노출시킨 (프라이멀 피어)의 애런을 만나기 전에도 이미 연기는 그의 삶이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거절하고, 2천명 이상의 후보가 탈락한 애런 역할을 따내면서 할리우드란 새로운 무대를 만난 것뿐. 대주교를 죽인 혐의로 기소된 채, 상처받기 쉬운 천사와 살인을 자행하는 악마의 두 얼굴을 오가는 애런은 리처드 기어 주연의 영화를 노턴의 영화로 바꿔버렸다. 노턴은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했고, 97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며 단 한편의 영화로 잊을 수 없는 인상을 새겼다.

화려한 데뷔 뒤 노턴은 의외의 선택을 감행했다. 우디 앨런의 (에브리원.)에서 사랑에 빠진 순정파 청년, 밀로스 포먼의 (래리 플린트)에서 래리 플린트를 변호하는 소신있는 변호사 등 상업적인 블록버스터 주연보다 조연급이라도 원하는 감독과 작업하는 쪽을 택했다. 게다가 96년에만 3편의 영화를 찍고 모두 성공을 거둔 뒤, 그는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난 정말이지 일하기 위해서 일을 원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이 종종 타인이 하라고 하기 때문에, 혹은 재빠르게 움직이기 위해서 일한다는 건 알지만. 하나를 끝내고 다음 일을 시작하기까지 중간에 재충전할 시간 없이는 일할 수 없다. 하나를 잘 연구하고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몇달 동안의 시간이 필요하다. 무리하게 바로 다음 일로 뛰어들면 전작과 구분되는 캐릭터를 창출하기 어렵다." 나름의 원칙도 원칙이지만 절정의 기쁨 한편으로 저명한 건축가인 할아버지 제임스 루즈와 어머니를 연이어 잃은 슬픔을 삭일 시간도 필요했던 듯하다.

결국 (라운더스)에서 허영심 많은 도박꾼 웜으로 돌변한 그를 만나기까지는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각본을 읽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고 한탕을 꿈꾸며 사기도박을 일삼는 낙오자 웜이 맘에 들었고, 누아르풍의 시각적 연출에 일가견이 있는 존 달의 작품을 좋아해온 터라 출연을 결정했다. (라운더스)를 찍기 전 노턴은 제대로 포커를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영화를 찍는 동안은 손에 카드패를 들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어떤 역할을 추적해가는 과정은 당신이 이제껏 겪어보지 않은 세계에 깊이 빠져들고, 그 삶을 선택했다는 무게 없이 그쪽 사람들을 알아야 한다. 그걸 흡수해서 관객과 나누는 게 배우의 일이다. 꼭 영화와 연관되는 디테일이 아니라도 조사를 하면 할수록 몸짓과 어휘, 그리고 그 세계의 철학이 스며든다." 그래서 도박판에서 도박을 익혀 손 대역을 쓰지 않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사기포커를 보여줬다. 가장 최신작인 (아메리칸 히스토리 X)에서는 흑인 십대 둘을 살해하고 수감됐다가 회개한 스킨헤드족으로 다시 한번 엽기적이고 인간적인 양면성의 연기를 소화해냈다. 현재는 브래드 피트와 함께 데이비드 핀처의 (파이트 클럽)을 촬영중. 2000년에는 (키핑 더 페이스)란 작품에 출연하고, 제작과 감독을 겸할 예정이다.

언론 노출을 꺼리는 이유.

= 난 배우고, 출연할 때마다 관객들에게 내가 바로 그 캐릭터라는 걸 확신시키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사전지식을 가질수록 나를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 자체로 보기가 힘들어진다. 사소한 것이라도 나에 대해 뭔가를 안다는 것은 결국 그들이 캐릭터를 보는 방식에 개입한다. 난 그런 방해를 원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삶의 깊은 부분을 나눈다는 것은 결국 그걸 하찮게 만들고 지나치게 단순화한다는 느낌이다. 난 내 삶에서 가치있는 모든 일들이 일화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성공이 가져다 준 것.

= 다양한 소재 가운데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이 생긴다. 오로지 내 자신의 관심사를 기준으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사실, 그건 굉장하다. 배우가 프로로서 바랄 수 있는 최고의 것, 배우의 성배랄까. 그걸 한번도 당연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그 기회에 감사하고, "상업적인 영화를 찾아야 해"라고 말하는 할리우드 시스템의 압력에 굴복해 그 기회를 낭비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선택의 자유를 갖고도 자신의 영감을 따르지 않는 것은 정말 큰 불운 중 하나다. 괜히 젠 체하면서 "난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당신이 만드는 영화가 좋을지 어떨지 결코 알 수 없다. 그건 완전히 도박이다. 내 말은, 당신은 그저 자신의 본능에 따르고 왜 이 일을 하는가 하는 자신만의 이유를 가질 뿐이라는 거다. 그리고 그 영화가 뜨든 가라앉든 나완 별 상관없다. 영화를 하면 할수록, 점점 좋은 영화는 기적이란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무수한 요소와 공동작업의 화학작용이 성공을 거둬야 하기 때문이다.

글 황혜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