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행복하다, 즐겁다, 불행하다, 억울하다, 저항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어릴때부터 작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단어와 덧셈·뺄셈만을 학습한 채 노동 현장에서 주먹과 몽둥이
아래 노예로 사육됐다.”
북 한 내 ‘최악의 수용소’로 불리는 평남 개천
정치범수용소(14호 관리소)에서 태어나 작년 탈북에
성공한 신동혁(25)씨가 23일 수기집 ‘북한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 세상 밖으로 나오다’를 출간했다.
신씨는 이날 서울 정동 배재대 학술지원센터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이 누구인지 모르고
24년을 살았을 만큼 개천수용소는 완전통제구역”이라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1965년 ‘형제가 6·25 때 월남했다’는 죄목으로
수용소에 끌려갔다. 어머니가 끌려온 이유는 모른다.
신씨는 책에서 “어머니와 형이 사형당하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고
썼다. 그는 96년 4월 수용소 내 감옥으로 끌려가 어머니와
형(74년생)이 탈출하려다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보위부원들은 14살이던 그의 손·발을 묶어 천장에 매달고
등 밑에 화로를 옮겨 놓았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의
화상을 입었지만, 감방 동료가 식사 때 나온 소금국으로
상처를 씻겨줘 두 달 만에 몸을 움직였다고 했다.
그해 11월 신씨는 고문으로 다리가 부러진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와 형의 사형장으로 끌려갔다. 그는 맨 앞에서
어머니가 교수형, 형이 총살당하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아버지는 말 없이 눈물을 쏟았지만 신씨는 “이상하게도
내 눈에서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개천수용소의 경우, 결혼은 일종의 ‘포상’이다. 수용소
내 25세 이상 남자와 23세 이상 여자 중에 일 잘하는
사람을 뽑아 결혼을 시킨다. 신씨는 “과거에는 30~40%
정도 결혼을 했는데 요즘은 60% 정도 결혼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신혼 때 5일을 제외하면 남자는 기숙사에서
살아야 한다. 아이는 인민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하는
12살까지만 어머니와 생활한다. 중학교부터는 수용소
내 농장과 공장, 탄광으로 흩어져 집단 생활을 한다.
신씨는 2004년 탈북 경험자가 체포돼 수용소에 오면서
‘바깥 세상’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2005년 1월 전기 철조망을 넘어 탈출에 성공한 뒤
중국을 거쳐 작년 8월 한국에 들어왔다.
"北 개천14호 수용소엔 불행도 존재하지 않아"
2007년 10월 23일(화) 오후 4:57 [연합뉴스]
수용소출생 신동혁씨 "김일성 김정일이 누군지도 몰랐다"
(서 울=연합뉴스) 문성규 기자 = "사랑한다 행복하다
즐겁다 불행하다 억울하다 저항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덧셈과 뺄셈, 그리고 작업지시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단어와
감정만을 학습한 채 노동 현장에서 주먹과 몽둥이 아래
노예로 사육됐다"
북 한 평안남도 개천시 개천14호 정치범수용소에서 태어나,
정치범수용소 출생자로선 최초로 탈북에 성공해 중국을 거쳐
지난해 한국으로 들어온 신동혁(25)씨가 23일 수기집
'북한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 세상밖으로 나오다'를 출간했다.
이날 서울 정동 배재대 학술지원센터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신씨는 공개처형과 인권침해의 실상, 수용소내의 학교 생활과
작업반 생활, 결혼과 출산 등 내부 생활을 생생히 증언했다.
신씨는 자신이 태어나 자란 개천14호 수용소는 북한 사회와
격리된 것은 물론, 여타 정치범수용소와도 판이한 '완전통제'
구역이라고 말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누구인지 모르고
24년을 살았다"
신씨가 증언한 이 수용소는 한 달에 한 번 매월
1일 휴일이 주어질 뿐 나머지 나날은 오전 5시 출근,
오후 10시 퇴근을 반복하면서 혹독한 노동을 강요당한다.
보위지도원-총반장-작업반장의 위계 속에서 탄광공장,
식료공장, 피복공장 등으로 나뉘어 일을 하고 보위지도원에게는
절대 복종해야 한다.
결혼은 일을 잘 해야 시켜준다. 그러나 수용소 규정상 부부가
함께 살지 못하기 때문에 신씨도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와는
헤어져, 인민학교(초등학교) 5학년까지 어머니하고만 살았다.
아버지는 1965년 '형제가 6.25때 월남했다'는 죄목으로 끌려왔고
어머니는 끌려온 이유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그가 14살때 어머니와 형이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혀 공개처형됐고,
그 자신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
이후 수용소 내의 차별대우를 견디다 못해 탈출을 결심하게 됐다.
수 용소는 '도주할 수 없다. 도주시 즉시 총살한다.
셋 이상 모여 있을 수 없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이상한 행동 발견시 즉각 신고해야 한다. 작업 외에
개인적으로 남녀간에 접촉할 수 없다' 등의 10대 규정을
만들어 수감자들을 통제하고 있다.
특히 수감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죄인이라는 의식을
심어주고 학교에서도 '어린 정치범'들에게 죄책감을 불러
일으키는 교육을 하기 때문에 수감자들은 자신의 일상이
억울하다거나 부당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고 신씨는 말했다.
수용소 내 수만 명의 여성은 보위지도원의 성노리개로
전락했으나 그들 여성은 이를 평범한 삶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
신 씨의 수기 발간을 도운 북한인권정보센터 윤여상
소장은 "완전통제구역에서 태어나 자라온 신동혁의
증언은 충격과 분노, 그리고 좌절 그 자체였다"며 "'표창결혼'을 통해
노동력을 최고조로 착취하고 노동력을 확보하는
개천14호 수용소는 21세기판 노예제 사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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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어머니·형 처형당하는 장면 맨 앞서 지켜봐야 했는데…”
“사랑한다, 행복하다, 즐겁다, 불행하다, 억울하다, 저항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어릴때부터 작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단어와 덧셈·뺄셈만을 학습한 채 노동 현장에서 주먹과 몽둥이 아래 노예로 사육됐다.” 북 한 내 ‘최악의 수용소’로 불리는 평남 개천 정치범수용소(14호 관리소)에서 태어나 작년 탈북에 성공한 신동혁(25)씨가 23일 수기집 ‘북한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 세상 밖으로 나오다’를 출간했다. 신씨는 이날 서울 정동 배재대 학술지원센터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이 누구인지 모르고 24년을 살았을 만큼 개천수용소는 완전통제구역”이라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1965년 ‘형제가 6·25 때 월남했다’는 죄목으로 수용소에 끌려갔다. 어머니가 끌려온 이유는 모른다. 신씨는 책에서 “어머니와 형이 사형당하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고 썼다. 그는 96년 4월 수용소 내 감옥으로 끌려가 어머니와 형(74년생)이 탈출하려다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보위부원들은 14살이던 그의 손·발을 묶어 천장에 매달고 등 밑에 화로를 옮겨 놓았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의 화상을 입었지만, 감방 동료가 식사 때 나온 소금국으로 상처를 씻겨줘 두 달 만에 몸을 움직였다고 했다. 그해 11월 신씨는 고문으로 다리가 부러진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와 형의 사형장으로 끌려갔다. 그는 맨 앞에서 어머니가 교수형, 형이 총살당하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아버지는 말 없이 눈물을 쏟았지만 신씨는 “이상하게도 내 눈에서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개천수용소의 경우, 결혼은 일종의 ‘포상’이다. 수용소 내 25세 이상 남자와 23세 이상 여자 중에 일 잘하는 사람을 뽑아 결혼을 시킨다. 신씨는 “과거에는 30~40% 정도 결혼을 했는데 요즘은 60% 정도 결혼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신혼 때 5일을 제외하면 남자는 기숙사에서 살아야 한다. 아이는 인민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하는 12살까지만 어머니와 생활한다. 중학교부터는 수용소 내 농장과 공장, 탄광으로 흩어져 집단 생활을 한다. 신씨는 2004년 탈북 경험자가 체포돼 수용소에 오면서 ‘바깥 세상’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2005년 1월 전기 철조망을 넘어 탈출에 성공한 뒤 중국을 거쳐 작년 8월 한국에 들어왔다. "北 개천14호 수용소엔 불행도 존재하지 않아" 2007년 10월 23일(화) 오후 4:57 [연합뉴스] 수용소출생 신동혁씨 "김일성 김정일이 누군지도 몰랐다" (서 울=연합뉴스) 문성규 기자 = "사랑한다 행복하다 즐겁다 불행하다 억울하다 저항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덧셈과 뺄셈, 그리고 작업지시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단어와 감정만을 학습한 채 노동 현장에서 주먹과 몽둥이 아래 노예로 사육됐다" 북 한 평안남도 개천시 개천14호 정치범수용소에서 태어나, 정치범수용소 출생자로선 최초로 탈북에 성공해 중국을 거쳐 지난해 한국으로 들어온 신동혁(25)씨가 23일 수기집 '북한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 세상밖으로 나오다'를 출간했다. 이날 서울 정동 배재대 학술지원센터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신씨는 공개처형과 인권침해의 실상, 수용소내의 학교 생활과 작업반 생활, 결혼과 출산 등 내부 생활을 생생히 증언했다. 신씨는 자신이 태어나 자란 개천14호 수용소는 북한 사회와 격리된 것은 물론, 여타 정치범수용소와도 판이한 '완전통제' 구역이라고 말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누구인지 모르고 24년을 살았다" 신씨가 증언한 이 수용소는 한 달에 한 번 매월 1일 휴일이 주어질 뿐 나머지 나날은 오전 5시 출근, 오후 10시 퇴근을 반복하면서 혹독한 노동을 강요당한다. 보위지도원-총반장-작업반장의 위계 속에서 탄광공장, 식료공장, 피복공장 등으로 나뉘어 일을 하고 보위지도원에게는 절대 복종해야 한다. 결혼은 일을 잘 해야 시켜준다. 그러나 수용소 규정상 부부가 함께 살지 못하기 때문에 신씨도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와는 헤어져, 인민학교(초등학교) 5학년까지 어머니하고만 살았다. 아버지는 1965년 '형제가 6.25때 월남했다'는 죄목으로 끌려왔고 어머니는 끌려온 이유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그가 14살때 어머니와 형이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혀 공개처형됐고, 그 자신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 이후 수용소 내의 차별대우를 견디다 못해 탈출을 결심하게 됐다. 수 용소는 '도주할 수 없다. 도주시 즉시 총살한다. 셋 이상 모여 있을 수 없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이상한 행동 발견시 즉각 신고해야 한다. 작업 외에 개인적으로 남녀간에 접촉할 수 없다' 등의 10대 규정을 만들어 수감자들을 통제하고 있다. 특히 수감자들에게 지속적으로 죄인이라는 의식을 심어주고 학교에서도 '어린 정치범'들에게 죄책감을 불러 일으키는 교육을 하기 때문에 수감자들은 자신의 일상이 억울하다거나 부당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고 신씨는 말했다. 수용소 내 수만 명의 여성은 보위지도원의 성노리개로 전락했으나 그들 여성은 이를 평범한 삶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 신 씨의 수기 발간을 도운 북한인권정보센터 윤여상 소장은 "완전통제구역에서 태어나 자라온 신동혁의 증언은 충격과 분노, 그리고 좌절 그 자체였다"며 "'표창결혼'을 통해 노동력을 최고조로 착취하고 노동력을 확보하는 개천14호 수용소는 21세기판 노예제 사회"라고 말했다. ..........................................................................................................................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무엇을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