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내게 얼굴이 없었던가?

신한준2007.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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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술이 답이었다. 신들에 대한 비난을 나 자신이 진술하는 말을 듣는 것이 답을 얻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말을 경솔하게 한다. 그리스어로 글을 쓰도록 가르쳐주면서 폭스가 나에게 흔히 하던 말이 있다.

 “공주님, 당신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로 그것, 그것 전부, 당신이 진정으로 의미하는 것보다 더도 덜도 아닌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 그것이 말의 모든 예술이요 기쁨입니다.”

 그럴듯한 말이다. 당신의 영혼 한가운데 수십 년 동안 자리잡고 있던 말들을, 그 동안 줄곧, 등신처럼, 수없이 되뇌어 왔던 말들을, 마침내 입 밖에 내도록 강요받는 순간이 당신에게 찾아오면, 그때 당신은 결코 말의 기쁨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왜 신들이 우리에게 내놓고 공공연히 말하지 않는지, 우리가 대답하도록 허용하지도 않는지 그 이유를 나는 잘 목격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의미하는 바로 그 말이 우리 속에서 밖으로 나올 때까지, 우리가 의미한다고 생각하며 지껄여대는 허튼 소리를 왜 신들이 들어야 하는가? 우리가 얼굴을 가질 때까지 신들이 어떻게 우리를 정면으로 만날 수 있겠는가?


C. S. 루이스, 『우리가 얼굴을 가질 때까지』, 성바오로 출판사, 1993 p 291

 

 

C.S.루이스가 자기의 대표작으로 꼽은 놀라운 책 의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정식으로 라이센스 계약을 맺은 홍성사의 최신판 에는 이 부분의 마지막 문장이 다음과 같이 좀 더 이해하기 쉽고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우리가 아직 얼굴을 찾지 못했는데, 어떻게 신과 얼굴을 맞댈 수 있겠는가?"

 

얼굴? 내게 얼굴이 없었던가?

 

하지만 생각해 보라.

 

만일 얼굴이 없다면, 우리는 결코 "대면(對面)"이라는 것을 할 수 없다. 얼굴을 마주 대한다는 것은 양쪽 모두가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C.S.루이스의 독특한 작품, 는 이렇듯 우리의 얼굴을 들여다보게 한다. 좀 더 분명하게는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내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 내 깊은 속이 진정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우리가 그것을 말할 수 있는 날이 영영 우리 삶 속에 찾아 올 수 있을까?

 

주인공 오루알은 그의 인생 전체에 걸쳐 침묵하는 신들과 논쟁을 벌인다. 신들은 침묵하지만, 인간들에게서 눈을 거두지 않는다. 그들은 끊임없이 관여하고, 인간들을 못 살게 군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말하지 않는다.

 

그리스 신화를 각색하여 고대의 그리스 주변의 한 비문명적인 왕국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한 고대의 인물이 침묵하는 신들에게 도전하는 이 스토리를 통해 인간과 신의 간극, 삶 속에서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것, 사랑이 깊으면 깊을 수록 얼마나 무서워지고 위험해지는가, 나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깊은 곳의 나, 내가 안다고 말하는 내용들에 대해 정말은 얼마나 알고 있는지 등등 엄청난 주제들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나는 다시 한 번 질문해 본다. 얼굴? 내게 얼굴이 없었던가? 신과 마주 대할, 주변의 사람들과 마주 대할, 나 자신과 마주 대할, 그 얼굴이 내게 없는가?

 

"이렇게 자기 중심에 무슨 말이 있는지 찾아내지도 못한 상태에서 이게 내 말의 의미입네 떠드는 소리를 신들이 뭐하러 귀 기울여 듣겠는가?" , 홍성사, pp.342-343

 

아, 얼굴..

 

나에게 얼굴을 달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프시케와

얼굴이 끔찍하게 못 생긴 맏언니 오루알의 이야기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이토록 중의적이다.

그리하여 그는 마지막 환상 중에,

프시케가 되는 것이다.

얼굴을 찾는 것이다.

이 엄청난 소설을 읽어 보라.

그리고 얼굴을 찾는 여정에 뛰어들라.

 

 

얼굴? 내게 얼굴이 없었던가?


홍성사, 원제 Till We Have Faces : A Myth Reto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