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실수, 그와 똑같은 우리의 실수...

최문일2007.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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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현대화 되면서, 서구화 되면서 우리에게 생긴 비극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아주 오래 전에 우리의 믿음의 조상이었던 야곱의 아들 요셉의 세대에 일어났던 그것과 매우 비슷하다. 아니,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생겨났었던 일이다. 바로 빈곤의 문제이다.

세대는 세대가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더욱 많은 물질을 가지게 되고, 소모하게 된다.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더욱 많은 물질과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는데 그 편차가 날이 갈수록 더욱 커지는 것이다. 전쟁은 더 많은 물질과 에너지를 소유하기 위해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그로 말미암아 말로 다 셀 수 없는 사람이 학대당하고 또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단지 깨끗한 물과 먹을 식량이 없어서 말이다.


이런 일들이 이제 외국의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에 하루 평균 35명 정도가 자살하고 있다고 한다. 40여분에 한 명 꼴이다. 한 시간도 채 못되어 한 생명이 꺼지는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서 죽는다는 말이 남의 이야기, 다른 세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내 이웃의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내 가족, 내 친구, 나의 주변에서 이제 어렵지 않게 보고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된 것이다.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을 때 그가 총리가 되게 된 직접적인 요인은 바로 파라오가 꾸었던 해석할 수 없었던 꿈이었다. 요셉은 그 파라오의 꿈이 7년의 풍년과 뒤이어 따라오는 7년의 대흉년으로 해석했고 그의 해석은 적중했다. 요셉은 그의 가족과 또 이집트 전체, 주변 국가들을 살릴 수 있는 생명의 권한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요셉은 7년 동안의 풍년에 남는 식량을 꾸준하게 비축했다. 그의 식량을 비축하는 임무는 아주 성공적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미 보디발의 집에서 오랜 시간 집사를 하며 경제적인 안목을 키웠을 뿐 아니라 어떻게 그것을 키우고 더 부요하게 할지 배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타고난 사업가였고 기회를 잡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요셉은 7년간의 풍년이 지나고 흉년이 시작되자 그 모아뒀던 양식을 조금씩 서민들에게 되판다. 물론 비싼 값을 받고 말이다. 서민들이 그 7년의 흉년을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잘 알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렇지만 서민들은 그들의 재산을 소모하며 양식을 사서 먹는다. 비싼 양식 값은 금방 그들의 재산을 국가로 귀속시켰을 것이다.

흉년이 더 이어지자 재산을 이미 다 소모한 그들은 서서히 그들의 터전인 땅을 나라에 팔고 양식을 산다. 그들에게 땅은 그들의 생명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인데 말이다. 그러나 땅을 팔아야만 양식을 살 수 있었고 그 양식이 없다면 대 흉년에 양식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생명을 위해 생명의 기반을 팔아야 하는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비참했을까...

흉년은 잔인하게도 더 이어진다. 땅도 모두 팔고, 더 이상 팔 수 있는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나라에 자신의 생명을 의탁하는 것, 그리고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 사람들은 점점 국가에 자신들을 스스로 팔게 되었다. 스스로를 종으로 국가에다 팔았다. 자신들이 국가의 종이 될테니 살려달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요셉은 많은 이집트인들을 국가의 소유로 만들어버렸다.


여기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한 번 해보자. 내가 요셉의 입장이었다면, 내가 이집트의 서민이었다면... 과연 어떠했을까... 솔직하게 굶어서 죽는다는 그 두려움과 고통을 나는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먹을 양식이 없어서 굶어 죽는다는 것을 요즘 세대가 이해하기란 참 어려운 일일 것이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사라진지 벌써 수십 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그런 얘기는 고리타분한 얘기라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 보릿고개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우리 주변에 있다. 그 강도가 더 심해진 새로워진 보릿고개는 조금씩조금씩 사회 구석지고, 어두운 곳을 점령하고 있다. 제이, 제삼의 요셉은 점점 더 부요해지고 있다. 그들이 장악하고 있는 물질은 반대로 소외되고 연약한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쳐다볼 수 없는 것, 있는 것마저 빼앗기게 만드는 도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요셉의 시대는 요셉의 시대로 끝나지 않고 그것이 수천 년이 지난 오늘에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부요해지는 것은 더욱 큰 부요함을 원하게 만들었고 그것은 믿는 사람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파고들어서 부자가 되지 못하면 저주받은 것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지게 만들었다. 3년 안에 집을 장만하지 못하면 집사가 아니라는 우스갯소리가 아직까지 우리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께 열심히 기도하고 섬겨서 부자가 되고, 성공을 하고 인정을 받게 되고 사업이 번창하게 됐다는 간증은 사실 너무 흔하다. 그러나 자신이 그렇게 부요해지고 넉넉해졌을 때 그것을 가지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렸다는 간증은 우리에게 없다. 성경에 나와 있지 않은 요셉이 가졌을법한 생각들을 우리는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 많이 가지자. 더 많은 권력과 권세를 가지자. 더 많은 능력과 힘을 가지자...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스도인들이 부동산 투기와 주식투기에 빠져있을 때 교회는 그런 사람들의 정보의 교류장이 되어버렸고 주님이 바라시는 긍휼과 자비의 제사는 더 이상 교회에서 드려지지 않는다. 구제, 나눔, 베품... 이런 단어는 가진 자에게는 인색한, 가지지 못한 자에게는 부끄러운 의미로 사용되는 것 같다. 주님이 바라시는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가난한 자의 송사를 돌아보는 일 따위는 그들에게 생각의 단 0.1%라도 포함될 수 없는 것 아닌가?

난 그리스도인들이 적당히 부요해지면 좋겠다. 자신이 먹고 또 자신의 먹는 것만큼 두세 사람에게 나누어줘도 제법 남을만한 그런 부요함이 우리에게 있었으면 한다. 그렇지 않다면 솔직한 말로 껍데기만 그리스도인 사람들은 아주 폭삭 망했으면 한다. 그들이 부요할 때 돌아보지 않고 그들이 힘이 있을 때에 도와주지 않았던 사람들의 마음을 그들도 가져봐야 할 것 아닌가.

요셉의 세대의 일은 어쩌면 새로운 부흥이 왔을 때 우리 스스로에게 던져서 반드시 해답을 찾아야만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겐 물질이 너무 많고 또 물질이 많은 만큼 그 물질이 없어서 날마다 주님 앞에 간구하며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요셉이 충분히 베풀 수 있었던 긍휼을 우리가 외면하고 무시해서 주님의 진노를 사게 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나누어서 행복한 세상이 오면 좋겠다.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식물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쇠약하니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몰수히 거두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오니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이 진한지라 애굽 백성이 다 요셉에게 와서 가로되 돈이 진하였사오니 우리에게 식물을 주소서 어찌 주 앞에서 죽으리이까 요셉이 가로되 너희의 짐승을 내라 돈이 진하였은즉 내가 너희의 짐승과 바꾸어 주리라그들이 그 짐승을 요셉에게 끌어 오는지라 요셉이 그 말과 양떼와 소떼와 나귀를 받고 그들에게 식물을 주되 곧 그 모든 짐승과 바꾸어서 그 해 동안에 식물로 그들을 기르니라 그 해가 다하고 새 해가 되매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고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짐승떼가 주께로 돌아갔사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 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전지뿐이라 우리가 어찌 우리의 전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식물로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고 전지도 황폐치 아니하리이다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 전지를 다사서 바로에게 드리니 애굽 사람이 기근에 몰려서 각기 전지를 팖이라 땅이 바로의 소유가 되니라 요셉이 애굽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으나제사장의 전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바로의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 전지를 팔지 않음이었더라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날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전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추수의 오분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사분은 너희가 취하여 전지의 종자도 삼고 너희의 양식도 삼고 너희 집 사람과 어린아이의 양식도 삼으라 그들이 가로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까지 이르니라" - 창세기 47:13 ~ 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