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LA공항에 처음 내릴 때 난 잔뜩 겁먹어 있었다. 스스로에게 아무것 도 아니라고 대학에 입학해 처음 집을 떠났을 때처럼 쉽게 다른 환경에 적 응할 수 있다고 주문을 외웠었지만, 처음으로 대한 이국의 대도시는 그 크 기와, 소란스러움과, 방향을 도무지 알 수 없게 만든 지도와, 지나다니는 사람들 에게서 풍기는 특유의 냄새로 나를 완전히 압도해 버렸다.
시카코에 계시던 삼촌께서 마중나오시겠다던걸 그 먼거리를 굳이 올 필요 있겠냐며 자신있게 말해 버렸던 순간이 정말이지 후회가 될 무렵쯤에 겨우 난 canbury avenue 까지 가는 버스정류장을 찾았고, 그곳엔 역시 나 만큼이 나 무거운 트렁크를 가진 또래 녀석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첫눈에도 대부분 이 미국인이 아니라 전세계 어디선가에서 온 나처럼이나 겁먹고 돈 없고 어 눌한 떨거지들이었다.
멍청하게 2시간마다 한대씩 다니는 버스를 기다리며 조갑증을 떨쳐버리려 고 모르는 서로들에게 온갖나라 엑센트로 말을 걸며 떠들어 댈 무렵, 녀석 이 이 멍청이 집단에 합류했었다. 녀석이 이 집단의 중심부, 그러니까 bus stop 사인이 쓰인 곳 옆에 섰을 때 모인 무리들은 그녀석을 중심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면서 한발이나 두발 정도 물러서 버렸는데 이유는 그 녀석이 풍기는 지독한 냄새 때문이었다.
그 냄새란!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게 그 유명한 인도카레가 가장 맛있 게 되었을때 나는 냄새였다. 녀석은 버스가 올 때까지 누구도 말을 걸지 않 았고 자기를 두고 수근거리는 통에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1시간 정도가 흘렀을때 떨거지 녀석들은 자신들의 처지도 모른체 녀 석이 충분히 들릴정도로 그 고약한 냄새를 두고 떠들어 대기 시작했고, stinker라는 영광스런 별명을 녀석에게 주었다. 녀석은 점점 울상이 되어갔 고 피워대는 냄새만큼이나 진땀을 흘렸는데 난 녀석들이 점점 못마땅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 녀석들 또한 내겐 고양이 만큼이나 지독한 냄새를 풍기 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 그 녀석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녀석은 얼굴을 활짝펴며 지껄여 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나의 악몽은 시작 되었다. 녀석은 버스를 타고가는 두시간여 동안 내게 찰싹 달라붙어 행복한 듯 조잘대며 자신의 살아온 얘기며 자신의 취미와 자신의 가족들에 대해 시 시 콜콜히 얘기했고 버스를 내려서건 오리엔테이션에서건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기숙사는 기본적으로 신입생 두명이 한방을 쓰게 될거란 얘기를 들었을때 난 절망했다. 그녀석이 옆에서 싱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 었다.
녀석은 english literature전공이었고 난 computer science였다. 공대와 문 과대는 거대한 Landau hall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Landau hall엔 식 당과 도서관이 같이 붙어 있었다. 그 말은 내가 앞으로 밥을 먹을 때나 공 부할 때는 언제나 이 빌어먹을 냄새나는 녀석과 같이일꺼란 얘기였다.
녀석은 이상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stinker라고 불렸고, 난 몇번 내 이 름 발음을 가르쳐 주려다 포기하고 녀석에게 맘대로 부르라고 했더니 micky 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녀석의 냄새는 녀석의 그 커다란 가방안에 꽉 차있던 카레때문에 곧 나에게 도 베어버렸고 난 그 첫달엔 파티나 데이트에 한번도 초대되지 않았다. 한 국인끼리 모이는 모임도 있었지만 녀석은 내가 어딜가든 따라오려고 난리였 다.
어느날 밤 더이상 참지 못하게 된 난 녀석이 없는 틈을 타서 방을 어지럽히 고 녀석의 지갑에서 약간의 돈과 옷가지 몇개와 그 저주받을 카레를 몽땅 가방에 넣고 쓰레기 소각장에 집어 넣어 버렸다. 카레는 다음날 고약한 냄 새의 안개로 학교내를 유령처럼 떠다녔고 그후 녀석과 나는 그다지 나쁘지 않게 되었다.
녀석은 소설가가 되는게 꿈이었다. 영어권에서 귀족으로 태어난 녀석과 알 고 있는 영어단어가 이만개도 안 되는 나 사이에서 녀석은 언제나 대변자 노릇을 해 주었고 그건 또한 둘이서 언제나 같이 다닌다는 얘기였다. stinker라는 별명을 지닌 녀석과 같이 다닌다는건 지금은 그다지 냄새를 풍 기지 않게 되었어도 지독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녀석과 나는 Landau hall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있었 다. 그때 갑자기 밖이 소란 스러워지더니 사이렌 소리가 온 거리를 뒤덮고 있었다. 이게 왠 소란인가 싶어서 나가보았더니 저번달에 술취해 한국차를 몰고 150마일로 달린 흑인을 죽도록 두드려 팬 경찰들이 무죄로 판결받아 흑인들이 들고 일어났다고 했다.
거리는 개판이었고 우리는 난감해졌다. 기숙사는 Landau hall에서 약 반마 일쯤 거리였고 가장 번화한 곳을 지나야 했기 때문 이었다. 친구들이 한국 인이라면 맞아 죽을거라고 나가지 못하게 말렸고 내가 기숙사로 못가자 녀 석도 나없이는 무서워 못간다는둥 하더니 남아있었다.
아무도 없는 건물에 둘이서 불구경을 하고 앉아 있자니 새벽 세시쯤엔 책이 라도 씹어 먹을 정도로 배가 고팠다. 둘이서 굶어 쓰러지기 전에 뭔가 먹 을 만할 걸 찾으러 건물내를 돌아다녀 봤지만 빌어먹을 코카콜라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교수 연구실에도 들어가 찾아 봤지만 먹을 만한 거라곤 없었 고 비스켓 부스레기 조차 없었다.
제일 꼭대기엔 교장실이 있었는데 접대용으로 쿠키라도 준비해 두지 않았을 까 하는 마음에 크레딧카드로 문을 따고 들어가 보았다. 책상 서랍을 하나 하나 열어보고 책장도 살펴보았지만 먹을 건 없었고 고작해야 틀니정도나 찾을 뿐이었다.
포기하고 나오려고 했지만 영문학 전공인 녀석은 역시 영문학 교수인 교장 의 책장에 정신이 팔려 미친듯이 이것저것 뽑아 보고 있었다. 그 때 녀석 이 뭔가를 책 뒤에서 발견 했고 그건 1982년산 알래스카 위스키였었다. 배 고플때 술을 먹는다는 건 소용이 없는 일이었지만 굉장히 유명한 술이라고 하길래 들고 나와 맛을 보았다. 반쯤 남은 위스키는 진짜 맛있었고 한잔하 자 배고픔은 더했다.
문득 갑자기 뭔가 머리에서 떠올랐는데 그건 교장의 방에 있던 커다란 어항 과 그 속에서 헤엄치고 있던 비단잉어였다. 세마리가 있었는데 가장 작은 녀석 한마리만 남겨 두고 옥상에 올라가 책상하나를 부숴서 불을 피웠다. 밖의 거리엔 불난 곳 투성이 였으니 사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책상 에 끼워져 있던 철사로 잉어를 끼우고 마쉬멜로우 굽듯 잉어를 굽고 있으려 니 기막힌 냄새가 났고 녀석과 나는 교장의 잉어와 위스키로 근사한 파티 를 벌였다. 녀석은 언젠간 그 일을 소설로 쓰겠노라고 떠들어 대었다.
LA에 도착한지 9개월 쯤 되었을 때 난 몹시 아파 한국으로 돌아가야했고 그 후 다시 미국에 갈 수 없었다. 녀석은 바람난 아내를 기다리는 것 처럼 날 기다 렸지만 난 한국에서 다른 대학에 입학했고 녀석은 곧 학교를 졸업해 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녀석은 매달 한번씩 내게 메일을 보내었고 난 녀석 이 졸업한 후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여자와 데이트를 하는지 어느 거리에 살고 있는지 어떤 출판사에 다니다 어떻게 때려 쳤는지 어떻게 영화 시나리 오 작업에 뛰어 들었는지 시시콜콜히 다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거짓말처럼 녀석에게서 오던 메일이 뚝 끊겼고 그건 날 몹시 도 궁금하게 만들었다. 다른 친구들에게 메일을 보냈고 몇개의 메일이 순식 간에 지구 반바퀴를 돌고 난 후, 난 녀석이 AK-47소총으로 무장한 미국사 상 최악의 은행강도들이 경찰의 총과 경찰견의 이빨에 피걸레가 되기 몇분 전 강도 한명이 쏜 총알에 뒷머리 반이 날아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영화를 보았다. 실험실 후배녀석이 금요일마다 하나씩 빌려오 는 비디오를 아무 생각없이 보고 있으려니 대학을 다니는 두명의 멍청이들 이 밤에 기말고사 시험지를 빼내기 위해 교수의 방에 몰래 들어갔다가 여름 방학 동안 그 방에 갇혀서 교수방에 있던 어항의 물과 금붕어로 연명하는 신이 나왔다.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했다. 교수의 방 화이트 보드에 적혀있 는 글 때문이었다.
1년전 영화를 보다
4년전 LA공항에 처음 내릴 때 난 잔뜩 겁먹어 있었다. 스스로에게 아무것
도 아니라고 대학에 입학해 처음 집을 떠났을 때처럼 쉽게 다른 환경에 적
응할 수 있다고 주문을 외웠었지만, 처음으로 대한 이국의 대도시는 그 크
기와, 소란스러움과, 방향을 도무지 알 수 없게 만든 지도와, 지나다니는
사람들 에게서 풍기는 특유의 냄새로 나를 완전히 압도해 버렸다.
시카코에 계시던 삼촌께서 마중나오시겠다던걸 그 먼거리를 굳이 올 필요
있겠냐며 자신있게 말해 버렸던 순간이 정말이지 후회가 될 무렵쯤에 겨우
난 canbury avenue 까지 가는 버스정류장을 찾았고, 그곳엔 역시 나 만큼이
나 무거운 트렁크를 가진 또래 녀석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첫눈에도 대부분
이 미국인이 아니라 전세계 어디선가에서 온 나처럼이나 겁먹고 돈 없고 어
눌한 떨거지들이었다.
멍청하게 2시간마다 한대씩 다니는 버스를 기다리며 조갑증을 떨쳐버리려
고 모르는 서로들에게 온갖나라 엑센트로 말을 걸며 떠들어 댈 무렵, 녀석
이 이 멍청이 집단에 합류했었다. 녀석이 이 집단의 중심부, 그러니까 bus
stop 사인이 쓰인 곳 옆에 섰을 때 모인 무리들은 그녀석을 중심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만들면서 한발이나 두발 정도 물러서 버렸는데 이유는 그
녀석이 풍기는 지독한 냄새 때문이었다.
그 냄새란!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그게 그 유명한 인도카레가 가장 맛있
게 되었을때 나는 냄새였다. 녀석은 버스가 올 때까지 누구도 말을 걸지 않
았고 자기를 두고 수근거리는 통에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1시간 정도가 흘렀을때 떨거지 녀석들은 자신들의 처지도 모른체 녀
석이 충분히 들릴정도로 그 고약한 냄새를 두고 떠들어 대기 시작했고,
stinker라는 영광스런 별명을 녀석에게 주었다. 녀석은 점점 울상이 되어갔
고 피워대는 냄새만큼이나 진땀을 흘렸는데 난 녀석들이 점점 못마땅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 녀석들 또한 내겐 고양이 만큼이나 지독한 냄새를 풍기
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 그 녀석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녀석은 얼굴을 활짝펴며 지껄여 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나의 악몽은 시작
되었다. 녀석은 버스를 타고가는 두시간여 동안 내게 찰싹 달라붙어 행복한
듯 조잘대며 자신의 살아온 얘기며 자신의 취미와 자신의 가족들에 대해 시
시 콜콜히 얘기했고 버스를 내려서건 오리엔테이션에서건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기숙사는 기본적으로 신입생 두명이 한방을 쓰게 될거란
얘기를 들었을때 난 절망했다. 그녀석이 옆에서 싱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
었다.
녀석은 english literature전공이었고 난 computer science였다. 공대와 문
과대는 거대한 Landau hall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었고 Landau hall엔 식
당과 도서관이 같이 붙어 있었다. 그 말은 내가 앞으로 밥을 먹을 때나 공
부할 때는 언제나 이 빌어먹을 냄새나는 녀석과 같이일꺼란 얘기였다.
녀석은 이상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stinker라고 불렸고, 난 몇번 내 이
름 발음을 가르쳐 주려다 포기하고 녀석에게 맘대로 부르라고 했더니 micky
란 이름을 붙여 주었다.
녀석의 냄새는 녀석의 그 커다란 가방안에 꽉 차있던 카레때문에 곧 나에게
도 베어버렸고 난 그 첫달엔 파티나 데이트에 한번도 초대되지 않았다. 한
국인끼리 모이는 모임도 있었지만 녀석은 내가 어딜가든 따라오려고 난리였
다.
어느날 밤 더이상 참지 못하게 된 난 녀석이 없는 틈을 타서 방을 어지럽히
고 녀석의 지갑에서 약간의 돈과 옷가지 몇개와 그 저주받을 카레를 몽땅
가방에 넣고 쓰레기 소각장에 집어 넣어 버렸다. 카레는 다음날 고약한 냄
새의 안개로 학교내를 유령처럼 떠다녔고 그후 녀석과 나는 그다지 나쁘지
않게 되었다.
녀석은 소설가가 되는게 꿈이었다. 영어권에서 귀족으로 태어난 녀석과 알
고 있는 영어단어가 이만개도 안 되는 나 사이에서 녀석은 언제나 대변자
노릇을 해 주었고 그건 또한 둘이서 언제나 같이 다닌다는 얘기였다.
stinker라는 별명을 지닌 녀석과 같이 다닌다는건 지금은 그다지 냄새를 풍
기지 않게 되었어도 지독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녀석과 나는 Landau hall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있었
다. 그때 갑자기 밖이 소란 스러워지더니 사이렌 소리가 온 거리를 뒤덮고
있었다. 이게 왠 소란인가 싶어서 나가보았더니 저번달에 술취해 한국차를
몰고 150마일로 달린 흑인을 죽도록 두드려 팬 경찰들이 무죄로 판결받아
흑인들이 들고 일어났다고 했다.
거리는 개판이었고 우리는 난감해졌다. 기숙사는 Landau hall에서 약 반마
일쯤 거리였고 가장 번화한 곳을 지나야 했기 때문 이었다. 친구들이 한국
인이라면 맞아 죽을거라고 나가지 못하게 말렸고 내가 기숙사로 못가자 녀
석도 나없이는 무서워 못간다는둥 하더니 남아있었다.
아무도 없는 건물에 둘이서 불구경을 하고 앉아 있자니 새벽 세시쯤엔 책이
라도 씹어 먹을 정도로 배가 고팠다. 둘이서 굶어 쓰러지기 전에 뭔가 먹
을 만할 걸 찾으러 건물내를 돌아다녀 봤지만 빌어먹을 코카콜라 외엔 아무
것도 없었다. 교수 연구실에도 들어가 찾아 봤지만 먹을 만한 거라곤 없었
고 비스켓 부스레기 조차 없었다.
제일 꼭대기엔 교장실이 있었는데 접대용으로 쿠키라도 준비해 두지 않았을
까 하는 마음에 크레딧카드로 문을 따고 들어가 보았다. 책상 서랍을 하나
하나 열어보고 책장도 살펴보았지만 먹을 건 없었고 고작해야 틀니정도나
찾을 뿐이었다.
포기하고 나오려고 했지만 영문학 전공인 녀석은 역시 영문학 교수인 교장
의 책장에 정신이 팔려 미친듯이 이것저것 뽑아 보고 있었다. 그 때 녀석
이 뭔가를 책 뒤에서 발견 했고 그건 1982년산 알래스카 위스키였었다. 배
고플때 술을 먹는다는 건 소용이 없는 일이었지만 굉장히 유명한 술이라고
하길래 들고 나와 맛을 보았다. 반쯤 남은 위스키는 진짜 맛있었고 한잔하
자 배고픔은 더했다.
문득 갑자기 뭔가 머리에서 떠올랐는데 그건 교장의 방에 있던 커다란 어항
과 그 속에서 헤엄치고 있던 비단잉어였다. 세마리가 있었는데 가장 작은
녀석 한마리만 남겨 두고 옥상에 올라가 책상하나를 부숴서 불을 피웠다.
밖의 거리엔 불난 곳 투성이 였으니 사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책상
에 끼워져 있던 철사로 잉어를 끼우고 마쉬멜로우 굽듯 잉어를 굽고 있으려
니 기막힌 냄새가 났고 녀석과 나는 교장의 잉어와 위스키로 근사한 파티
를 벌였다. 녀석은 언젠간 그 일을 소설로 쓰겠노라고 떠들어 대었다.
LA에 도착한지 9개월 쯤 되었을 때 난 몹시 아파 한국으로 돌아가야했고 그
후 다시 미국에 갈 수 없었다. 녀석은 바람난 아내를 기다리는 것 처럼 날
기다 렸지만 난 한국에서 다른 대학에 입학했고 녀석은 곧 학교를 졸업해
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녀석은 매달 한번씩 내게 메일을 보내었고 난 녀석
이 졸업한 후 어떻게 지내는지 어떤 여자와 데이트를 하는지 어느 거리에
살고 있는지 어떤 출판사에 다니다 어떻게 때려 쳤는지 어떻게 영화 시나리
오 작업에 뛰어 들었는지 시시콜콜히 다 알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거짓말처럼 녀석에게서 오던 메일이 뚝 끊겼고 그건 날 몹시
도 궁금하게 만들었다. 다른 친구들에게 메일을 보냈고 몇개의 메일이 순식
간에 지구 반바퀴를 돌고 난 후, 난 녀석이 AK-47소총으로 무장한 미국사
상 최악의 은행강도들이 경찰의 총과 경찰견의 이빨에 피걸레가 되기 몇분
전 강도 한명이 쏜 총알에 뒷머리 반이 날아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영화를 보았다. 실험실 후배녀석이 금요일마다 하나씩 빌려오
는 비디오를 아무 생각없이 보고 있으려니 대학을 다니는 두명의 멍청이들
이 밤에 기말고사 시험지를 빼내기 위해 교수의 방에 몰래 들어갔다가 여름
방학 동안 그 방에 갇혀서 교수방에 있던 어항의 물과 금붕어로 연명하는
신이 나왔다.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했다. 교수의 방 화이트 보드에 적혀있
는 글 때문이었다.
miss you micky -stin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