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량학살 사건

권대현2007.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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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살인범이 차가운 살인자라면 버지니아 공대에서와 같은 대량 학살자는 억눌린 것들의 폭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솔직히 이런 대량학살범들이 현대 사회의 병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1938년 발생한 무츠오 토이에 의해 발생한 대량학살사건을 보자.
무츠오 토이는 평소 결핵에 걸렸다는 이유로 이웃들에게 경원되어 왔다. 이 때문에 앙심을 품고 있던 그는 1938년 5월 20일 대량 학살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들어간다. 21일 새벽 그는 우선 마을의 전화선과 전기를 끊어 암흑으로 만든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자신의 할머니를 살해한다. 할머니는 그가 아기일때 부모를 잃은 이후 계속 키워준 분이었다. 일본도와 소총으로 무장하고 집을 나선 그는 닥치는데로 이웃들을 죽여나갔으며 마을주민 29명을 한시간 반동안 살해했다. 그리고 나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량학살 사건

그는 죽기 전에 여러장의 유서를 남겼는데 그 유서에 따르면 결핵에 걸린 자신을 모욕한 이웃 주민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함이었으며, 할머니를 가장 먼저 살해한 이유는 살아있게 된다면 '살인자의 할머니'로 찍혀 괴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적어놓고 있다.


이러한 대량 학살 사건이 우리나라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앞서 일본의 사건보다 더 많은 사람이 희생된 우순경 사건이 있다.


경찰이었던 우범곤 순경은 강상남도 의령에서 근무하던 경찰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좌천되었다는 사실에 평소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동거녀와 꽤 오랫동안 다툼이 있었다고 하는데 사건을 저지른 날(1982년 4월 26일)도 동거녀와 크게 싸우고 난 후였다(일부 보도에 의하면 낮잠을 자던 우순경의 빰에 파리가 앉아있는 것을 잡으려나 뺨을 때렸다는 말도 있음). 우범곤은 그 길로 술을 잔뜩 마시고 난 후 파출소에 있던 무기고에서 수류탄과 칼빈 소총으로 무장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우체국을 습격해 외부와의 통신을 끊고 마을사람들에게 무차별 난사하여 총 55명의 학살한다. 마을을 탈출한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군부대는 사살 명령을 내리고 수색에 들어갔지만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다음날인 27일 우순경은 다시 마을로 들어와 인질을 잡고 있다가 수류탄을 터뜨려 인질 3명과 함께 자폭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총 58명의 사망자와 3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량학살 사건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경찰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정부는 희생자 가족에게 $27,000의 피해보상을 했다고 해외 뉴스는 보고하고 있으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참고로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40대 내무부장관이었던 서정화씨가 사퇴하고 노태우가 41대 내무부장관을 맡으며 정치계로 입문한다(그 이전까지는 수도경비 사령관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