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내내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러니까 구십년대가 한창이던 즈음 PC 통신의 시절이 절로 떠올랐다.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나 또한 그 시절 두문불출의 나날을 보내며, 소설 속의 퀴즈방과도 같은 곳에서 내 인생의 한 나절을 보냈던가. 언제든 들어가며 낯익은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과 보이지 않는 소속감으로 연대하고, 낯선 자들을 시니컬과 끊임없는 방종으로 경계하면서도 확대되는 자유주의의 손길로 받아들이고는 했다.
그곳에서의 사람 사귐 또한 내게는 너무도 쉬웠다. 지지직 거리는 전화선을 통한 감정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많이도 놀랐고는 했다. 마침표의 숫자를 헤아리며 상대방의 마음을 넘겨짚기도 했고, 괄호 안의 단어와 괄호 바깥의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였으며, 귓속말의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여 익명의 그들을 향해 비수를 날리고는 했다. 그 사이사이 연애와 사랑의 감정이 난무하였고, 자유와 방종이 한 끗 차이로 연일 파티를 열었다.
“... 퀴즈의 세계는 순수한 정신의 세계, 언어의 구조물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미래의 인간들이 경험할 사랑의 모습, 연애의 양상일지도 몰랐다. 육체를 옷 사입듯 구매하는 시대가 올 때, 성형수술에서 더 나아가 아예 육체를 디자인하는 시대가 될 때, 어쩌면 연애란 인간의 육체가 배제된, 정신과 정신 사이에서 벌어지는 신비로운 게임으로 변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엇비슷한 연배에 잡학다식하기 그지없는 김영하 또한 그 시절 어느 곳에선가(그러니까 당시의 PC 통신은 하이텔, 천리안이라는 양대 산맥에 유니텔이 가세한 3파전의 양상이었고,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문파 안에서만 자유로운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이들은 나름의 룰을 가지고 나름 배타적이었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열심히 상퀴방, 음퀴방, 영퀴방 등을 전전하지 않았을까, 그러다 문득 마주친 적도 있지 않을까 상상하여 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해도 대체로 인간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그 다음에 편지를 보내 사랑을 고백한 후, 그 열정이 받아들여지면 만나서 연애를 했다... 그러나 요즘의 어떤 인간은 먼저 사랑에 빠진 후에야 그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고 그 연애를 진전시키기 위해 나처럼 이렇게 육신을 움직여 ‘만남의 광장’으로 나가기도 한다...”
게다가 김영하는 그 속에서 사랑에 빠진 적이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PC 통신 연인이라는 것이 막 유행하던 시절이었고, 김영하의 말처럼 ‘먼저 사랑에 빠진 후’ 서로의 육신을 확인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신들의 감상으로 문명을 진화시키던 지금까지의 전략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고, 진화된 문명에 자신들의 감상을 맞추어야 한다는 삶의 전술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 것은 김영하의 이야기가 아니라 소설 속의 주인공인 이민수의 이야기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누구나 있어야 할 사람들을 갖지 못한 채 왕년에 영화배우였던 외할머니를 엄마로 여기며 자라난 이민수는 외할머니의 죽음, 그리고 연이어 밝혀지는 외할머니의 채무들로 인해 일거에 피붙이 하나 없고 집도 절도 없는 고시원에 기거하는 고등 룸펜이 된다.
그는 딱히 할 일도 없는 그 무사안일의 시기에 우연히 접속한 PC 통신의 퀴즈방에 푹 빠지게 되고, 내친 김에 TV의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하기까지 한다. 그 사이 이전부터 사귀던 빛나와 헤어지는가 하면, 퀴즈방에서 만난 ‘벽 속의 요정’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여자에게 비밀스러운 연정을 품게 된다.
“연정(戀情)을 완성하는 것은 비밀이다. 연정과 비밀은 된장과 미생물의 관계와 같다. 비밀이라는 균은 연정을 발효시킨다. 비밀이 발효시킨 연정은 서서히 냄새를 풍기며 익어간다. 아슬아슬하다. 비밀이 너무 과하면 연정은 부패되고 그리하여 끝내는 악취를 풍긴다... 그러나 적당하기만 하다면 연애를 신비롭고 짜릿하게 만들어준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결혼은 연애의 결말이라기보다 전혀 다른 어떤 것일 가능성이 크다. 결혼은 연애에서 비밀이라는 위험요소를 제거한 무균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고시원 옆방 여자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그는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벽 속의 요정 지원과의 연정을 뒤로 한 채 저 옛날 ‘로마 시대의 검투’를 연상시키는 퀴즈쇼의 일원이 된다. 나는 롱맨이라는 별명으로 리더인 장군, 팀의 유일한 여자인 메두사 그리고 탱고와 유리로 이루어진 ‘마티니’ 팀의 일원이 되고, ‘회사’라고 불리우는 곳에서 하나의 ‘회사’가 되어 전쟁터와 같은 퀴즈 대회에 나선다. 결국 외할머니의 죽음으로 촉발된 나의 변화는 PC 통신이라는 신문명에의 접속, 그리고 미스터리한 여자와의 미스터리한 사랑으로 이어지다, 갑자기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의 존재하지 않을법한 이야기로 변이된다. 그리고 다시금 헌책방을 거쳐 여자의 품에서 마무리된다.
사실 주책맞게도 자꾸 옛 시간들을 떠올리게 되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작가는 “... 단 한 번이라도 모니터 앞에서 낯모르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키보드를 두드려 밀어를 나누고, 아바타 뒤에 숨어 얼굴을 붉혀본 이들에게 바치는 소설이라도도 할 수 있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지어주고 싶다는 애 오랜 소망을 이룰 수 있어 기쁘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든 소설이다. 망상에 빠져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목적한 곳을 서너 정류장쯤 지나친 사람의 낭패감이 들었다고나 할까...
“... 나는 뭔가 어둡고 유독한 기운이 스멀스멀 그들 사이에서 피어올라 내 영혼 속으로 스며들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과속으로 달려가는 심야 고속버스에서 혼자 깨어 있을 때 느끼는 불안감 같은 것이었다.” 라거나, “... 만약 인간과 인간 사이에 경멸이라는 감정을 전달하는 전선이 있었다면, 그리고 그 전선이 나와 빛나를 연결하고 있었다면, 그 순간 아마 나는 감전되고 말았을 것이다.” 라고 재치있는 문장을 구사하는 김영하가 아직은 사랑스럽지만, 조선일보와 같은 안하무인 무반성의 신문에 연재라는 방식으로 허겁지겁 소설을 써내는 김영하는 우려스럽기만 하다. 아니 어쩌면 그때 그시절의 불온함이 보수우익의 신문에서 포장되는 방식이 우려스러운 건지도 모르겠다.
그때 그 시절의 불온함이 보수우익의 신문에서 포장되는 방식... <퀴즈쇼>
책을 읽는내내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러니까 구십년대가 한창이던 즈음 PC 통신의 시절이 절로 떠올랐다.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나 또한 그 시절 두문불출의 나날을 보내며, 소설 속의 퀴즈방과도 같은 곳에서 내 인생의 한 나절을 보냈던가. 언제든 들어가며 낯익은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과 보이지 않는 소속감으로 연대하고, 낯선 자들을 시니컬과 끊임없는 방종으로 경계하면서도 확대되는 자유주의의 손길로 받아들이고는 했다.
그곳에서의 사람 사귐 또한 내게는 너무도 쉬웠다. 지지직 거리는 전화선을 통한 감정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많이도 놀랐고는 했다. 마침표의 숫자를 헤아리며 상대방의 마음을 넘겨짚기도 했고, 괄호 안의 단어와 괄호 바깥의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였으며, 귓속말의 기능을 최대한 활용하여 익명의 그들을 향해 비수를 날리고는 했다. 그 사이사이 연애와 사랑의 감정이 난무하였고, 자유와 방종이 한 끗 차이로 연일 파티를 열었다.
“... 퀴즈의 세계는 순수한 정신의 세계, 언어의 구조물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미래의 인간들이 경험할 사랑의 모습, 연애의 양상일지도 몰랐다. 육체를 옷 사입듯 구매하는 시대가 올 때, 성형수술에서 더 나아가 아예 육체를 디자인하는 시대가 될 때, 어쩌면 연애란 인간의 육체가 배제된, 정신과 정신 사이에서 벌어지는 신비로운 게임으로 변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엇비슷한 연배에 잡학다식하기 그지없는 김영하 또한 그 시절 어느 곳에선가(그러니까 당시의 PC 통신은 하이텔, 천리안이라는 양대 산맥에 유니텔이 가세한 3파전의 양상이었고,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문파 안에서만 자유로운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이들은 나름의 룰을 가지고 나름 배타적이었다.)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어 열심히 상퀴방, 음퀴방, 영퀴방 등을 전전하지 않았을까, 그러다 문득 마주친 적도 있지 않을까 상상하여 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해도 대체로 인간은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그 다음에 편지를 보내 사랑을 고백한 후, 그 열정이 받아들여지면 만나서 연애를 했다... 그러나 요즘의 어떤 인간은 먼저 사랑에 빠진 후에야 그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고 그 연애를 진전시키기 위해 나처럼 이렇게 육신을 움직여 ‘만남의 광장’으로 나가기도 한다...”
게다가 김영하는 그 속에서 사랑에 빠진 적이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PC 통신 연인이라는 것이 막 유행하던 시절이었고, 김영하의 말처럼 ‘먼저 사랑에 빠진 후’ 서로의 육신을 확인하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신들의 감상으로 문명을 진화시키던 지금까지의 전략이 무너지는 것을 목격했고, 진화된 문명에 자신들의 감상을 맞추어야 한다는 삶의 전술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 것은 김영하의 이야기가 아니라 소설 속의 주인공인 이민수의 이야기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라는 누구나 있어야 할 사람들을 갖지 못한 채 왕년에 영화배우였던 외할머니를 엄마로 여기며 자라난 이민수는 외할머니의 죽음, 그리고 연이어 밝혀지는 외할머니의 채무들로 인해 일거에 피붙이 하나 없고 집도 절도 없는 고시원에 기거하는 고등 룸펜이 된다.
그는 딱히 할 일도 없는 그 무사안일의 시기에 우연히 접속한 PC 통신의 퀴즈방에 푹 빠지게 되고, 내친 김에 TV의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하기까지 한다. 그 사이 이전부터 사귀던 빛나와 헤어지는가 하면, 퀴즈방에서 만난 ‘벽 속의 요정’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여자에게 비밀스러운 연정을 품게 된다.
“연정(戀情)을 완성하는 것은 비밀이다. 연정과 비밀은 된장과 미생물의 관계와 같다. 비밀이라는 균은 연정을 발효시킨다. 비밀이 발효시킨 연정은 서서히 냄새를 풍기며 익어간다. 아슬아슬하다. 비밀이 너무 과하면 연정은 부패되고 그리하여 끝내는 악취를 풍긴다... 그러나 적당하기만 하다면 연애를 신비롭고 짜릿하게 만들어준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결혼은 연애의 결말이라기보다 전혀 다른 어떤 것일 가능성이 크다. 결혼은 연애에서 비밀이라는 위험요소를 제거한 무균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고시원 옆방 여자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함께 그는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벽 속의 요정 지원과의 연정을 뒤로 한 채 저 옛날 ‘로마 시대의 검투’를 연상시키는 퀴즈쇼의 일원이 된다. 나는 롱맨이라는 별명으로 리더인 장군, 팀의 유일한 여자인 메두사 그리고 탱고와 유리로 이루어진 ‘마티니’ 팀의 일원이 되고, ‘회사’라고 불리우는 곳에서 하나의 ‘회사’가 되어 전쟁터와 같은 퀴즈 대회에 나선다. 결국 외할머니의 죽음으로 촉발된 나의 변화는 PC 통신이라는 신문명에의 접속, 그리고 미스터리한 여자와의 미스터리한 사랑으로 이어지다, 갑자기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의 존재하지 않을법한 이야기로 변이된다. 그리고 다시금 헌책방을 거쳐 여자의 품에서 마무리된다.
사실 주책맞게도 자꾸 옛 시간들을 떠올리게 되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작가는 “... 단 한 번이라도 모니터 앞에서 낯모르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고, 키보드를 두드려 밀어를 나누고, 아바타 뒤에 숨어 얼굴을 붉혀본 이들에게 바치는 소설이라도도 할 수 있다.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지어주고 싶다는 애 오랜 소망을 이룰 수 있어 기쁘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든 소설이다. 망상에 빠져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목적한 곳을 서너 정류장쯤 지나친 사람의 낭패감이 들었다고나 할까...
“... 나는 뭔가 어둡고 유독한 기운이 스멀스멀 그들 사이에서 피어올라 내 영혼 속으로 스며들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과속으로 달려가는 심야 고속버스에서 혼자 깨어 있을 때 느끼는 불안감 같은 것이었다.” 라거나, “... 만약 인간과 인간 사이에 경멸이라는 감정을 전달하는 전선이 있었다면, 그리고 그 전선이 나와 빛나를 연결하고 있었다면, 그 순간 아마 나는 감전되고 말았을 것이다.” 라고 재치있는 문장을 구사하는 김영하가 아직은 사랑스럽지만, 조선일보와 같은 안하무인 무반성의 신문에 연재라는 방식으로 허겁지겁 소설을 써내는 김영하는 우려스럽기만 하다. 아니 어쩌면 그때 그시절의 불온함이 보수우익의 신문에서 포장되는 방식이 우려스러운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