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딘가엔가 앉아있었다. 나에게 종속되어 있는것

허철200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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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딘가엔가 앉아있었다.

나에게 종속되어 있는것 같지 않은 손가락을 움직여 다 식어버린 커피를 입가에 대어보다 다시 내려놓았다. 의지와 살덩어리들의 상호작용이 기묘하게 느껴진다. 눈에서 세상을 지웠다가 고개를 들어 햇살에 채색된 구름을 한스푼 담아 보았다. 비오던 날 담벼락 밑에 주저앉아 우산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한없이 슬퍼졌었던 그 시절이 왜 갑자기 떠오르는걸까. 툭툭, 눈동자 위에 담겨져 있는 하늘위로 눈물방울들이 영역을 넓혀간다. 6번째 생일을 맞았던날 오후 1시 12분, 눈안에 세상을 향해 다시는 타인에 굴해 울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하늘을 올려다 보았던 여린 가슴은 아직도 충분히 견고하지 않은가 보다. 의식에 종속되지 않는 부분들을 원망하며 숨을 깊게 들이쉬어본다. 앞으로도 이십여년을 갇혀 살아야 하는 녀석들의 집요한 공격을 오늘은 살풋 받아들여 준다. 이전보다 더 바빠졌다. 함수의 비례식처럼 나이가 들어가면 일도 비례해 많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사랑하는건 너희들이야'라는 고백에도 녀석들은 서서히 무뎌져 가는것 같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다. 내가 함께해야 할 녀석들. 순간순간을 가위질해서 살아가는 바쁜 일상속에서 녀석들에게 잠시나마의 휴가를 허가하며 나도 함께한다. 언제나 녀석들은 굶주려 있기에 머리카락의 끝까지 점령한 전율의 여세를 몰아 결국은 고개를 들어 공세를 저지하게 만든다. 난 정도를 넘어선 공격을 허락하지 않아왔으며 오늘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랑해' 속삭이는 나에게 녀석들은 점점 내 주위를 둘러썬 가식적인 사람들의 형상을 닮아간다. 파르르 가슴이 떨려오지만 모르는 듯 넘겨 버린다. 맑은 공기가 흘러들어와 어느새 눈가의 침입자들을 몰아낸 모양이다. 커피잔을 들어서 입가에 대어보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11월의 바람이 스쳐 지나간 커피잔엔 슬픔이 배어 있었다.

 

06 11 2007

13:48

Danny at somewhere in the sp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