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원성과 인간의 시간 사이의 대립은 오래전 고대 신화에서부터 다룬 원시적인 사안이었다. 신은 한 가지 방향의 현재를 지니고 있다고 하면 인간은 세 가지나 다른 방향의 현재를 안고 있다고 한다.
"세 개의 시간이 있다. 지나간 것의 현재, 현재적인 것의 현재, 그리고 다가 올 것의 현재. 이 세가지는 영혼 속에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며,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다. 지나간 것에 대한 현재의 기억,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현재의 관찰, 다가올 것에 대한 현재의 기대로..."
이 위의 어느 해석학자의 말처럼 인간은 과거의 현재, 현재의 현재, 미래의 현재라는 선택적인 시간 속에 살아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은 많은 철학적 관념이 빠르게 확산되어 왔다고 할 수 있겠는데 시간의 유한성이라는 촉박한 상황 속에서 더 생각하고 더 느끼고 더 행동하게 되는 인간의 본능을 호르몬 작용이 원할하게 이뤄지듯이 어쩌면 필연아닌 펼연처럼 되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시간의 유한성이라는 축복을 알지 못한 채 불로장생이라는 것을 추구해온 것도 없지 않다. 이 얼마나 우매한 일인가? 인간의 가치를 동물 중 최상이라는 위치까지 높여온 두 가지 원동력 생각 그리고 다른 하나인 시간의 유한성을 알아 보지 못하다니... 만약 인간이 영원을 가지게 된다면 그 마지막엔 오로지 허무라는 끝없는 막다른 길만 있을 뿐이라는 걸...
왜 신이 인간을 질투하였는가? 인간의 시간이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존재' 이지만 신에게 있어서 시간이란 '허무함에 빠지게 하는 광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신은 자신들이 만든 인간만이 보고 느낄 수 있는 '죽음의 미학'이라는 것을 알지 못해 미쳐버릴듯한 이 영원이라는 시간의 광기 속 아포리아에 빠져 인간을 질투한 나머지 자취를 감쳐 버린 것이 아닐까하고 다시 한번 고뇌해본다...
-신이 인간을 질투한 한가지, 시간의 유한성...
-신이 인간을 질투한 한가지, 시간의 유한성...
신의 영원성과 인간의 시간 사이의 대립은 오래전 고대 신화에서부터 다룬 원시적인 사안이었다. 신은 한 가지 방향의 현재를 지니고 있다고 하면 인간은 세 가지나 다른 방향의 현재를 안고 있다고 한다.
"세 개의 시간이 있다. 지나간 것의 현재, 현재적인 것의 현재, 그리고 다가 올 것의 현재. 이 세가지는 영혼 속에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며,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다. 지나간 것에 대한 현재의 기억,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현재의 관찰, 다가올 것에 대한 현재의 기대로..."
이 위의 어느 해석학자의 말처럼 인간은 과거의 현재, 현재의 현재, 미래의 현재라는 선택적인 시간 속에 살아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은 많은 철학적 관념이 빠르게 확산되어 왔다고 할 수 있겠는데 시간의 유한성이라는 촉박한 상황 속에서 더 생각하고 더 느끼고 더 행동하게 되는 인간의 본능을 호르몬 작용이 원할하게 이뤄지듯이 어쩌면 필연아닌 펼연처럼 되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시간의 유한성이라는 축복을 알지 못한 채 불로장생이라는 것을 추구해온 것도 없지 않다. 이 얼마나 우매한 일인가? 인간의 가치를 동물 중 최상이라는 위치까지 높여온 두 가지 원동력 생각 그리고 다른 하나인 시간의 유한성을 알아 보지 못하다니... 만약 인간이 영원을 가지게 된다면 그 마지막엔 오로지 허무라는 끝없는 막다른 길만 있을 뿐이라는 걸...
왜 신이 인간을 질투하였는가? 인간의 시간이란 '죽음에 이르게 하는 존재' 이지만 신에게 있어서 시간이란 '허무함에 빠지게 하는 광기'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신은 자신들이 만든 인간만이 보고 느낄 수 있는 '죽음의 미학'이라는 것을 알지 못해 미쳐버릴듯한 이 영원이라는 시간의 광기 속 아포리아에 빠져 인간을 질투한 나머지 자취를 감쳐 버린 것이 아닐까하고 다시 한번 고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