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누르 (Koh-I-Noor) 다이아몬드.

드미르200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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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이누르 (Koh-I-Noor) 다이아몬드.

 

코이누르 (Koh-I-Noor)


이 돌의 역사는 1304년 인도의 한 영지의 왕인 Malwa가 소유하고 있었다. 그 후 1526년 무갈 황제인 Sultan Barber의 소유로 넘어가 대대로 무갈 황제에 전승되었으며 그 중에는 타지마할 궁을 건설한 Shah Jajan도 있다.

 

이 시대에는 "코이누르를 가진자는 세계를 다스린다."는 믿음이 있었다. 1739년 페르샤의 Nadir Shal이 인도를 침공해서 델리를 함락 약탈을 감행 했는데 이 때 이 다이아몬드를 손에 넣었다. 그 당시 무갈제국 황제인 모하메트 샤가 이 돌을 터번 속에 감추었는데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정복자 나딜샤는 터번의 교환을 강요해서 터번에서 이 돌이 굴러 떨어졌을 때 나딜샤는 "코이누르" (빛의 산이라는 의미) 라고 외쳐 이 말이 그 돌의 이름이 되었다.

 

이 돌은 나딜샤의 아들 샤 록크가 멸망당하여 아프카니스탄의 왕 디라니에게 넘어가고 다시 펀잡의 사자라는 란지트 싱그의 것이 되었다가 시크교도의 반란후에 펀잡 지방은 영국 통치가 되어 동인도 회사가 이 보석을 소유하게 되었다. 엘리자베스1세에의해 창립된 이회사가 250주년을 기념해서 1805년 이 돌을 빅토리아 여왕에게 증정했다.

 

1851년 런던의 Crystal Palace전시회에서 이 돌이 전시 되었을 때 돌의 무지개 빛 광채가 적었기 때문에 재커트를 명해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코스타 공장의 부아상가라는 사람이 이 작업을 맡았다. 재커팅에는 38일이 걸렸고 비용은 4만 달러가 들었다.

 

따라서 186 캐러트의 올드 인디언 컷트 돌이 108.93캐럿트의 오우벌 브릴리언트로 컷트가 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본인의 의도대로 이 큰 다이아몬드를 브로치로 몸에 달았다.

 

그 후 이 돌은 메리여왕의 새로운 왕관 중앙을 장식했고(1911년) 다시 엘리자베스 황태후의 왕관에 옮겨 졌다(1927년). 지금은 런던탑에 왕관 보석의 중요한 보물로 보관 되고 있다.

다이아몬드 하우스, 드미르코이누르 (Koh-I-Noor) 다이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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