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외신을 통해 추진과정이 간간히 전해졌던 ‘남미은행(Banco del Sur)'이 올해 안에 설립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을 대신해 남미 지역을 위한 금융기구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남미은행 출범식(12월 9일)에는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에콰도르, 파라과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등 7개국이 참가할 예정이다. 앞으로 칠레, 콜롬비아, 가이아나, 페루, 수리남 등이 추가로 가세해 남미국가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12개국이 모두 회원국으로 참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며, 콜롬비아는 이미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다. 남미은행은 70억달러로 예상되는 초기 자본금이 마련되는 내년 초부터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될 예정이다. 본부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들어서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는 사무소가 설치된다.
21세기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혁명을 부르짖고 있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남미은행의 창설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중남미에서 자국이 주도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미주개발은행(IDB) 등의 영향력이 상실될 것을 우려하면서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IMF 때문에 태동한 남미은행
남한에서도 1997년의 외환위기 상황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이 국민들의 기억 속에 강하게 각인이 되었다. IMF는 주로 외환위기가 온 나라에 구제금융의 명분으로 달러를 빌려주면서 소위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를 신자유주의식으로 전면적으로 개조한다. 채무국은 IMF의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서는 IMF가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식으로 경제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이렇게 IMF의 처방(?)을 받은 나라들이 전 세계적으로 100개국이 넘는다. 미제국주의는 IMF라는 국제기구를 통해 전 세계를 신자유주의식 경제로 재편해서, 자국의 독점자본들이 해외에서 더 많은 부를 수탈할 수 있도록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에 IMF의 처방대로 신자유주의식 경제구조를 받아들인 나라들은 예외 없이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자국의 알짜기업들이 미국을 비롯한 초국적 투기자본들에게 헐값에 매각되며 만성적인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똑같다. IMF는 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강요한다.
- 국영기업의 민영화 - 정부 규제 철폐 - 복지 등 공공지출 대폭축소 - 임금 동결 및 삭감 - 외국 기업을 위한 완전한 시장개방 - 기업에게 세금 감면 - 노동조합 무력화
특히 중남미의 국가들은 미제국주의가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IMF의 경제침략에 의해 80년대부터 줄줄이 신자유주의의 직접적 피해를 입게 되었다. 1989년에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시민 수천 명이 사망한 대량학살의 참사는 그 직접적인 원인이 IMF의 경제처방 때문이었다. 이 외에도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볼리비아, 멕시코 등 대부분의 나라들이 IMF의 쓴맛을 보았다.
그러나, 미제국주의의 앞마당 중남미에서 IMF에 맞서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일어났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을 중심으로 남미은행을 창설하자는 움직임이 바로 이것이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로드리고 카베사스 베네수엘라 재무장관은 “남미은행은 남미국가들의 금융구조 개선을 위한 지역금융기구가 돼야 한다”면서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을 대체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했다. 이는 지난 2월 이후 남미은행 설립을 주도해온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입장이기도 하다. 카베사스 장관은 “남미국가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질 경우 남미은행 자본금을 1천600억달러 수준까지 늘릴 수 있다”면서 IMF 및 세계은행과의 관계 단절을 전제로 한 ‘남미를 위한 금융기구’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특히 차베스 대통령은 “남미은행은 워싱턴에 본부를 둔 IMF와 세계은행과는 달리 미국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다”면서 남미은행에 정치적 의미를 잔뜩 부여하고 있다.
IMF와는 다른 남미은행
추진되고 있는 남미은행이 IMF와는 어떻게 다른지는 운영방식을 보면 대번에 드러난다. IMF의 의사결정구조는 IMF에 가입한 185개 국가들의 1국가 1표 방식이 아니다. 각 국가별로 출자한 자금의 액수만큼 의결권을 가지는, 이른바 1달러 1표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IMF의 출자금 대부분이 미국, 그리고 친미국가들의 자금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IMF가 누구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에, 현재 논의되고 있는 남미은행의 의결구조는 1국가 1표제이다.
또한, IMF는 구제금융의 전제조건으로 채무국의 경제구조를 신자유주의식으로 개편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것이 관철되지 않으면 구제금융을 지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미은행은 금융지원을 얻는데 별다른 전제조건이 없는 것이 다르다. IMF의 진정한 목적이 구제금융을 빌미로 한 신자유주의 경제침략이라면, 현재 추진되고 있는 남미은행의 목적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국가에 별다른 조건없이 도움을 주는 상부상조적 국제금융기구라 하겠다.
남미은행은 뿐만 아니라 남미대륙 천연가스 수송관 건설과 교육, 보건 등 남미통합 노력을 전제로 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예정이어서, 차베스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중남미 국가공동체인 ALBA(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남미은행의 추진 과정과 논쟁
21세기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미국과 대등한 중남미국가들의 연합체를 구상하고 있는 차베스 대통령은 IMF에 대응하는 ‘남미은행’이라는 구상을 일찍부터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차베스의 구상이 구체적으로 외신에 언급된 것은 2005년 9월 15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 정상회의에서였다. 당시 차베스 대통령은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기 직전 기자들과 만나 아르헨티나 채권 10억달러만큼의 추가 매입 계획을 발표하면서 중남미 지역 전문 금융 지원에 나설 ‘남미은행’을 설립하기 위한 준비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2006년 9월에는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가 20억달러에 이르는 공동채권을 10억달러씩 분담해서 발행하면서 ‘남미은행’의 설립 추진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한편, 2007년 5월에 IMF 수석부총재인 존 립스키는 “남미은행을 창설하겠다는 아이디어가 아직 분명치 않다”면서 남미 관련국들 간에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는 점에서 실행 가능성이 낮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그는 이어 남미은행 창설안이 경제위기를 맞는 남미국가들에게 재정지원을 한다는 목표 아래 기금 조성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이행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등 현실성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의 반대표시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미 최대국인 브라질의 태도는 아쉬움이 많다. 한때 남미은행 설립에 반대했던 기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남미은행은 남미지역의 개발과 발전을 지원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면서 차베스 대통령 등이 주장하는 것처럼 남미은행이 IMF, 세계은행, 미주개발은행(IDB) 등 기존 국제금융기구에 대한 대항기구가 되는데 반대하고 있다. 그러면서 IMF는 남미지역에서 향후 발생할지 모를 금융위기를 예방하는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IMF의 존재 이유와 관계 유지 필요성을 설명했다.
남미은행의 자본금 조달 방안에 대해서도 브라질은 베네수엘라와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은 남미은행 회원국들이 동일한 규모의 자본금을 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베네수엘라는 경제 규모에 따라 차등적으로 자본금을 조달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들도 쉽게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브라질은 또 “회원국이 내놓는 자본금 규모를 다르게 할 경우 의결권에 차이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베네수엘라는 “자본금 규모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는 비중이 달라질 경우 IMF와 다를 바 없다”고 반대하고 있다.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의 이 같은 견해차는 남미은행 창설이 계속 늦어지는 원인이 되고 있다.
친미국가들조차 남미은행 참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IMF 등과의 악연 때문에 중남미 대다수의 국가들이 남미은행에 대해서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며 적극 참여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친미국가인 파라과이의 니카노르 두아르테 파라과이 대통령조차 공식 출범 선언을 앞두고 있는 남미은행이 향후 자국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두아르테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리는 출범 선언식 참석을 확인하면서 “남미은행은 파라과이를 포함한 남미지역의 개발 및 성장을 위한 재정 지원과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돕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아르테 대통령은 이어 “파라과이는 남미통합 진전을 위한 어떤 노력에도 적극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남미은행 출범 선언식을 계기로 브라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에콰도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등 참여국 정상들과 더 많은 대화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남미의 대표적인 친미국가중 하나인 콜롬비아의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은 지난 10월 12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창설을 추진하고 있는 남미은행에 콜롬비아도 가입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우리베 대통령은 이날 차베스 대통령과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콜롬비아의 푸에르토 바예나스와 베네수엘라의 마라카이보를 연결하는 가스관 준공 기념식에서 조만간 공식 출범하는 남미은행에 콜롬비아도 합류하고 싶다고 공식으로 밝혔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컬럼비아 대학 경제학과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남미은행 설립이 국제통화기금(IMF)에게는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한 바 있는 스티글리츠 교수는 IMF가 미국.유럽연합(EU) 등 선진국만을 위한 모임이 됐으며 사실상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등의 2가지 큰 결함을 안고 있다고 지적하고 "IMF는 자신의 역할을 재평가하고 거듭나야 하며, 이 점에서 남미은행 설립은 IMF가 경쟁력과 다양성을 갖추는데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어 "1990년대 초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IMF가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들어 중남미 지역에 금융위기가 발생할 경우 남미은행이 IMF보다 더 효과적인 억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와 함께 미국이 세계은행, 유럽이 IMF 총재를 독식하는 현재의 총재 선출방식을 브라질 등 신흥개도국들에 개방하는 등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렇듯 안팎의 지지와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중남미 은행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남미은행, IMF와 맞짱뜨다
** 월간 지 2007년 1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
남미은행, IMF와 맞짱뜨다
그동안 외신을 통해 추진과정이 간간히 전해졌던 ‘남미은행(Banco del Sur)'이 올해 안에 설립될 예정이다. 장기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을 대신해 남미 지역을 위한 금융기구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 남미은행 출범식(12월 9일)에는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에콰도르, 파라과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등 7개국이 참가할 예정이다. 앞으로 칠레, 콜롬비아, 가이아나, 페루, 수리남 등이 추가로 가세해 남미국가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12개국이 모두 회원국으로 참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며, 콜롬비아는 이미 참여 의사를 밝힌 상태다. 남미은행은 70억달러로 예상되는 초기 자본금이 마련되는 내년 초부터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될 예정이다. 본부는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 들어서고,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는 사무소가 설치된다.
21세기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혁명을 부르짖고 있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남미은행의 창설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중남미에서 자국이 주도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미주개발은행(IDB) 등의 영향력이 상실될 것을 우려하면서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IMF 때문에 태동한 남미은행
남한에서도 1997년의 외환위기 상황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이 국민들의 기억 속에 강하게 각인이 되었다. IMF는 주로 외환위기가 온 나라에 구제금융의 명분으로 달러를 빌려주면서 소위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를 신자유주의식으로 전면적으로 개조한다. 채무국은 IMF의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서는 IMF가 강요하는 신자유주의식으로 경제구조를 개편해야 한다. 이렇게 IMF의 처방(?)을 받은 나라들이 전 세계적으로 100개국이 넘는다. 미제국주의는 IMF라는 국제기구를 통해 전 세계를 신자유주의식 경제로 재편해서, 자국의 독점자본들이 해외에서 더 많은 부를 수탈할 수 있도록 획책하고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에 IMF의 처방대로 신자유주의식 경제구조를 받아들인 나라들은 예외 없이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자국의 알짜기업들이 미국을 비롯한 초국적 투기자본들에게 헐값에 매각되며 만성적인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똑같다. IMF는 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강요한다.
- 국영기업의 민영화
- 정부 규제 철폐
- 복지 등 공공지출 대폭축소
- 임금 동결 및 삭감
- 외국 기업을 위한 완전한 시장개방
- 기업에게 세금 감면
- 노동조합 무력화
특히 중남미의 국가들은 미제국주의가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IMF의 경제침략에 의해 80년대부터 줄줄이 신자유주의의 직접적 피해를 입게 되었다. 1989년에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시민 수천 명이 사망한 대량학살의 참사는 그 직접적인 원인이 IMF의 경제처방 때문이었다. 이 외에도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볼리비아, 멕시코 등 대부분의 나라들이 IMF의 쓴맛을 보았다.
그러나, 미제국주의의 앞마당 중남미에서 IMF에 맞서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일어났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대통령을 중심으로 남미은행을 창설하자는 움직임이 바로 이것이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로드리고 카베사스 베네수엘라 재무장관은 “남미은행은 남미국가들의 금융구조 개선을 위한 지역금융기구가 돼야 한다”면서 국제통화기금(IMF) 및 세계은행을 대체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했다. 이는 지난 2월 이후 남미은행 설립을 주도해온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입장이기도 하다. 카베사스 장관은 “남미국가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이루어질 경우 남미은행 자본금을 1천600억달러 수준까지 늘릴 수 있다”면서 IMF 및 세계은행과의 관계 단절을 전제로 한 ‘남미를 위한 금융기구’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특히 차베스 대통령은 “남미은행은 워싱턴에 본부를 둔 IMF와 세계은행과는 달리 미국의 영향력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다”면서 남미은행에 정치적 의미를 잔뜩 부여하고 있다.
IMF와는 다른 남미은행
추진되고 있는 남미은행이 IMF와는 어떻게 다른지는 운영방식을 보면 대번에 드러난다. IMF의 의사결정구조는 IMF에 가입한 185개 국가들의 1국가 1표 방식이 아니다. 각 국가별로 출자한 자금의 액수만큼 의결권을 가지는, 이른바 1달러 1표 방식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IMF의 출자금 대부분이 미국, 그리고 친미국가들의 자금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IMF가 누구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에, 현재 논의되고 있는 남미은행의 의결구조는 1국가 1표제이다.
또한, IMF는 구제금융의 전제조건으로 채무국의 경제구조를 신자유주의식으로 개편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이것이 관철되지 않으면 구제금융을 지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미은행은 금융지원을 얻는데 별다른 전제조건이 없는 것이 다르다. IMF의 진정한 목적이 구제금융을 빌미로 한 신자유주의 경제침략이라면, 현재 추진되고 있는 남미은행의 목적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국가에 별다른 조건없이 도움을 주는 상부상조적 국제금융기구라 하겠다.
남미은행은 뿐만 아니라 남미대륙 천연가스 수송관 건설과 교육, 보건 등 남미통합 노력을 전제로 한 프로젝트를 수행할 예정이어서, 차베스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중남미 국가공동체인 ALBA(미주대륙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남미은행의 추진 과정과 논쟁
21세기 사회주의를 내세우며 미국과 대등한 중남미국가들의 연합체를 구상하고 있는 차베스 대통령은 IMF에 대응하는 ‘남미은행’이라는 구상을 일찍부터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차베스의 구상이 구체적으로 외신에 언급된 것은 2005년 9월 15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 정상회의에서였다. 당시 차베스 대통령은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기 직전 기자들과 만나 아르헨티나 채권 10억달러만큼의 추가 매입 계획을 발표하면서 중남미 지역 전문 금융 지원에 나설 ‘남미은행’을 설립하기 위한 준비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2006년 9월에는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가 20억달러에 이르는 공동채권을 10억달러씩 분담해서 발행하면서 ‘남미은행’의 설립 추진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한편, 2007년 5월에 IMF 수석부총재인 존 립스키는 “남미은행을 창설하겠다는 아이디어가 아직 분명치 않다”면서 남미 관련국들 간에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는 점에서 실행 가능성이 낮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그는 이어 남미은행 창설안이 경제위기를 맞는 남미국가들에게 재정지원을 한다는 목표 아래 기금 조성을 추진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이행방안이 마련되지 않는 등 현실성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상의 반대표시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미 최대국인 브라질의 태도는 아쉬움이 많다. 한때 남미은행 설립에 반대했던 기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남미은행은 남미지역의 개발과 발전을 지원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면서 차베스 대통령 등이 주장하는 것처럼 남미은행이 IMF, 세계은행, 미주개발은행(IDB) 등 기존 국제금융기구에 대한 대항기구가 되는데 반대하고 있다. 그러면서 IMF는 남미지역에서 향후 발생할지 모를 금융위기를 예방하는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IMF의 존재 이유와 관계 유지 필요성을 설명했다.
남미은행의 자본금 조달 방안에 대해서도 브라질은 베네수엘라와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라질은 남미은행 회원국들이 동일한 규모의 자본금을 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베네수엘라는 경제 규모에 따라 차등적으로 자본금을 조달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국가들도 쉽게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브라질은 또 “회원국이 내놓는 자본금 규모를 다르게 할 경우 의결권에 차이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베네수엘라는 “자본금 규모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는 비중이 달라질 경우 IMF와 다를 바 없다”고 반대하고 있다.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의 이 같은 견해차는 남미은행 창설이 계속 늦어지는 원인이 되고 있다.
친미국가들조차 남미은행 참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IMF 등과의 악연 때문에 중남미 대다수의 국가들이 남미은행에 대해서 우호적인 시선을 보내며 적극 참여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친미국가인 파라과이의 니카노르 두아르테 파라과이 대통령조차 공식 출범 선언을 앞두고 있는 남미은행이 향후 자국 경제 성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두아르테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리는 출범 선언식 참석을 확인하면서 “남미은행은 파라과이를 포함한 남미지역의 개발 및 성장을 위한 재정 지원과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돕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아르테 대통령은 이어 “파라과이는 남미통합 진전을 위한 어떤 노력에도 적극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남미은행 출범 선언식을 계기로 브라질,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에콰도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등 참여국 정상들과 더 많은 대화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남미의 대표적인 친미국가중 하나인 콜롬비아의 알바로 우리베 대통령은 지난 10월 12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창설을 추진하고 있는 남미은행에 콜롬비아도 가입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우리베 대통령은 이날 차베스 대통령과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콜롬비아의 푸에르토 바예나스와 베네수엘라의 마라카이보를 연결하는 가스관 준공 기념식에서 조만간 공식 출범하는 남미은행에 콜롬비아도 합류하고 싶다고 공식으로 밝혔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컬럼비아 대학 경제학과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남미은행 설립이 국제통화기금(IMF)에게는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한 바 있는 스티글리츠 교수는 IMF가 미국.유럽연합(EU) 등 선진국만을 위한 모임이 됐으며 사실상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등의 2가지 큰 결함을 안고 있다고 지적하고 "IMF는 자신의 역할을 재평가하고 거듭나야 하며, 이 점에서 남미은행 설립은 IMF가 경쟁력과 다양성을 갖추는데 자극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어 "1990년대 초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IMF가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들어 중남미 지역에 금융위기가 발생할 경우 남미은행이 IMF보다 더 효과적인 억제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평가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와 함께 미국이 세계은행, 유럽이 IMF 총재를 독식하는 현재의 총재 선출방식을 브라질 등 신흥개도국들에 개방하는 등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렇듯 안팎의 지지와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중남미 은행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