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계' 잔상이 좀 남는다. 최근에 극장에서 본 영화중에서는 영화가 좋았기 때문일테다.
상황이 그런지라 극장에서 영화는 거의 보지를 않고, 꼭 스크린으로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보는데 여기서 볼 때 마다 느끼는 것은 서울에서 내가 영화를 보던 극장들이 참 그립다는 거다. 씨네큐브, 종로스폰지, 서울아트시네마, CQN..
그 진중한 정사장면에서 여주인공의 겨드랑이 털을 보면서 웃어대는 관객들하고는 같은 공간에서 영화를 보고 싶지 않다.(시대를 감안한다면 당연한 묘사이다. 여자들이 겨드랑이 털에 대해 관리하고 신경쓰는 유행은 길어야 요 10년 전후에 들어 생긴거니까). 요정에서 양조위에게 탕웨이가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에서는 왜 도대체 킥킥대는줄 모르겠다. 일본 게이샤들이 불러줄 법 듯한 노래를 경극조의 목소리로 가벼운 율동과 함꼐 탕웨이가 노래를 부르는데 그 장면에서 관객은 웃는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 예의 경극조의 간드러지는 목소리 때문에? 흔들흔들 대는 춤사위 때문에?
정말 그것 때문이라면 난 그들(대중)에 대해 단순한 짜증과 분노를 넘어 혐오할 수 밖에 없다. 왜 그것이 윳음을 유발하는가? 자신들에게 어떠하게라도 낯설고 다른것은 무조건 웃기게 보이는 것인가? 난 그 웃음의 기저를 느꼈는데 타자에 대한 비웃음, 배타성 그것이었다. 나와 다른것은 미천하고 웃기는 유희라고 느끼는 오만한 배타성. 비교적 익숙하고 잘 알려진 중국문화에 대한 반응도 그럴지언데 그들이 속에 가지고 있을 더 깊은 오만함과 몰지각한 배타성이 더욱 혐오스럽고 두려웠다. 진짜 FTA가 이루어져할 할 곳은 미국산 소고기가 아니라 한국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형적인 민족주의다.
영화를 보면서 100명은 웃는데 나 혼자 안 웃는다고 민족주의까지 갖다 대면서 짜증을 내는게 나 혼자 예민하게 지랄 떨고 있는 걸 수도 있지만 영화를 보면서 해대는 병신같은 반응들 때문에 집중이 안되고 기분이 좇같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다수가 그러든 소수가 그러든, 틀린건 틀린거니까. 영화를 보면서 대놓고 통화하는 이런 십색끼들을 사법처리 해야 하는 것에 대해 국회에서 진지하게 논의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나이 쳐먹고 하는 이런 무개념이 영화관람이 아닌 다른 사회적활동에도 적용된다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뿐이다. 그리고 프리머스 개색이들은 영화의 마지막컷이 끝나고 엔딩크레딧 올라가자마자 1.3초도 안되 상영관의 모든불을 켜버리고 알바들을 시켜 성급히 관객들을 쫓아버린다. 영화 하루에 한편이라도 더 상영해서 돈 벌야되는건 알겠는데 씨발 영화 끝나면 한 2~3분이라도 영화에 대해서 생각좀 정리하고 영화에 대한 감상을 즐길 시간을 갖자. 오줌싸면 털어야되고 똥 사면 휴지로 닦아야 될 거 아닌가. 엔딩크레딧도 엄연한 영화의 한 부분인데 불 켜놓고 나가라고 지랄이야. 자본의 논리가 영화의 러닝타임까지 정의하고 있다. 엔딩크레딧 올라가는데 불 켜는 극장은 영화 티켓 가격에서 1000원 반환해야 한다고 헌법소원해야 된다. 그래야 불 안켜겠지..
색, 계에 대해서 쓰려고 했는데 영화 볼때 엿 같았던게 생각나는 바람에 옆길로 새버렸다. 어쨌든 영화는 잔상이 많이 남고 그 잔상의 50% 이상은 탕웨이에 의한 것이다. 스크린속에서 진정으로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애정은 숨길 수가 없겠다. 하지만 영화를 본 다음날 생각하니 생각보다 영화가 왕치아즈에 대해 더 깊숙하게 파고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 에게 더 파고들지도 않았다. 그 논란의 정사씬이 사실은 그 둘의 캐릭터와 함께 영화 속 다른 모든 것을 잡아먹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거기에 방점이 찍히느라 역사속에 휘말리며 무너지거나 부서지는 인물들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여지는 많이 없다. 그 두 인물을 통해 영화는 더 나아가거나 깊어질 수 있었는데 거기까지는 가지 않는다. 원작을 안 읽어봐서 모르겠고, 원작이 어떻다한들 이안감독의 선택은 이것이다. 이안 감독님이 그렇다고 하고 이렇게 찍었으니 뭐..
"색, 계"를 보고 나서
'색, 계' 잔상이 좀 남는다. 최근에 극장에서 본 영화중에서는 영화가 좋았기 때문일테다.
상황이 그런지라 극장에서 영화는 거의 보지를 않고, 꼭 스크린으로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보는데 여기서 볼 때 마다 느끼는 것은 서울에서 내가 영화를 보던 극장들이 참 그립다는 거다. 씨네큐브, 종로스폰지, 서울아트시네마, CQN..
그 진중한 정사장면에서 여주인공의 겨드랑이 털을 보면서 웃어대는 관객들하고는 같은 공간에서 영화를 보고 싶지 않다.(시대를 감안한다면 당연한 묘사이다. 여자들이 겨드랑이 털에 대해 관리하고 신경쓰는 유행은 길어야 요 10년 전후에 들어 생긴거니까). 요정에서 양조위에게 탕웨이가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에서는 왜 도대체 킥킥대는줄 모르겠다. 일본 게이샤들이 불러줄 법 듯한 노래를 경극조의 목소리로 가벼운 율동과 함꼐 탕웨이가 노래를 부르는데 그 장면에서 관객은 웃는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 예의 경극조의 간드러지는 목소리 때문에? 흔들흔들 대는 춤사위 때문에?
정말 그것 때문이라면 난 그들(대중)에 대해 단순한 짜증과 분노를 넘어 혐오할 수 밖에 없다. 왜 그것이 윳음을 유발하는가? 자신들에게 어떠하게라도 낯설고 다른것은 무조건 웃기게 보이는 것인가? 난 그 웃음의 기저를 느꼈는데 타자에 대한 비웃음, 배타성 그것이었다. 나와 다른것은 미천하고 웃기는 유희라고 느끼는 오만한 배타성. 비교적 익숙하고 잘 알려진 중국문화에 대한 반응도 그럴지언데 그들이 속에 가지고 있을 더 깊은 오만함과 몰지각한 배타성이 더욱 혐오스럽고 두려웠다. 진짜 FTA가 이루어져할 할 곳은 미국산 소고기가 아니라 한국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형적인 민족주의다.
영화를 보면서 100명은 웃는데 나 혼자 안 웃는다고 민족주의까지 갖다 대면서 짜증을 내는게 나 혼자 예민하게 지랄 떨고 있는 걸 수도 있지만 영화를 보면서 해대는 병신같은 반응들 때문에 집중이 안되고 기분이 좇같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다수가 그러든 소수가 그러든, 틀린건 틀린거니까. 영화를 보면서 대놓고 통화하는 이런 십색끼들을 사법처리 해야 하는 것에 대해 국회에서 진지하게 논의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나이 쳐먹고 하는 이런 무개념이 영화관람이 아닌 다른 사회적활동에도 적용된다 생각하면 소름이 끼칠 뿐이다. 그리고 프리머스 개색이들은 영화의 마지막컷이 끝나고 엔딩크레딧 올라가자마자 1.3초도 안되 상영관의 모든불을 켜버리고 알바들을 시켜 성급히 관객들을 쫓아버린다. 영화 하루에 한편이라도 더 상영해서 돈 벌야되는건 알겠는데 씨발 영화 끝나면 한 2~3분이라도 영화에 대해서 생각좀 정리하고 영화에 대한 감상을 즐길 시간을 갖자. 오줌싸면 털어야되고 똥 사면 휴지로 닦아야 될 거 아닌가. 엔딩크레딧도 엄연한 영화의 한 부분인데 불 켜놓고 나가라고 지랄이야. 자본의 논리가 영화의 러닝타임까지 정의하고 있다. 엔딩크레딧 올라가는데 불 켜는 극장은 영화 티켓 가격에서 1000원 반환해야 한다고 헌법소원해야 된다. 그래야 불 안켜겠지..
색, 계에 대해서 쓰려고 했는데 영화 볼때 엿 같았던게 생각나는 바람에 옆길로 새버렸다. 어쨌든 영화는 잔상이 많이 남고 그 잔상의 50% 이상은 탕웨이에 의한 것이다. 스크린속에서 진정으로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애정은 숨길 수가 없겠다. 하지만 영화를 본 다음날 생각하니 생각보다 영화가 왕치아즈에 대해 더 깊숙하게 파고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 에게 더 파고들지도 않았다. 그 논란의 정사씬이 사실은 그 둘의 캐릭터와 함께 영화 속 다른 모든 것을 잡아먹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거기에 방점이 찍히느라 역사속에 휘말리며 무너지거나 부서지는 인물들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여지는 많이 없다. 그 두 인물을 통해 영화는 더 나아가거나 깊어질 수 있었는데 거기까지는 가지 않는다. 원작을 안 읽어봐서 모르겠고, 원작이 어떻다한들 이안감독의 선택은 이것이다. 이안 감독님이 그렇다고 하고 이렇게 찍었으니 뭐..